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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54화 (54/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마녀! 54

일찍 잠에 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크랭크는 대충 음식을 주워 먹고 작업대로 돌아왔다. 그 앞의 의자에는 여전히 샤를과 로테가 앉아 캐롯을 지키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캐롯을 지키고 있었나?”

“그저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 책이라도 읽어라. 캐롯도 그렇게 지식을 쌓았지. 문자는 읽을 수 있나?”

“가능합니다. 그럼 오늘 부터 책을 읽겠습니다.”

캐롯에 시선을 고정한 로테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켜보고 싶습니다.”

“좋을 대로 해라.”

기지개를 좀 켠 크랭크는 덮어놓은 천을 걷어내고 캐롯의 장갑판을 분해했다. 엄청나게 빽빽한 인공 근육인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내부가 거, 거의 사람이네? 빈 공간이 거의 없어?”

어느새 나타난 투나가 끼어들어서 캐롯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작하자.”

“그, 그래. 뭐 어, 어떻게 할 건데?”

“프레임 빼고 전부 교환 할 거다. 인공 근육부터 떼어낸다.”

“알았어.”

그날부터 3일에 걸쳐서 크랭크와 투나는 캐롯의 몸에서 인공근육, 인대, 마력모터, 마력엔진, 동력선, 신경선, 관절 등등 정말로 프레임과 장갑판 빼고 거의 모든 소모품을 교체했다.

“부, 부품 비용이 엄청난데? 새, 새로 한 대 살 수 있겠다.”

“그 정도는 아니야.”

식사를 만들고 심부름을 하는 등의 뒷정리를 하면서 작업을 지켜보던 아리에테가 중얼거렸다.

“그 많은 예비 부품이 거의 다 들어갔어.”

3일 째 되는 날의 정오, 소모품의 교환과 점검을 완료한 크랭크는 마지막으로 트윈 마력엔진의 설치도 완료 했다. 그걸 보고 있던 투나가 말했다.

“그, 그걸 여기 부, 부어넣는 건 어때?”

“슬라임 충격 흡수제?”

“모, 몸체가 더 탄력적으로 추, 충격을 흡수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크랭크였지만 역시 고개를 저었다.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검증을 거쳐야해. 다른 녀석에게 먼저 실험해보고 하자.”

“음, 알았어.”

마지막으로 장갑판을 덮고 꼼꼼히 점검을 마친 크랭크가 한숨을 쉬더니 피곤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캐롯. 일어나.”

칭-!

눈을 뜬 캐롯이 천장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검정색 오토마톤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손이 보인다.

“교체 작업이 끝났어. 일어나봐.”

조그만 오토마톤이 작업대에서 일어나 팔과 몸을 움직여 보더니 폴짝 뛰어내려 섰다.

“오오오!”

다시 움직이는 캐롯을 보고 투나와 아리에테가 좋아했다. 샤를과 로테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보일러까지 걸어서 갔다와봐.”

캐롯은 공방 안쪽에 위치한 보일러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다시 말했다.

“이번엔 뛰어서 갔다 와.”

팡-!

“왁?!”

종전보다 약간 빠른 느낌으로 캐롯이 보일러를 찍고 돌아왔다. 공방으로 쓰고 있는 터널형 창고 안에서 바람이 부는 것 같다고 아리에테는 생각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투나가 허리를 숙여 캐롯을 내려다보았다.

“캐, 캐롯? 괜찮아? 왜, 왜 말을 하지 않아?”

“헉! 그러고 보니!”

아리에테가 이 위화감을 깨 닳고 놀랐다.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캐롯인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나무상자에서 가발을 가져온 크랭크가 손짓하자 캐롯이 뛰어간다.

좋은 향기가 나는 붉은 방열 가발을 머리에 붙이고 고정하자 인상이 확 바뀐다. 수리 전에 입고 있던 아동복도 가져와 입혔다.

걸음걸이나 서있는 자세로부터 소프트 스킨이 제거된 캐롯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캐롯은 입을 열지 않았다. 슬슬 투나와 아리에테가 안절부절 못하게 되자 크랭크가 말했다.

“소프트 스킨이 없어서 그래.”

“뭐라고?”

“뭐? 왜?”

투나의 앞으로 걸어간 캐롯이 손짓을 했다. 투나가 허리를 숙이자 캐롯이 뭐라고 속삭였다.

