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피난민! 61
재난상황에서 비열한 범죄행위는 즉결심판이다.
롱소드 60자루로 한 번 씩만 쳐도 다진 고기가 될 것이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고개를 휘둘러 주변을 살피던 남자들이 분노했다.
“아니! 썅! 이게 말이 돼?! 같은 사람을 배신하고 저런 인형을 편든다고? 너희들 전부 미친 건가?! 엉!”
“뭐라는 거야? 누가 너랑 같은 사람이야?”
멀지 않은 곳에서 팔짱을 낀 청년이 고개를 기울인다. 얼마 전 길드에서 캐롯과 실랑이를 벌이던 모험단 파티의 리더 허쉬였다.
“아재, 당신 좀 이상해. 지금 도통 감이 안 잡혀? 혹시 뭐 약이라도 빨았나? 당장 저 여자가 깨도 당신 거짓말이 드러난다고.”
“말 안 통하는 약쟁이 보다야 짜증나는 땅콩 오토마톤이 백배는 났지!”
“오토마톤이 거짓말을 한다는 소리는 또 처음이야.”
검을 뽑아든 허쉬가 남자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재, 이런 재난상황에서 약탈행위는 즉결심판이야. 누구 손에 죽어도 할 말은 없지.”
“어, 어어?”
남자들이 크게 당황했다.
그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모두의 고개가 돌아간 곳에는 키가 2미터 쯤 되는 것 같은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투구를 쓴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크랭크! 이것 좀 봐! 캐롯이 얻어맞았어!”
“으앙! 주인님아!”
호다다닥 달려간 캐롯이 크랭크의 다리를 붙잡더니 그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또 남자들을 향해 혀를 빼문다.
모험가들의 행동에 당황했던 남자들의 이마로 핏줄이 솟아오른다.
“너! 이게-!”
“호위 모험가들은 칼을 내리시오! 너희들도 무슨 짓이냐!”
보고를 받은 상단 총책임자 케이브 단장이 술병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모험가들과 상단 대원들을 속히 구조작업으로 복귀 시키고는 가져온 술병을 열었다.
“제가 총책임자입니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 몸도 녹일 겸 이거 한잔씩들 합시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자자, 잔부터 받으시오들.”
케이브 단장이 싹싹하게 웃으며 잔을 돌리고 고급 술병의 포도주를 따르자 남자들은 그것을 벌컥 벌컥 들이켰다.
“도대체! 오토마톤의 교육을 어찌 시키느으은···.”
철퍼덕!
남자들이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불쾌한 시선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던 케이브 단장이 중얼거렸다.
“술이 약하시군.”
그리고 캐롯을 불렀다.
“한 명 더 있다고 그랬느냐?”
“예!”
“크랭크!”
크랭크가 고개를 들자 술병을 그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융숭하게 대접하게.”
날아오는 술병을 한 손으로 받은 크랭크는 캐롯과 함께 쓰러진 남자들의 다리를 붙잡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볼일이 있다. 아리에테와 로테는 주변을 돕도록 해.”
“음, 그래.”
“알겠습니다.”
부서진 마을을 걷다가 사람들이 뜸한 곳에서 잠시 멈춰선 크랭크는 남자 다리를 잡아끌고 오던 캐롯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살피고 피를 닦아주었다.
“괜찮아?”
“응! 하나도 안 아팠어.”
크랭크가 가만히 캐롯을 쳐다보았다.
캐롯도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크랭크가 조심스레 주먹을 들어 내밀자 함박웃음을 지은 캐롯이 작은 주먹을 들어 마주 갖다 댔다.
“가자.”
“으하하! 그래! 불량감자를 파묻으러 가자!”
그리고 멀리서 그 둘의 모습을 눈여겨보던 사람들은 뭔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버렸다.
“돌아가면 이 이야기를 길드 마스터에게 팔아야겠어! 쏠쏠하겠군!”
몇몇은 자기 오토마톤에게 비슷한 짓을 시켜보았다.
내밀어진 마스터의 주먹을 보고 오토마톤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이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 뭐지? 친목을 다지는 의미랄까?”
“그렇군요.”
장갑 낀 손을 좀 쥐었다 폈다 해본 오토마톤 하나가 마스터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져다 댔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사내가 그만 크게 웃어버렸다.
“와하하하! 이거 너무 쑥스러워! 저 친구들 잘도 그러네!”
“노닥거리지 말고 여기 좀 도와줘라!”
“알았어! 크리미! 가자!”
