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지적호기심! 41
같은 시각, 영주의 성,
영주 집무실에 토벌대를 지휘했던 제2경비대장, 모험가 길드 마스터, 그리고 로마니와 울파가 영주에게 토벌내용을 보고하고 있었다.
길드 마스터가 말했다.
“그들이 거론했던 중요 실험 자료는 전부 이 안에 있습니다.”
울파가 가죽 가방을 들어보였다. 책상에 앉아 깍지 낀 영주가 푸근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거 좀 볼 수 있을까요?”
“울파를 이길 수 있다면 그러셔도 좋습니다.”
“하하.”
사람 좋게 웃음지은 영주가 눈을 떴다. 날카로운 눈매였다.
“그 조력자들은?”
“모두 구출했습니다. 지금 9번가의 여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연금 중입니다.”
좀 뜸을 들인 길드 마스터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들의 후회와 밀고가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을 겁니다. 약속대로 그들에게 새 인생을 선물해주세요. 다만 도시 내는 안 됩니다. 적당한 개척민 마을을 수배하여 정착비와 함께 경호 겸 감시 역으로 오토마톤을 붙여 놓도록 하세요. 만약 그들이 또 다시 인간의 길을 벗어난다면 빠른 뒤 처리가 필요합니다.”
길드 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는 계속 말했다.
“길드 마스터는 내일 그 조력자 몇 사람을 내게 데려와 보세요. 저 연구 자료를 어떻게 민간용으로 써먹을 수 없을지 알고 싶군요.”
“영주님?”
데오 아르곤 영주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남긴 자료인데 그냥 폐기하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병원이나 치료 방면으로 사용 할 수 없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제2경비대장이 손을 들고 발언했다.
“영주님, 저희가 수거해온 물자 중에 그런 자료들이 꽤나 많습니다만.”
“저 자료이외에 흑마도사의 연구에 관련된 물자들은 따로 정리해서 보관해 두도록 하세요. 우리가 생체실험을 하는 흑마도사 길드를 토벌했다는 소문을 듣고 분명 여기저기서 자료 공유를 요청할 겁니다. 그때 그들에게 던져줍시다.”
“그럼 조력자의 존재는 어떻게 할까요?”
“그들은 철저히 숨겨주세요. 다른 의미로는 최후의 보루 입니다.”
듣고 있던 길드 마스터가 지적했다.
“정말 이래도 되겠습니까? 오히려 자료를 전부 폐기고 관련자를 모조리 입막음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모든 걸 덮어버리면 이런 일이 다시 창궐할 것입니다. 똥줄은 항상 타고 있어야 합니다.”
영주의 생각을 떠보려 했던 길드 마스터가 생각보다 멋진 대답을 듣고 씩 웃었다. 로마니와 제2경비대장은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좀 했고,
눈을 감고 책상을 두드리던 데오 아르곤 영주가 로마니와 울파를 보았다.
“지원 고맙습니다. 로마니, 그리고 울파.”
“아닙니다. 영주님. 도시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고개를 돌린 영주는 이제 제2 경비대장을 보았다.
“제1 경비대장으로 진급할 날도 머지않았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파본 제2 경비대장.”
“감사합니다. 영주님.”
영주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길드 마스터에게 내밀었다.
“마빈 길드 마스터, 수도에서 이런 것이 왔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서류를 받아 읽어본 길드 마스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관광이요?”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저번에 오셨던 청동문 조사단장 쥬세페 공주님 기억하시죠? 돌아가셔서 친한 영애들에게 자랑을 많이 하셨나 봅니다.”
“하지만 수도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많은 시간과 위험이···! 아!”
마빈 모험가 길드 마스터가 창문을 통해 광장에 설치된 청동문을 보았다. 영주가 웃었다.
“수도에서 메인쿤까지는 그리 멀지 않지요. 그리고 메인쿤에도 저 청동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공문이 왔습니다. 각 청동문은 해당 도시에 귀속되었습니다.”
“이엿! 으쟈!”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길드 마스터가 뛸 듯이 좋아했다. 그걸 보고 제2 경비대장은 한숨을 쉬었고, 그를 잘 아는 로마니는 그저 웃었다.
“수도에서 메인쿤-트레일-아르곤-트로겐 순으로 직통 포탈을 통해 이동이 가능합니다. 대규모 물류의 이동은 아직 허가 되지 않았지만 단순 개인이동교통수단으로서의 목적으로는 조만간 개통 예정입니다. 이번 수도 귀족가문의 관광은 그 시작이 되겠지요.”
