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겨울 사냥! 64
“늦어서 죄송해요!”
이번엔 신관 에리스가 달려왔다. 모험가들이 반가워했다.
“오오···! 신관님 오셨소···! 쿨럭···!”
감기에 목이 쉰 모험가들이 그녀를 반겼다. 벌써 몇 차례 신성 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서 나눠가며 신성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어후-! 코가 뻥 뚫려! 이제 좀 살 것 같네!”
“하지만 오늘은 푹 쉬셔야 해요. 이제 벌써 저녁이니까.”
모험가들이 씁쓸해 했다.
“아니, 그런데 우리 당분간 묶을 여관은 어떻게 하지?”
“그러게 늦게 오면 빈 방 찾기가 힘들었는데 말이야.”
“게다가 피난민도 많아서 올해는 좀 힘들 것 같은데.”
그만 아리에테를 풀어준 크랭크가 옷을 챙겨 입었다.
“아르곤 상단 책임자 케이브 단장에게 항의하러 다녀오겠습니다. 빈방이 없으면 창고라도 빌려서 임시 숙소로 써야죠.”
“좋군. 부탁해.”
“예.”
“나도 따라가겠다.”
“환자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다. 넌 여기 있어라.”
아리에테가 울상을 지었지만 때 마침 로테가 돌아와서 한 시름 놓았다. 크랭크는 그 길로 겨울의 남부 도시 니베라의 대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년 겨울이면 찾는 곳이라 익숙한 거리를 빠르게 걸으면서 남부 특유의 도시 경관을 눈에 담았다. 니베라는 아르곤보다 더 큰 방주도시라서 건물은 물론 사람도 많았다.
도시에 사람이 많다.
“음, 그 개척민 마을은 인구 분산을 목적으로 둔 것일 수도 있겠어.”
잠시 멈춰선 크랭크가 혼자서 중얼거린다. 개척민 마을의 규모가 이상하게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다면 말이 된다.
그런데 거기에 사기라니, 어디까지 엮여 있을까?
크랭크는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내 알바 아니다.
북쪽 성문 근처 창고 지대에 위치한 아르곤 상회 지부를 찾아가 케이브 단장을 만났다.
“오! 크랭크! 수고했네! 자네들 덕에 우리도 시간 맞춰서 올 수 있었어.”
“별말씀을, 이 모든 건 단장님의 판단과 선택이셨습니다.”
케이브 단장은 기쁘게 웃었다. 숙소 이야기를 하자 지금 경비대 요청으로 피난민을 수용하기 위해서 빈 창고를 빌려주기로 했는데 거기라도 좋다면 함께 있어도 된다는 말을 했다.
다음날, 숙소를 잡지 못한 모험가들과 피난민들이 상단이 비워준 창고로 이동해서 짐을 풀었다. 크랭크의 파티도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지금 창고 지대에는 작은 마을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니베라 시청에서는 피난민들의 생활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놀랍네, 하루도 안 되서 이동식 화장실에 식수대에 식량까지 다 지원 왔어.”
창고에 짐을 풀고 마을 사람들과 안면을 튼 모험가들이 바쁘게 오고가는 시청 직원들과 계속해서 들어오는 물자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영주님 특별지시 사항이라서 그렇습니다.”
“와, 니베라 영주님은 일처리가 엄청 빠르시네요?”
주위를 좀 살피던 시청 직원이 다가와서는 낮게 말했다.
“모험가 판터 씨는 영주님을 움직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거든요.”
“우와-!”
칭-!
마력충전소에 설치된 의자에서 눈을 뜬 캐롯이 목에 걸고 있던 고리를 빼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올리며 소리를 꽥 질렀다.
“캐롯 충전 끝!”
“시끄럽다!”
마력 충전소는 도시의 오토마톤들이나 사람들이 마력석 충전을 위해서 자주 오고가는 장소이기 때문에 관리원들도 상시 상주 중이었다.
의자가 죽 늘어져 있는 복도에는 캐롯 말고도 많은 수의 오토마톤이 앉아서 충전을 하고 있었다.
