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흑마도사 토벌대! 39
크랭크가 여마도사와 나이스 썸싱을 벌이는 동안 캐롯은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파이어 프레임!!!!”
푸화아르르르륵!!!
좁은 동굴 안에서 궁지에 몰린 마도사들이 범위공격 마법을 난사했다. 커다란 불길이 동굴을 메워버리자 캐롯이 외쳤다.
“물러서! 저건 공기를 태워! 너희는 공기가 없으면 숨을 못 쉬어! 빨리 뒤로 빠져! 어서!”
“으하하하! 다 같이 죽자!”
“죽는 건 너야!”
마침 바닥에 떨어진 활과 화살을 주워든 캐롯이 화살을 걸고 잡아당겼다. 평소 크랭크의 교육열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퉁-!
퍽!?
“크억?!”
다리에 화살을 맞은 흑마도사가 신음을 흘리자 마법으로 일으킨 불길도 꺼져버렸다. 이 거리에서 한 발 더 쏘면 즉사시키겠다는 두려움에 캐롯이 활을 내던지고 덤벼든다.
“에이! 으럇차!”
“이놈이!”
손을 합장하고 몇 가지 수인을 빠르게 맺은 마도사가 손가락으로 거리를 좁히는 캐롯을 가리켰다.
“내가 더 빨랐다! 파이어 프레임!”
푸후화아아악!!!!!
“캐롯!!!”
불길이 캐롯을 덮쳐들었다.
“아아압!!”
빠각!
오토마톤의 주먹질에 턱이 돌아간 흑마도사가 기절하자 불길도 금세 잦아들었다. 놀란 모험가들이 다가오려 했지만 시커멓게 타버린 캐롯이 몸을 돌렸다.
“안 돼! 오지 마! 뒤로 물러서! 여긴 공기가 다타버려서 너희가 오면 질식해! 이쪽 길은 포기해야해! 어서 나가!”
“캐롯! 다, 당신···!”
동굴 저편에서 모두가 황망한 시선으로 캐롯을 보았다.
그을린 전투복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다만 캐롯의 얼굴은 그 절반이 녹아내려 내부의 프레임이 드러낸 채 모두에게 여러 가지 의미의 충격을 선사했다.
“어?”
덜컥!
얼굴을 만져보던 캐롯이 멈춰버렸다. 멀리서 모험가들이 불러보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오가 숨을 참고 후다닥 달려가 캐롯을 끌어안고 나왔다.
안전지역으로 물러선 그들은 캐롯은 앞에 놓고 어쩔 줄 몰라 했다.
“히, 힐을···!”
“오토마톤이야. 그런 건 소용없어.”
“아, 아아···! 우리 때문에.”
한참 얼굴에 손을 댄 채 굳어 있던 캐롯이 끼긱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캐롯은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다, 다친 사람들은 없어?”
“없어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모두가 울상을 지었지만 캐롯은 방긋 웃기만 했다.
“거, 거울, 거울 있는 사람? 비타, 거울 있어?”
“여기요.”
여신관 비타에게 조그만 손거울을 받아든 캐롯은 거기에 비춰진 얼굴을 보더니 또 멈춰버렸다.
“충격이 큰가 봐요.”
“오토마톤은 처리용량을 넘어서는 상황을 맞게 되면 저리 된다고 하던데 정말이구나.”
“어쩌죠?”
롱소드를 뽑아들고 있던 청년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장발을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보리스였다.
“철수하자.”
“그래. 솔직히 우린 캐롯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야. 여긴 우리 같은 새내기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야.”
동굴 안에서 마도사들을 만나지 않길 바라며 모두는 철수를 시작했다. 개미굴 같은 곳인지라 지도를 그릴 틈도 없이 왔던 길을 최대한 기억하며 되돌아나가고 있는데 그들의 앞으로 별안간 흑마도사들이 뛰쳐나왔다.
모험가들에게 쫓기는 중이었는지 몇몇은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어···!?”
“이···!”
서로 당황하여 바로 대응하지 못할 때 보리스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서로 상황이 별로인데 그냥 갈 길 갑시다. 우린 여기서 나가야하고, 당신들은 도망쳐야 하지.”
