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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55화 (55/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마녀! 55

유리탱크 안에서 손을 흔드는 캐롯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장비를 조작해놓고는 몸을 돌렸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케이스가 말했다.

“주인님이 기상하셨습니다. 당신을 만나 뵙고 하십니다.”

“갑시다.”

마치 저택의 그것 같은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연구실이었다.

“크랭크?”

“고르곤, 잘 지내셨습니까?”

“크랭크!”

갈색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30대 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걸어왔다.

“자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잠깐 졸았지. 캐롯은?”

“오버홀을 하느라고 제거한 소프트 스킨을 재 배양 중입니다. 기자재 좀 빌려 썼습니다.”

“응응, 괜찮아. 차 마실래?”

짝짝!

우아하게 팔을 올리고 박수를 치자 역시 우아한 메이드 케이스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고르곤과 똑같은 얼굴과 체형을 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군요.”

케이스가 웃는다. 마주 웃은 고르곤이 말했다.

“커피. 두 잔.”

“커피 많이 드셨어요.”

“그럼 생강차라도.”

“예. 생강차. 크랭크는?”

“저도 같은 걸로 부탁드립니다.”

몸을 돌린 케이스는 근처 탕비실로 들어가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동안 고르곤은 소파에 앉은 크랭크에게 바싹 달라붙어 그 커다란 손을 매만지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주 좀 오고 그래.”

“일이 있으니 그럴 수는···.”

방긋 웃은 고르곤이 물었다.

“요즘은 어떤 모험을 했어?”

“최근에는···.”

크랭크가 입을 열려하자 고르곤이 손을 들었다.

“잠시만.”

짝짝!

손뼉을 부딪치자 열린 문으로 메이드 케이스가 들어섰는데 한 둘이 아니었다.

“주인님. 크랭크가 가져온 보급품의 정리가 끝났습니다.”

“수고 했어. 어서 앉아. 이제 크랭크의 이야기가 시작돼.”

소파에 앉은 크랭크와 고르곤을 중심으로 케이스 들이 자리를 채웠다. 세어볼 엄두가 나질 않았지만 20명 가까이 될 것 같다. 크랭크는 어지러움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손에 생강차를 받아든 고르곤이 재촉했다.

“자. 이제 다 모였어. 시작하자.”

크랭크는 계약대로 겪어온 모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합!”

챙!

크랭크와 캐롯이 떠나고 2일 째 되는 날,

아리에테와 로테는 집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진검을 들고 칼춤에 매진하고 있었다.

슈악!

롱소드의 칼날을 잡은 로테가 손잡이를 휘둘렀다. 롱소드의 손잡이에는 가드가 달려있는데 그 부분이 마치 날카로운 곡괭이처럼 아리에테의 머리 옆에서 멈췄다.

“머더 스트록···!”

검을 거둬들인 로테가 말했다.

“상대의 검을 빼앗아 칼날 채로 잡고 휘둘러도 유효타가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멋지다! 너는 어디서 이런 기술을 배웠지?!”

아리에테가 환호했다. 로테가 저 멀리 성벽을 보면서 말했다.

“이전 주인께서 검술에 관심이 많아 자주 저를 상대로 훈련을 하셨지요.”

“훌륭하다!”

둘이서 쑥덕이는 와중에 투나가 그들을 불러들였다.

“무슨 일이지?”

“이, 이거 한 번 붙여보자.”

이틀 동안 식사와 잠도 대충 거르면서 크랭크의 작업대에서 뭔가를 만들던 투나가 아리에테의 손을 잡아 작업대에 앉혔다, 그리고 꼼지락 거리며 목 뒷부분을 한참 만지더니 무언가를 붙였다.

“읏! 차거!”

“이제 좀 따가울 거야. 참아.”

칙!

“으헛?!”

목뒤에서 따끔하는 수준이 아닌 격통이 느껴지자 아리에테가 몸을 숙이며 기겁했다.

“투나?”

“돼, 됐어. 허리 펴. 아, 아직 뒤 돌아보지 마.”

긴장한 아리에테였지만 시키는 대로 있었다. 잠시 후 어깨너머로 얼굴을 들어 올린 투나가 말했다.

“아리에테 소, 손 들어봐.”

“이렇게?”

아리에테가 자연스럽게 팔을 들었다.