“너 이름 뭐야?”
“캐롯이오!”
명단을 살펴보던 관리직원이 펜으로 머리를 긁었다.
“어? 3일 동안 충전했네? 전투용이라도 보통 하루나 이틀이면 끝나는데.”
“와, 나 3일 동안 있었어요?”
“어, 충전비용은 30만 리즈야. 받아라.”
관리원은 가방에서 동전을 꺼내 캐롯의 작은 손에 쥐어주었다.
“선수금에서 충전비용 제외한 금액이야. 와, 너희 주인은 오토마톤을 3대나 충전시켰네?”
“그 만큼 벌어야 해요! 맞다! 피난민들이랑 북부 모험가들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시청 건물은 알아? 거기 임시 병동이 세워져 있다.”
“고마워요!”
캐롯이 다다다 뛰어 나가더니 대로를 걷는 사람들의 틈새로 모습을 감췄다. 몸을 돌리는 그의 앞으로 여성 관리자가 뛰어온다.
“선배! 그 쬐그만 오토마톤 어디 갔어요?! 아까 까지만도 저기 충전 중이었는데!”
“어? 방금 나갔는데?”
“뭐요! 으앙! 싸인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왜? 뭐? 무슨 일이야?”
후배 관리원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여신의 인형? 저게?”
“룰루룰~!”
씩씩하게 걸어서 시청으로 향하는데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미묘했다. 캐롯 사이즈의 작은 전투용 오토마톤이 그리 흔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기에 캐롯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게 아무도 없으냐!”
시청의 정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서자 사람들이 쳐다본다.
“어? 피난민들하고 북부 모험가들은 어디 갔어요? 여기 있다고 들었는데?”
“아침에 창고지대로 이송했는데. 넌 누구니?”
“아, 저는 크랭크라는 모험가의 오토마톤이에요. 충천하고 왔더니 다들 이사 가버렸네? 그럼 수고하세요.”
몸을 돌리려는데 여직원 하나가 후다닥 달려왔다.
“호, 혹시 네 이름 그, 캐롯이야?”
시선을 돌린 캐롯이 몸을 돌리고 공손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예, 제가 캐롯이에요. 무슨 일이세요?”
“세상에! 여신의 인형이 찾아왔어요!”
“으엥?”
시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몰려나와 소문의 여신의 인형을 둘러싸고 환호했다. 사람들에게서 소문을 전해들은 캐롯이 에헤헤 웃으며 손사례를 쳤다.
“아이, 오토마톤에게 무슨 그런 부담스러운 별명이래요?”
“지금 너희들 굉장히 유명해. 기적을 일으킨 인형들이라고 말이야.”
한 중년 남자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스팀 레이디, 증기망토를 두른 여기사, 대지의 여신이 보낸 안개 속 작은 인형, 그게 지금 너희들의 위명이란다.”
“오왕! 위명! 멋져! 광견병 걸린 햄스터하고는 천지 차이야!”
시청 사람들과 한참 이야기 하다가 열렬하게 손을 흔들어주고 몸을 돌린 캐롯은 창고 지대로 향했다. 상단 호위하면서 자주 갔었던 곳이라 길은 알고 있었다.
아르곤 보다 인구가 많은 도시의 길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와, 사람 엄청 많네? 퇴근 시간인가?”
창고 지대는 종전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적한 곳에서 몇 사람이 성벽의 돌담에 화염병을 던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아는 사람들 같아서 그쪽으로 먼저 달려갔다.
“너희들 불장난하면 밤에 오줌 싸!”
“오!”
제일 먼저 아리에테가 후다닥 달려가더니 캐롯을 끌어안았다.
“캐롯 돌아왔구나!”
“이산가족 만난 것 같네.”
크랭크와 신관 에리스도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시청 병동에 갔더니 자리를 옮겼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왔지.”
“그렇지 않아도 찾으러 갈 참이었는데, 잘했다.”
“근데 지금 뭐하는 거야?”