“뭐라고 지껄이는···.”
마도사 하나가 마법을 쓰려했으나 초보 모험가 집단이라고는 해도 활을 쏠 줄 아는 자는 많았다. 롱보우가 겨눠지자 늙은 마도사가 나섰다.
“알겠다. 갈 길을 가자.”
두 무리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저, 정말이야. 말이 통했어.”
“서로 힘이 비슷한 상황이면 대화를 시도하게 된다고 했었지, 저 조그만 오토마톤이.”
보리스가 뒤를 돌아본 곳에는 그들에게 모험 지식의 전반을 가르쳐준 스승이 어느 청년의 가슴에 안겨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밥도 먹지 않고 저녁이 될 때까지 전리품 획득에 열을 올린 모험가들은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흑마도사 길드 동굴에서 철수했다.
토벌단장은 모험가들이 배낭을 메고 나오는 것을 보고 혀를 찼지만 협약이 있으니 못 본 채 넘어가주었다.
“길드 토벌대 사망자 6명, 기타 부상자는 꽤 있으나 심각한 사람은 없습니다.”
“나쁘지 않군. 붙잡혀 있던 사람들은 어떤가?”
“인간 27명, 엘프 5명, 드워프가 3명입니다. 여행객이나 개척민 마을을 습격해서 납치한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흑마도사 놈들은?”
“확인된 사망자는 89명, 동굴 안쪽에 잔존 세력이 남아 있습니다만, 투항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대치 중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토벌단장이 말했다.
“잠시 쉬었다가 흑마도사 길드 전리품 수거를 시작한다.”
“예!”
저녁부터는 곳곳에 라이트를 밝혀 대낮 수준의 광원을 확보한 뒤 경비대가 안으로 들어가서 구석구석을 뒤져 마도사 길드의 연구 자료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물자를 수거했다.
간간히 숨어 있던 흑마도사들과 전투가 있었지만 금세 제압되었고, 몇몇은 포로로 잡혀오기도 했다.
“로마니도 그렇고 포로를 생포해서 뭘 어쩌자는 거지? 다 죽이는 거 아니었어?”
“모르는 소리 마. 경비대에서 저것들을 고문해서 다른 마도사 길드의 위치를 캘 거래.”
“아하.”
그 와중에 캐롯은 부상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야전 병원 캠프에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누워서 고장 난 오토마톤 흉내를 내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크랭크가 캐롯을 찾아왔다.
“여기 있었어?”
캐롯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크랭크는 물끄러미 캐롯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다리 관절이 나갔나보군. 그런 거에 맞을 네가 아닌데.”
“···허용오차가 갑자기 스펙을 넘어버렸어. 당장 움직이는데 상관없지만 오차가 계속 생겨서 정확하고 과격한 전투는 이제 무리야.”
“얼굴도 반 탔네.”
팔을 든 캐롯이 자기 얼굴을 만져보며 울상을 지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울고 싶어.”
크랭크가 피식 웃는다. 그리고 캐롯도 이내 씩 웃었다.
“돌아가면 오버홀 하자. 그리고 소프트 스킨이랑 가발도 새로 올리고.”
“캐롯 부활!”
자리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킨 캐롯을 보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노심초사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캐롯! 괜찮아요?!”
“응! 주인님이 고쳐주신데!”
“감사합니다! 크랭크! 그리고 죄송해요. 저희들 때문에···.”
초보 모험가들이 몸 둘 바를 몰라 하자 크랭크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아니요. 모험가나 그걸 따라다니는 전투용 오토마톤은 이런 게 일상인걸요. 여러분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캐롯은 오버홀 할 때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함께했던 젊은이들이 한숨을 쉬었다. 캐롯은 그대로 돌아다니려 했지만 여신관을 포함한 여성 모험가들이 성화를 부려 캐롯은 얼굴에 손수건을 쓰고 타버린 부분은 빗질한 머리카락으로 가렸다.
“한결 났네.”
“와! 맘에 들어! 크랭크! 나 어때?”
