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흑마도사 토벌대! 37
동굴을 벗어나 로비나 광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공간으로 돌아온 캐롯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난장판이 따로 없었지만 급격하게 상황이 정리되어가는 분위기였다. 분전하는 마도사가 좀 있었지만 단독 전투에는 체계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오토마톤을 앞세운 토벌대에는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갔다.
“아! 울파!”
캐롯이 손을 흔들자 오른손에 곤봉, 왼손에 롱소드를 들고 돌아다니며 흑마도사를 두들겨 패고 괴물을 반으로 나눠버리는 작업 중이던 울파가 고개를 돌린다. 오렌지 색 방열가발이 출렁거리는데 캐롯은 저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뒤! 조심!”
“응?”
캐롯이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나타난 흑마도사가 도끼로 후려쳤다.
빡!
캐롯의 작은 몸이 굴러버렸다. 캐롯이 움찔거리며 일어서려는데 흑마도사는 다시 도끼를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캬아아악!!!!”
“으아악?!”
흑마도사가 누군가에게 공격 받고 있는 틈을 타서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캐롯이 고개를 들자 기괴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으으악! 크악! 떨어져라! 이 괴물아!”
“크으악! 캭!”
흑마도사의 등에 매달려 있는 것은 사지가 절단된 사람이었다. 그것도 여자,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온몸이 흙과 먼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에 더럽혀진 모습으로 마도사의 등에 매달려 그 목을 깨물고 마구 흔들고 있었다.
마치 미친개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얍!”
덤벼든 캐롯이 마도사의 다리를 걷어차 버리자 기세 좋게 넘어진 흑마도사의 위로 그 괴물 같은 여자가 기어 올라가더니 끝끝내 목의 동맥을 끊어버렸다.
푸쉬이이익!
“끄으···!”
“캬악! 헉! 허억···!”
목을 물어뜯기고 절명한 마도사의 위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인 채 입에서 침과 피를 뚝뚝 흘리던 사지절단 여자가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는 캐롯이 서 있었다.
“당신 뭐야? 괜찮아?”
캐롯을 확인하고 기력을 다한 여자는 그대로 기절했다. 쓰러지기 직전, 말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가 슬쩍 웃는 것 같았다고 캐롯은 생각했다.
언덕위의 토벌대 본진, 전투 개시 후 1시간 반이 지났다.
해는 벌써 떴지만 구름이 끼어서 그리 밝지는 않았다. 구출된 사람들과 부상자들이 바쁘게 오고가는 와중에 경비 대원에게 보고를 받은 토벌단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쓴 중년남자가 팔짱을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대강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제 볼일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예. 도움 감사합니다.”
로마니가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걸 쳐다보던 토벌단장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로마니 씨가 빠졌다! 주변 경계를 강화해라!”
“에?! 저 아저씨 본진 지키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 바보들아! 뒤치기 당할까봐 부탁했었다! 탐색마법 가능한 마법사는 10분 단위로 주변을 살펴라!”
“생각보다 잡혀있었던 사람들이 많아요! 토벌단장님!”
“가져온 포션을 사용하고 신관들은 힐을 남발해라! 그리고 누가 밥 좀 해라! 간단하게 스튜든 뭐든 상관없다! 저 사람들 좀 먹이고 돌아오는 모험가들도 먹이자! 그리고 계단! 간이 계단을 비탈에 설치해라! 모양은 상관없다! 기능만 하면 된다!”
명령을 받은 경비대원들과 신관, 오토마톤,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시장 바닥 같은 느낌이었지만 상황을 살피고, 판단을 하고, 지휘를 하고, 정리를 하는 지휘관의 존재유무는 너무도 컸다.
간이 계단을 설치하면서 힘겹게 비탈을 타고 오르는 부상자를 잡아당기던 모험가가 뭔가 가죽 자루 같은 것이 비탈을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뭐긴 뭐야! 나다!”
“우왁!? 캐롯이에요?”
“그래! 좀 잡아줘!”
사람들이 끌어당겨줘서 겨우 위로 올라온 캐롯은 바닥에 다리를 펴고 주저앉으며 외쳤다.
“다리가 짧은 게 오늘 만큼 안타까운 적이 없었어!”
바닥에 내린 가죽 자루를 보고 사람들이 물었다.
“이건 뭐에요?”
“뭐냐? 벌써 한탕해온 거냐? 보기보단 약삭빠른 녀석이네?”
“엥? 아냐!”