“좋은 소식이군요. 그러면 길드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리겠군요.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아, 동화책 팔고 계셨지요?”
“후후, 우리 모험가들은 생각보다 유명인입니다?”
“동화책이요?”
로마니가 쳐다보자 길드 마스터가 사실을 이야기 했고 로마니가 하하 웃었다.
“그렇군요. 저희도 유명합니까?”
“물론입니다. 준용사급 모험가 로마니와 울파의 모험담은 아주 잘 팔리는 목록이지요.”
“준용사급이라는 별명이 거기서 나왔군요.”
“그렇습니다. 보고서 내용을 말도 없이 가공해서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길드 운영에 상당한 보탬이 되었습니다.”
울파를 돌아본 로마니는 사람 좋게 웃었다.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사용하십시오.”
“이런 고마울 데가!”
“길드가 있어야 모험가가 있는 건데요. 마빈 선배님.”
현역일 때는 로마니의 선배였다가 추천을 받아 길드 마스터가 된 마빈은 그의 말에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흐뭇하게 그들을 보고 있던 영주가 말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청동문 개통을 시작하면 수도에서 세금을 올릴 거랍니다.”
“으억!”
마빈이 그 소리를 듣고 무릎이 꺾여 비틀거린다. 그걸 보고 제2경비대장마저도 쓰게 웃어버렸다.
길드 마스터가 되고나서는 항상 근엄하고 신사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원래 성격은 좀 엉뚱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로마니는 기억하고 있었고, 사실도 그러했다.
수도 방향을 바라보며 마빈 길드 마스터가 주먹을 들어 올리고 외쳤다.
“어쩐지 공짜로 줄 것 같지 않더라니! 쥬세페 공주! 잊지 않겠소!”
“하하하!”
어릴 적부터 잘 아는 사이인 데오 영주도 그의 행동에 오랜만에 배를 잡고 웃어버렸다.
“역시 우리 동네가 최고야!”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멘 캐롯이 활기찬 도시의 거리를 거닐었다. 그 뒤로 하얀 시트 덩어리를 짊어진 크랭크가 뒤따랐고, 그 뒤로는 투나가 곰 인형을 껴안고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바싹 따라 걸었다.
“도차-크!”
어두워질 무렵 인적이 드문 창고 지대에 도착한 투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크랭크와 캐롯이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부리나케 뒤따랐다.
“여, 여기가 너, 너희들 집이야?”
“그래. 네 거취는 내일 쯤 이야기 하자 지금은 할일이 많아.”
“어, 그, 그래.”
커다란 창고를 개조한 공방 안에 불이 켜지자 투나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각종 가공 설비와 장비를 비롯해서 오토마톤과 그 부품들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 여긴 오토마톤 공방이야?”
“내 개인적인 취향이다. 적당히 앉아.”
오토마톤 수리대 위에 시트로 감싼 여자를 내린 크랭크가 뻐근하다는 듯이 어깨를 좀 움직이고는 캐롯에게 말했다.
“식사 준비 좀 해줘. 3인분. 나는 물을 데울게.”
“그래!”
달그락달그락, 보글보글,
조그만 오토마톤 캐롯이 발판 위에 올라서서 식재료와 조미료를 꺼내고 냄비를 걸어 조리를 시작하는 모습을 자리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던 투나가 우물쭈물 일어났다.
“나, 나도 뭔가 도울게 없을까?”
“말 잘했다. 이리와.”
크랭크의 부름에 도도도 달려간 투나는 창고 안쪽에서 커다란 물통을 설치하는 크랭크를 거들었다. 빗물을 저장해둔 물탱크와 마력 보일러 설비를 보고 투나가 놀라워했다.
“네, 네가 만든 거야?”
“그래, 여긴 창고 지대라서 상수도가 안 들어오고 공용 우물도 없어. 식수는 어떻게 해도 생활용수까지 길어오기는 힘들어서 만들었다.”
“오, 오오! 대단하다! 모, 몸만 멋진 게 아니라. 기, 기술도 좋은 남자야.”
밸브를 열자 금세 뜨거운 물이 펄펄 쏟아지는 것을 보고 투나는 감격하고 말았다. 잘 정비된 방주도시에서야 마력 보일러가 흔한 물건이지만 당장 개척민 마을로만 나가도 보일러는 보기 어려운 귀중품 취급이다.
