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지적호기심! 40
마차와 모험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을 배웅하고 혼자서 오롯하게 비탈에 서서 바람을 맞고 있던 오토마톤은 가만히 하늘과 초원과 무너진 돌산을 내려다보았다.
임무 외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 연산능력이 부족해서 일까?
그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부른다.
“231호, 무슨 생각해?”
경비용 오토마톤 231호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머리에 손수건을 쓰고 몸 곳곳에 핏자국과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살벌한 모습의 조그만 오토마톤이 서 있었다.
“캐롯, 왜 남았습니까?”
“너만 쓸쓸해보여서. 그리고 달리기 경주도 할 겸, 그리고···.”
뒷짐을 진 캐롯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너진 마도사 길드의 동굴이 보인다.
“마력수정폭탄 10발의 대폭발을 구경하려고 말이야.”
231호는 어쩐지 유쾌해졌다. 그는 기폭스크롤 10장을 들어올렸다.
“나도 그것이 보고 싶습니다.”
“히히히! 아 맞다. 이거 쓰는 법 알아? 찢은 다음 손가락을 튕기면 카운트 없이 바로 폭발한다?”
“알겠습니다.”
퉁···! 번쩍!
이윽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붉은 신호탄을 발견했다. 두 오토마톤은 서로를 보았고, 231호는 캐롯이 보는 앞에서 손에 든 기폭스크롤 10장을 단숨에 찢어 바람에 흩날려 보냈다.
천천히 손을 든 231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쩌저저저저정!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돌산의 틈새로 새하얀 빛 무리가 터져 나온다. 지하에 매설한 마력수정폭탄이 기폭을 시작하자 마치 밤하늘의 별님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만 같았다.
“터진다! 뛰어!”
재빠르게 뒤로 몸을 돌린 231호와 캐롯의 전력질주가 시작되었다.
“으하하하! 이번엔 이긴다!”
“이번에도 지지 않겠습니다.”
쿠구구구구···! 두 오토마톤이 뛰쳐나간 직후 땅울림과 함께 지진이 일어난다. 어찌나 큰 폭발인지 지반이 내려앉는 수준의 위력이었다.
결국 캐롯은 이번에도 231호를 이기지 못했다.
다시 3일에 걸쳐서 이동하여 도시로 돌아온 그들을 마을 시민들이 격하게 반겼다. 죽은 사람도 있고, 다친 사람도 많지만, 목숨을 걸고 모험에서 돌아온 모험가들은 그들의 환호에 돈으로 답했다.
“모험가는 시장 경제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거든요? 여러분께 기대는 직종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래서 다친 모험가들의 치료와 빈자리를 채울 신규 모험가들의 모집과 교육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홍.”
모험가 길드 안의 작은 방, 크랭크는 팔짱을 하고 서있고 대신 자리에 앉은 캐롯이 책상 앞의 길드 직원 오리온을 쳐다보았다.
정산은 도착하자마자 길드 주선으로 바로 시작되었고, 다른 모험가들은 길드 로비에서 차례로 줄을 서서 받고 있지만 오토마톤을 대동한 모험가들은 보수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따로 방으로 불러서 지급했다.
오리온은 상자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책상에 올렸다.
철그럭···!
“오토마톤 동행 모험가 보수 300만 리즈.”
철그럭···!
“이건 약속했던 초보 모험가들의 보호 및 현장 실습 교육비. 100만 리즈.”
철그럭···!
“어? 또?”
캐롯이 고개를 든다. 오리온이 손을 내밀어 캐롯의 앞 머리카락을 슬쩍 들춰보았다. 검은색 오토마톤 프레임과 유리구슬 눈동자가 드러났다.
“아프지는 않나요?”
“오리온은 감상적이네, 오토마톤은 촉각이상의 통각이 없어. 아프지 않아.”
빙긋 웃은 오리온이 3자루의 주머니를 내어주며 말했다.