투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리에테가 물었다.

“뭐라고 했어?”

투나가 고개를 돌려 아리에테를 본다. 그 표정이 뭔가 어둡다.

이번엔 아리에테의 앞으로 캐롯이 섰다. 작은 손으로 손짓하자 아리에테가 얼른 시온에게 지시를 내려 몸을 숙였다.

붉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조그만 오토마톤이 아리에테의 귓가에 속삭였다.

“···팔다리가 없는 알몸일 때, 기분이 어땠어?”

아리에테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뭔가 대단히 복잡한 표정을 지은 아리에테가 캐롯을 보았다. 총총 걸어서 뒤로 물러선 캐롯은, 크랭크의 다리 뒤에 숨어 빠끔히 머리를 내민다.

아리에테가 허리를 펴자 상황을 짐작한 시온이 무릎도 같이 폈다.

결과적으로 몸을 일으킨 아리에테가 긴 한 숨을 내쉰 다음 입을 열었다.

“부끄럽고, 처참하며, 참혹했다. 지금 너의 기분을 알겠다. 그렇구나. 크랭크!”

크랭크의 투구가 아리에테를 향했다. 그녀는 캐롯을 가리키며 말했다.

“부디 저 가여운 캐롯에게 소프트 스킨을!”

“걱정마라. 내일 씌우러 간다.”

투나와 아리에테가 안도의 한 숨을 쉬었고, 크랭크의 다리를 붙잡고 있던 캐롯도 불끈 쥔 작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신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은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투나가 분노했다.

“왜지?! 왜 나는 가면 안 돼지?! 나도 그 전설적인 연금술사를 만나보고 싶다!”

아리에테는 처음으로 말을 더듬지 않는 투나가 더 신기했다. 허리를 숙여 짐을 챙기던 크랭크가 투나에게 엉덩이를 보인 채로 말했다.

“그 마녀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해. 그래서 널 데려 갈 수가 없어. 나나 캐롯은 함께했던 적이 있어서 덜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그 마녀는 적으로 간주해.”

아리에테의 옆에 앉아 다리를 흔들던 캐롯이 수첩에 글을 적어 보여준다.

-아주 폐쇄적인 마녀지. 방구석 폐인이야.

“오오! 필담은 나눌 수가 있구나!”

아리에테가 캐롯을 끌어안았다. 투나에게도 수첩을 글을 보여주었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두 팔을 흔들며 생떼를 부렸다.

“하지만! 그래도! 나도! 그 살아있는 연금술의 역사와!”

“편지를 써라.”

종이와 펜을 내민 크랭크를 보면서 투나가 얼빠진 표정을 했다.

“펴, 편지?”

“그래, 먼저 너를 소개해 봐라. 펜팔로 네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임을 조금씩 어필해봐라. 마음에 들면 데려와 보라고 할지도 모르지.”

종이와 펜을 들고 작업대에 앉은 투나는 열정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크랭크가 일어섰다.

“캐롯 나랑 같이 시장을···.”

캐롯은 아리에테의 침대로 기어 올라가 담요를 뒤집어 쓴 채로 뒤로 돌아 앉았다. 아리에테는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투구를 좀 긁적인 크랭크가 아리에테를 보았다.

“아리에테, 샤를, 같이 가자. 시장을 봐야해.”

“알았다. 뭘 살 건데?”

“그 마녀에게 가져다 줄 보급품.”

“보급품?”

“그전에 다들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공공연히 마녀 고르곤의 존재를 말하고 다니지 마라. 아는 사람이 몇 명 없다.”

다들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에테와 샤를을 데리고 길드로 가서 마차를 빌린 크랭크는 그 길로 시장으로 가려는데 아리에테가 떼를 썼다.

“모험가 등록을 하고 싶다! 은혜를 갚고 싶어!”

“그 전에 너 여기 시민 등록은 되어 있나?”

“어, 아니.”

마부석에 오른 크랭크가 말했다.

“캐롯의 소프트 스킨을 올리고 와서 너희들 시민등록을 하자. 내가 신원 보증인이 되겠다.”

“역시! 고맙다! 크랭크!”

“타라. 바쁘다.”

시장으로 향한 크랭크들이 짐마차 한 가득 각종 생필품을 사들여 공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거의 저녁이 다되어서였다.

