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해적소탕! 73
크랭크들이 토벌한 해적은 근방에서 꽤 유명한 해적단이었다.
아리에테가 놀라워했다.
“현상금이 5000만 리즈?!”
출동한 경비대의 호송마차에 실려 가는 해적선장을 보던 크랭크는 다리가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 돈이면 많은 걸 할 수 있겠군.”
“침몰한 해적선의 위치를 알 수 있겠습니까?”
다시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 크랭크는 아직까지도 거품이 솟아오르는 지점을 가리켰다. 경비대는 그 부근에 부표를 설치했다.
침몰한 해적선은 따로 건져서 내용물을 수거 할 것이라고 했다.
경비대원 하나가 물었다.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발음이 있었다고 하던데 뭘 하신 겁니까?”
크랭크는 고개를 돌려 신성 치료를 받고 있는 드워프를 쳐다보았다.
“파이어볼 스크롤을 사용했습니다. 당장 추적할 수단은 없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현상금은 모험가 길드에서 지급할 겁니다. 도움 감사합니다.”
경례를 붙인 경비병들은 구출한 사람들을 데리고 도시로 향했다.
“아저씨 고마워요!”
“으헉?!”
잡혀갔다가 무사히 돌아온 마을 처녀들이 구스타프를 끌어안고 감사를 전했다.
허리가 부러질 뻔한 구스타프였지만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그녀들을 다독였다. 해적의 습격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일하러 나간 상태라서 저항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 죽은 사람들은 없었다.
물론 다친 사람이 있긴 했지만 신관 에리스가 다 치료해버렸다.
“신관은 정말 이럴 때 빛을 발하는구나. 대단해.”
“우후훗.”
에리스가 기뻐했다. 그때 연락을 받았는지 마차 몇 대가 마을에 도착했다. 일하러 나갔던 마을의 남자들이었다.
“여보!”
“아빠!”
구스타프를 괴롭히고 있던 처녀들이 갑자기 너도나도 울면서 달려가 장정들에게 매달린다. 남자들은 가족과 마을을 구해준 모험가들과 드워프에게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됐어.”
“저희들은 돈 때문에 한 일입니다.”
“아니, 그래도···.”
“난 좀 쉴 테니 방해하지 말게.”
송구스러워 하는 남자들의 앞에 서 있던 구스타프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세나! 샤브!”
갑자기 눈을 부릅뜬 구스타프가 뒤를 돌아본다. 뒤 늦게 도착한 어떤 사내가 골목길에 서있는 만삭의 산모와 소년에게 달려가고 있다.
“여보!”
“아빠!”
한 가족이 얼싸안고 우는 것을 뒤에서 쳐다보던 그림자가 있었으니 구스타프였다.
“이보게 한슨.”
“어엇! 구, 구스타프 씨!”
그의 멱살을 잡은 드워프는 그대로 잡아당겨 이마에 박치기를 했다. 빡-!
“가장이라는 놈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어딜 그리 싸돌아다니는 것이냐! 나와 저 모험가들이 없었다는 죽은 목숨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가난한 어촌 마을의 사내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걸 모르지 않았던 구스타프는 그 정도만 하고 손을 놓았다.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하지. 며칠 정도는 가족들과 있어주게.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리고 몸을 돌리고 골목길을 걸어가 버렸다. 샤브가 훌쩍이며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한슨이 울먹인다.
“미안···. 미안해···.”
가만히 그걸 보고 있던 크랭크가 헛기침을 하더니 손을 들었다.
“여러분이 안심하고 일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발언에 모두가 기괴한 투구를 뒤집어 쓴 모험가를 바라보았다. 크랭크는 계속 말했다.
“침몰한 해적선에서 보물을 빼돌려 경비용 오토마톤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아, 아니 이보시오. 그건 도둑질이 아니오?”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눈빛이 도무지 정상인의 그것 같지 않다.
“다들 그렇게 살아갑니다. 뭐가 나쁩니까? 다시 해적들에게 딸과 아내들을 빼앗기고 싶습니까? 그야 우리는 좋습니다. 놈들을 때려잡아 돈을 버니까요.”
사내들의 얼굴로 미세한 분노가 서렸다. 그러다가 구경하던 캐롯이 입을 연다.
