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물물교환! 68
“언제 갈까요?”
“지금 당장, 가, 감기약 만들어야해. 그 재료로 쓸 거야.”
“감기요? 어? 우리 파티의 두 사람도 감기에 걸려있어요.”
“너희들도? 나, 잠깐 따라가서 바, 봐도 될까?”
마차를 얻어 타고 지오네 기지? 에 도착한 투나는 창고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왔지만 코비와 보리스는 골골 대고 있느라 신경도 못쓰고 있었다.
“크응커억···.”
보리스의 입을 벌리고 그 안에 들어갈 것 마냥 얼굴을 들이대던 투나는 이제 코비에게도 같은 짓을 했다.
“또, 똑 같은 증상이야. 너희들은 왜, 왜 안 걸리지? 사람을 가리나?”
지오가 손을 들었다.
“사실 저 얼마 전에 감기로 고생한 적이 있어요.”
“그래? 증상은?”
“흔한 감기 몸살 정도일까요? 비타에게 힐 받고 쉬었더니 나았습니다.”
투나가 고개를 돌렸다.
“비타는?”
“저는 아직요.”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투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웃기지마, 그건 말이 안 돼. 아, 임파선염이 아닐까? 사실은 감기가 아닌 거지. 뭐? 오!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그래도 역시 마족의 뿔은 필요해. 그래 그렇게 하자.”
누구랑 대화하는 것 같은 모양새라서 비타가 좀 무서워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두 사람은 투나를 공방으로 데려다 주고 밤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이거 가져가. 말에게도 먹여.”
투나가 알약이 든 주머니를 쥐어주었다.
“이게 뭐예요?”
“추, 추운 곳에서 움직여야 하니까 하나씩 먹어둬. 모, 몸이 얼지 않게 막아줄 거야. 그리고 우리 샤, 샤를도 데려가.”
투나가 고개를 돌리자 무장한 오토마톤 샤를이 걸어 나왔다.
비타와 지오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전투용 오토마톤을 바라보았다. 모험가를 꿈꾼다면 가장 먼저 갖고 싶은 것이 번쩍이는 롱소드일 것이고, 그 다음이 그 롱소드를 손에 쥔 전투용 오토마톤이다.
그래서 잠깐이지만 오토마톤과 동행하게 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부탁해. 내, 내 빵을 위해서.”
“으응? 갑자기 빵은 왜요?”
비타의 의문을 뒤로 한 채 지오는 서둘러 마차를 몰았다. 해가 뜨기 전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었다.
성문 경비병에게는 낮의 약초 채취 때 깜빡 잊고 놓고 온 물건이 있다고 둘러대고 성문을 빠져 나온 그들은 북서쪽에 위치한 마왕군 접경지 휴전선 마을로 향했다.
물론 휴전선 마을로 들어설 것은 아니고, 근처 휴전선 부근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잘됐으면 좋겠다!”
“그래!”
하지만 세상살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반도 못가서 눈길에 막혀 짐마차는 움직이지 못했고, 결국 짐마차를 떼어내고 말만 데리고 푹푹 빠지는 눈 속을 걸어 들어갔다.
“원래라면 마차로 1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인데!”
“눈이 와서 그래!”
달도 뜨지 않은 숲속을 한참 들어가면서 비타가 장갑 낀 손을 내려다보며 놀라워했다.
“진짜 그다지 춥지 않아. 어떻게 하는 거지?”
“이 약 좀 얻어놓고 싶네.”
“그지?”
비타가 히히 웃는다. 그때 지오에게 고삐를 잡혀 따라가던 말이 귀를 움직이더니 숲속 저편을 바라본다.
“푸륵-!”
“어? 왜 그래? 배고파?”
비타가 말을 목을 쓰다듬었지만 말은 어느 한 곳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휴전선이 코앞이잖아?”
무릎까지 빠지는 눈 아래에서 어렴풋이 빛나는 붉은 선을 발견한 지오가 움찔하면서 멈췄다.
마왕군 접경지 휴전선, 100년 전 마왕이 용사에게 패배함과 동시에 각지에서 벌어지던 전투도 인간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으나, 군사적 요충지 몇 군데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병력을 빼지 않았고, 그 곳이 지금의 휴전선으로 남았다.
