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지적호기심! 45
아리에테의 머리 장식을 보고 손가락을 든 캐롯이 크랭크를 보면서 물었다.
“예쁜데? 저건 어디서 났어?”
“진짜 티아라는 비싸더라. 남는 재료로 모양만 비슷하게 흉내 내봤다. 저기 장식들이 오토마톤의 시각, 청각, 후각을 담당하는 감각 기관이다. 시온, 내가 보이나?”
“예, 잘 보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가 아리에테를 보았다.
“아리에테.”
몸을 감싸고 있는 오토마톤을 이리저리 살피며 감격에 겨워하던 아리에테가 고개를 돌렸다.
“네가 명령해라. 말로 하면 알아듣는다. 일단 일어서봐.”
“그, 그래. 시온, 일어나.”
끼이기긱···! 끽···!
“오우오오!”
두 주먹을 쥔 투나가 환호하고 그 옆의 크랭크도 투구 안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새로운 팔과 다리를 얻은 아리에테가 작업대에서 완전히 일어섰다.
오토마톤의 팔과 다리만 남기고 나머지 골격의 연결을 외골격으로 간소화 시킨 다음, 텅 비운 몸통 공간에 아리에테를 집어넣고 남은 팔과 다리를 고정시키면 팔꿈치 아래와 무릎 아래는 오토마톤의 구동부가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최대한 아리에테의 몸에 맞추긴 했지만 외골격 특성상 외관상 드러나는 약간의 이질감은 어쩔 수 없었다.
몸에 금속선이 이리저리 지나다니는 꼴이니까.
“의복 선택에 제한은 따르겠지만 그래도 일상생황에 큰 불편함은 없을 거야.”
“완전 마개조의 끝판왕이네.”
캐롯의 감상이었고, 투나와 크랭크가 웃었다.
“내, 내 바, 방열 대책은 어, 어때?”
투나가 질문하자 시온이 대답했다.
“현재 방열량 12%, 방열 기능 정상 작동 중입니다.”
아리에테의 머리 뒤에는 방열망토를 잘라 만든 푸른색의 리본이 달려 있다. 감각 티아라를 착용 할 때 자연스럽게 머리 뒤에 위치하여 장식과 방열의 두 가지 기능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보고 있던 캐롯이 팔을 들었다.
“뒤에 전신 거울이 있어. 너희들의 모습 한번 봐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몸을 살피던 아리에테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거울의 위치를 파악한 그녀가 말했다.
“시온, 왼쪽으로 돌아줘. 후방 8시 방향에 거울이 있어.”
천천히 다리를 내딛은 아리에테가 허리를 비틀었고, 그 이질감에 반응한 시온이 몸을 돌린다. 둘의 협력으로 뒤로 돌아서는데 성공하자 곧 거울 앞에 그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녀의 새 하얀 몸에 검정색 팔과 다리가,
“다시 붙어 있어. 팔과 다리가···!”
아리에테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지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흐아아앙! 으아앙···! 고마워···! 정말···! 고마워···! 다들 정말 고마워···!”
이번만큼은 다들 흐뭇하게 웃었다.
팔짱을 한 크랭크가 말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제 실험을 시작하자. 캐롯.”
“옙!”
“공방 앞의 마당에서 운동을 좀 시켜봐. 걷기, 달리기, 뛰어오르기, 가능한 전부. 그리고 이상한 점이나 불편한 점이 있으면 전부 알려줘.”
“알았어! 가자! 복합생명체!”
투나가 눈을 크게 떴다.
“복합생명체!”
“어제 읽은 책에 나오던데, 서로 다른 두 생명체가 하나로 이루어진 개념이래. 말에 오른 인간 군인을 뭐라고 하지?”
“기병.”
아리에테가 중얼거렸다. 캐롯이 그녀의 새 손을 붙잡고 걸으며 말한다.
“기병은 인간과 말의 혼합체지. 지금의 너와 같은.”
“나는 오토마톤입니다. 나도 생명체 입니까?”
