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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60화 (60/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인맥과 신뢰와 신용! 60

눈길 여행은 3일 동안 계속 되었다. 아리에테의 평가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지루한 3일이었다고 했다. 그 3일 후, 그들은 한계선을 넘었다.

“놀랍군. 정말 한계선이라고 적혀있어.”

휴식 시간, 차량에서 내린 아리에테와 캐롯이 거대한 바위 앞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음각으로 한계선이라는 간단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휴식 끝 탑승!”

몸을 돌린 아리에테가 말했다.

“다 녹아버렸나? 여기는 눈이 없군.”

“한계선이라서 그렇다. 기온이 다르지.”

차량 안에서 차장 기스가 대답했다. 캐롯이 말했다.

“긴장해. 여기서 부터야.”

“뭐가?”

“남부의 몬스터 웨이브.”

텁!

따로 명령이 없으면 항상 독서에 빠져 있던 로테가 책을 덥고 고개를 돌린다. 긴장한 에리스가 주변을 마구 살피고 있다.

“여, 여기서 부터요?”

“예. 시작됩니다. 부탁드립니다. 모험가님들.”

항상 장난스러웠던 카키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가로 향했고, 캐롯이 아하하 웃었다.

“걱정 붙들어 매! 나는 이번에 새로 오버홀을 마쳤다고! 비장의 무기도 있고! 갑시다! 차장님!”

“음! 든든하구만!”

16호 차량의 차장 기스가 입에 문 담뱃대를 위로 치켜 올리며 차량을 출발시켰다.

그리고 정오 무렵, 남부에 처음인 아리에테와 에리스는 기괴한 것을 보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끼이이이에에에에···!

아스라히 들리는 괴수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새하얀 안개 같은 것이 저 멀리 평야를 타고 넘고 있다.

“못 본 건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우리에게 관심이 없나 봅니다.”

망원경을 든 간부 옆에서 상단 책임자 케이브 단장이 한숨을 쉰다.

“제길! 위장병이 도질 것 같군. 납품일이 빠듯하다! 저것들이 우릴 쫓지만 않으면 무시한다! 출발을 서둘러라!”

“크크크크크랭크! 저, 저게 뭐예요?!”

신관 에리스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평야를 타고 넘는 거대한 안개무리를 보던 크랭크가 말했다.

“미스트 웜이라는 겁니다. 남부에는 안개를 뿜어내는 몬스터가 있는데, 내부가 따뜻해서 그 안에 다른 몬스터들이 공생합니다. 몬스터 웨이브의 주축이 되는 녀석들이지요.”

“호오, 저런 걸 상대하는 건가?”

허리의 칼자루를 움켜쥔 아리에테가 긴장한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모를 얼굴로 말하자 캐롯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저기 들어가면 큰일 나, 잘 보이지도 않는데 사방에서 몬스터가 쏟아진다고? 작년에 멋모르고 뛰어들어다가 혼났어.”

“보통은 마력수정폭탄으로 와해시킨 다음 각개 격파를 하죠. 추위에 둔해지거든요?”

카키의 설명에 아리에테와 에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화물차량은 느릿느릿 달려 언덕을 넘고 평야를 지나 남부와의 거리를 좁혀 갔다. 그러다가 사단이 났다.

미스트 웜을 보고 바로 다음날의 일이었다.

“완파된 개척민 마을 발견! 사람들이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습니다!”

깃발도 없는데 차량들이 멈춰 섰다. 좌측 창문으로 몰려가서 본 것은 참혹하게 부서진 마을의 참상이었다.

상단을 발견한 사람들이 달려오며 가지 말라고 울면서 손짓하고 있다.

“몬스터에 당한 건가?!”

“어제 본 그 미스트 웜!”

상단 책임자 케이브 단장이 이빨을 드러내며 갑자기 쓰려오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상회의 평판이 걸린 일이니 마냥 무시 할 수는 없다! 호위 모험가들을 보내서 돕게 해!”

차량에서 내린 모험가들이 달려가 부상자들을 추스르고 부서진 잔해에서 사람들을 구출해 냈고, 신관들이 바쁘게 오고가며 신성치료를 사용 했다.

“여기 사람이 있어! 오토마톤을 데려와!”

“이곳에 부상자를 수용하자!”

“사람들 몸 좀 녹이게 누가 불을 피워!”

손도끼를 꺼내든 크랭크가 굴러다니는 나무판자를 부숴 한자리에 쌓고 기름을 조금 부운 다음 부싯깃을 꺼내려는데 누군가가 외쳤다.

