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49화 (49/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남부 출장 준비! 49

“드디어 완성했다···.”

한 숨이 섞인 목소리로 크랭크가 작업대에서 허리를 폈다. 약초더미를 한 아름 들고 가던 투나가 크랭크의 어깨너머로 얼굴을 들이민다.

“뭐, 뭐야?”

지이잉···!

크랭크가 앉은 작업대 위에는 서로 연결된 두 개의 마력엔진이 있고, 붉은 마력석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 마력엔진? 두 개?”

“하드스킨 오토마톤의 4연결 마력엔진을 참고해서 만들어보았다. 이게 잘 안 되서 애먹었는데 숨겨진 꼼수가 있더군. 그걸 알아내는 게 힘들었어.”

“오오, 두, 두 개면 뭐가 좋은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던 크랭크가 고개를 돌린다.

“출력이 2배로 오르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면 2.5배까지 상승 할지도 모른다.”

“오오! 대, 대단한데?”

“좀 더 칭찬해라. 힘들었다.”

히히 웃으며 손뼉을 쳐주던 투나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자, 잠깐만, 추, 출력이 2배로 오, 오르면, 부담도 2배가 되는 거 아냐?”

크랭크의 어깨가 좀 쳐졌다.

“실제로 운영해보아야 알 테지만 아마 그렇게 될 거다.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지.”

“비켜비켜! 좁은데 길막 하지마!”

빨래더미를 안아든 캐롯이 나타났다.

“놀기만 하는데 왜 이렇게 빨랫감이 쏟아지는 거야?”

“놀기만 하기 때문이다. 작업복은 항상 더러워지지.”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작업복만 그런 게 아냐. 아리에테의 빨래도 장난이 아니게 많다고. 속옷뿐이지만,”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공방 앞의 공터에서 칼춤을 추고 있는 아리에테가 있었다.

몸의 사용법이 점차 익숙해지자 아리에테는 크랭크의 잡동사니에서 눈여겨 봐두었던 검을 얻어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방구석에서 앉아서 세상을 부정하는 것보다야 훨씬 좋지 않냐. 건강에도 좋다. 팔다리가 없는 아리에테는 다른 부분을 많이 움직여서 대사량을 올려야 해.”

“확실히 가족이 늘어나니까 빨랫감도 장난이 아니야.”

테이블에 빨랫감을 던져 올린 캐롯이 그 앞에 앉아서 옷가지를 개기 시작했다. 크랭크는 어깨를 좀 매만지더니 말했다.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사야할 때가 온 것 같다.”

“오오! 세탁기?! 세탁기 사는 거야!?”

캐롯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투나가 놀라워했다.

“세, 세탁기? 그게 뭐야? 빠, 빨래하는 기계야?”

캐롯에게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투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구석에서 연구만 하면 이렇게 된다.”

“나쁜 건 아니지. 그리고 그거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투나에게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말했다.

“네 말대로 빨래하는 기계다. 원리 자체는 단순한 거다. 내일 사러가자. 나는 좀 자야겠···.”

“누가 왔다.”

땀에 젖은 아리에테가 공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크랭크는 띵한 머리 때문에 투구를 잡으며 물었다.

“누구?”

“모르겠다. 처음 보는 여자들이었는데, 수가 많았다.”

“응?”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가 부른다.

“안에 계세요?! 크랭크! 캐롯!”

“예! 나가요!”

캐롯이 후다닥 달려 나가자 공방 앞의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놀라운 건 전부 여성뿐이라는 것이다.

“으엉? 이게 무슨 일이야?”

“아, 미, 미안.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멜리사!”

아기를 안아든 멜리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내 머리카락 지원자들이라고?! 이 사람들 전부?! 우와오아아아아!”

멜리사가 말했다.

“나는 주변에 알아보려고 말했을 뿐인데. 그게 소문으로 퍼져서···.”

“그러게 나한테 먼저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팔짱을 한 플루이드도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크게 뜬 캐롯이 달려왔다.

“오! 플루이드! 너 결혼한다면서!”

“어, 응. 그, 그렇게 됐어.”

“상대는?”

크랭크도 나와서 물었다. 급격하게 부끄럼을 타기 시작한 플루이드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제, 제이크야···!”

“으하하하! 축하해! 드디어 플루이드가 시집가는 구나!”

크랭크도 팔짱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한다. 언제지? 꼭 갈게.”