오토마톤 시온의 목소리가 아리에테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당연하지! 설사 모양새가 좀 달라졌을지언정, 우리는 생명체야. 아는 엘프 여자가 그랬어. 꼭 몸에 피가 흘러야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시온, 우리는 살아있어.”
시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셋은 공방의 공터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투나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했다.
“복합생명체···.”
“뭐해?”
“그, 그곳의 연구 과제 중의 하, 하나였지. 복합생명체. 서로 다른 생명체의 호, 혼합.”
“그래서 그런 괴물들을 만든 것이었나. 하지만 캐롯이 예시로 든 건 그저 공생관계의 개념에 불과해. 지금은 그런 것보다 작업실을 좀 정리하자.”
크랭크가 몸을 돌리자 투나는 총총 뛰어 그의 뒤를 따랐다. 크랭크가 멈춰 서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체를 들키면 넌 죽는다. 이건 확실하다. 캐롯도 몰라. 나와 너만의 비밀이다. 조심하도록 해라.”
“어, 어, 으, 응.”
긴장한 얼굴의 투나였지만 곧 히히 웃는다.
“거, 걱정 마. 나, 나는 바, 바보지만 머, 멍청하지 않아. 지, 진짜로.”
작업실의 정리가 완료 될 즈음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 아리에테를 보고 크랭크가 팔짱을 하며 쳐다본다.
“어떻지?”
“문제없다.”
즉답하는 아리에테를 보던 크랭크가 말을 이었다.
“아리에테, 말을 해야 문제를 개선 할 수 있다. 사양하지 마라. 정말 문제가 없나?”
“···역시 다리가 좀 아프군. 팔은 괜찮다.”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답은 투나가 했다.
“저, 절단면의 뼈, 뼈가 피부를 눌러서 그래, 구, 굳은살이 생겨야 좀 덜 아플 거야.”
“안쪽에 쿠션을 대긴 했는데 별로인가 보군. 다른 걸 알아볼까.”
“그, 그건 내게 괜찮은 새, 생각이 있어.”
피드백을 받은 아리에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온이 말했다.
“오른쪽 무릎, 왼쪽 발목, 왼쪽 팔꿈치에 가동 오차가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손가락 엄지와 중지가 완전히 굽혀지지 않습니다.”
“알았다. 조정 해줄게.”
아리에테가 대답했다.
“움직여보고 문제가 발견되는 대로 보고하겠다.”
“그래, 진짜 수족처럼 움직였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하다. 내 능력으로는 이게 한계였다.”
당황한 아리에테가 목을 내밀고 외쳤다.
“아니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나에게 팔과 다리를 다시 달아줘서 나는 이 은혜를 어떻게, 어, 어떻게···! 가, 갚아야···! 으흐윽! 흐아앙! 고마워···! 저, 정말 고마워···!”
“아! 또 울잖아! 크랭크! 왜 자꾸 울리고 그래!”
“이 여자는 참 눈물이 많군.”
작업실에 아리에테를 앉혀놓고 팔과 다리의 가동오차를 조정하던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아리에테, 오늘부터 네가 매일 해야 할 루틴을 알려주마.”
“그래! 뭘 하면 되지? 뭐든지 하겠다!”
크랭크가 아리에테에게 내린 일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혼자서 시온을 착용할 수 있도록 할 것,
이것은 큰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골격 상태의 시온은 불안정하지만 단독으로도 기동이 가능했고, 착용 순서를 한 번 익힌 후로는 그녀를 들어서 자신의 몸 안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부터가 고역이었는데 시온을 착용한 상태에서 식사하기, 옷 입고 벗기, 화장실 다녀오기, 그 외 기타등등,
“그냥 일상생활 적응 훈련이네.”
“맞다. 행동이 오토마톤을 한 번 거치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연습이 필요할 거야.”
“그래서 이제 저걸 어떻게 할 셈이야?”
잠시 고민하던 크랭크가 낮게 말했다.
“싫든 좋든 같이 지내다 보면 많은 부분이 개선되겠지. 상황을 봐서 내년쯤 개척민 마을 메크로에 정착시킬까 생각하는데.”
