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결혼식! 53
정오를 조금 지나 나른한 분위기의 도시를 걸어서 도착한 곳은 시청 앞의 광장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 크랭크!”
“켄 조합장님, 오셨군요.”
플루이드가 다니는 상회조합의 사람들 몇이 나와서 크랭크에게 아는 척을 한다. 상단 호위 일도 자주 나섰기 때문에 낯이 익은 사람들이 많았다.
“자네도 왔군. 캐롯, 오랜만이구나.”
“예, 반가워요. 조합장님.”
주변에 서 있던 여자들이 크랭크와 캐롯을 보고 수근 댔다.
“저 사람이 크랭크야? 플루이드와 같은 마을의? 엄청나게 크네?”
“우와-! 저거 캐롯이야. 그 유명한 오토마톤!”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을 소개 받는 중에 크랭크가 물었다.
“두 사람은 들어갔습니까?”
“그래. 곧 나올 거야.”
때마침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기! 나와요!”
시청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귀족이나 재력이 많고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아닌 바에야, 이 세계에서 평범한 일반인의 결혼식은 소박한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루이드의 결혼은 너무도 단촐 했다.
식 없이 혼인 신고만 하는 것으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맞췄기 때문이다. 대신 그만큼의 비용을 줄여 새로 살 집을 구하기로,
그래서 일부러 하객도 부르지 않았다.
모인 사람들은 그럼에도 축하하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둘 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친척도 거의 없대, 그래서 최대한 줄인 거래.”
“하긴, 플루이드 형편상 혼수도 제대로 못했을 테니까. 동생도 둘이나 있고,”
가지고 있는 옷들 중에서 가장 말끔 한 것을 골라 입고 머리를 묶어 올린 플루이드와 경비대 제복을 차려입은 제이크가 시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나오는 것으로 결혼식자체는 끝났다.
“플루이드!”
플루이드의 친구들이 몰려와서 축하를 해줬다. 플루이드는 너무도 기뻐했다. 제이크가 속한 경비대에서도 대원들이 찾아와 축하를 했고, 크랭크를 포함해 아는 모험가들도 찾아와 선물을 안겨줬다.
“돈도 마음의 표현이라고 하지. 그래서 내 선물은 현찰이야.”
크랭크가 묵직한 돈주머니를 내민다.
플루이드가 한숨을 좀 쉬긴 했지만 그래도 기뻐했다.
“정말 고마워. 크랭크.”
“믿어져요? 제이크? 어릴 때 플루이드가 크랭크를 두들겨 팼데요?”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자 제이크가 크게 웃는다. 그리고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도 웃어버렸다.
“그거 조심해야겠는데요.”
“으아아! 캐로오옷!”
“아하하! 축하해! 정말 축하해! 플루이드가 시집가는 걸 보다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오토마톤이야!”
모두가 기뻐했다. 그때 광장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영주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는 길이라.”
처음 보는 제복을 입은 사내가 불쑥 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들 사이에서 걸어 나온 금발의 오토마톤을 플루이드가 알아보았다.
“그린?”
캐롯도 놀라워했다.
“어엇?!”
현 방주도시 트레일의 임시 경비대장을 맡은 오토마톤 그린이 인사를 한다.
“반갑습니다. 플루이드, 당신의 이름은 널리 알려 졌습니까?”
플루이드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고, 아르곤의 경비대원들은 이웃 방주도시의 경비대장을 보고 경례를 붙여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르곤의 경비대원들은 다들 말쑥하군. 잘생긴 친구들이 많아.”
2미터가 넘는 커다란 키와 풍선 같은 근육을 가진 험상 굳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리고 플루이드와 제이크를 내려다보더니 최대한 귀엽게 웃어보였다.
“트레일 경비대의 토르페도 입니다. 당신이 우리 경비대장에게 머리카락을 제공한 플루이드, 그리고 당신이 제이크,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결혼, 축하합니다.”
토르페도는 손에 든 것을 플루이드의 손에 쥐어주었다.
팔이 아래로 휙 떨어지는 것에 당황한 플루이드를 향해 토르페도가 말했다.
“저희 영주님이 보내시는 겁니다. 그리고 전언입니다.”
