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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48화 (48/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남부 출장 준비! 48

이튿날,

캐롯에게 안겨 있으면 묘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리에테가 눈을 떴을 때, 그녀의 곁에 캐롯은 없었다. 그리고 팔 다리도 없었다.

“···허윽!”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한 아리에테였지만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할 시온이 보이지 않는다.

“시, 시온? 시온!”

커튼 너머로 시온의 목소리가 들린다.

“예.”

“거, 거기 있나?”

“어? 일어났어?”

촥-!

캐롯이 커튼을 확 걷어내자 속옷만 입은 아리에테의 시선이 발견한 것은 작업대에 매달린 시온과 그 주변을 서성이는 크랭크와 투나, 캐롯이었다.

“쿠션을 빼고, 이건 그냥 부으면 되나?”

“어, 응, 식으면, 구, 굳어서 형태를 자, 잡아버리니까. 야, 약간 저, 점성을 가지기 시작할 때 부, 부어야 해.”

냄비를 들고 좀 흔들던 크랭크는 내용물에 뭔가 응어리가 지기 시작하자 그걸 시온의 다리와 팔에 부어넣었다.

그리고 남는 것은 내장재를 제거한 가죽 장갑에 부어넣었다.

“캐롯 빨리 껴.”

“따뜻해! 그리고 이상해! 송아지 빼내려고 소 엉덩이에 팔 집어넣었을 때 같아! 으익···!”

장갑에 조그만 손을 쑤셔 넣은 캐롯이 호들갑을 떤다. 잠시 기다리자 캐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벌써 굳었어?”

“금방 굳는 군?”

“식으면 바로 굳어. 한번 모양이 잡히면 녹이기 전까지 형태를 유지하지.”

“참고로 어떻게 녹이는데?”

입을 다물고 뭔가 생각하는 투나를 보고 크랭크가 투구를 들이 밀었다.

“뭐든 들어 줄 테니 가르쳐다오. 이건 중요한 거야.”

“히, 히히. 한계 이상의 부하를 받거나, 약품으로 녹여야해. 감초 삶은 물을 식혔다가 석회를 뿌리고···.”

“용해액 레시피는 좀 있다가 듣자.”

크랭크는 시온을 매달아 놓은 줄을 풀어서 바닥에 내렸다.

“어떠냐?”

“현재로선 그다지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좀 걸어봐.”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기절할 것 같은 기괴한 모양의 외골격 오토마톤이 혼자서 공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크랭크의 앞으로 다가왔다.

“팔과 다리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가, 가동부에 완충제가 드, 들어가서 그럴 거야. 이, 익숙해지면 괘, 괜찮을 거야. 이, 이제 아리에테를 도, 도와줘.”

몸을 돌린 시온이 걸어가더니 침대에 일어나 앉은 아리에테를 들어 자신의 몸 안에 집어넣었다.

고정골격을 감싸고 감각 티아라와 방열 리본을 착용한 아리에테는 몸을 좀 움직여보더니 침대 근처의 옷걸이에서 로브를 들었다.

“잠깐 아리에테. 그거 입지 말고 여기 좀 돌아다녀봐라. 이상한 게 없는지 살펴보고 싶다.”

“음.”

시온이 했던 것처럼 속옷 바람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심각하게 쳐다보던 크랭크가 물었다.

“어때?”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크랭크는 그녀에게 뜀뛰기를 시켜보았다.

다리를 구부렸다가 힘껏 펴자 아리에테가 수직 상승했다.

꽝!

쿵···!

“크으어어어···!”

너무 높이 뛰어올라 천장에 머리를 박은 아리에테가 머리를 감싸 쥐고 쭈그려 앉는다. 팔짱을 한 크랭크를 투나와 캐롯이 올려다보자 크랭크가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가벼운 뜀뛰기를 원했는데, 그나저나 제자리 뛰기가 굉장히 높군? 인간 이상인데?”

“아니! 상처를 보라고 상처를! 사람이 먼저 아냐?”

캐롯이 한 소리 했지만 크랭크는 듣지 않았다. 쭈그려 앉은 아리에테를 살펴보던 크랭크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자세도 자연스럽군. 좀 더 연습하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겠다. 머리는 괜찮나? 시온의 프레임은 멀쩡하다.”

“아파, 혹이 났다.”

힐끔 정수리를 내려다보자 정말 금발 사이로 불룩한 뭔가가 솟아 올라있다. 그걸 본 크랭크가 투구를 돌리더니 큭큭 웃기 시작한다.

그가 웃는 걸 처음 본 아리에테와 투나가 어이없어하자 한심한 얼굴이 된 캐롯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 신경 쓰지 마. 뭔가 웃는 코드가 일반인하고 좀 다른 것 같더라고.”

