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47화 (47/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남부 출장 준비! 47

“우왁! 비 온다!”

크랭크의 공방이 부산해졌다. 작업실에서 오토마톤을 손보고 있던 크랭크가 후다닥 뛰더니 보일러 옆의 저수탱크 배관의 밸브를 돌렸다.

쏴아아아!

캐롯은 투나와 함께 빨래를 걷어왔다. 아직 몸을 움직이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리에테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그들이 가져온 세탁물을 받았다.

캐롯이 몸을 털면서 말했다.

“우와! 오랜만이네! 겨울비인가?”

크랭크를 보고 캐롯이 물었다.

“작년처럼 올 겨울에도 이리저리 일하러 다닐 거야?”

“당연하지. 그걸 위해서 지금 재정비를 해야 해. 너 고치고, 제작 중인 것들도 마저 완성하고. 굉장히 바빠.”

“와, 돈 엄청 깨지겠는데?”

“걱정 마, 저축은 충분해.”

“오, 오오! 도, 돈도 많아?”

투나가 질문하자 크랭크가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 금덩이의 출처를 알려주면 더욱 풍족한 겨울을 보장하겠다.”

“아, 아니, 저, 나, 이, 이대로도 좋아.”

몸을 돌린 크랭크는 너무 무거워서 작업대에 올리지 못하고 바닥에 깔아놓은 하드스킨 오토마톤에게 다가갔다.

“그나저나 놀랍군. 이 녀석 마력엔진에 마력석 4개가 병렬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 출력을 내고도 일반 오토마톤 수준의 가동시간을 확보 하는 거로군.”

“그러네. 하드스킨 오토마톤의 내부 구조는 처음 봐.”

“나, 나는 잘 몰라서 그, 그러는데, 오토마톤은 마력석이 몇 개 들어가?”

캐롯이 테이블 앞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아리에테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1개 들어가는데, 각각 초록색, 파란색, 붉은색이 있지. 전투용으로 쓰려면 최소 파란색이어야 해.”

“오,오오. 너, 너는?”

캐롯이 베시시 웃는다.

“가발 달린 애들은 대부분 붉은색이야. 전투를 시작하면 엄청나게 뜨거워지거든?”

“오, 오오-!”

보고 있던 크랭크가 책장을 가리켰다.

“오토마톤 개론을 설명한 책이 있다. 보도록 해. 기초 상식 정도는 쌓을 수 있어.”

“어, 어디?”

투나가 책장으로 걸어가고 자리를 교환 하듯 재활치료 겸 공방의 소일거리를 전담하게 된 아리에테가 빨래의 정리를 끝내고 다가왔다.

“나, 저, 그, 부탁이 하나 있다.”

크랭크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뭐지?”

“저, 저기 거, 검을···.”

“으우오아아아! 다 젖었어! 계세요! 의뢰인님!”

캐롯이 고개를 돌린다.

“엇! 웬 손님이지?”

도도도 달려간 캐롯이 문 앞에 선 사람들을 보았다. 비타와 보리스였다.

“어?! 캐롯 선생님!”

“어? 비타! 보리스! 무슨 일이야? 다 젖었네. 일단 들어와!”

캐롯이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우와···! 오토마톤 공장? 공방?”

“공방이야. 우리 집.”

짐을 내려놓은 보리스와 비타가 공방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캐롯이 방문 목적을 재차 질문하자 화들짝 놀란 비타가 양동이와 가죽 자루를 가리키며 의뢰서를 내밀었다.

“길드에 의뢰하신 퀘스트를 완수해서요. 의뢰인께서 배달까지 요청하셔서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이거 의뢰하신 분이 크랭크 씨에요?”

“우오와아아아아! 왔어! 도, 도착했어!”

새하얀 얼굴에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여자가 달려왔다. 그러다가 자기 머리카락을 밝고 넘어져버렸다.

“오우야코-!”

그 꼴을 보던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엎드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투나를 일으켜 세워 자기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걸어가 인사를 했다.

“비도 오는데 고생이 많습니다. 물건을 확인 해보고 싶군요.”

“예! 여기 보세요!”

비타가 양동이를 가리켰다. 파란색 젤리 같은 것이 고여 있었는데, 이마를 어루만지며 나타난 투나가 그걸 내려다보며 으히히히 웃고 있다.

“멋져, 귀여운 애들이네. 으히흐흐흐흐-!”

“약초도 확인해라.”

“어, 어어. 음! 이, 이것도 양질이야. 조, 좋아! 다 마음에 들어!”

투구를 끄덕인 크랭크는 의뢰비 지불했다.

“그리고 이건 운송료 입니다. 가져다주어서 고맙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쫄딱 젖은 두 사람을 보고 크랭크가 고개를 돌렸다.

“아리에테.”

“음.”

“뜨거운 차를 준비해줘.”

“알았다.”

말을 하려다가 막혀서 좀 서운했던 아리에테지만 재활은 중요했기 때문에 차를 끓이기 위해서 이동했다. 그걸 보고 있던 비타가 눈을 반짝였다.

“와, 예쁜 사람···.”