아르곤의 북서쪽에 위치한 휴전선 마을도 그렇게 생긴 것이다. 100년이나 지난 것이라서 분위기는 소강상태지만 가끔씩 무력 충돌도 일어나곤 했다.
“와, 이렇게 생겼구나. 진짜로 선이 빛나고 있어, 지오. 이거 밟으면 어떻게 돼?”
“실물을 보는 건 나도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별거 없다. 그냥 선이 깜빡이면서 주변 초소에 경보가 울리는 정도지.”
지오와 비타의 등골이 서늘하게 식었다. 놀랍게도 목소리는 여성의 것으로 맞은편의 나무 뒤에서 들려오고 있다.
“푸륵-!”
“그 말은 오감이 무척 발달했군. 탐날 정도야.”
나무 옆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휴전선 맞은편에서 나타났으니 확실했다. 지오와 비타는 난생 처음 보는 마족이었다.
“어?”
비타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눈에 비친 것은 두터운 방한복을 입은 평범한 여자였다. 피부색도 인간과 같은 밝은 색이었고, 머리카락도 인간과 같았다. 다만 다른 것은,
“정말로 뿔이 있어?”
귀 바로 위에 마치 양의 그것 같은 뿔이 돋아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반응이 마족 여자의 기분을 살짝 상하게 했다.
“애송이들이, 싸움 거는 거냐? 나는 뿔이 없는 너희들이 더 신기하다.”
예의 없는 소리를 한 것 같아 미안해진 지오가 두 손을 들고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니요. 실례했습니다. 그, 잠깐만요.”
“마족 처음 봐서 그랬어요! 언니 되게 미인이세요!”
비타의 실없는 소리에 코를 좀 벌렁거린 여자 마족은 콧방귀를 뀌더니 허리에 손을 올렸다.
“흥! 주의해라.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하면 누구나 기분 나쁘기 마련이야.”
“어, 예. 죄송합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새로 온 순찰대원인가? 여기까지 내려올 일은 없을 텐데.”
묘한 친절함에 비타가 되물었다.
“저, 그런데 언니는 왜 여기 계세요?”
가만히 비타를 보던 마족여자 히죽 웃었다.
“순찰 대원이 아니군. 우리와 이곳에 대한 것을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저 사실은!”
지오가 나서서 사정을 이야기 했다. 듣고 있던 마족 여자가 고개를 돌리자 샤를이 가방에서 유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떵···!
강한 약초 향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지오와 비타도 그 향을 느꼈다. 그윽한 약초 냄새와 함께 독특한 향이 섞인 것이었다.
마족 여자가 유리병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눈을 크게 뜬 마족 여자는 큼직한 유리병과 그 안을 가득 채운 알약을 보고는 헛기침을 좀 한 다음 입을 열었다.
“뿔을 어디에 쓸 건데?”
“감기약 제조에 사용할 겁니다. 자주 가는 빵집의 사람들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좀처럼 났지 않더군요.”
샤를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핏 웃음소리를 낸 그녀가 두어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손바닥을 폈다.
“그거, 진품인지 보고 싶다. 하나 줘봐.”
병뚜껑을 연 샤를이 알약을 꺼냈다가 물었다.
“던지면 되겠습니까?”
“그래.”
탁! 샤를이 던진 알약을 받아든 마족 여자는 신중히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조금 보더니 이제 그걸 입안에 던져 넣고 씹기 시작했다.
꿀꺽···!
입맛을 다시던 그녀가 씩 웃는다. 웃을 때 고양이 같은 눈매와 날카로운 상어 이빨이 드러났는데 지오가 그녀의 미소를 보고 얼굴을 붉혀버렸다. 그 때문에 비타에게 등을 좀 얻어맞았다.
“하나 더 줘.”
샤를은 하나 더 던졌다.
그걸 손수건에 싸서 주머니에 집어넣은 그녀가 말했다.