“아, 그러고 보니 거기 굉장한 오토마톤이 있었어. 메라? 엄청 잘 싸우더라. 목이 떨어졌지만, 그거 수리해서 쓰면 되지 않겠어?”
“잘됐군. 적당히 값어치 있는 물건 하나 건져서 그걸 수리비로 돌리면 되겠어. 어떻습니까?”
마을 사람들의 눈에 불꽃이 튄다. 그들이 일어섰다.
“여기 수심은 그리 깊지 않아. 해보자.”
“겨울인데 괜찮겠어?”
“잠깐이면 된다.”
“배와 장비를 꺼내 올게.”
“경비대는 돌아갔으니 당장 오늘 밤에 하자.”
악으로 뭉친 바다 사나이들을 보면서 캐롯이 히죽 웃는다.
“순박한 사람들이 세상과 운명에 저항하기 시작할 때의 저 얼굴, 언제 봐도 참 멋져.”
“오토마톤이면서 굉장하구나. 캐롯은.”
아리에테의 말에 캐롯이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사랑해. 너희 인간들을, 좋아해. 너희들의 삶을, 항상 지켜주고 싶어. 그 미래를,”
갑자기 아리에테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잘 몰랐다. 왜 이러는 것인지. 어쩐지 캐롯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그 작은 여신의 인형을 꼭 껴안아버렸다.
한 밤, 침몰한 해적선의 위치를 알리는 부표 주변에 보트가 몰려든다. 라이트 구슬을 줄로 엮어 머리에 붙인 사람들이 물안경을 쓰고 바다 속으로 잠수했다.
화톳불을 밝혀 놓은 해안가에서 그들이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던 크랭크가 근처에 다가온 드워프를 발견했다.
“사람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더군. 덕분에 한 시름 놓았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합니다. 규제를 건 사람들이 보았다면 좋은 소린 하지 않겠지만요.”
이 양철거인의 말솜씨가 제법이라고 생각하며 구스타프는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계속 못 본 척하게. 자네들에게 그 유황 냄새 나는 무기는 상극이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 죽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결국 서로를 죽이게 될 거야.”
그 날처럼,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해적선 현상금이 5000만 리즈 입니다. 반으로 나누는 건 어떨까요?”
“자네와 그 조그만 오토마톤의 입막음용으로 쓰면 되겠군.”
뒷짐을 진 채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구스타프는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1시간 정도 후 탐사를 마친 사람들이 돌아왔다. 화톳불을 밝혀놓은 모래사장에 쏟아놓은 것은 큼직한 상자 하나와 오토마톤의 몸과 머리였다.
“배 안에 쓸 만한 것이 많던데 좀 아깝군. 한 번 더 들어갈까?”
“욕심 부리다가 물속에서 얼어 죽어. 여럿 그렇게 죽었지.”
“으어어얼···! 무, 물이 너무 차가워. 버티질 못 하겠어.”
불가에 모여 차가워진 몸에 온기를 쬐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내들이 상자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크랭크를 보았다.
끼릭, 철컥, 텅!
입을 벌린 상자 속에는 금화가 가득했다.
“오! 제대로 골랐군!”
사내들이 기뻐했다. 돈을 세어보던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수리를 하고도 거스름돈이 남겠습니다.”
“그럼 당신네에게 양보하지. 아무리 돈 받고 한 일이라지만 비싼 포션도 아끼지 않고 죽을 사람까지 살려 내줬는데 그거라도 받아주시게.”
크랭크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 오토마톤은 니베라로 가져가서 다시 수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에게라면 속아도 할 말은 없지. 좋을 대로 하시오.”
옷을 챙겨든 사람들이 웃는다. 가만히 있던 크랭크는 지나가는 투로 입을 열었다.
사람 마음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사람을 시기 할 것이다.
“제 생각에 겨울 사냥이 끝나는 시점에 저 해적선을 인양하기 위해 잠수인부를 고용할 것입니다. 그때를 노려보십시오.”
바다 사내들의 눈이 번쩍인다.
그리고 입이 슬그머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튿날, 야간 순찰까지 착실히 마친 크랭크의 파티는 어촌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니베라로 돌아갔다.