헛기침을 좀 한 토페도가 허리를 펴고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그대 덕분에 우리 트레일에 황금빛 바람이 불고 있소. 고맙구려.”
조금 멍한 표정을 한 플루이드가 고개를 돌리자 물 흐르듯 흐르는 금발을 산발한 오토마톤이 귀여운 마스크로 그녀를 보고 있다.
“결혼 축하합니다. 나는 모두가 칭찬하는 이 아름다움을 주신 당신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나···! 아니, 저야말로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트레일 경비대장님.”
그 모습을 두 눈에 똑똑히 담은 상회 조합장은 절친 마빈 모험가 길드 마스터에게 어서 이 그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박수를 쳤다.
짝짝짝-!
어색함을 무마하는 데는 역시 박수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다들 손뼉을 부딪쳤다. 분위기가 다시 좀 부드러워지자 아르곤 경비대원은 트레일 경비대원들과 인사를 하며 친분을 다졌고, 그린은 크랭크와 캐롯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우오! 트레일 경비대장님!”
그린에게 표정이 있었다면 웃었을 것이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보인 그린이 크랭크를 올려본다.
“건강하셨습니까. 마이스터 크랭크.”
“경비대장께서야말로 몸은 어떠십니까? 불편한 곳은?”
“없습니다. 트레일에 솜씨 좋은 정비 기사가 오셨습니다. 그 분께서 당신을 꼭 만나 뵙고 하시더군요.”
멋들어진 트레일 경비대 제복을 입은 그린을 내려다보며 투구 안의 크랭크가 씩 웃었다.
“꼭 한 번 찾아뵙죠.”
“이 친구입니까? 경비대장.”
토르페도를 포함해서 4명의 경비대원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크랭크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인상 깊은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이 경비대장을···.”
“시작의 근원, 부모 쯤 될까요?”
“굳이 따지자면?”
토르페도를 제외하면 다들 여자였다. 토르페도 역시 그린 경비대장을 지금의 모습으로 수리한 인물에 대해 그들만큼 궁금해 했지만, 직접 만난 이 순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의 시선에 라이벌의식이 불타올랐다.
“나는 평균 3대 800을 치는데. 당신은 어떻지? 루틴이 어떻게 되지?”
비슷한 덩치의 크랭크가 토르페도를 보고 팔짱을 끼었다.
“저는 근육을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라서, 유산소 운동을 주로 하는 편입니다만.”
“믿을 수 없군. 유산소로 그 몸이 나온다고?”
“물론 약간의 쇠질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3대 800 이라니, 꽤 하시는 군요.”
“요즘 800 중반에 도전하고 있지. 당신은 어떤데?”
2미터짜리 근육거인들의 신경전은 내버려두고 총총 걸어간 캐롯이 그린을 올려다본다.
“안녕! 그린!”
“반갑습니다. 캐롯.”
캐롯이 트레일 경비대장을 이름으로 부르자 3명의 여성 경비대원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린이 손을 들더니 말했다.
“소개 하겠습니다. 트레일 경비대 소속의 대원들입니다. 2~3년 후에는 이들 중 하나가 정식으로 경비대장을 역임 할 것입니다.”
“오오! 그럼 엘리트 집단이야? 대단해!”
대원들의 얼굴이 좀 펴졌다. 허리에 손을 얹고 코를 세운 그녀들이 말했다.
“그럼!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으악! 토르페도가 옷을 벗었어!”
“저 사람도!”
고개를 돌린 곳에는 토르페도와 크랭크가 웃통을 벗어던지고 근육 자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웃긴지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린다.
플루이드와 제이크도 웃었다.
즐거운 결혼식이었다.
“자리를 옮깁시다. 내가 식당을 하나 전세 내어 놓았으니까.”
“조합장님?”
“아무리 그래도 상회 직원의 결혼식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어. 트레일 경비대원님들도 함께 하시지요. 멀리서 오셨는데 식사라도 대접하지 않으면 아르곤 상회 조합장으로서 트레일 영주님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경비대원들은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긴 곳에서 조촐한 식사와 함께 축하와 이야기가 오고갔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플루이드와 제이크는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하하하! 재미있었어!”