“아주 좋은데,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 분께서 당신들께 이 약을 주고 뿔 하나와 바꿔오라고 하셨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너희들이 말한 파란 애들은 이 근처에 별로 없어. 꼭 파란 애들 아니라도 상관없지?”
비타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예! 예! 그냥 최선의 선택일 뿐, 마족의 뿔이면 상관없데요.”
“알았어. 그럼 내걸 줄게. 잠깐 기다려.”
몸을 돌린 마족 여자는 숲속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오와 비타가 샤를을 보았다.
“와! 거래가 되네?”
“말이 통하는 군요. 잘됐습니다.”
지오와 비타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새벽이 다가올 때쯤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자, 이거.”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꼭 그녀의 것과 같은 모양의 뿔이었다.
마족 여자는 또 다시 고양이 눈매와 상어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어릴 때 빠진 거야. 어린 인간들은 유치가 빠지지? 그거 비슷한 거지.”
샤를이 한 걸음 나섰다.
“던지면 되겠습니까?”
“그래. 여기 눈밭에 던져. 살살,”
망설임 하나 없는 샤를의 행동을 보고 지오와 비타의 눈이 흔들렸다. 유리병은 마족 여자의 발 앞 눈밭에 가볍게 떨어졌다. 푹-!
쭈그려 앉아서 조심스레 눈 속에 박혀 있는 가방을 열어본 여자의 눈이 커다래진다. 그러다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봐, 너무 조심성 없는 거 아냐? 내가 이걸 주지 않으면 넌 어떻게 할거야?"
지오와 비타가 입을 딱 벌리고 마족 여자를 보았다가 샤를에게 고개를 돌렸다. 샤를이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 말고 다른 마족에게 다시 거래를 요청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물건을 받지 못하면?"
"서로 간의 이해가 맞아야 거래가 성립됩니다. 그게 안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족에 대한 저와 제 주변인들의 인식은 분명 바뀔 것 입니다.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자.”
듣고 있던 마족 여자가 히죽 웃으며 뿔을 던졌다. 샤를은 한 손으로 날아오는 뿔을 잡아챘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럼 이만.”
“이봐, 오토마톤.”
이봐 오토마톤이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너 이름이 뭐지?”
“오토마톤 샤를입니다.”
꽤 기분이 좋아진 마족 여자가 다시 그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 눈매에 상어이빨,
“나는 마왕군 제3국경선 경비대 소속의 경비대원 모르핀. 이봐, 인간 남녀, 너희들은?”
마왕군 국경선 경비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비타와 지오가 혼란스러워 했다. 하지만 일단 소개는 했다.
“어, 아르곤 모험가 길드의 모험가 지오 입니다.”
“같은 파티의 신관 비타에요.”
모르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유리병을 꺼내 들어보였다.
“우리 조상들도 딱 이 정도로만 거리를 두고 지내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녀가 말한 우리라는 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지오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르핀은 계속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나고 싶어. 나는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이 통하는 인간들을 많이 알지 못하거든?”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몸을 돌린 샤를이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모르핀은 히죽 웃었다.
“그런 건 상관없어, 사람도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해. 그냥 하는 척 하는 거지. 하지만 이해관계는 일치해서 이런 결과를 낳았잖아?”
약병을 가슴에 꼭 껴안은 그녀가 말했다.
“그건 내게 필요 없어. 하지만 이건 우리에게 필요해. 결과만 좋으면 돼.”
지오와 비타가 입을 딱 벌리고 마족 여자의 말을 경청했다.
비타가 한 걸음 나섰다.
“저희들! 원래는 휴전선 마을의 겨울 순찰 대원 모집에 지원하려고 했었어요! 파티 사람들 감기만 나으면 다시 만나러 올게요!”
“내 구역은 이 부근이니까 시간 날 때 어슬렁거려봐. 운이 좋으면 다시 만날 거야. 그때 또 이야기 하자.”
마족 여자 모르핀은 고양이 눈웃음에 상어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손을 좀 흔들어주고는 훌쩍 떠나갔다.
남겨진 지오와 비타는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샤를의 손에 들린 마족의 뿔을 보고는 소리 없는 환호를 지르며 기뻐한 다음 서둘러 자리를 이탈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