“미인이야? 가슴은 확실히 큰데, 인간들의 미적 기준은 모르겠네.”

캐롯이 건네주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던 보리스가 말했다.

“호랑이 선생님은 여전하시군.”

“하하! 그거 오랜만에 듣네!”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그들은 캐롯의 마력화로 사용법에서 부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크랭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놀라워했다.

“벌써 파티 홈을 마련했다고요? 대단하군요.”

“예! 월세지만!”

돈을 받아서 활기찬 비타의 말에 크랭크도 웃었다. 공방의 잡동사니를 구경하던 보리스가 물었다.

“여기는요?”

“공방 겸 자택입니다.”

“와···!”

비타가 입을 벌리며 부러운 눈을 하자 듣고 있던 캐롯이 끼어들었다.

“이 공방을 갖는데 크랭크는 10년 걸렸어. 너희들은 이제 시작이잖아?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듣기 좋네.”

“맞다! 여기 굉장히 따뜻한데 보일러 뭘 돌리세요?”

“기성품 마력 보일러입니다. 약간 개조 했지만요.”

“와. 저희들도 이제 보일러 들여야 해서요. 안 그러면 올 겨울은 못 버틸 거예요.”

차를 후릅 마시던 보리스가 중얼 거렸다.

“겨울에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긴 하지. 미리 잔뜩 준비해놓으려는 지오 마음도 이해는 가.”

“일해야죠. 왜 막막합니까?”

보리스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크랭크도 그를 보았다.

“예?”

“음?”

뭔가 알아챈 캐롯이 비타를 보았다.

“너희들 겨울에는 그냥 놀 생각이었나봐?”

“어어?! 겨울에도 일해요? 아니! 할 수 있어요?”

크랭크가 팔짱을 꼈다.

“겨울에는 몬스터가 북부의 추위를 피해서 남부로 이동합니다. 남부 도시 모험가 길드에서 파견을 요청하지요. 조만간 길드에 모집 공고가 뜰 것입니다.”

“오오!”

보리스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 뱉었다. 크랭크는 계속 말했다.

“그 외에 도시 외곽에 위치한 영주님의 목장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루 일당이 바로 나오지요.”

“목장요? 소 우유를 짜는 거요?”

비타가 우거지상이 되었다. 보리스가 물었다.

“왜 그래?”

“신전에서 지겹게 갔었거든요. 일반 모험가도 하는 줄은 몰랐어요.”

“목장은 도시의 중요 수입원 중의 하나지요. 우유로 만드는 가공유제품 전반은 엘프들에게, 분뇨로 만드는 퇴비들은 드워프들에게 전량 수출 한다고 들었습니다.”

보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엘프들이 치즈나 버터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드워프가 퇴비를 수입한다는 건 처음 듣네.”

“그걸로 뭘 하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도시에서 자체 소비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사간다고 합니다. 유제품과 퇴비는 항상 모자라서 다른 도시에서도 목장을 운영하는 실정이지요.”

크랭크가 두 사람을 보았다.

“그래서 항상 일은 넘쳐납니다. 과로로 쓰러진 지오에게 그렇게 전해주세요. 모험은 하루에 하나씩만. 그렇지 않으면 몸이 상합니다. 가끔은 농장일도 나가보세요. 여러분의 시각을 넓혀 줄 것입니다.”

“그래! 병아리들은 모험에 목숨 걸지 마. 크랭크 말대로 다른 데도 좀 살펴보면서 살아. 그리고! 내가 책에 그런 것도 다 적어놨는데 끝까지 안 봤지?! 이 불량 감자들!”

비타와 보리스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정말요?!”

“그럼! 말 그대로 초보 모험가 지침서니까! 모험가 생활에 필요한 건 다 적어놨어! 어서들 가! 가서 밥해 먹고 그 책 다볼 때까지 어디 나갈 생각하지 마!”

“옙!”

자리에서 일어난 비타와 보리스가 후다닥 몸을 돌렸다. 우산을 펴들고 나가기 전 보리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고마워, 선생님.”

“바보 지오에게 안부 전해줘! 돈 벌었으니 맛난 것도 좀 사먹고! 요 앞에 빵 집 있으니까 좀 사가든가.”

“빵요? 잘 됐다! 저 빵 좋아해요!”

고개를 끄덕인 보리스와 함께 우산을 쓴 비타가 손을 흔든다.

어두컴컴한 창고 지대를 나서서 번화가로 나가는 길, 정말 큰 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빵집이 있었다.

딸랑···!

“실례합니다.”

“예, 어서 오세요.”

앉아서 책을 보다가 일어난 에밀리아가 가게로 들어선 두 사람을 보면서 방긋 웃었다. 비타가 뭘 먹을까 하고 이리저리 구경하는데 보리스는 석상이 되어서 에밀리아를 보고 있었다.

“뭐해요? 보리스도 감기에요? 얼굴이 빨간데?”

비타의 물음에 확 달아오른 얼굴을 휙 돌린 보리스는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 거렸다.

“···빨리 적당히 골라.”

“헤?”

