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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38화 (38/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흑마도사 토벌대! 38

한편, 캐롯의 마스터 크랭크는 드래곤 스케일 방패와 숏소드를 들고 흑마도사와 전투 중이었다.

쏘아내는 마법이 드래곤 스케일에 족족 막혀버리자 당황한 흑마도사가 손을 들었다.

“자, 잠깐!”

크랭크가 방패를 슬쩍 내리고 쳐다본다. 양동이에 길게 뚫린 틈새로 드러난 눈은 불신을 가득 담고 있었다. 흑마도사가 말했다.

“돈을 낼 테니 그냥 보내주시오. 당신들이 원하는 건 그것 아니오?”

잠시 생각하던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을 가진 흑마도사는 재빠르게 로브 소매를 뒤적이더니 돈주머니를 꺼냈다.

크랭크가 말했다.

“바닥에 내려놓고 가시오. 뒤를 치진 않겠소.”

조심스럽게 가죽 주머니를 내린 흑마도사는 곧 뒤로 돌아 힘겹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방패를 내리고 그걸 쳐다보던 크랭크는 가죽 자루 주변을 숏소드로 긁어 동그라미를 만들고 글을 적었다.

- 함정 주의

크랭크는 이제 흑마도사가 뛰어간 방향으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도착한 곳은 동굴 좌우로 문이 많이 달린 곳이었다.

“거주구? 연구실인가?”

그 중의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간 크랭크가 발견한 것은 잘 정돈된 방이었다. 연구실이라기보다는 숙식을 해결하는 생활공간 같았다.

“이 방주인은 여자인가? 아기자기하군.”

선반을 장식하고 있는 말린꽃이라든가, 예쁜 색의 돌이나 천연 수정 같은 것들이 방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구경하다가 고개를 돌린 크랭크는 낡은 양탄자가 깔린 바닥에 흐트러진 종이들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치려했지만 사람의 신체 구조도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그것을 주워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 핏발이 돋았다.

재빠르게 엎드린 크랭크는 서류를 긁어모아 읽기 시작했다.

“이건···.”

내용을 읽으며 분노에 젖은 그의 눈은 어느새 탐구심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값나가는 전리품을 챙길 생각은 하지 않고 급기야 방안의 책장으로 걸어가 서류철을 뽑아 정신없이 읽어보기 시작한 크랭크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굉장하군, 대단해, 이럴 수가,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토벌하러 들어왔다가 지식의 탐독에 빠진 크랭크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더니 나무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그 행동을 지켜보던 그림자가 등 뒤에서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더니 히죽 웃는다.

“흐,흐흐, 마, 마음에 들어···?”

핏발이 돈 눈을 돌린 크랭크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그림자의 멱살을 붙잡아 침대에 메다꽂았다.

휙! 퍽?!

“으! 으엑?!”

“누구냐? 마도사인가?”

서류는 내던진 크랭크는 그림자의 뒤통수를 내리누르고 그 가느다란 목에 단검을 뽑아 들이댔다. 침대에 얼굴을 들이박고 머리를 눌리고 있던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자 크랭크가 손에 힘을 뺐다.

겨우 얼굴을 돌리고 한숨을 내쉰 여자는 비굴하게 웃으며 크랭크를 올려다보았다.

“히히헤헤···. 어, 어때? 그거 굉장하지···? 조, 좀 더 볼래? 헤헤흐흐···.”

목에 칼을 들이댄 크랭크의 시선이 침대에 쏟아진 종잇조각으로 향했다.

“네놈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이런 지독한 연구를 한 것이냐? 내용은 탐나지만 너희는 선을 넘었어.”

“히히히···. 죄, 죄가 없다니? 그, 그걸 어, 어떻게 단정하지? 히히힛.”

크랭크의 눈이 흔들렸다가 곧 일그러졌다.

“네 연구는 훌륭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죽어서 네 손에 죽어간 사람들에게 사과해라.”

목을 썰어버리려는데 여자가 말했다.

“그거, 한 번 만, 더 말해줘.”

크랭크의 투구가 기울어졌다. 여자는 계속 말했다.

“내, 내 연, 연구를 치, 칭찬 받았어. 히히···. 듣기 조, 좋다. 스, 스승님들도, 다른 마, 마마도사들도 내가, 내가 하는 걸 쓰, 쓸모없다고, 해, 했는데···.”

목에 칼을 대고 잠시 여자를 내려다보던 크랭크가 칼을 치웠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섰다.