“틴더!”

푸확! 활활~!

장작더미에 순식간에 불이 피어올랐다. 놀라운 표정? 으로 불길을 내려다보던 크랭크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마을 사람들을 돌보던 신관 에리스가 팔을 내밀고 있었다.

그걸 눈여겨보던 크랭크가 말했다.

“편리하군요.”

“모닥불에 불을 지필 정도의 화력밖엔 안 나오지만요.”

“하지만 저는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예?”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지만 크랭크는 별다른 대답하지 않고 몇 개의 장작더미를 더 만들었다.

“부탁합니다.”

에리스가 손가락을 튕기고 주문을 외치자 훌륭한 모닥불들이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누었다.

“고맙소! 우릴 버리지 않아서 정말 고맙소!”

“어떻게 된 겁니까?”

도움의 손길에 울음을 터트린 늙은이는 전날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미스트 웜이 오는 것을 보고 방어를 위해서 젊은이들이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그 무슨 수정폭탄을 던졌지만 불발이었다오.”

“마력수정폭탄이 불발? 어디서 만든 겁니까?”

“그건 모르겠소. 촌장이 어디서 사온 것인지라.”

“남은 것이 있습니까? 꼭 보고 싶군요.”

사람을 찾다가 말고 몇몇은 불발되었다는 마력수정폭탄을 찾아왔다. 긴장한 표정으로 그걸 살펴보던 상단의 사람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했다.

“우리가 판 물건은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이런 불량품을 팔아치우다니! 상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놈이다! 어디 제품이냐?”

상자를 살피던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상표도 없습니다. 이건 그냥 유리구슬입니다.”

“쯧···! 아무리 고가품이라도 병기로 사기를 치다니!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군!”

그 와중에서 크랭크의 파티도 마을을 뒤지고 다니며 생존자를 수색했다.

“꽤 큰 규모의 개척민 마을이군.”

“대부분 잡아먹혔어. 산 사람이 별로 없어.”

캐롯이 뛰어왔다. 크랭크는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래도 찾아보자. 각자 흩어져서 찾아보도록 해.”

“알았어.”

캐롯과 아리에테, 로테가 크랭크를 중심으로 넓게 퍼졌다.

박살난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캐롯은 뭔가 소리를 듣고 반쯤 무너진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어?”

“뭐, 뭐야? 누구야?”

집안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모습을 눈에 담은 캐롯은 크게 한 숨을 쉬면서 어지러운 생각을 정리했다.

끼이익-! 탁!

반 정도만 남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선 캐롯은, 근처에 넘어진 의자를 일으켜 세우고 그곳에 올라앉더니 가만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남자가 셋, 바닥에 쓰러진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여자, 죽었어?”

“뭐?”

“너희들이 죽였어?”

“너는 뭐냐? 꼬마?”

덩치 큰 남자 하나가 일어서서 다가왔다. 캐롯의 눈이 이리저리 굴렀다. 바닥에 큼직한 가죽 주머니도 있고, 웬 남자도 머리가 깨진 채로 쓰러져 있다.

“알겠다. 너희들 강도지?”

“강도? 우리가? 우리는 말이야.”

퍽!

바싹 다가온 남자의 커다란 배에 작은 주먹을 쑤셔 박자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남자가 쓰러진다. 쿵-!

“호세!”

“병신 같은 이름이네, 너희 부모는 미래의 강도를 낳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넌 뭐야! 이 동네에 너 같은 애는 못 봤어! 어디서 온 녀석이냐!”

“나는 오토마톤이야. 이 끔찍한 것들아.”

사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확실히 차림새가 범상치 않다. 튼튼한 가죽과 각종 장갑판으로 장식된 자켓과 치마는 인간을 위한 옷이 아니었다.

“소프트 스킨! 도련님! 저건 소프트 스킨을 올린 오토마톤이오!”

“소프트 스킨?! 그게 뭐냐? 아니 잠깐만! 저 꼬마가 오토마톤이라고?”

“오토마톤 처음 보니? 길 막지 말고 비켜봐.”

남자들을 무시하고 걸어간 캐롯은 쓰러진 여자의 목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급격하게 얼굴이 밝아졌다.

“오! 살아있어! 다행이야! 에잇! 저리 비켜! 방해하지 마! 나는 인간을 구해야해!”

“으악?!”

여자를 담요로 감싸 안은 캐롯이 가까이에 있는 남자들을 발로 밀어버리고 문마저 걷어차 박살내며 도도도 달려 나갔다.