“마지막은 길드 특별 보조금 30만 리즈. 부족하지만 수리비에 보태 쓰세요.”
“와! 정말? 고마워!”
“장비의 파손은 책임지지 않지만 새싹들을 무사히 데려와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에요.”
돈주머니를 챙긴 크랭크가 물었다.
“구출한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지금 다들 병원에 입원시켜서 치료하고 있어요. 완쾌 되면 가족을 찾아 보내거나 오갈 곳이 없다면 신전이나 개척민 마을로 이주하게 되겠지요.”
“아! 맞아! 나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크랭크가 고개를 숙이자 캐롯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사지절단녀! 병원에 있을 거야. 한번 보고 가도 될까?”
오면서 이야기를 들은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병원에 만나볼 사람이 있다. 가자.”
방을 나서려는데 오리온이 손을 흔든다.
“캐롯,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응!”
엄지를 들어 보이며 빵긋 웃어준 캐롯이 문을 닫고 나섰다. 캐롯과 크랭크가 북적대는 길드 건물의 로비로 나서자 우연히 지나가다가 마주친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캐롯? 뭐야? 다쳤나?”
“오우! 밀턴 아재! 오토마톤은 다치지 않아! 망가질 뿐이지!”
롱보우를 맨 밀턴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좀 굳혔다가 고개를 들어 크랭크를 보았다.
“당신은 좋은 오토마톤을 가졌군.”
“감사합니다. 오늘 번 돈은 전부 이 녀석 수리비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속이 쓰리겠군.”
크랭크는 대답 없이 투구를 푹 숙였다. 밀턴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 오토마톤 덕에 목숨 부지한 친구들이 많아. 언제든 불러줘, 당신들 부탁이라면 반값에 목숨을 걸어 줄 테니까.”
“이런 고마우실 데가.”
동료들을 기다린다는 밀턴을 뒤로하고 크랭크는 캐롯과 함께 병원으로 걸었다.
“어때? 마당발 캐롯의 남자 후리는 솜씨가?”
“음, 환상적이야. 칭찬해줄게.”
“엣헴!”
길드 뒤편 임시 병원에 도착한 크랭크와 캐롯은 신전에서 파견을 나와 있는 바쁘게 오가는 수련생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사지가 절단된 여자와 곰 인형을 껴안은 음침한 여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 제가 지금 좀···.”
크랭크는 수련생의 손을 붙잡아 1만 리즈짜리 은화를 하나 쥐어주었다. 수련생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가 고개를 든다.
“어디에 있습니까?”
“사, 사지가 절단된 그 여성분은 이, 이쪽입니다. 곰 인형을 가진 여성분은 찾아보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예.”
수련생을 따라 간 곳은 많은 침대가 설치된 넓은 방으로 대부분 흑마도사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떨어진 구석진 곳에 담요를 머리 위까지 덮어쓴 무언가가 있었다.
크랭크가 캐롯을 보았고, 캐롯이 다가갔다.
“이봐요! 자고 있어?”
미동이 없자 캐롯은 다시 입을 열었다.
“동굴에서 나 구해줬잖아요? 인사하러 왔어, 미인은 잠꾸러기라지만 당신 너무 오래 자는 거 아냐? 잠 좀 깨 봐요.”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좀 나자 캐롯이 시트를 들췄다.
“안녕, 언니?”
옮겨진지 얼마 되지 않아 지저분한 몰골이 그대로 드러났다. 냄새도 심하게 났다. 옆에서 수련생이 한숨을 쉬었다.
“현장에서 신성치료를 받으셔서 상태는 심하지 않지만 몸을 씻겨드리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세요.”
들춰진 시트 속의 여자는 울어서 시뻘게진 눈으로 입을 열었다.
“···덮어.”
빤히 그 얼굴을 쳐다보던 캐롯은 다시 시트를 내렸다. 시트를 뒤집어 쓴 채로 잔뜩 쉰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소녀, 다친 곳은 없나?”
“없어요! 오토마톤은 다치지 않아! 망가질 뿐!”