“네게 기회를 주지.”

“어?”

엎드려 있던 검은 로브의 여마도사가 천천히 머리를 든다. 씻질 않아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새하얗지만 음침하게 생긴 얼굴이 떠올라있다.

크랭크가 어느새 챙겨든 서류철을 흔들며 말했다.

“이건 내가 갖겠다. 그리고 네 연구 성과를 봐서 못 본 척 해주겠다. 이곳에서 도망쳐라.”

시무룩한 얼굴이 된 여자가 무릎을 세우고 침대에 앉더니 실실 웃었다.

“나, 나는 싸울 줄 몰라. 그, 그래도 고문, 당하는 건, 시, 싫으니 여, 여기서 네, 네가 주, 죽여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고 어깨의 힘이 빠진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너는 네게 실험 당한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히, 히히, 그, 그걸 알아도 내, 내가 아픈 건 싫어. 다, 다 그렇지 않아? 그, 그런 말을 하는 너, 너 조차도 마, 말이야.”

입을 다물고 있던 크랭크도 투구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 상황에 굳이 널 죽여서 내게 대체 뭐가 남지? 꿈자리가 뒤숭숭할 뿐이다. 나는 그냥 가겠다. 네 인생쯤은 네가 알아서 마무리해라.”

“자, 잠깐만!

문을 나서려던 크랭크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시뻘게진 여 흑마도사가 다리를 벌린다.

“그럼, 대신 나, 나랑 하지 않을래? 너, 너 그 몸 완전 내 취, 취향이거든. 마, 마음에 드는 나, 남자랑 워, 원 없이 해보고 죽으면 처, 천국에 가, 갈 수 있을 것, 같아.”

천국에 가겠다고? 이 짓을 해놓고?

텅-! 철컥!

문을 닫아 잠그고 몸을 돌린 크랭크가 성큼성큼 침대로 걸어갔다. 여마도사는 크랭크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줄 알고 히히 웃으며 팔을 들었지만 크랭크는 그것을 밀어내고 주먹으로 그 얼굴을 쥐어박았다.

퍽!

“아흑?! 아파! 왜 때려!?”

“맞을 때는 말을 더듬지 않는 군?”

짝짝! 퍽퍽!

손바닥으로 후려치고 주먹으로 몇 대 쥐어박자 여마도사가 곤죽이 된 얼굴로 코피를 흘리며 침대에 쓰러져 부들부들 떨어댔다.

부우욱! 찌이익!

우악스러운 손으로 여마도사가 입고 있는 낡은 검정 로브를 찢어버리자 어울리지 않게도 대단히 육감적인 알몸이 드러났다. 인상을 찌푸린 크랭크가 물었다.

“너 안에 속옷은 안 입나?”

“어으윽···! 아흑···!”

부어오른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옷장으로 걸어간 크랭크는 서랍을 잡아당겨 쏟았다. 그리고 적당한 옷을 고르더니 벽난로 안에 던져 넣고 재와 버무린 다음 가져다 내밀었다.

“입어.”

침대에 주저앉아 고통에 부들부들 떨어대며 아직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여마도사를 보고 크랭크는 거칠게 그녀를 다루어 직접 옷을 입혔다. 원피스라서 입히는 건 쉬웠다. 뒤집어씌우면 되니까.

“속옷이 없다는 것이 끔찍하군. 일어서라.”

시키는 대로 덜덜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서자 크랭크의 투구가 기울어졌다.

퍽!

“아으악?! 아파아!”

허벅지를 슬쩍 걷어차자 여마도사가 바로 주저앉아버렸다. 다리를 붙잡고 엉엉 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던 크랭크는 이제 허리를 숙여 그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아으아아···!”

얼굴이 엉망이 된 여마도사가 머리채를 붙잡혀 끌어올려져 눈물과 피가 섞인 콧물을 흘리며 구슬프게 울고 있다.

그걸 보는 크랭크는 다른 의미로 사뭇 진지했다.

“이 정도면 될까? 역시 입술도 터트릴까?”

“으, 으읍?!”

두 손으로 입을 가리자 크랭크가 팔을 내려 그녀의 다리가 바닥에 닿도록 했다.

“서라, 아니면 입술도 터트리겠다.”

