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합체! 59
빠악!
조그만 오토마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서는 무언가를 휘둘렀다. 맞은 강도는 기절해버렸다.
“이히히히! 감히 인간을 두들겨 패는 이 감촉! 상쾌해! 언제나 짜릿해! 최고야!”
어떤 불쌍한 오토마톤의 다리를 뜯어 와서 방망이 삼아 휘두르기 시작하는 미친 오토마톤이 날뛰기 시작한다.
퍽퍽퍽!
어찌나 빠른지 저쪽에서 보인다 싶으면 갑자기 눈앞으로 방망이가 날아오는 상황이었다.
“으아악!”
퍽!
캐롯이 무서운 말을 외쳤다.
“우리 주인님이 너희들을 죽여도 된데! 너희들은 인간형 몬스터래! 사람이 아니래! 아하하!”
“사, 살려줘!”
“그럴 순 없어! 너도 그러지 않았잖아!?”
퍽퍽!
바닥에 쓰러져 울면서 기어가는 강도단의 등을 짓밟고 방망이를 휘두르자 사내는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습격 후 20분,
전투 종료.
“사망자는?”
“우리 측은 없습니다. 죽을 뻔 한 친구들이 몇 있었지만 신관님들이 다 살려냈습니다.”
“후-! 천만 다행이군.”
꽁꽁 묶인 채로 바닥에 앉은 강도단 생존자들을 상단 책임자 케이브 단장이 심문했다.
“저 오토마톤은 어디서 난거지?”
“네 엄마가 줬어.”
“크랭크.”
퍽!
가차 없이 머리에 도끼질을 하자 강도가 즉사했다. 머리에 양동이 투구를 쓴 2미터짜리 괴물이 수줍게 말한다.
“나는 밀당을 싫어한다.”
살아남은 강도들이 겁을 집어먹고 질질 울기 시작했다. 팔짱을 한 캐롯이 아하하 웃다가 강도단을 가리켰다.
“저걸 봐. 아무리 무섭고, 강하고, 악랄한 사람이라도 더 강한 사람이 휘두르는 도끼 앞에서는 벌벌 떨게 되지. 상대적 약자라는 개념인데, 이런 걸 진정한 평등이라고 하는 거야.”
아리에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고, 신관들이나 비위가 약한 상회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찡그렸지만 캐롯의 저 말 만큼은 가슴에 고이 담아두었다.
“다음 자네, 저 오토마톤들은 어디서 난 거지?”
“자, 작년에! 다른 강도단에게서 사, 산겁니다!”
“샀다고? 그 강도단의 이름은? 어디서 구했다던가?”
“타이탄 강도단 입니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진짜로 몰라요!”
착란에 빠진 강도가 머리를 흔들며 외쳤다. 케이브 단장이 상단 간부들을 보았다.
“타이탄 강도단?”
“들어봤습니다. 동북부와 동남부를 오고가며 활약하는 친구들이지요. 토벌 당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직 남은 건가. 돌아오면 이 놈들 토벌 의뢰를 해야겠어. 저 귀중한 자원을 한낱 강도질에 써?”
크랭크가 캐롯을 불렀다.
“응, 왜?”
“저 오토마톤들 어땠어? 상태라든가.”
“완전 별로였어. 제대로 싸울 줄 아는 것들이 거의 없더라. 가정용으로 쓰던 거였나 봐.”
뒤이어 박살난 강도단의 오토마톤을 살펴본 자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했다.
“기억이 다 지워져 있습니다. 1년 정도의 기억뿐입니다.”
여기까지 전해들은 케이브 단장은 도시로 사람을 보내 오토마톤의 수거를 부탁했다. 망가지긴 했지만 소재 자체는 녹여서 재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멀리 나오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여기서 야영한다! 부상자는 사양 말고 신관님들께 봐달라고 해라!”
“예!”
“저 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대부분 사살했지만 생포한 강도들도 꽤 되었다. 불안에 떠는 강도들을 보던 케이브 단장이 크랭크에게 손짓하더니 그의 귓가에 뭐라고 쑥덕이며 술병 하나를 건넸다.