아리에테에게 안겨있던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금 그들이 하는 것을 보았다. 크랭크가 신관 에리스를 바라보자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이, 이거 꽤 무거운데요?”
“버텨내십시오.”
“우으-!”
아이들과 놀아주던 신관 에리스를 붙잡아다 기름병이 담긴 가방을 매달아 준 크랭크가 말했다.
“다시 해 봅시다. 아리에테, 던져.”
“알았다. 흡!”
아리에테가 들고 있던 술병을 휙 던지자 꽤 멀리 날아가더니 바닥에 떨어져 깨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진다.
“에리스. 지금입니다.”
에리스가 손을 들고 튕겼다.
“틴더!”
푸후와아악!
새빨간 불길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른다. 코를 킁킁 거리던 캐롯이 말했다.
“오와! 고등어 타는 냄새가나!”
“생선 기름이야. 바다 근처라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불이 아주 잘 붙지.”
캐롯이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우와! 그럼 뭐야! 방화신관의 탄생이야!? 신관이 불을 지름! 줄여서 지름신! 이거 좋네! 몬스터 잡을 때 잘 먹히겠다!”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방화신관 에리스는 울상을 지었다.
“불을 질러요? 제가요?”
“위험에 빠진 동료들을 보면서 발만 구르는 것보다야 났지 않습니까? 불길은 공격은 물론 방어에도 효과적입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뜨거운 불길을 두려워하지요.”
우연히 밖에 나왔다가 그들이 하는 것을 구경하던 모험가 하나가 거들었다.
“전투능력이 있는 신관은 인기가 많지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 파티에 오지 않을래요?”
“예?”
그러자 크랭크가 슬쩍 캐롯을 보면서 에리스를 가리켰고, 캐롯이 후다닥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능력개발도 했으니 지금은 우리 파티야! 놓아줄 수 없엉! 한 몫 벌어야지! 크헤헤!”
모험가들은 에리스에게 자신들의 이름 등을 알려주며 언제든 말을 걸어달라고 했고, 갑자기 생긴 인기에 신관 에리스는 당황했다.
감기가 다 났지 않았지만 마냥 쉬고 있을 수는 없기에 모험가들은 채비를 하고 이튿날부터 겨울 사냥에 동참했다.
아침이지만 겨울이라서 해가 늦게 뜬다. 성문 앞의 불가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모험가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문 개방!”
이윽고 문이 열리고 경비대의 자동장갑차량이 슬금슬금 기어서 나아가기 시작하고 그 주변으로 모험가들과 오토마톤들이 따랐다.
끼이에에에에-!
아스라이 들리는 괴음,
니베라 성문 앞 저편의 노지에는 이미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얼어붙은 채 나자빠져 있다. 전날 해치우고 미처 수거 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저건 표식인가?”
아리에타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에는 쓰러진 오우거의 등에 노란색 리본이 묶인 화살이 박혀 있다.
“쓰러트린 몬스터에 박아놓는 겁니다. 난전을 벌이다보면 누가 해치운 것인지 모르니까요.”
“이건 분쟁이 발생할 여기가 있군.”
“그렇긴 합니다만, 그것도 사냥이 끝나고 가능하지요.”
아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걷던 크랭크가 뒤를 돌아보았다.
“곧 도시에서 포격을 시작한다.”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성벽위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투석기 발사!”
퉁-! 퉁-! 퉁-!
불이 붙은 큼직한 돌덩이가 하늘을 가르고 날아가 미스트의 좌측에 착탄했다. 쿵쿵-! 쿵!
끼이이에에에에!
미스트가 날아오는 돌을 피해서 진행 방향을 우측으로 슬쩍 튼다. 망원경으로 그걸 바라보던 경비대장이 갑작스레 외쳤다.
“지금-! 마력수정폭탄을 기폭!”
찍-!
대기하고 있던 병사가 스크롤을 찢어버리자 그 순간 미스트의 안개 속에서 밝은 섬광이 번쩍이더니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렇군! 미리 묻어 놓은 폭탄 근처로 유도한 것인가!”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소리는 잠시 후 들려왔다.
