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지적호기심! 44
투구를 좀 긁적이던 크랭크는 설명하는 대신 작업대 위에 올라가 있는 오토마톤의 부품에게 말했다.
“시온.”
“예.”
“헉?! 저, 저 상태로 살아있어?!”
투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크랭크는 완전히 분해되어 있는 오토마톤 시온의 팔을 들어서 작업대 옆의 의자에 앉아있는 아리에테의 팔에 고정시켰다.
신경선과 동력선이 오토마톤에게로 연결된 상태로 팔은 아리에테에게 붙어 있다.
“시온, 오른팔을 접어봐.”
사지절단녀, 아리에테에게 붙어 있는 오토마톤 시온의 오른팔이 접혔다. 크랭크는 이제 아리에테에게 말했다.
“아리에테는 팔을 앞으로 들어. 시온, 팔꿈치 펴.”
아리에테가 팔을 들고 시온이 팔꿈치를 펴자 아리에테는 손을 내민 모양이 되었다. 크랭크는 빵을 그 손에 대며 말했다.
“시온, 손에 빵 있다. 잡아.”
착,
“시온, 다시 팔꿈치 접어. 아리에테는 팔을 내리면서 어깨를 돌려서 손 위치 보정.”
지시대로 팔을 움직이자 빵은 아리에테의 입 앞에 다가왔다. 크랭크가 캐롯과 투나에게 고개를 돌린다.
“이런 식이지.”
“오! 훌륭해! 엇? 아리에테가 울어!”
“응?”
아리에테의 눈으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흐으윽···! 고, 고마워···! 정말 고마워···. 크흣···!”
“이제 개념을 잡았을 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너무 피곤하다. 난 좀 자야겠어.”
“어이! 밥 먹고 자!”
“거기 놔둬, 일어나서 먹을 테니까.”
비틀비틀 걸어간 크랭크는 침대에 쓰러져 기절했다. 그래서 집 주인이 기절하는 바람에 그날 저녁은 세 여자? 들만이 먹게 되었다. 아리에테에게 밥을 떠먹이던 캐롯이 물었다.
“그래서, 투나는 언제까지 있을 참이야?”
“어, 응?”
스튜를 떠먹다가 숟가락을 입에 물게 된 투나는 가만히 식탁을 보았다가, 쓰러져 있는 크랭크를 보았다가 다시 캐롯을 보았다.
“어, 조, 좀 더 있어보면 안될까? 소, 솔직히 갈 곳이 어, 없거든.”
“하지만 곧 겨울이 오니까. 다음 달 까지 결정하지 않으면 넌 내년 봄까지 여기서 우리랑 살아야해. 이곳 겨울은 정말 끔찍하거든?”
“으, 응.”
스튜를 아리에테의 입에 떠먹이고 손수건으로 입가를 살짝 훔친 캐롯이 그녀에게도 물었다.
“당신은 혹시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아리에테가 말했다.
“너희들 말고는 없다.”
“그래. 참 안타깝네. 할 수 없이 아리에테도 우리랑 같이 살아야겠네.”
아리에테는 얌전히 캐롯이 떠먹여 주는 스튜를 받아먹었다. 식사 후, 캐롯은 자기 몸보다 큰 아리에테를 안아 화장실로 향했다. 크랭크가 만들어 놓은 화장실은 쓸데없이 높은 퀼리티를 자랑했다.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물로 씻어주기까지 하니 참 좋구나.”
화장실 안에서 아리에테의 말이 나온다. 밖에서 기다리던 캐롯이 웃음 지었다.
“아무리 크랭크라지만 여자 밑을 닦아주는 건 서로 힘드니 그런 것 아니겠어?”
“그럴지도.”
아리에테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렸다. 아마 다시 팔과 다리가 생길 것이라는 희망이 기분을 풀어놓았을 것이라고 캐롯은 생각했다.
볼일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아리에테를 안아 올린 캐롯은 그녀를 침대에 데려다 눕혔다. 투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작업대에 널려있는 오토마톤을 살펴보고 있었다.
“망가뜨리지 마. 곧 아리에테의 팔다리가 될 거니까.”
“어, 응 그, 그냥 보기만 할게.”
아리에테의 침대 곁에는 캐롯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그녀를 돌보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으로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그 위에 책을 펴드는데 아리에테가 쳐다보았다.
“무슨 책을 읽고 있지?”
“오늘따라 당신 말이 많네.”
“희망이 생겼거든.”
“그래. 좋은 현상이야. 이거? 그냥 전문지식서야. 개는 어떻게 말하는가? 라는 책인데. 한번 볼래?”