“자네에게 일임하지.”
“알겠습니다. 캐롯, 가자. 강도단을 인솔해.”
“알았어. 자자! 일어나! 일어나! 멍청한 강도단아! 그 작은 머리로 생각한 게 겨우 강도질이야? 안타깝다. 너희들이 고블린하고 다를 게 뭐니?”
어제까지만 해도 오토마톤을 노예로 부리던 강도단은 오늘 갑자기 조그만 오토마톤에게 호통을 듣자 하나 같이 우거지상이 되었다.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망가진 차량을 수리하는 등의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은 강도들을 멀리 떨어진 숲으로 데리고 갔던 크랭크가 혼자서 돌아온 것을 보고 물었다.
“어? 강도들은요?”
“풀어주고 왔습니다.”
“뭐요?”
죽여도 시원찮을 판국에 풀어줬다니, 크랭크라면 깔끔하게 해결할 것 같아서 믿고 있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동행했던 캐롯은 잔인하게 웃는다.
“수면제를 잔뜩 넣은 술병을 하나씩 쥐어줬어. 숲속에서 그걸 마시면 바로 곯아떨어지겠지. 곧 밤인데. 오늘 이 부근 오크들 회식 각이네.”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으나 도리어 몇몇 신관들이 질린 얼굴로 소문과는 전혀 다른 크랭크와 캐롯을 보았다.
“세상에! 그럼 죽게 내버려두는 건가요? 그들도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짓을···!”
크랭크가 투구를 돌리고 신관 복장을 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는 눈을 한 소녀였다.
“이번 남부 출장에는 많은 신관님들이 동행하시는 군요. 당신 이름은?”
“이미스 입니다. 모험가 크랭크, 소문과는 많이 다르시군요.”
애송이라지만 신관에게 비난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을 좀 두리번거리자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본다. 어깨에 힘이 절로 빠진다. 그래서 크랭크는 이 어린 신관에게 투구를 들이밀었다.
“신관 이미스, 나는 저 강도단보다 당신들이 더 소중합니다. 그래서 죽였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강도단은 우리를 죽이고 당신들을 모욕했을 것입니다. 박애의 뒤에 숨어서 간단한 이치를 모르는 척 하지 마시오.”
이미스를 포함한 신관들의 얼굴이 여러 가지 의미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 정신 똑바로 차려! 네가 살린 사람들을 봐! 구해야 할 사람만을 구해! 신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신관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캐롯은 계속 말했다.
“맞아. 그거 누구지? 남부에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다니는 괴짜 모험가가 하나 있는데.”
“괴짜가 아닌 모험가도 있나?”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돌린 캐롯이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줬다. 잠시 생각하던 카키가 손가락을 튕겼다.
“판터! 저주의 리빙아머 판터! 유명한 사람이죠!”
“그래 맞아! 판터! 남부에 가면 판터라는 모험가가 있어. 그 사람 입버릇이 뭔 줄 알아?”
모두가 시선을 집중해 조그만 오토마톤을 내려다보았다. 캐롯은 목소리를 눌러 굵은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차별은 필요하다.”
“오! 비슷해!”
“보고 싶네, 그 양반 올해도 나오려나. 나이가 좀 있는 걸로 아는데.”
모험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중에 캐롯이 신관 이미스의 앞으로 걸어갔다.
“신관님, 아까 그건 인간 모양을 한 몬스터야. 같은 모양이라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거든? 그것만 잊지말아줘.”
이미스를 포함해 다들 입을 다물었다. 뭔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표정이다.
상대를 이해시킬 의도도 의욕도 필요도 없던 크랭크는 할 말을 마치고 부서진 자동화물차량의 수리를 돕고자 앞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뒤로 아리에테, 로테, 캐롯이 따랐다.
크랭크가 낮게 중얼거린다.
“···인류의 박애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멈춰선 아리에테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뒤따르던 캐롯이 그녀를 올려다본다.
“왜?”