머리를 매만지던 아리에테가 깜짝 놀란 듯이 다리를 만졌다.

“헛!? 아프지 않아! 충격을 받으면 아팠는데!”

쾅-!

투나가 말릴 새도 없이 아리에테는 다시 뛰어올랐고, 또 머리를 쳐 박고 떨어져서는 이제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크우으아아아···!”

“프흐끄윽큭큭!”

괴로워하는 아리에테의 옆에 무릎을 꿇은 크랭크는 두 손으로 투구를 가리고 웃음을 멈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캐롯은 그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대환장 파티네. 이 바보들은 내버려 두고 이거나 좀 실험해 볼까.”

공방 밖으로 나간 캐롯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포장된 콘크리트 바닥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빠각-!

주먹을 들자 돌가루가 떨어지고 바닥에 쇠망치로 후려친 자국이 남았다. 장갑에서 손을 빼내 살펴봤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워호오오올-!?”

“어, 어때?”

가까이 다가온 투나의 말이었다.

“이거 좋아! 장비 값 굳히겠는데?”

“크, 크랭크에게 들었어. 너, 그 손, 소, 소프트 스킨도 보, 보호 할 수 있을 거야.”

캐롯이 넋 나간 얼굴로 투나를 보았다.

“정말로? 손에 소프트스킨이 멀쩡해진다고?”

“응. 이, 이론상으로는.”

와락-!

투나의 허리를 끌어안은 캐롯은 그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마구 비비며 외쳤다.

“우와오오옹! 투나! 고마워! 뭐 먹고 싶어! 나는 앞으로 네 전속 요리사가 되어 줄게! 말만 해!”

“흐, 흐흐흐.”

별 것 아닌 재주로 모두에게 감사와 칭찬을 받은 투나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너무도 기뻤다. 속옷을 약간 지릴 정도로,

“아침이나 차릴까. 뭐 먹을래?”

“어, 어제 먹다 남은 비, 비프스튜에 빵! 우유!”

“투나는 비프스튜 좋아하는 구나. 그럼 그걸 배워야겠어.”

아침을 먹은 후 크랭크는 다시 작업장에서 뭔가를 만들었고 캐롯은 투나, 아리에테와 함께 연구자재를 사러 시장에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공방의 가장 안쪽 보일러에 가까운 곳에 투나의 간이연구실이 만들어졌다.

집기를 옮겨주고 선반과 조명의 설치를 도와준 크랭크가 슬쩍 투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뭘 하든 상관없지만 인간의 길을 벗어나지 마라. 내 손으로 네 목을 치게 하지 마라.”

움찔한 투나였지만 이내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걱정 마. 나는,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어.”

크랭크가 투나를 보고 몸을 돌렸다.

“더듬지 않으니 듣기 좋은 목소리구나.”

“어, 어어? 저, 정말?”

투나가 으히히 웃으며 크랭크의 뒤를 쫓는다. 그걸 돌아본 크랭크가 그녀의 자세를 교정했다.

“허리를 그렇게 구부정하게 하고 다니지 마라. 뼈에 좋지 않다. 이렇게 펴라. 아리에테의 자세를 본 받아라.”

뚜두둑···!

“흐으억···! 허, 허리에서 부, 부러지는 소리가!”

“너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때 아리에테가 큼직한 무쇠 솥을 들고 들어왔다. 크랭크가 고개를 돌렸다.

“아리에테 괜찮나?”

쿵···!

“아아. 괜찮다. 못 들 것 같았는데 시온이 괜찮다고 해서 들어보았다. 정말 되는 군. 우리 힘은 어느 정도지? 어디까지 할 수 있지?”

아리에테가 들고 온 커다란 무쇠 솥을 크랭크가 들어 보더니 말했다.

“이 무게를 그토록 가볍게 들다니, 힘을 받쳐주는 프레임이 외골격으로 간소화 되어 있어서 일반 오토마톤과 인간의 중간쯤일 거다. 어디 팔씨름이라도 한번 해볼까?”

나무판자를 가져온 크랭크가 그것을 무쇠 솥 위에 올리고 팔을 내민다. 아리에테는 사양하려 했지만 시온은 해보고 싶어 했다.

“제 현재 성능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을 보조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걱정마라, 부러지면 다시 붙여 줄 테니.”

아리에테가 손을 내밀어 크랭크의 커다란 손을 잡았다. 투나가 심판이 되었다.

“시작-!”

흡!

크랭크와 아리에테가 용을 쓰기 시작했다. 팔과 어깨에 직접적인 힘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시온의 가동 골격들이 강하게 아리에테의 몸을 옥죄었다.