“이, 이상하지 않아?”

“아니 별로···. 어?”

아리에테의 눈을 흔들린다. 손을 돌려보던 그녀는 두 손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급하게 옆에 치워놓은 롱소드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가, 감촉이···.”

“오오, 가, 감각이 느껴져?”

롱소드의 손잡이를 잡고 그 칼날을 손가락으로 매만져보던 아리에테는 순간 더 기괴한 기분을 느꼈다.

땡그랑-!

덜덜 떨면서 검을 떨어뜨린 아리에테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팔을 들어 움직였다.

“내, 내 뜻대로 움직여! 팔이! 시온? 시온!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네가 하는 거 아니야?!”

-놀랍군요.

“놀랍군요.”

“으헉?!”

귀와 머릿속으로 동시에 시온의 목소리가 울린다. 눈가에 시커먼 그림자를 매단 투나가 으히히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온다.

“됐네. 조, 좋아. 일어서봐.”

아리에테가 일어섰다. 손만이 아니라 다리도 감촉이 느껴진다.

-당신의 생각이 들립니다.

“당신의 생각이 들립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아리에테가 투나를 바라본다. 흐뭇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V를 그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뇌, 뇌에서 척추로 신경이 지나고 근육에 시, 신호를 보내지. 내, 내가 만든 건 그 신호를 중간에 훔쳐서 시, 시온의 제어부로 소, 송수신하는 거야. 그 결과는 다음과 같지.”

팔과 다리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오토마톤 시온의 촉각, 그리고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는 시온의 목소리.

자리를 옮긴 투나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 펼치며 말했다.

“여기, 오, 오토마톤 개론에서 봤는데, 오, 오토마톤은 온 몸에 미, 미약한 마력을 흘리고, 신경선을 토, 통해서 그걸 감지하는 식으로 초, 촉각을 느낄 수 있데. 아마도 자, 작업의 효율을 위해서 그, 그렇게 했겠지.”

책을 덮은 투나가 아리에테를 보았다.

“어, 어때? 지, 진짜 수족처럼 우, 움직이는 팔다리는?”

“으아아앙!”

감격한 아리에테는 펑펑 울면서 투나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투나! 나는 앞으로 네게 내 목숨을 맡기겠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어! 으어아앙!”

아리에테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받은 투나는 으히히 웃으며 즐거워했다.

“어머나, 그런 일이 있었어?”

침대에 누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크랭크의 이야기를 듣던 고르곤이 눈을 반짝인다.

시간이 언제쯤인 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장소는 침실로 옮겨져 있었다.

내가 언제 이곳에 왔지?

어리둥절한 크랭크를 내버려두고 탁자위에 쌓여있는 포션 하나를 입에 대고 들이킨 고르곤이 다시 그를 돌아본다.

“이야기는 그쯤 됐고, 이제 그 투구를 벗어.”

가만히 있던 크랭크가 자연스럽게 투구를 벗었다. 그의 맨 얼굴을 보고 눈을 좀 비비던 고르곤이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침대를 기어 그의 가슴에 매달렸다.

“여보! 으이잉! 보고 싶었어! 나 혼자 내버려두고 어딜 갔었어!”

멍청하게 고르곤을 내려다보던 크랭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고르곤의 연구실에 도착해서 3일 째 되는 날의 아침, 캐롯이 깨어났다.

부글부글-!

배양액이 빠져나가고 눈을 뜬 캐롯은 팔을 들어보았다. 말끔하게 재생된 소프트 스킨이 보인다.

“보골보골-! 조-! 보골보골-! 아-! 쿠우웨-!”

말하다 말고 속으로 들어간 배양액을 좀 뱉어낸 캐롯은 높다란 유리탱크를 올려다보다가 폴짝 뛰어 넘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캐롯은 벽에 있는 전신거울로 달려갔다. 10세 쯤 되는 소녀의 알몸이 보인다.

몸 이곳저곳을 거울에 비춰보던 캐롯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웃기 시작했다.

“캐롯 부활-!”

몸을 수건으로 대충 닦은 캐롯은 급한 대로 방열 가발만 착용한 채 알몸으로 연구실을 뛰쳐나갔다.

“야이! 마녀야! 어디 있냐!”

한참 복도와 방을 들쑤시고 다니던 캐롯은 넓은 응접실에 앉아있는 고르곤과 크랭크를 발견했다.