“혼인신고만 할 거라서 안와도 되는데···.”

크랭크의 앞으로 같은 모양으로 팔짱을 낀 캐롯이 끼어들었다.

“우린 네 인생 최고의 날을 함께 축복하고 싶을 뿐이야! 언제야?”

고마워서 울 것 같은 얼굴이 된 플루이드가 웃는다.

“다음 주야. 다음 주 월요일.”

“응? 다음 달이라고 하지 않았어?”

“앞당겼어. 겨울이 오기 전에 이사하려고···.”

캐롯이 방긋 웃는다. 그러다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맞아. 동생들은?”

“응, 같이 살 거야. 그래도 된데. 애들도 그 사람 좋아하고.”

“와, 제이크 사람 좋네. 하긴 애들을 어디 보낼 수도 없을 테니까. 맞다, 플루이드?”

플루이드가 고개를 들자 잔인한 표정으로 이빨을 드러낸 캐롯과 그 뒤로 터질 것 같은 팔뚝을 자랑하는 크랭크가 섰다.

“그 자식이 널 속이거나 울리면 어디가지 말고 우릴 먼저 찾아와야해. 알았어?”

“···산채로 가죽을 벗겨서 태운 다음 십자로에 그 재를 뿌리겠다.”

눈을 동그랗게 뜬 플루이드가 곧 웃어버렸다.

“고마워. 생각해줘서.”

“그래,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어쩌지?”

공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요리할 때 쓰는 발판을 가져온 캐롯이 그 위에 올라서서 외쳤다.

“이봐요들!”

족히 30명은 될 것 같은 여자들이 고개를 돌린다.

“오, 캐롯.”

“캐롯이다.”

“생각보다 엄청 작네?”

“와, 귀엽다. 우리 여동생만한 걸?”

손나팔을 한 캐롯이 외쳤다.

“아니! 나는 1명분만 있으면 되는데! 다 이렇게 찾아오면! 너무 고맙잖아!”

다들 흐뭇하게 웃는다. 누군가가 외쳤다.

“네가 이 중에서 1명을 골라! 우린 그래도 괜찮아!”

“맞아!”

캐롯이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좀 그런데. 인간을 고르라니, 오토마톤인 내가?”

“그럼 제비뽑기라도 할까?”

크랭크의 제안을 모든 여자들이 수긍했다.

여자들이 한 곳에 잔뜩 모여들자 소문을 들은 구경꾼들도 찾아왔다. 공방 앞의 공터는 순식간에 비좁아질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급기야 주변 가게에서 맥주와 간식거리를 가져다 팔기 시작했다.

“맥주! 맥주 사시오!”

“안주 있어요! 과자 있어요!”

바깥의 왁자지껄한 인파를 피해 공방 가장 깊숙한 보일러 곁으로 와서 앉은 투나와 아리에테는 이 소란이 달갑지 않았다.

“어, 으, 사, 사람들이 너, 너무 많다. 무, 무서워.”

“걱정마라 우리가 널 지켜주겠다.”

투나의 손을 꼭 잡은 아리에테가 부들부들 떠는 투나를 보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도 언젠가 저들의 틈에 끼어 보도록 하자.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멍한 눈으로 아리에테를 보던 투나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제비뽑기를 준비하는 동안 몰려든 구경꾼들 중에서도 지원자가 나와서 50여명으로 늘어났다.

“갑자기 이 무슨 마을 축제 분위기야?”

“들었어? 크랭크의 오토마톤에게 머리카락을 주면 남자친구가 생긴데! 지금 한데!”

“그리고 지금 하는 건 무려 캐롯의 머리카락으로 쓴데!”

“뭐라고오옷!”

“무슨 일이지?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지?”

호위 경비병들을 대동하고 회의 차 시청에 다녀오던 제1경비대장이 골목 안의 소란을 목격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앞서 가서 상황을 살펴본 경비병이 돌아왔다.

“모험가 크랭크의 전투용 오토마톤 캐롯의 방열가발을 새로 제작하려고 지원자를 모집했다고 합니다.”

“그것과 이 인파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

“이 사람들 전부 그 지원자들이랍니다.”

“뭐?”

아르곤 제1경비대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토마톤의 가발 따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그게, 당사자가 유명한 오토마톤이기도 하고, 들은 바로는 묘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뭐지?”