“나는 손이 없어서 그걸 잡을 수가 없구나.”
“그럼 내가 읽어줄게.”
침대로 올라가 아리에테의 곁에 자리를 잡고 누운 캐롯은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준 다음 책을 가슴에 올리고 읽기 시작했다. 마치, 어릴 적에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양새였고, 그래서 아리에테는 좀 즐거워하다가 골아 떨어져 버렸다.
“헷? 이대로 자는 거야? 완전 기절 수준이네?”
팔을 뺄 수 없었던 캐롯은 그냥 그 상태로 책을 읽기로 했다. 그 동안 투나는 작업대를 오고가며 분해된 오토마톤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새벽에 잠에서 깬 크랭크는, 캐롯이 만들어놓은 음식을 좀 주워 먹고 다시 작업대로 돌아와 오토마톤을 조립하려 했다.
“음?”
“헤?”
작업대엔 공구를 든 투나가 오토마톤을 조립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무슨 짓이냐고 화를 내겠지만 크랭크는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먼저 오토마톤을 살폈다. 거의 자신의 생각대로 외골격 뼈대가 잡혀 있었다.
“아, 아니 이, 이건.”
투나가 급하게 설명을 하려 했지만 크랭크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보더니 가죽 끈을 가져왔다.
“이걸로 머리를 묶어라. 긴 머리는 작업에 방해된다.”
“어, 응.”
투나가 머리를 뒤로 돌리고 꽉 묶는 동안 크랭크는 어렴풋한 형태를 갖춘 오토마톤을 살펴보며 말했다.
“잘했군. 칭찬해주마.”
“저, 정말?”
“어떻게 했지?”
“저, 저기 네 설계안이랑 개념도가 있기에 봤는데.”
그것만으로?
크랭크가 경악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것도 없었다. 투나는 전 흑마도사 길드의 구성원중의 하나로 엄청난 연구를 했던 사람이니까. 크랭크는 투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너 내 조수가 될 생각 없나?”
“조, 조수?”
“그래. 넌 재능이 있다. 급여와 숙식제공에 신변의 안전 역시 보장하겠다.”
투나는 눈을 빛냈다.
“하, 할게! 할게요! 조수!”
“좋아. 채용. 오늘부터 넌 우리 공방의 조수 1호다.”
“이, 이 몸 취직!”
투나가 캐롯 마냥 두 팔을 들고 좋아했다. 고개를 돌린 크랭크는 외골격 오토마톤의 상체를 보면서 말했다.
“설계도도 없는데 잘도 여기까지 만들었군. 훌륭하다. 여기 이 부분을 가변형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자. 이 안에 아리에테의 몸이 들어가야 하는데 고정 장치가 필요해.”
“어, 응, 그, 그리고 제, 제어부는 등에, 마력엔진은 배 부분에 붙이는 게 어, 어떨까 싶어.”
“왜 배지? 가슴에 붙이는 게 좋지 않나?”
“가, 가슴 때문에 방해돼.”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아리에테를 슬쩍 돌아보았다.
숨 쉴 때마다 수박 두 개가 움직인다.
크랭크는 말을 돌렸다.
“···설계중점은 외골격이다. 오토마톤의 팔과 다리를 가설 프레임으로 연결 시켜서 아리에테의 몸에 걸리는 하중을 최대한 경감 시켜야 해.”
“외골격 상태로서도 오, 오토마톤의 몸체가 성립된다면 호,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겠네? 하지만 그래선 가, 강도가···.”
“떨어지지. 하지만 오토마톤으로서는 부족할지 몰라도, 한 인간에게는 삶의 희망이 될 거다."
사랑의 속삭임과는 거리가 먼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투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껴버렸다.
어쨌든 그녀도 연구자 기질이 다분했다.
“어, 어! 그, 그리고 시온의 시각도 중요해. 듣고 움직이는 걸로는 거리 보정이 안 되니까. 시온도 밖을 봐야해.”
“어떻게 하지? 감각기관을 어디다가 붙이지?”
“내, 내가 생각해 봤는데, 공주님들이 머리에 쓰는 그 장식 있지? 티, 티아라? 거기에 감각기관을 장식처럼 붙이고 쓰는 거야. 모양도 좋을 거고. 시각 확보에도 좋을 거 같아. 시온은 아리에테의 머리 위에서 상황을 살피는 거지.”
“좋군! 당장 하···. 아니, 그 전에 넌 좀 자야겠다.”
“으, 응?”
투나는 눈 밑에 검은 그림자 생긴 상태였다.
“아, 아직 괜찮아. 이 정도 철야는 아무것도 아냐.”