“크, 크랭크가 욕을 했다.”
“응, 주인님도 사람이니까. 아니, 근데 넌 왜 그런 얼굴이냐고.”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얼굴이 된 아리에테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저만치 앞을 걸어가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멋져.”
“으잉?”
도시를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은 곳에서 강도단의 습격이 있었지만 그걸 무사히 격파한 상단은 이튿날 다시 출발했다.
“안 그래도 예정이 빠듯한데 강도단 놈들 때문에 반나절을 까먹었군. 제대로 지정된 날짜에 도착해야 하는데.”
“맞아요. 늦으면 계약을 어긴 게 되어서 위약금 물어야 해요.”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량 안에서 차장과 부차장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를 아리에테는 몹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청했다.
“왜지? 왜 지정된 날짜를 맞춰야 하지? 하루 이틀 정도는 늦어져도 상관없지 않을까? 아니,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춤을 추듯이 걸어 다니며 차를 끓이고 간식을 나르던 카키가 그녀에게도 머그컵을 내밀며 하하 웃는다.
“물건의 최종 종착지는 거기가 아니거든요? 우리가 남부 상회 조합에 물건을 넘기면, 거기서 또 다시 여기저기 도시와 마을로 계약된 물건을 보내줘야 해요.”
“그래서 최초 납품이 중요하지. 그나저나 이 망할 엘프 놈들이 통신규제를 풀어주지 않아서 귀찮아죽겠군! 카키! 깃발 올라왔다!”
“예!”
몸을 날린 카키는 깃발을 들고 창문으로 달려가 마구 휘둘렀다.
“앞쪽에 눈이 내린데요! 방한복을 준비하세요!”
아리에테가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엘프들의 통신 규제는 뭐지?”
“너는 어딘가의 별세계에서 떨어졌나보군. 그건 나중에 설명할 테니 이거부터 입어라.”
크랭크는 배낭에서 두툼한 코트를 꺼내 내밀었다.
“모직 코트다. 춥지는 않을 거야.”
“음! 하나하나 정말 고맙다. 크랭크.”
“저기 눈 와요!”
코트를 걸치던 아리에테가 카키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대로의 저편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하얀 무언가가 내리고 있었다.
“북부는 뒤쪽인데 왜 여기부터 눈이 내리지?”
“남부에서 올라오는 습기 때문에 그렇데.”
“맞다. 이제 이 망할 눈구름이 북부로 올라갈 거다. 하얀 지옥이 시작되지.”
겨울만 오면 좋지 않은 추억들이 떠올라 크랭크가 한숨을 쉰다.
상단의 자동화물차량들은 느릿하지만 꾸준하게 눈길을 밀고 나갔다. 워낙 대형이고 차륜도 많아서 쉽사리 미끄러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와! 눈이야! 눈!”
창가에 달라붙은 캐롯은 유리창에 볼을 들이대고 신난 듯이 새하얀 세상을 구경했다.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 본다.”
휴식 시간, 상단의 자동차량이 일렬로 멈춰 서 있고 사람들이 오고갔다. 간간히 눈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지겹다는 표정으로 눈밭을 걸어 다녔다.
“북부에선 눈을 정말 끔찍하게 많이 보거든? 아리에테는 서부에서 왔다고 했지?”
“음.”
캐롯과 이야기하다가 모험복장 그대로 돌아다니는 크랭크를 보고 아리에테가 물었다.
“크랭크 춥지 않나? 코트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꼴 보기 싫지만 눈이 오다니 운이 좋군. 남부 한계선을 넘을 때까지 몬스터의 습격은 없을 거다.”
모르는 것이 많은 아리에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캐롯이 하하 웃으며 눈밭을 뛰어다니다가 돌아왔다.
“아, 한계선? 여기서 삼일 정도 더 가면 나와. 남부와 북부의 경계지. 거기서 이틀을 더 내려가야 목적지야.”
“멀구나.”
“아무래도 끝에서 끝으로 가는 거다 보니까. 그리고 화물차들이 느린 것도 있지. 말 타고 가면 더 빨리 도착해.”