별것 아니라는 듯 내버려두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제1경비대장의 등 뒤로 경비병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꽂힌다.

“크랭크의 오토마톤에게 머리카락을 제공하면 남자친구가 생긴다고···.”

“헉?!”

듣고 있던 여성 경비대원이 얼굴에 화색을 띄면서 외쳤다.

“대장님! 기회예요!”

“에잇! 시끄럽다! 그렇게 할일이 없나! 어서 가서 오늘 시청의 회의내용 검토해야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제1경비대장 보좌담당관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보좌담당관 명령이다. 제1경비대장을 포박하라.”

“으악! 이거 놔라! 보좌담당관! 이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좌우에 선 경비대원들에게 붙들러 가던 제1경비대장이 왁왁 거리자 앞장서서 걷던 보좌담당관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씩씩하게 외쳤다.

“나는 보좌담당관! 경비대장을 위해서 모든 업무의 대소사를 보좌하고 책임집니다! 물론 당신의 인생까지도!”

“이, 이 것 놔라! 나는 제1경비대장이다!”

좌우의 근육질 경비대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창을 가더라도 경비대장님을 위해서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셀린 제1경비대장, 20년 전 아르곤이 방주도시로 개장을 시작했을 때 전임자의 불의의 사고로 어쩔 수 없이 약관의 나이로 임시 경비대장직을 수행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나, 나는 그냥 혼자 살 거야 다 늙어서 무슨-!”

셀린이 울상을 지었지만 보좌담당관은 확고했다.

“아 정말! 당장 시집가라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냥 재미라고요! 생떼 부리지 마세요!”

“생떼는 네가 부리고 있거든?!”

결국 행사장? 으로 끌려온 제1경비대장을 보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갑작스러운 경비대의 출현에 사람들이 긴장했다.

“아, 놀라지 마세요. 우리도 참가자에요.”

“겨, 경비대에서도요?”

“보고 놀라도록 하세요. 제1경비대장님을 모셔왔습니다!”

놀라움이 가득한 사람들의 눈에 작은 키에 경비대 제복을 입고 붉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여자가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세, 셀린 제1경비대장님이 오셨어!”

“오우 세상에!”

“이건 양보해야해!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그래 이건 국룰이야!”

셀린 경비대장이 울상을 지으며 폭발했다.

“필요 없다! 이것들아!”

크랭크와 캐롯은 제비뽑기 만드는 30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 앞에 상자를 들고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네 인기가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인기는 무슨, 그냥 재미있어 보이니까 몰려온 거지. 겨울 직전에 할 일은 다했고 딱 심심할 참이잖아. 마을에 축제 같은 것도 별로 없으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크랭크가 대답했다.

“이 건으로 길드 마스터와 영주님께 건의를 좀 드려봐야겠다. 이제 좀 자리가 잡힌 것 같은데 축제 몇 개 만들어도 되지 않겠냐고 말이야.”

“그거 좋네. 올해의 오토마톤에게 머리카락을 선물하는! 뭐 그런 거 어때? 지금처럼.”

“나쁘지 않네.”

발판에 올라선 캐롯이 손나팔을 하고 외쳤다.

“자! 준비 끝났어! 많이 기다렸지!? 지원자들은 한 줄로 서! 그리고 머리카락은 1명 분 더 뽑을 거야! 안쪽에 한 대 더 만들고 있거든? 그 얘에게 씌울 거야!”

“오오!”

“이제 시작이냐!”

캐롯이 덧붙였다.

“뽑으면 바로 펴보지 말고 다 함께 펼쳐!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해야해! 알았지들!”

제비뽑기가 시작되었다. 참가자는 전원 여성, 그리고 모두 긴 머리카락의 소유자들이었다.

사람이 많아서 발권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 받았지?!”

“예에에!”

눈을 찡긋 윙크한 캐롯이 외쳤다.

“그럼 펼쳐! 누가 캐롯의 머리카락이 되는지 보자구!”

일순간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탄식이 사람들을 채웠다. 그도 그럴 것이. 당첨은 단 2장뿐이기 때문이다.

“으허억!”

“저, 저걸 봐!”

사람들이 고개를 돌린 곳에 입을 꾹 다문 제1경비대장이 부들부들 떨면서 추첨권을 들어올렸다.

보고 있던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까지 감격의 소리를 질렀다. 그 중에 캐롯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으앗싸으아! 빨강이구나! 하하하하!”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