기겁한 여마도사는 어떻게든 버텨서 중심을 잡았다.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가슴팍에도 오지 않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를 순순히 천국에 보낼 수는 없다. 너는 우리와 함께 이 지옥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네 연구가 아주 흥미롭다. 그래서 그걸 보수로 받고 안전한 곳까지 너의 탈출을 돕겠다. 싫다면 나는 그냥 가겠다. 장담하건데 너는 지금보다 더 지독한 꼴을 당하고 원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다.”

겁에 질려 크랭크를 올려다보던 여마도사의 눈에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사, 살려주세요! 뭐, 뭐든 할게! 나, 사, 사실 그, 연애도 못해봤어! 그, 그냥 죽긴 싫어!”

“살고자 하는 이유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해는 한다. 어쨌든 너는 지금부터 흑마도사에게 붙잡혀 고생하던 불쌍한 여자가 되는 거다. 혹시 가져갈 짐이 있나?”

그제야 크랭크의 속내를 알게 된 여마도사는 비틀비틀 걸어서 침대로 가더니 그 밑에서 노트 한권을 꺼내 가슴에 꼭 껴안았다.

“나, 나는 이, 이거 말고는 어, 없어.”

“내가 맡아주지 이리 줘.”

크랭크가 그걸 잡으려 하자 마녀가 몸을 돌리고 이를 드러냈다.

“이건 안 돼! 중요한 건 전부 여기에 있어!”

앙칼진 그녀에게서 노트를 빼앗는 대신 주변을 두리번거린 크랭크는 침대 맡에 놓여있던 곰인형을 가져와 나이프로 등을 찢었다.

“조, 존슨!”

크랭크가 시선을 돌리자 마녀가 움찔하면서 눈을 피했다. 곰 인형의 등을 벌린 크랭크가 말했다.

“여기다 넣어.”

머뭇대던 마녀는 노트를 인형 속에 넣었다. 크랭크는 바늘을 꺼내 재빠르게 그것을 꿰매어 여마도사의 커다란 가슴에 안겨주었다.

“그건 네 아기다. 넌 아기를 잃은 불쌍한 엄마가 되는 거야.”

“어, 응.”

몸을 돌린 크랭크는 보수로 챙겨갈 서류를 챙기기 위해 책장을 살폈다. 그걸 보고 여마도사가 비틀비틀 다가왔다.

“내, 내가 골라줄게.”

여마도사가 발돋움을 하면서 몇 권의 책을 꺼내 놓았다. 크랭크는 서류철 대신 그것을 가방에 넣으며 물었다.

“그리고 이 방안에는 뭐 돈 될 만한 것이 없나? 현금이라든가?”

“쓰 쓸 일이 없어서, 돈은 없어. 아, 자, 잠깐···.”

크랭크에게 걷어차인 다리를 절뚝이며 옷장으로 걸어간 마녀가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그, 금광석인데. 도, 돈이 될까?”

주먹 만 한 금덩이를 보고 크랭크의 두 눈이 투구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금덩이를 쥐고 있는 손을 덥석 붙잡은 그가 여마도사의 얼굴 앞으로 투구를 들이댔다.

“이걸 어디서 찾은 거지?!”

“어, 그, 그건···.”

순간 여마도사의 머릿속으로 번개가 쳤다. 그녀는 보기보다 똑똑한 여자였다. 이건 앞으로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무기가 될 거라 생각한 그녀가 히죽 웃는다.

“아, 안 가르쳐 줄래.”

분노한 크랭크의 주먹이 천천히 올라온다. 기겁한 여마도사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때, 때려도 안 가르쳐 줘!  나 데리고 나, 나가주면 아, 알려줄게!”

주먹을 내린 크랭크가 물었다.

“알았다. 그런데 너 이름이 뭐지?”

“투시롤.”

“들킬 가능성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아. 당분간 네 이름은 투나로 해.”

“투, 투나?”

투구를 끄덕인 크랭크가 자신의 가슴을 짚으며 말했다.

“나는 크랭크, 그래서 이제 너는 뭐라고?”

“투, 투나.”

“그리고?”

“어, 어어. 나, 나는 엄마 잃은 아이.”

“이렇게 엉덩이가 큰 아이가 어디 있나? 너는 아이 잃은 엄마다. 그래서 그 곰 인형을 안고 다니는 거다.”

긴장이 풀린 투나는 크랭크의 농담에 킥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그래, 알았어.”

“그럼 이제 여기서 나가자. 투나.”

크랭크의 손을 쳐다보던 투나는 재빨리 그 손을 붙잡고 문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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