해가 떨어질 때 쯤 공방으로 돌아온 크랭크와 캐롯을 투나와 아리에테가 반겼다.
“좀 느, 늦었네?”
“그렇게 됐다.”
“하지만 재미있었어!”
“그래, 좋은 만남도 있었다. 토르페도라고 했었지. 멋진 몸을 한 친구였어.”
앞치마를 한 아리에테가 물었다.
“저녁은?”
“먹었다. 캐롯?”
샤를과 로테에게 외출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어대던 캐롯이 고개를 돌리자 크랭크가 팔을 걷어붙였다.
“시작하자.”
“그래! 이제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거네!”
“몇 번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이번에도 걱정 말도록 해.”
입고 있던 아동복을 훌훌 벗어던진 캐롯은 즐겁게 웃었다.
“당연하지! 넌 내 주인님이니까. 나는 널 믿어.”
“작업대에 누워서 동력을 꺼. 다시 깨어났을 때는 수리가 끝나 있을 거다.”
“옙!”
경비대원들처럼 경례를 붙인 알몸의 소녀가 작업대에 기어 올라가 눕더니 눈을 감고 멈춰버렸다.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던 투나가 후다닥 달려가 캐롯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저, 정말 오토마톤이었어?”
“그럼 지금까지 뭐라고 생각했지?”
“크랭크.”
크랭크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아리에테가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 부탁한다. 캐롯이 없으면 나는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런 몸이 되어버렸다.”
“걱정마라. 내 오토마톤이다. 내가 고쳐내겠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크랭크는 메스를 들고 캐롯의 소프트 스킨을 가르기 시작했다.
“이 붉은 애, 액체는 뭐야?”
“피다.”
“힉?! 피라고?”
쫘아악···!
캐롯의 몸에서 피부를 모두 벗겨내고 가발도 떼어내자 조그만 소녀형 오토마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작업대 건너편의 통로에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아리에테, 샤를, 로테가 진지한 시선으로 작업을 바라보았다.
떼어낸 캐롯의 소프트 스킨을 들어보던 투나가 물었다.
“소, 소프트 스킨이라고 하지만, 이, 이거 사, 사람 피부 아냐?”
“따지고 보면 맞을 지도 몰라. 그건 내 피부를 기본으로 배양한 거니까.”
“힉! 어, 어떻게?!”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건 마녀 고르곤의 영역이거든, 나는 배양된 피부를 성형해서 캐롯에게 입히는 것 까지만 했지.”
투나의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서쪽의 마녀 고르곤!? 그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연금술사!? 오우워오오오!”
“맞다. 유명한 사람이지. 지금은 아르곤 근교의 숲에 조용히 살고 있다.”
투나는 당장이라도 크랭크에게 고르곤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일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피, 피부 조직은 어, 어떻게 하지?”
“거기 유리병에 담아줘. 가져가서 재 배양 할 거다.”
“고, 고르곤의 거처에서 가, 가능하거야?”
“그래. 장비가 거기에 있다.”
장갑을 벗은 크랭크는 물수건으로 캐롯의 몸을 깨끗이 닦아냈다. 그리고 하얀 천을 가져와 그 작은 몸을 덮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캐롯의 몸은 꽤 신경을 써야해.”
“왜?”
“저 작은 몸 안에 보통 오토마톤의 1.5배 쯤 되는 인공 근육과 인대가 들어가 있다. 좀 쉬었다가 아침부터 다시 작업 할 거야.”
캐롯의 얼굴 피부가 들어있는 유리병을 들여다보던 투나가 고개를 들었다.
“고, 고르곤에 대해서 알려줘.”
잠시 뜸을 들이던 크랭크는 결국 입을 열었다.
“서쪽의 마녀 고르곤, 3년 전쯤 동료들과 토벌 하러 갔다가 역습을 당해 저주를 받고 사로잡힌 상태로 노역을 당했다. 그 마녀는 마치 너 같았다.”
눈을 크게 뜬 투나가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나, 나 같았다고?”
“그래, 연금술이나 마법 말고는 세탁, 청소, 요리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으엥···?”
진지하게 듣고 있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리고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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