“아니, 졸린 사람을 붙잡고 부려먹을 수는 없다. 복지 이전에 기본권이지. 자라. 그 동안 내가 재료를 준비해 놓을게.”
“어, 아, 알았어.”
투나가 눈을 좀 붙이고 일어났을 때는 오후였다.
“으함···!”
자리에서 일어난 투나는 하품을 좀 했다가 빗을 꺼내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거울로 얼굴도 좀 살펴본 다음 크랭크에게 받은 가죽 끈으로 머리카락을 묶고 침대에서 내려섰다.
아까부터 커튼 바깥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어, 어떻게 됐어?”
가까운 작업장에서 크랭크가 캐롯의 도움을 받아 천장에 매달린 외골격 오토마톤을 반 이상 조립시켜 놓고 있었다.
“오우오. 바, 반나절 만에 이 정도로···.”
작업장 바닥 곳곳에 널린 오토마톤의 팔 다리는 이미 가공이 끝난 상태로 조립 대기 중이었다.
“이제 좀 모양이 나오네, 그런데 이 얘 방열은 어떻게 하지?”
“그러고 보니 생각해놓지 않았다. 임시로 방열망토라도 달아볼까?”
작업대 위에서 은은한 초록색 빛을 뿜어내는 마력엔진을 살펴보던 투나가 물었다.
“초록색 마력석도 여, 열이 많이 나?”
“그렇게 심하진 않아. 기본적인 방열기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시온의 몸은 완전히 달라져서 따로 방열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
“내 말대로 마력석을 아예 레드로 교환하고 방열망토를 사용 하는 게 어때?”
조립을 하다말고 흥분한 크랭크를 보면서 캐롯이 그의 커다란 어깨를 두드렸다.
“진정해. 굳이 전투용으로 만들 셈?”
“외골격이 버텨 준다면 인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 전투상황도 고려 할 만하지.”
“이 공돌이 참 못 말리겠네. 일단 완성하고 생각하자. 개조는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
“음!”
신이 난 크랭크는 다시 도구를 들고 매달아 놓은 외골격 오토마톤의 조립을 서둘렀다.
“투나, 저기 팔과 다리에 신경선과 동력선을 연결 해줘. 모르는 건 물어보도록 해, 빠르면 저녁 먹기 전에 몸체 조립을 끝낼 수 있겠다.”
“나는 슬슬 밥 할까?”
“그래.”
세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리에테는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점점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걸을 수 있어.
다시 검을 잡을 수 있어.
“어으윽···! 다들 정말 고마워···! 이, 이 은혜는 꼭···. 크흐윽···!”
“어으아! 아리에테가 또 운다!”
다음날 정오,
“시작한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아리에테를 들어 올린 크랭크가 천천히 외골격 오토마톤의 안에 집어넣었다.
새하얀 허벅지가 오토마톤의 다리 부분으로 들어가자 인공 근육이 강하게 움켜쥔다.
“아윽···!?”
“시온, 허벅지 조임 강도를 낮춰.”
아리에테의 표정이 좀 편해졌다. 크랭크가 말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시온이다. 팔과 다리에 빠짐을 방지하는 인공근육을 넣었어. 조임 강도는 네가 설정해라.”
“아, 알았다.”
다음으로 팔을 맞췄다. 다리 조임 강도를 파악한 시온이 팔도 비슷하게 움켜쥐자 아리에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 다리의 안착을 확인. 사용자 고정을 시작합니다.”
스르륵···!
몸통 부분의 좌우로 열려 있던 골격이 스르륵 닫힌다. 이 역시 인공근육을 이용해서 만든 기믹이다.
가변형 고정 골격은 여러 군데에 설치되어 아리에테의 몸을 튼튼히 붙잡았다. 양팔, 다리, 쇄골 아래, 가슴 바로 밑, 그리고 배 부분, 마력엔진은 가슴 바로 밑에 장식용 보석처럼 붙어 있다.
그 때문에 의도치 않게 아리에테의 가슴이 부각되어버렸다.
“우와, 아리에테 가슴 엄청 크네?”
크랭크와 함께 팔짱을 하고 쳐다보던 캐롯이 말했다. 흥분한 아리에테는 그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시온이 말했다.
“골격 고정 완료. 감각 티아라 착용합니다.”
아리에테의 등 뒤에서 동화 속 공주님들이 머리에 쓰는 반원 왕관 티아라가 구동 골격에 장착된 채로 올라와 머리에 안착되었다.
“착용 완료. 감각기관 정상. 모든 순서를 완료 했습니다. 다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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