“우, 우리는 커다란 솥에 물을 데워서 쓰, 쓰곤 했는데. 괴, 굉장해.”
“투나 잠깐 이리와 봐.”
크랭크는 보일러 뒤쪽 으슥한 곳으로 투나를 불렀다. 우물쭈물 다가가자 크랭크가 목소리를 낮춰서 저 멀리 오토마톤 작업대에 누워있는 하얀 시트를 가리켰다.
“···그곳에서 구출한 사람이니 절대로 네 정체를 밝히면 안 돼.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죽을 거다. 바로 네가.”
투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작업대로 향했다.
“당신 이름은 뭡니까?”
시트를 걷어내자 사색이 된 금발 여자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쳐다본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
“나, 나는···! 화, 화장실을···!”
깜짝 놀란 크랭크가 시트를 헤집어 여자를 꺼내더니 가슴에 안고 창고 밖 어딘가로 뛰쳐나갔다.
“어? 밥 다됐는데 어디가?!”
잠시 후 크랭크가 여자를 안고 돌아왔다. 사지절단녀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처절하게 훌쩍이고 있었다.
“크흐흑···! 으윽···! 미, 미안···! 미안해···.”
“괜찮습니다. 자, 이제 목욕하러 갑시다.”
크랭크는 투나의 도움을 받아 팔다리가 없는 여자를 목욕통에 집어넣고 비누와 솔로 벅벅 문질러 씻겼다.
“투나, 캐롯에게 목욕통에 넣을 약초 더미 달라고 하면 줄 거야. 가져와줘.”
“아, 알았어.”
투나가 달려간 사이 크랭크가 물통 안에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당신 이름은 뭡니까?”
“···아리에테.”
“나는 크랭크, 저기 당신이 구한 소녀는 오토마톤 캐롯, 그리고 여기 약초를 가져온 음침한 여자는 투나.”
아리에테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크랭크는 그녀의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버렸다.
“아푸푸···!”
쏴아아아!
다른 목욕통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약초더미를 던져 넣은 크랭크는 그 안에 아리에테를 옮겨 담았다.
“대충 됐다. 이제 네 차례다.”
“허억?! 나, 나는 혼자 할 수 있어!”
“알았으니 긴장하지 마라. 갈아입을 옷을 준비 할 테니 네 옷은 저 바구니에 던져놔.”
“어, 그, 그래. 고마워.”
아리에테가 들어가 있던 물통의 물을 비우자 배수관으로 시커먼 땟물이 빠져나간다. 그걸 보고 크랭크가 말했다.
“내일 당장 이 안에 수세식 화장실부터 만들어야겠군.”
목욕이 끝나고 투나는 크랭크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체격차이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셔츠는 묶어야 할 지경이었지만 어쩐지 얼굴은 좋아죽으려는 표정이다.
“내, 냄새 좋다. 킁킁···!”
“오늘만 입어라. 네 옷은 내일 시장에서 고르도록 해.”
“계, 계속 이, 입어도 괜찮은데.”
“응?”
“아, 아니야.”
크랭크는 몸을 베베꼬는 투나를 보았다가 고개를 돌려 역시 크랭크의 셔츠를 입고 의자에 앉은 아리에테를 보았다.
“밥 먹읍시다.”
“그래! 씻었으면 이제 밥이다!”
크랭크는 투구의 마스크를 열고 입만 들어낸 다음 캐롯의 요리를 쑤셔 넣었다. 그걸 보고 투나는 물론 아리에테 마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 왜, 왜 그걸 벗지 않아?”
“저건 저주 가림 막이야.”
“저주?”
캐롯은 아리에테의 옆에 서서 음식을 떠 먹여 주며 말했다.
“크랭크는 저주에 걸려 있어. 저 투구를 벗으면 너희들은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돼. 그러니 절대로 얼굴을 볼 생각하지 마. 그리고 앞으로 투구에 관련해서는 자세히 묻지 마. 크랭크가 싫어해.”
“어, 그래. 알았어.”
“···.”
그때 아리에테가 눈물을 흘렸다. 고개를 돌린 그녀가 캐롯을 보면서 말했다.
“···맛있구나.”
“그럼! 캐롯 특제 영양식이야. 특별히 신경 좀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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