두 사람을 돌려보내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크랭크는 하드스킨 오토마톤의 기관부를 유심히 살펴보며 손에 든 수첩에 그림과 글을 휘갈겨 대고 있었다.

“크크크크! 크랭크! 크랭크!”

“또 왜?”

크랭크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캐롯의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아악! 하나 뿐인 냄비에다가 뭘 끓인 거야! 이 음침녀야! 이게 뭐야?!”

“도, 도구가 없어서 조, 좀 빌렸어. 내, 냄비랑 솥이 더, 더 필요해. 사,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내, 냄비 하나로 어떻게 살아?”

정신적으로 한 숨을 내쉬며 크랭크가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 냄비를 든 투나와 허리에 양 손을 올린 캐롯이 왁왁 거리고 있다.

“무슨 일이야?”

“얘가 만든 것 좀 봐! 슬라임을 삶아왔어!”

자리에서 일어난 크랭크가 다가가자 투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냄비를 들어보였다. 푸르딩딩한 젤리가 출렁인다.

“이게 뭐지?”

“충격완충제.”

투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냄비를 받아든 크랭크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스, 슬라임의 액체 몸에 광대버섯의 독을 넣고 굳힌 다음 핵이 죽기 전에···.”

“제작 방법은 잠시 후에 듣자. 그래서 이게 뭐라고?”

“충격완충제, 흡수제.”

멍한 머릿속에서 번개가 떨어진 크랭크가 투구를 돌리고 투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슬라임으로? 충격 흡수?”

“바닥에 놓고 때려봐.”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은 크랭크가 심호흡을 하더니 주먹을 뒤로 당기고 정권지르기를 선보였다.

퍽-!

“이럴 수가!”

근육덩어리가 진심으로 놀란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팔짱을 하고 의심스러운 눈을 하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슬라임 처음 때려봐?”

주먹을 매만지며 호들갑을 떨던 크랭크가 캐롯에게 말했다.

“이번엔 네가 때려봐라.”

“냄비 뿌셔질건데?”

“상관없어. 냄비가 부셔지면 주방도구를 세트로 사주마.”

“오호? 그 말 잊지 마.”

강철장갑을 가져온 캐롯이 그걸 손에 끼고 최대 출력으로 냄비의 푸르딩딩을 가격했다.

빡-!

주먹을 내지른 자세로 잠시 있던 캐롯이 하나 남은 눈을 크게 떴다.

“워오우오! 이게 뭐야?! 감촉이 기분 나빠! 냄비는?! 냄비는!?”

“멀쩡해.”

캐롯과 크랭크가 입을 딱 벌리고 팔짱을 하고 고개를 쳐드는 투나를 보았다.

“에, 엣헴.”

“누와아! 이게 뭐야! 투나 이거 뭐야!?”

“충격흡수제···. 이럴 수가! 이걸 슬라임으로 만들 수 있다니.”

냄비를 소중히 안아든 크랭크가 말했다.

“충격을 흡수하는 물질이다. 캐롯의 장갑 안에든 내장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거지.”

“장갑 내장재와 같은 역할이라고?! 그럼 이것도 마법이야? 내장재에 쓰이는 천은 마법으로 물리력을 상쇄시키는 거잖아?!”

투나가 손가락을 든다.

“아, 아냐. 그거랑은 달라. 이, 이건 슬라임의 체액을 바탕으로 가, 가공해서 만든 거야. 점탄성이라는 혀, 현상을 이용한 거지.”

“그럼 이걸 응용하면···!?”

냄비를 캐롯에게 들려준 크랭크가 투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한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투나, 뭐가 갖고 싶지? 뭐든 말만해라.”

냄비를 안아든 캐롯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조용하지만 부드럽게 말했다.

“투나, 오늘 저녁은 뭘 먹을래? 좋아하는 거 있으면 말해보렴.”

둘의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투나는 배를 붙잡고 웃어버렸다. 그러다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 나도 여, 연구자재가 있으면, 조, 좋겠어. 커다란 솥, 냄비, 각종 실험도구에···.”

촤르륵···!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내온 크랭크가 그걸 내밀었다.

“내일은 다 같이 시장으로 가자. 원 하는 건 뭐든 사주마.”

“으, 으헤헤.”

“아가씨, 오늘 저녁은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갓 구운 빵에, 비프스튜, 우유.”

“비프스튜 잘하는 데가 있어! 나 잠깐 시장 좀 보고 올게! 아리에테도 가자!”

우산을 꺼내드는 캐롯을 보고 아리에테가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쓰며 걸어갔다. 그리고 투나가 그런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아, 아리에테.”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리자 투나가 뭔가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이건 널 위해서 만든 거야. 다, 다리, 눌려서 아프지? 이, 이걸 넣으면 훠, 훨씬 과격한 운동도 하, 할 수 있어.”

뒤를 돌아보고 있던 아리에테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곧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성큼성큼 다가온 아리에테는 투나를 덥석 안아버렸다.

“나, 날 위해서! 고마워! 투나!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다! 절대로! 으아아앙!”

“으, 으헙?! 수, 숨 막혀···!”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