아르곤에서 오토마톤 캐롯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옆에 서있는 수련생도 알 정도니까. 수련생이 곰인형 여자를 찾으러 간 뒤 힘없는 여자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오토마톤이라고?”
“위험에 빠진 작은 소녀를 구하려 했던 당신의 희생정신과 그 정의와 그 마음씀씀이는 건재해요. 나는 그 점을 높이 사고 있어요. 칭찬해 드릴게요.”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으니 이제 가.”
고개를 들어 크랭크를 올려다보던 캐롯은 시트를 붙잡더니 확 잡아당겼다. 오물로 더럽혀진 새하얀 시트 위로 팔꿈치 아래와 무릎 아래의 팔다리가 없는 여자의 알몸이 드러났다.
세상의 갖은 더러움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다.
그 화려한 금발은 불에 그슬리고 곳곳이 뜯겨나가 있었고 몸의 곳곳에는 흉터가 자욱했다.
세상을 나누는 유일한 벽을 빼앗기고 몹시 당황한 여자는 반만 남은 팔다리를 휘저으며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 시트! 시트를 가져와! 그걸 돌려줘! 돌려줘! 어서! 으흐으윽!”
캐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싫어.”
“뭐···?! 으이! 너···!”
가만히 그걸 내려다보던 크랭크가 허리를 숙여 캐롯에게서 시트를 받아들더니 다시 그것을 여자의 몸 위에 덮었다. 시트 아래에서 씩씩거림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말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캐롯이 말했다.
“크랭크, 이 여자에게 팔다리를 달아볼 수 없을까? 내 수리는 늦어져도 상관없어. 이 여자는 날 구해줬어.”
“그건 안 돼.”
시무룩한 얼굴의 캐롯이 고개를 들자 크랭크는 여전히 시트로 가려진 여자의 실루엣을 보고 있었다.
“네가 먼저야. 이 여자는 그 다음이다.”
“엇! 붙일 수 있어?!”
캐롯이 얼굴이 환하게 바뀐다. 크랭크는 이제 뒤로 돌아 침대에 걸터앉더니 생각에 빠졌다.
“그걸 이렇게 하면···.”
상념에 빠진 크랭크를 내버려두고 캐롯이 허리를 숙여 여자의 머리 부분에 대고 속삭였다.
“팔 다리를 다시 달아줄게. 어때?”
“···!”
훌쩍임이 멈췄다.
“당신 이름은?”
크랭크가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크랭크는 혼잣말 하듯이 말했다.
“허황된 많은 이야기 중에, 오토마톤의 팔을 의수로 사용하는 모험가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실물을 본 적이 없어서 아마도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당신의 그 안타까움을 보니 내가 그 불가능에 도전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몸을 돌린 크랭크는 캐롯처럼 그 여자의 머리 부분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 몸에 오토마톤의 팔다리를 달아봅시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크랭크가 계속 말했다.
“가족은 있습니까? 갈 곳은?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당신은 이대로라면 신전으로 들어가서 수련사들의 골칫덩이가 될 겁니다.”
“맞아. 당신 지금 화장실도 혼자서 못가는 상태잖아.”
캐롯이 끼어들자 시트가 들썩이더니 여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여전히 눈은 시뻘겋고 얼굴은 분노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캐롯이 손뼉을 쳤다.
“좋네! 그 눈빛! 눈물보다는 분노가 훨씬 건설적이지! 크랭크! 무언은 긍정이래!”
“좋아.”
“어, 크, 크랭크! 크랭크!”
마침 수련사가 곰인형을 끌어안은 음침한 여자를 데리고 왔다. 병원에서 내내 의기소침해 있던 투나는 다시 찾아온 그를 보고 대단히 기뻐했다.
캐롯이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 여자는 누구야?”
“이름은 투나, 당분간 내가 맡게 됐다. 이 두 사람을 데려가고 싶습니다만.”
“가족이신가요?”
크랭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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