언덕 위에서 떠나가는 짐마차를 바라보던 구스타프가 고개를 돌려 끝없이 펼쳐진 대양을 바라본다. 이윽고 입 꼬리가 스륵 올라간다. 그토록 기다리던 배가 도착한 것이다.
수평선 부근의 배는 인간의 눈으로는 점으로 보일 지경이었지만, 드워프의 시력은 남달랐다.
때 마침 그의 가슴팍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아! 들리나? 구스타프! 구스타프!
목에 걸어놓은 펜던트를 꺼낸 구스타프가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아! 왜 이렇게 늦어! 목이 빠지는 줄 알았잖느냐!”
-오! 구스타프! 말도 말게, 오다가 폭풍을 만났어. 물건은 어찌됐나?
“벌써 가져다 놨다!”
-잘 됐군. 어두워지면 들리지.
“알았어.”
새벽 무렵쯤 되자 선착장으로 거대한 상선이 조용히 들어왔다.
“구스타프!”
“도라!”
선착장에서 만난 두 드워프가 시끄럽게 껴안는다. 함께 배에서 내린 갈색 피부에 이국적인 용모의 사내들은 무표정하게 그걸 바라보았다.
“물건은?”
“이쪽이야. 조용히 따라와.”
구스타프는 인부들을 데리고 한슨의 집으로 향했다. 미리 언질을 받은 한슨은 가족들에게 집밖으로 나오지 말도록 당부하고 창고의 문을 열어 그들을 맞이했다.
휘이잉! 휘잉!
휘몰아치는 바닷가 겨울바람이 인부들의 발소리를 죽여 놓았다. 창고안의 물건을 상선으로 옮겨놓기는 동안 구스타프가 배안에서 책임자를 만났다.
큰 키에 역시 갈색 피부를 한 사내였는데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것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같았다.
“당신 우리 말 할 줄 아나?”
차갑고 고압적인 시선이었지만 드워프 구스타프에겐 인간의 눈빛 따위 집에서 키우는 닭의 그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노려보면 어쩔 거냐? 너도 배때기에 칼날이 박히면 숨넘어가는 소리 밖에 낼 수 없어.”
갑자기 사내가 씩 웃는다. 그때 통역으로 함께 온 엘프 여자 트란스가 끼어든다.
“말씀을 가려주십시오. 구스타프, 이 분은···.”
“나는 사이퍼즈, 제2왕자. 하만, 입니다. 드워프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힘의 섭리, 그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
딱딱하고 억양의 높낮이가 익숙하지 않지만 의미는 전달되었다.
“꽤 잘하는 군. 공부 열심히 했나보군.”
“감사합니다.”
사내의 입이 웃는다. 하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구스타프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지 못했다.
서로 자기만의 알 수 없는 목적을 시선에 담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이해관계는 맞아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인사나 하자고 부른 건 아냐. 사용법은? 누구에게 알려주면 되나?”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하만이 트란스를 돌아보았다. 유창한 언어로 통역해주자 그의 표정이 환하게 바뀐다.
“나에게 알려주시면 된다.”
구스타프는 재차 묻지 않았다. 그는 상자 하나를 끌고 와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길쭉한 소총들이 가지런히 들어차 있다. 그중 하나를 들어 하만에게 내밀자 그가 기뻐하며 받아든다.
“전장식 단발 소총이지만 마력석으로 점화시키기 때문에 간편하지. 총구에 화약과 납덩이를 넣고 바로 당기면 된다. 그리고 이건···.”
여러 가지 병기를 꺼내 보이며 한참동안 떠들어대자 어느새 하만의 주변으로 하역을 마친 인부들도 모여 그의 강의를 들었다.
“이상이다. 나머지는 쓰면서 스스로 파악해라, 만져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통역으로 그의 설명을 모두 전해들은 하만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허리를 살짝 숙였다.
뻣뻣하기로 유명한 사이퍼즈 왕족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였고, 그의 휘하 근위병들도 왕자를 따라 인사를 했다.
“선생님의 설명 감사한다. 역시 드워프는 엘프와는 다르게 기술을 잘 가르쳐 준다.”
두툼한 허리에 주먹을 올리고 콧김을 뿜어낸 구스타프가 말했다.
“짠돌이 엘프랑 비교하다니 기분 나쁘군.”
트란스를 포함해서 옆에서 듣고 있던 수행원 엘프들이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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