“몸이 온전치 않아서 제작자인 네가 옆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누구든지 홀로서기는 필요한 법이야.”
“그냥 저걸 네 아내로 맞이하는 건 어때? 가슴도 크더만?”
치마를 입으려고 씨름하다가 다리가 걸려 철퍼덕 넘어지는 아리에테를 보던 크랭크는 고개를 저었다.
“말투가 일반인처럼 보이진 않았다. 귀족이라면 골치 아파져.”
“그래, 그럼 저 음침녀는 어때?”
캐롯이 가리킨 곳에는 왼손으로 가슴을 받치고 오른손의 엄지손톱을 씹으면서 좌충우돌 아리에테의 몸개그를 지켜보는 투나가 있었다.
팔짱을 낀 크랭크의 투구가 살짝 기운다.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 음침녀가 좋겠지.”
“오홍?”
“하지만 곤경에 처한 상대의 상황을 이용해서 자기 욕구를 채우는 짓은 나로서는 꺼림칙하다.”
“왜? 다들 그렇게 살지 않아?”
옆에서 똑같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캐롯을 내려다보던 크랭크가 대답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윤리의식의 문제야. 네 말대로 보통은 다들 그렇게 살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봐?”
“응, 플루이드가 결혼한다더라고. 멜리사에게 들었어.”
갑작스런 캐롯의 발언을 이해한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제이크 인가?”
“그런 가봐.”
“성벽 밖에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이 험난한 세계의 사람들은 빨리 가정을 가지고 가족을 꾸리는 것이 생활과 안전에 안정을 가져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거다.”
캐롯이 고개를 든다. 크랭크는 캐롯과 눈을 맞췄다.
“하지만 나는 모험가다. 목숨을 걸고 있기 때문에 벌이가 좋아 너나 저런 지적호기심도 채울 수 있지만 반대로 언제든 죽을 수 있단다. 그래서 가정을 가지는 건 기반을 좀 더 다진 후가 되겠지.”
입을 헤 벌리고 크랭크를 올려다보던 캐롯이 과거 그의 말을 되뇌었다.
‘캐롯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평범하게 가정을 이뤘을 겁니다.’
‘캐롯은 나의 최고 걸작.’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짚은 캐롯이 낮게 중얼 거렸다.
“나 뭔가 네 인생에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는데.”
팔짱을 푼 크랭크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선택도 내가 했고, 책임도 내가 질 것이다. 그러니 네가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말을 마치고 옷을 훌훌 벗어던진 크랭크는 검정색 속옷만 하나 입은 채로 공방 앞의 공터에서 팔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가 크랭크의 만행을 발견한 투나가 기겁했다.
“크크크크랭크?!”
“아, 신경 쓰지 마. 저거 운동하는 거야. 한동안 못했거든.”
“어으흐흐흣···! 우, 운동? 나, 여, 옆에서 좀 구, 구, 구경해도 될까? 츄릅···!”
투나가 입가의 침을 닦으며 지나가자 캐롯이 눈을 크게 떴다.
“어이 투나, 너 혹시 저런 마초 근육 덩어리가 취향이야?”
투나가 얼굴을 좀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으, 으응. 크, 크랭크 여, 여친 같은 거 있으려나?”
무표정한 캐롯의 얼굴이 슬그머니 익살맞은 고양이처럼 변했다.
“우와! 크랭크! 들어봐! 들어봐!! 투나가 말이야! 으아하하하!”
“끼이야으아아아아악?! 캐캐캐캐캐캐캐캐롯?!”
몸을 날린 투나가 깡총깡총 뛰어가는 캐롯을 붙잡아 바닥에 나뒹굴었고, 크랭크가 그걸 보고 다시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왜?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냐! 그거마저 해!”
“우우웁!!”
당황한 투나가 캐롯의 입을 막고 소리 쳤다. 그 와중에 옷 입기 연습 중이던 아리에테가 공방 입구에 서 있는 속옷 바람의 2미터짜리 변태 근육 양동이를 발견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으허어억?! 벼,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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