그리고 이튿날의 새벽, 크랭크와 캐롯이 고르곤에게 출발했다.

“이, 이거 펴, 편지 잊지 말고 꼬, 꼭 전해줘.”

“알았다.”

아리에테가 캐롯의 손을 잡는다.

“꼭 돌아와 줘.”

하얀 시트를 뒤집어 쓴 캐롯은 수첩에 글을 적어 보여준다.

-그래. 잠이 안 오면 투나라도 끌어안아봐.

서로 시선을 마주한 투나와 아리에테는 같이 좀 키득 거리다가 손을 흔들었다.

“어서가!”

“다, 다녀와.”

마차가 출발했다. 새벽의 도로를 지나 성문에 다다르자 경비병들이 그들을 반겼다.

“크랭크? 어디가세요?”

“예. 일하러 갑니다.”

“새벽부터 힘드시겠군요.”

서류에 도장을 찍은 경비병이 마부석에 앉은 시트 덩어리를 보고는 물었다.

“너 캐롯이냐?”

캐롯은 대답이 없었다. 경비병이 시트를 들춰보려고 하자 크랭크가 큰 손으로 캐롯의 어깨를 감싸 쥔다.

“저라면 그러지 않겠습니다.”

“어···.”

“얌마!”

고참 경비병이 걸어와서는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어서 성문 열어! 뒤에 줄 서 있는 거 안보여?!”

“아, 예!”

경비병이 뛰어가 레버를 당겨 자동 성문을 열었다. 때 마침 아침 해가 떠오른다. 콧수염을 기르고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경비대원이 헛기침을 하더니 크랭크를 배웅했다.

“출발하십시오. 다시 돌아올 때는 그 떼쟁이가 타고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르곤의 거처는 아르곤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흔히들 포도 던전이라고 부르는 폐 광산 부근이었다.

슬슬 한기가 감도는 아침의 숲속을 걸어 도착한 곳은 포도 던전이 지척에 보이는 바위 언덕이었다.

말에서 내려 바위 앞으로 걸어간 크랭크는 헛기침을 좀 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희들 왔습니다. 들여보내 주십시오.”

트드드드···!

놀랍게도 바위가 위로 올라가면서 마차가 들어갈 정도로 넓은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고삐를 붙잡고 안으로 들어서자 바위는 다시 내려와 입구를 막아버렸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의 도움을 받아 돌 벽을 깎아 만든 동굴을 지나자 곧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높다란 천장에는 거대한 빛 구슬이 매달려 빛을 발하고 있어서 대낮과 같이 밝았으며 그 아래로는 아름다운 정원과 멋진 저택이 꾸며져 있었다.

지리적, 위치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크랭크와 캐롯은 의연하게 잔디가 깔린 정원을 지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의 문 옆으로 붉은 망토를 늘어뜨린 하드스킨 오토마톤 두 대가 석상처럼 서 있다가 고개를 숙인다.

말고삐를 잡고 있던 크랭크가 두 손을 들어 공격 의사가 없음을 밝히자 그들은 다시 고개를 들고 정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택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오셨습니까. 마이스터 크랭크.”

메이드 복이 잘 어울리는 안경 낀 여성이었다. 그녀는 캐롯에게도 인사를 했다.

“캐롯도 어서 오세요.”

시트를 벗어던지고 내려와 함께 짐을 옮기던 캐롯은 그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마주 웃어준 마녀 고르곤의 메이드 케이스가 그들을 안내했다.

“놔두시면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항상 보급품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그 분은?”

“주인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마침 잘됐군요. 깨기 전에 캐롯의 소프트 스킨부터 수리하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위치는 아시죠?”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캐롯을 데리고 저택 안의 넓은 작업실로 들어섰다. 대단히 수준 높은 기자재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는 익숙한 손길로 가져온 소프트 스킨을 유리탱크 안에 쏟아 넣고 재 배양을 시작했다.

“한 번 성형했던 거니 그냥 들어가 있으면 된다.”

캐롯의 가발과 옷을 전부 벗기고 들어 올린 크랭크는 거대한 유리 탱크 안에 캐롯을 집어넣었다.

꿀렁꿀렁,

맑은 배양액이 아래에서 부터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유리탱크를 꽉 채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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