꾸웅···!
“터졌다!”
폭발과 함께 안개가 사라지고 그 안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체로 단독생활을 하는 대형 몬스터와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곤충형 몬스터가 많았다.
“가자!”
장갑차량과 더불어 오토마톤이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모험가들이 따랐다.
“쿠오오오오!!!!”
오우거가 몽둥이를 휘두른다. 롱소드를 들고서 그것을 가볍게 피한 아리에테는 그 품으로 파고들어 심장이 있는 가슴에 롱소드를 찔러 넣었다.
“크읏-!”
피가 쏟아지는 가슴을 가린 오우거가 마지막 힘을 짜내 손에 든 방망이를 치켜든다.
깜짝 놀란 아리에테는 검을 뽑다가 말고 손을 놓고 뒤로 피해서 방망이를 피했다.
쾅-!
기진맥진한 오우거의 머리를 향해 접이식 도끼를 펼쳐든 캐롯이 뛰어 오른다.
퍽!
머리가 쪼개진 오우거가 뒤로 쓰러지자 캐롯이 그 가슴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롱소드를 뽑아서 한번 휘둘러 피를 털더니 거꾸로 잡아서 아리에테에게 내밀었다.
“잘했어!”
“그렇군. 왜 검을 4자루나 챙겨 줬는지 알겠다.”
“위급하면 버리고 다음을 노려라. 검 따위에 목숨을 걸지 마라. 그것은 소모품이다.”
아리에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목표를 노리고 뛰었다. 저쪽에서 로테가 다른 모험가들을 도와 대형 전갈을 사냥하고 있었다.
“에리스.”
“예, 예!”
기름이 채워진 술병을 꺼내든 크랭크가 그것을 힘껏 집어던졌다.
훙훙훙-!
파챵!
“틴더!”
전갈과 전투 중인 모험가들을 노리고 옆에서 다가오던 왕사마귀의 발 앞으로 화염의 벽이 솟아올랐다.
푸후화아악!!
“치르르르!?”
불길에 당황하는 왕사마귀의 머리 위로 롱소드와 도끼날이 쏟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추위에 몸이 둔해져 있던 3미터짜리 왕사마귀는 간단하게 쓰러졌다.
“이 녀석은 서부에서도 자주 봤지.”
“어떤 마법사가 실험하다가 만든 거라던데 맞아?”
“사실이다. 여러 가지를 만들었지. 그래서 길드에서 영구 제명당했어.”
근처에서 자동석궁의 탄통을 재장전 하던 모험가가 맞장구를 쳤다.
“이 땅의 몬스터 대부분은 마법사의 실험으로 태어났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다.”
“제, 제가 마법사를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 미안해요! 흐윽!”
“아니, 널 두고 한 말은 아니야.”
“아! 왜 또 울리고 그래요!”
리더를 혼내면서 훌쩍이는 동료 마법사를 달래는 모험가들을 보면서 캐롯이 아하하 웃었다.
“몰리도 처음엔 저렇게 맘 약했는데. 그런데 몰리 마법사단이 안보이네? 어딜 갔지?”
“몰리 마법사단?”
“아는 모험가 파티야.”
잡담을 나누는 사이 전갈 사냥도 끝났다. 로테에게 큰 도움을 받은 모험가들이 고마워했다.
“어이! 고마워! 이 오토마톤 몫은 떼어주지!”
“그건 괜찮습니다. 저희들 위험하면 지원 부탁합니다.”
“그것도 좋지! 하하! 자네들 파티 이름은 뭔가? 우린 니베아 모험가 길드의 푸른 수염일세.”
“아르곤 모험가 길드의 당근 타이거즈입니다.”
캐롯이 빠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아리에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당근 타이거즈? 우리 파티가 그런 이름이었나? 처음 알았다.”
“파티 이름 같은 건 아무거나 상관없다. 다음 가자.”
“나는 마음에 들어! 하하하! 당근 타이거즈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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