그걸 보고 분노한 사내들이 몽둥이와 롱소드를 들고 뛰쳐나왔다.

“야! 너 거기 서지 못해!?”

“그 여자는 우리 거야!”

다다다 달려가는 소녀를 따라 나가자 어디서 왔는지 모를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마을 이곳저곳에서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었고, 저 멀리 대로 근처에는 대형 수송차량들이 줄지어 정차해 있는 것도 보였다.

사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구조대? 상단인가보군!”

“다행입니다! 도련님!”

“음! 저걸 얻어 타고 도시로 돌아가자!”

부상자들이 모아놓은 곳으로 달려가자 캐롯이 먼저 여자를 데려다 놓고 뛰어오는 그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복을 입고 꼿꼿하게 선 상단 대원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지더니 달려오는 사내들에게 장갑 낀 손바닥을 폈다. 오른손은 어느새 롱소드의 손잡이를 잡고 있다.

“멈추시오. 더 이상 다가오지 마시오.”

“뭐, 뭐야? 당신들 어디 상단이야?”

“우리는 아르곤 상회 조합 소속입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아니 그전에, 당신들이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든 겁니까?”

상단 대원의 다리를 붙잡은 캐롯이 그 뒤에서 혀를 빼물고 있자 남자들이 분노했다.

“무슨 소리를! 우리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저 오토마톤이 그런 거야!”

상단 대원이 고개를 숙인다. 캐롯도 고개를 든다.

어이가 없다는 투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술이라도 마신 건가? 믿을 수 없군. 저쪽으로 가시오. 당신들을 심문하겠소. 마리! 미레!”

상단 소속의 전투용 오토마톤과 허리에 롱소드를 매단 여성 상단 대원이 다가왔다. 그 와중에도 남자들은 캐롯을 가리키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저 오토마톤이 그랬다고! 사람이면 사람의 말을 들어야지!”

“맞소! 지금 우리 형제 하나도 저 오토마톤에게 맞아서 쓰러져 있소! 그리고 이 분은 여기 개척민 마을의 촌장 아드님 되시오!”

박살난 개척민 마을의 촌장 자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혐오감에 물들기 시작했다.

기가 찬 캐롯이 앞으로 나서서 허리에 손을 올렸다.

“이봐, 가장 기본적인 걸 하나 알려줄게. 귀 파고 잘 들어. 오토마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설령 대답을 하지 않을지언정 말이야.”

“그럼 인간인 우리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냐?! 네 년이 불쌍한 사람들을 죽이고 돈을 훔치는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다! 봐라! 이게 증거다!”

눈에 시뻘건 핏발이 돋은 사내가 가죽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이제 캐롯의 입이 히죽 찢어진다. 그리고는 참지 못하고 배를 붙잡고 허리를 꺾으며 웃기 시작했다.

“꺄하하하! 우와! 오랜만이야!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불량감자야! 등신아! 앞뒤가 안 맞잖아! 마스터도 있고 쌓아놓은 인맥과 신뢰와 신용이 쟁쟁한 내가 왜 돈 몇 푼에 그걸 포기해야해?”

“오토마톤 주제에 인간님에게 대들다니! 고장이라도 났느냐!”

빠각!

참지 못한 남자가 손에 든 몽둥이를 휘두르자 캐롯의 작은 몸이 비틀거린다.

그 순간,

구조작업을 하다가 뭔 재미난 일인가 싶어서 구경하던 60여명의 모험가들이 갑작스레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스릉!

그리고 폭언이 터져 나왔다.

“야! 너 이 생퀴야! 미친 것도 정도가 있지! 포를 떠줄까? 북부식 훈제 한번 보여줘?”

“저거 방금 누굴 때린 거야?”

“크랭크가 여기 있었으면 네 머리에 도끼가 박혔어 이 자식아!”

“그리고 지금 내 칼이 박힐 예정이다! 미친놈이!”

구조작업이고 뭐고 눈이 돌아간 모험가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기겁했다.

“왜, 왜들 이러시오?”

“닥쳐! 영감쟁이! 당신네 촌장 아들놈이 우리 애를 건드렸어!”

이상한 일이었다. 오토마톤을 때린 것 정도로 이렇게 분노하다니,

몸을 바로 세운 캐롯이 머리에 흐르는 붉은 액체를 내버려 둔 채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진정 하세요. 인간님, 물론 나는 보았습니다. 당신이, 당신들이, 재난을 입어 힘들어하는 가정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처절하게 파괴하는 모습을요.”

기계인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답니다. 할 이유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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