“아, 그래서···.”
출발하는 날 마차와 말을 끌고 떠나는 사람들을 봤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
약간의 휴식 후 차량은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그들도 밤에는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만 미안하네요.”
“운전과 관리를 해야 하니 그런 말마시고 푹 쉬십시오.”
“맞아! 여러분은 고급 인력이니까! 부담 갖지 말도록 해.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쉬어!”
캐롯의 외침에 차장 기스와 카키가 기분 좋게 웃는다.
객실에는 좁지만 침실이 있었는데, 차장과 부차장의 것이었다. 호위 모험가들은 야간 순찰을 돌면서 실내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는 식이다.
신관도 신력을 발위하려면 심신이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쉬도록 내버려 두고 야간 순찰을 돌기 위해서 다들 밖으로 나섰다.
“춥군.”
아리에테가 으덜덜 떨면서 커다란 자동화물차량의 주변을 살폈다. 함께 걷고 있던 캐롯이 말했다.
“크랭크가 자리 펴놓고 있을 거야. 어서 가서 잠깐 합체 하면서 쉬자.”
“합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아리에테가 차량의 선두에서 발견한 것은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은 크랭크였다. 그는 담요를 두른 채 앉아 있다가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이리 들어오도록 해.”
“으헉?!”
두 팔을 펼치자 천막 같은 담요가 좌우로 펼쳐졌다. 아리에테가 당황했다.
“어, 어디로 들어가는 거냐?”
“여기 다리 사이.”
“허어억!”
“뭘 긴장하고 그래! 빨리 들어가! 좀 쉬었다가 또 돌아야해!”
캐롯이 아리에테의 손을 잡아끌어 등을 떠밀었다. 결국 아리에테는 크랭크의 다리 사이에 엉덩이를 밀어붙이고 앉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캐롯이 자리를 잡았다.
“어?”
뭔가 생각했던 거와는 다른 상황인지라 아리에테가 뒤를 돌아보았다. 크랭크의 턱이 보인다. 그가 펼친 담요를 여미자 마치 천막에서 머리만 내놓은 꼴이 되었다.
“응?”
천막의 마지막을 장식한 캐롯의 머리가 외친다.
“합체 완료! 따숩따숩 출력 전개!”
기이이이잉···!
미미한 마력엔진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리에테가 급격한 따스함을 느끼고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어엇! 이건?!”
지금 아리에테의 다리 사이에는 캐롯이 앉아 있는데 그 머리카락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화-! 따, 따뜻해···!”
“좋지? 오토마톤의 방열가발은 이렇게도 쓸 수 있거든?”
아리에테는 팔을 뻗어서 좀 더 바싹 캐롯을 끌어당겼다. 좋은 향기가 머리카락에서 솟아올라온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로테! 로테는?!”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크랭크의 등 뒤에서 로테의 목소리가 들린다.
“쉬면서도 경계는 해야 한다. 요령껏 눈도 붙여가면서,”
“아리에테? 눈 좀 붙여.”
“아, 아니 그럴 수는···!”
1분 후, 아리에테는 캐롯의 머리에 얼굴을 쳐 박고 기절했다.
“쿠···!”
“와하하. 피곤했나보네.”
천막의 첨단에서 크랭크의 투구가 말했다.
“아니다. 아리에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더라. 출발 전에 고향 이야기를 했더니 이상해지더군.”
“오? 그래?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공방에서도 느낀 건데,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너를 안고 있으면 기절한 듯이 자더군. 왜 그럴까?”
“안심이 되서?”
크랭크가 조명이 설치된 밤의 눈밭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현상은 확실하지. 인형이라도 만들어줘 볼까 싶군.”
“아하하! 인형? 나도 인형인데.”
캐롯의 말에 크랭크도 피식 웃었다.
그러다 캐롯이 머리에서 진득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도끼눈을 했다.
“앗! 이 녀석! 지금 침 흘리고 있어!”
“프흣.”
웃는 코드가 일반인과 좀 다른 크랭크가 그만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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