“고르곤! 크랭크!”

“어머, 캐롯, 다 나았나보네?”

“그래! 내가 돌아왔다!”

소리를 빽 질렀지만 캐롯은 자박자박 걸어서 어쩐지 좀 말라버린 것 같은 크랭크의 앞으로 돌아갔다.

“주인님. 너 괜찮아?”

자고 있었던 것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크랭크가 눈을 뜬다.

“어? 응···! 어! 캐롯? 재배양은 끝난 건가?”

“그래. 너 투구는 어떻게 했어?”

“여기 있지.”

캐롯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투구를 쓴 고르곤이 있었다.

“와, 이런 걸로 바깥을 보는 구나. 시야가 엄청 좁네?”

“알면 빨리 저주를 풀어줘라! 이 정신 나간 마녀야!”

“에에, 그건 싫어. 풀어주면 안 찾아올 거잖아?”

당장이라도 덤벼들어 목을 조르고 싶다는 듯이 손가락을 오글거리며 캐롯이 억지로 웃는다.

“아냐, 걱정 마. 가끔 찾아올게.”

투구를 벗은 고르곤이 아하하 웃었다. 캐롯이 으르렁 댔지만 덤벼들지는 않았다. 고르곤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말했다.

“역시 대화 상대는 네 쪽이 더 재미있어. 그런데 아쉽네. 벌써 끝나다니. 이제 돌아갈 거지?”

“재생 끝났으면 가야지 뭐. 심심하면 당신이 놀러오든가.”

“그건 됐어. 인간이라면 지긋해.”

“이건?”

캐롯이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기절해 있는 크랭크를 가리켰다.

“맛있는 인간은 별개지. 츄릅-!”

입맛을 다시는 고르곤을 보면서 캐롯이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그만 쳐 자고 일어나!”

“어! 응?!”

“양동이 챙겨 쓰고!”

깜짝 놀란 크랭크는 그걸 뒤집어썼다. 빙그레 웃고 있던 고르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쩐지 얼굴이 반짝이는 것이 몸보신이라도 한 것 같은 모양이다.

“대체 얼마나 빨아댄 거야?”

“쪼금?”

엉덩이를 쭉 내밀고 요염한 몸짓을 한 고르곤이 뒤를 돌아보며 귀엽게 말하자 캐롯이 폭발했다.

“역시! 가만 둘 수가 없어!”

“아하하하!”

하얀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고르곤이 캐롯과 술래잡기를 한다.

“이제 가니?”

“예. 신세졌습니다.”

메이드 케이트 들과 함께 창고 앞까지 배웅을 나온 마녀 고르곤이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재미있는 모험담을 가지고 다음에 또 오도록 해.”

말을 끌고 나가려던 크랭크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편지 하나를 내민다.

“당신의 팬이 보내는 것입니다. 이야기 중에 나온 투나의.”

“아, 그 음침녀? 그래. 읽어볼게.”

크랭크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마부석에 앉은 캐롯은 손가락으로 욕을 해댔지만 고르곤은 웃기만 했다.

“날 기억해라! 이 마녀야! 널 잊지 않으마!”

고르곤은 그저 푸근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트드드···! 쿵!

돌문이 닫히고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그냥 언덕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철퍼덕!

“오우야! 크랭크!”

크랭크가 기절했다.

“어휴! 내가 이래서 여기 오기 싫어!”

쓰러진 크랭크를 흔들어보았지만 미동도 없었다. 결국 다리를 질질 끌어 짐칸에 던져 올린 캐롯은 마부석에 올라가려 했다가 멈췄다.

“아! 잊을 뻔 했네.”

배낭을 뒤져 가죽 장갑을 꺼내온 캐롯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적당한 돌덩이가 보인다.

“이얍!”

쾅! 쩡-!

조그만 소녀의 주먹질에 큼직한 돌덩어리가 둘로 쪼개졌다. 눈을 질끈 감고 장갑을 벗은 캐롯이 한쪽 눈만 살짝 떠서 손을 보았다.

심장은 없지만 두근거림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우와!”

손은 멀쩡했다. 신이 난 캐롯은 얼른 마부석으로 뛰어올라 고삐를 흔들었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붉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참 기분 좋다고 캐롯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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