파란색 방열가발을 산발한 오토마톤은 저 만치 멀리서 걸어가는 크랭크와 캐롯을 돌아보고 자기 주먹을 내려다보고는 서둘러 주인의 부름에 달려갔다.
“알겠습니다.”
처음 그들을 발견했다는 집으로 들어간 크랭크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주워든 빈병을 유심히 살폈다.
“이건···.”
“뭐야?”
크랭크의 투구가 고개를 돌린다.
“전투보조용으로 사용하는 각성 포션이다. 그것도 정품이야.”
“아, 가끔 모험가들이 마시는 그거?”
“꽤 고급품인데?”
크랭크는 고개를 돌려 기절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캐롯이 물었다.
“깨울까?”
“응, 내가 고문할게.”
잠시 후 다 무너진 가옥에서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욱후욱···.”
원하는 대답을 들은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캐롯을 보았다.
“고생했는데 포도주나 한잔 줘.”
“아까운데. 자, 이 병 너 줄게. 다 마시고 알아서 가.”
“제길! 벌컥벌컥-!”
캐롯이 내미는 포도주 병을 거칠게 낚아채 병째로 들이 킨 사내는 몹시 행복한 얼굴로 기절했다.
캐롯과 크랭크의 얼굴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오우야, 이거 참 좋네. 깔끔해.”
“응, 돌아가면 투나에게 만들어달라고 하자.”
대 몬스터 제압용 초강력수면제로 깊은 잠에 빠진 남자들의 옷가지를 벗긴 다음 길바닥에 대충 던져둔 크랭크는 한참 구조 작업 중인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촌장의 집을 알아내더니 그 지하실에서 대량의 각성제 포션을 찾아냈다.
“우와! 이거 최고급품이야! 이 비싼 걸 박스 떼기로 쌓아놨어!”
모험가들이 놀라워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케이브 단장도 그걸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그럼 아까 그 자의 상태는···!”
“약에 취해 있었을 겁니다.”
함께 와서 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깊은 배신감이 흘렀다.
“도시에서 받은 보조금으로 방어벽을 쌓고 경비용 오토마톤과 마력수정폭탄을 구매한다고 했었어.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우리는 그 말만 믿고 여기로 온 건데···.”
마력수정폭탄은 가짜였고, 지하실엔 각성제가 잔뜩 쌓여있다. 바보라도 알만한 상황이었다.
“촌장 아재는 뽕빨에 취해서 약장사라도 할 모양이었나 보네. 그나저나 케이브 아재, 괜찮아요? 이러다간 늦겠는데? 오늘 저녁까지 도착해야 한다면서요?”
팔짱을 낀 허쉬가 건들거리며 말했지만 상단 총책임자 케이브 단장은 그의 예절을 일일이 따지지 않았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간부들을 소집한 케이브 단장은 짧은 이야기를 하더니 곧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우리 상단도 신용이 걸린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아, 아니되오! 우리를 버리실 거요!”
“살려주세요!”
“제발-!”
남자들은 물론 젊은 여자들과 아이들도 나와서 매달렸다. 상단 대원들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케이브 단장이 손을 들었다.
“가서 구조대를 파견하겠습니다. 그리고 물건의 하역을 마치는 대로 바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아침까지 버텨주십시오.”
케이브 단장이 목청을 높인다.
“다시 돌아올 동안 이 사람들을 지켜줄 지원자를 모집합니다! 물론 추가금을 내겠소!”
“파티 체리보이는 남을게요. 추가금, 잊지 마요.”
허쉬가 손을 든다. 캐롯이 신기하게 생각했다.
“와! 너희들 건들건들한 깡패인 줄만 알았는데 완전 상남자들이네?”
“야, 땅콩아. 봐라,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 울고 있는데 그걸 버리고 그냥 갈 수가 있겠냐?”
“흐하하! 젊은 친구들 하는 짓이 마음에 들어! 좋아! 우리도 남는다!”
꽤 많은 수의 모험가들이 지원했지만 상단의 보호도 필요했기에 그들을 다 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남은 모험가들은 오토마톤 포함 대략 30여명 정도였다.
떠나가는 상단의 자동화물차량의 행렬을 지켜보던 크랭크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에서 먼저 좀 당황했다.
“말해 봐요. 크랭크 아재, 뭐부터 할까요?”
평소에는 사사건건 시비를 털던 모험가들이 먼저 물어온다. 투구를 짚은 크랭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토마톤은 몇 대 입니까?”
크랭크는 오토마톤부터 확인했다.