“어, 예쁘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던 캐롯이 크랭크의 칭찬에 빠하하 웃었다. 지나다니던 다른 모험가들도 캐롯의 상태가 돌아오자 기뻐했다.
“사실 저건 우리 길드 마스코트 같은 것이거든? 쫑알쫑알재잘재잘 시끄럽지만 막상 없으면 허전하지.”
“그렇지. 저 수다쟁이는 사기진작에 도움이 된다고.”
캐롯이 되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안면 있는 모험가들이 병문안을 왔다.
“캐롯 죽었다면서 살아있네?”
“토스트! 악담을 해라!”
“다행이야. 좀 탔지만, 그 왕깻잎 머리 참 잘 어울리네.”
“리모가 좀 볼 줄 아네.”
“괘, 괜찮나요···?”
“오우! 레나! 애덤!”
사람들을 보면서 웃다가 깜짝 놀란 캐롯이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맞다! 대머리 게토는 어디 갔어! 올리브에게 아빠 살려서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
“아, 토벌단장이랑 이야기 하러 갔어.”
“휴, 다행이다. 그래서 다들 한탕씩들 했어?”
다들 날카롭게 웃는다.
“배낭 하나뿐이지만 뭐, 짭짤했지.”
“우리 병아리들은?!”
소년소녀티가 남아있는 모험가들도 히히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좋아! 잘 됐네! 저울추는 우리 쪽으로 기울었어! 반대쪽은 박살이 났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캐롯이 입에 손나팔을 하고 외쳤다.
“정의는! 항상 승리한다! 그래서! 오늘 이긴 우리가! 바로 정의드아아아아!”
승리를 못 박는 외침이었다.
듣고 있던 모험가와 경비병들이 피식피식 웃는다. 입을 헤 벌리고 있던 리모가 수첩에 그 말을 옮겨 적었으며, 신관들을 비롯해서 말뜻을 이해한 사람들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튿날의 아침,
밤을 새워 모든 자료와 전리품 수거를 완료한 토벌대는 깊숙한 곳에서 잔존 마도사와 대치 중이던 병력을 모두 철수 시켰다.
그리고 특명을 받은 캐롯과 발 빠른 오토마톤들이 마지막으로 길드 동굴에서 탈출했다. 가볍게 언덕의 비탈을 뛰어오른 캐롯에게 토벌단장이 다가왔다.
“풀어줬냐?”
“옙! 단장님! 말씀하신 대로 갇혀 있던 몬스터들을 모두 풀어줬습니다!”
토벌단장은 고개를 돌리고 함께 도착한 오토마톤들을 보았다.
“물건은 지정한 곳에 설치가 다됐고?”
“완료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토벌단장은 이제 언덕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울파를 보았다.
“울파, 시작해라.”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이 울파가 들고 있는 슬링에 마력수정폭탄을 올렸다. 울파는 이제 꽤나 수준급으로 슬링을 쏠 수 있게 되었다.
훙훙훙~!
짜악!
마력수정폭탄이 날아간 곳은 입구 수십 개가 뚫려 있던 돌산의 경사면이었다.
쩡!! 쿠쾅-!
밝은 빛이 번쩍이더니 대폭발이 일어나 입구가 폭삭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린 토벌단장이 외쳤다.
“철수 준비!”
모험가들과 경비병들이 철수준비를 서둘렀다. 이미 빈 마차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었고, 부상자나 붙잡혀 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다리가 멀쩡한 사람은 걷기로 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토벌단장이 근처에 서 있던 경비단 소속 오토마톤을 불렀다.
“너는 여기서 대기하다가 우리가 신호탄을 올리면 이 기폭 스크롤을 찢어버리고 최대한 빨리 복귀 할 수 있도록 해라. 알겠느냐?”
기폭 스크롤을 받아든 오토마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
다각다각-!
“저 녀석 혼자 괜찮을까?”
“상관없어. 오토마톤은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야! 오토마톤! 조심해라! 빨리 와!”
“기다리고 있을게!”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돌아봐주자 경비대 오토마톤도 슬쩍 손을 들어 흔들며 그들을 배웅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