시온이 출력의 내기 위해서 그녀의 몸을 서브 프레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그으으윽···!”

점점 크랭크의 팔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급기야 혈관이 솟아오른다.

“그만···!”

팔씨름은 시온의 승리로 끝났다. 크랭크가 팔과 어깨를 매만지며 한 숨을 쉬었다.

“후우···! 대단하군. 하지만 역시 일반 오토마톤 보다는 약한 것이 사실이다. 기본 형태였다면 나는 날아갔을 거다.”

“허억허억···!”

아리에테가 숨을 몰아쉰다. 그녀의 몸을 옥죄었던 가동 골격들은 기존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시온, 네가 최대출력을 내면 네 안의 이 여자는 허리가 부러진다. 그 점 주의하도록. 이 정도가 현재 너희들의 최대 출력이다. 오크 정도는 간단히 때려잡을 수 있겠어.”

“알겠습니다.”

크랭크가 아리에테를 보았다.

“팔과 다리의 접촉부는 어떻지? 아픈가?”

“아니? 전혀 아프지 않다.”

“부하를 좀 더 줘보자. 점심 먹고 캐롯과 함께 성벽을 한 바퀴 돌고 와봐.”

아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후의 산책을 나선 캐롯과 아리에테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이 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 시장에 들려 비프스튜 재료를 사오면서 둘은 이야기를 나눴다.

“방주 도시 아르곤 관광은 어땠어?”

“아주 흥미로웠다.”

“다리는 이제 안 아파?”

“전혀 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아무렇지 않다. 놀랍군. 크랭크와 투나 덕분이다.”

“다행이네.”

그러다가 아리에테가 멈춰 섰다. 그녀는 잠시 대장간 앞의 좌판에 늘어져 있는 번쩍이는 롱소드를 황홀한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캐롯의 부름에 후다닥 달렸다.

“어?”

“왜 그래?”

“달렸어!”

“응? 달렸어. 그래서?”

“아니 달렸다고! 나는 달릴 수 있게 되었어!”

말을 마친 아리에테는 로브가 방해가 될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캐롯이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될 정도로,

“그래서 잡아오느라 늦었어. 놔뒀으면 밤새도록 뛰어 다녔을 거야.”

아리에테를 작업대에 앉혀 놓은 다음 팔짱을 하고 캐롯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크랭크가 물었다.

“다리는?”

“괜찮아. 오히려 너무 좋았어.”

“놀랍군, 벌써 뛰게 되다니 근육의 움직임을 시온이 읽고 반응하는 것인가. 다리는? 아프지 않나?”

“전혀, 오히려 좀 더 달려보고 싶다.”

가만히 아리에테를 보던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저녁 먹고 소화 시킬 겸 한 바퀴 뛰어보고 오도록.”

“크랭크?”

“가능하다면 이것저것 다 시켜보고 싶다. 다들, 어디서 오토마톤과 인간의 융합체라는 걸 본 적이 있나?”

투나와 캐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가능한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로브는 뛰기 힘들 테니 세탁해 둔 투나의 원피스를 이용하자.”

그래서 식후 아리에테는 옷을 갈아입고 뛰기 시작했다.

탁탁탁-!

아리에테가 가볍게 달리기 시작하자 풍경이 뒤로 쑥쑥 지나간다. 가슴이 뚫리는 기분에 아리에테는 그만 울면서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 달리고 있어! 달리고 있어! 고마워! 시온! 고마워! 크랭크! 투나! 캐롯!”

“날 불렀어?!”

아리에테의 곁으로 캐롯이 나타났다.

“엄청나네! 도저히 인간이 뛰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야!”

“그런가!?”

“그래! 하하하! 오랜만이라서 좋다! 저기까지 경주야! 달려!”

파바바바바!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성벽을 따라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캐롯이 외쳤다.

“안 돼! 여기서 멈춰야해! 아리에테! 시온! 서라고!”

“왜지?! 좀 더 달리고 싶다!”

“안 돼! 이 바보들아!”

캐롯의 경고에도 불구, 아리에테는 거주구로 들어가서 뛰기 시작했다. 발판이 성치 않으면 벽과 건물도 타고 뛰었다.

“거기! 정지 하십시오!”

“거주구역에서의 고성방가와 소란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순찰 중이던 경비용 오토마톤이 순식간에 따라붙었다. 아리에테와 시온은 순간 호승심이 생겨났다.

따돌려보고 싶다!

따돌려봅시다.

투바바바바!

경비용 오토마톤 231호와 232호가 전력으로 질주하는 아리에테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아리에테와 캐롯을 밤 산책 보내고 2시간 후, 크랭크는 별안간 찾아온 경비대의 연락을 받고 3번가 거주구역 경비초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리에테와 캐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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