캐롯, 로테, 크리미, 버디, 로리, 5대의 전투용 오토마톤이 있었다. 크랭크는 그 중에 로테와 크리미에게 마을 일대를 돌아다니며 혹시 모를 남은 생존자 수색을 부탁했다.
“마을 여러분들은 가져갈 짐을 미리 챙겨놓으십시오. 안타깝지만 이 마을의 재건은 불가능합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했다. 크랭크는 계속 말했다.
“짐은 적은 편이 좋습니다. 값어치가 나가는 것만 챙기십시오. 주인이 없어진 것도 남기지 말고 챙기십시오. 산 사람은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을에 방어용 오토마톤은 없었습니까?”
“3대 있었습니다만. 괴물들과 싸우느라 다 부숴 졌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마을 어딘가에 있을 거에요.”
“캐롯, 찾아라. 이리로 가져와. 내가 보고 판단하겠어.”
“알았엉!”
캐롯이 후다닥 달려가고 사람들도 하나 둘 짐을 꾸리러 흩어지기 시작했다. 크랭크는 남은 모험가들에게 사방으로 흩어져서 경비를 비롯해 벙커의 제작을 제안했다.
“다소 멀쩡한 가옥을 주변으로 자재를 모아서 임시 대피소를 제작합시다.”
“판자나 뭐 그런 거 모아오면 되나?”
“예. 뭐든 상관없습니다.”
합심해서 한참 대피소를 제작하고 있는데 경비를 서고 있던 모험가 하나가 달려왔다.
“큰일 났어! 미스트가 오고 있어!”
“염병할!”
화를 내며 들고 있던 망치를 내던진 모험가들이 마을 앞의 언덕으로 뛰어갔다. 함께 올라간 크랭크 역시 투구 속의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앞에서 스물스물 움직이는 안개더미를 보았다.
“제길···.”
크랭크가 몸을 돌렸다.
“피 냄새를 맡고 이쪽으로 올 겁니다. 아직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 대피 준비를 서두르시죠.”
“어떻게!”
잠시 생각하던 크랭크가 말했다.
“내 생각이 꼭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보다 좋은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바로 이야기 해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으니 어서 말해봐!”
크랭크는 마을의 짐마차를 개조해 그곳에 사람들과 물자를 올리고 가장 가까운 방주도시로 이동을 제안했다.
“나쁘지 않은데, 아니 그것밖에는 없나?”
“동네 사람들만 해도 100명이 넘어, 저 인원을 데리고 가자고? 벙커는 안 돼?”
“지금 상황에서는 드워프가 와서 만들어도 저 미스트 웜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지 의문입니다.”
“하는 수 없군! 마차를 수배하지! 가자!”
남은 사람들이 물었다.
“그런데 그 짐마차는 누가 끌지? 말도 다 도망갔어.”
“땅콩에게 끌게 하면 되겠네, 오토마톤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 아뇨?”
“맞습니다. 갑시다.”
언덕을 뛰어 내려간 크랭크는 캐롯을 찾았다. 대로에서 오토마톤 하나를 끌고 오던 캐롯이 손을 든다.
“다 찾았어! 근데 멀쩡한 게 없어!”
“미스트가 온다. 벙커 제작은 포기했어. 피난한다.”
“상황이 변변치 못하네.”
“남은 오토마톤을 가져와줘.”
“알았어.”
캐롯은 후다닥 달려가서 부서진 오토마톤을 차례로 옮겨왔고, 크랭크를 그것들을 살피고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다른 모험가들은 마을 젊은이들과 힘을 합해 짐마차 두 대를 합치고 보강하여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도록 개조했다.
“움직일 수 있겠나?”
깅-! 깅!
오른쪽 팔이 없는 오토마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마이스터.”
“크랭크다.”
“감사합니다. 마이스터 크랭크.”
“급해서 팔은 붙이지 못했다. 돌아가면 마저 수리해주마.”
“감사합니다.”
캐롯이 외쳤다.
“오! 역시 우리 주인님! 3대를 합해서 2대나 고쳐냈어!”
“단순히 멀쩡한 부품을 옮겨 붙인 것뿐이다. 오래 쓸 수는 없어. 그나저나 너무하는 군. 경호용은 고사하고 이건 그냥 가정용 스펙이야.”
캐롯이 어깨를 으쓱인다.
“사기꾼이니 최대한 싸게 많이 남겨보려 했겠지.”
모험가들이 외쳤다.
“준비 다됐다!”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부품을 빼 쓰고 남은 오토마톤의 머리 부분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가자.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급하게 응급처치 수준의 수리를 받은 오토마톤 두 대가 일어서서 크랭크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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