캐롯이 소리를 빽 지르고는 자루를 열었다. 안에는 흙먼지와 피와 땀을 온몸에 바른 벌거벗은 여자가 들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팔꿈치 아래, 무릎 아래가 잘려나간 상태였다.
몰려온 사람들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온몸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이 개 쓰레기 같은 놈들이···!”
토벌단장이 콧수염을 파르르 떨면서 씹어서 뱉듯이 말했다. 캐롯이 말했다.
“믿어지겠어요들? 이 사람이 흑마도사의 목을 물어 씹어서 죽였다니까? 날 구해줬어.”
“상태는 어떠냐?”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 살아있어요.”
“신관! 이 사람의 치료를! 그리고 캐롯 너는 좀 쉬···.”
쉬라고 말하려 했던 토벌단장이 어색하게 입을 다물자 캐롯이 아하하 웃었다.
“오토마톤은 멈추지 않아! 가자! 용맹한 병아리 모험단이 나갈 시간이다!”
토벌대에 첫 출진한 모험가들이 작은 오토마톤의 부름에 우루루 몰려들었다. 그들에게도 실전경험은 중요했기 때문이다.
10여명의 모험가를 앞에 둔 캐롯이 씩씩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 여신관 하나가 무릎을 꿇더니 손수건을 꺼내 캐롯의 작은 머리에 감았다. 아까 마도사에게 맞은 곳에서 붉은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어, 괜찮아. 나는 오토마톤이야.”
“알아요. 하지만 내 기분이 좀 그래요.”
캐롯은 여신관이 하는 짓을 내버려 두었다. 머리에 손수건을 감은 캐롯이 손을 든다.
“가자! 경험치 쌓으러!”
“예!”
캐롯을 따라 초보 모험가들이 쏟아져 내려간다. 그걸 보던 토벌단장이 고개를 흔든다.
“불구덩이로 몰려가는 나방 같구나.”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길드를 이끌어갈 세대입니다. 우리는 저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고 있잖습니까.”
고개를 돌린 곳에는 그를 보좌하는 부관이 있었다. 콧수염을 좀 매만지던 토벌단장은 애써서 부정하진 않았다.
“그건 그래.”
전투개시 3시간이 지났을 무렵, 흑마도사길드 토벌전은 대부분 마무리 되었으나 깊숙한 곳에서의 산발적인 저항은 아직 계속 되고 있었다. 캐롯이 이끄는 병아리 모험단은 내부에서 몇 번의 크고 작은 전투를 겪은 다음 우연히 마도사의 연구실 하나를 발견했다.
“와! 운이 좋네!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챙기자!”
캐롯이 어디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 흑마도사의 연구실에서 값나가는 물건을 쑤셔 넣었다.
보고 있던 모험가들이 어색해 하자 캐롯이 쏘아붙였다.
“전리품 획득을 껄끄럽게 생각하지 마. 이것도 직업이고 생활이 걸렸어. 어서 챙겨 등신들아! 집에 가서 맥주 한 잔하고 뜨거운 물에 목욕하려면 돈이 있어야해! 그리고 울파나 나 같은 오토마톤 한 대 뽑아야지 않겠어?”
덜컥!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놀랍게도 신관들이었다.
“시, 신관님?”
“저는 돈을 많이 모아서 신전의 은혜를 갚고 결혼도 하고 캐롯 같이 귀여운 오토마톤도 한 대 들이고 싶어요.”
“저도.”
눈치 보던 모험가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캐롯이 물건을 챙기며 외쳤다.
“길드에서 묵인하는 건 배낭 하나 분량이야! 그 외에 주머니를 채울 정도까지만! 그 이상은 경비대에 압수당하니까 너무 욕심부리지마! 남의 물건을 탐내지도 말고!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찾아 챙겨!”
“하, 함정 같은 건 없을까요?”
“아, 그럴 수도 있어.”
“엑?!”
모두가 깜짝 놀라서 멈췄다. 서랍을 뒤지던 캐롯이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번 토벌은 기습이었어. 흑마도사들이 준비를 못하게 급하게 이뤄 진거지. 그래도 무슨 장치를 해놨으면 작동할 수도 있으니 알아서 주의 할 것.”
모두가 멈춰 있다가 결국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됐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옙!”
적당히 배낭을 채운 모험가들이 캐롯을 따라 우루루 이동했다. 전투가 마무리 되자 곳곳에서 모험가들이 흑마도사의 연구실을 뒤지고 다니면서 전리품을 획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중에 그들은 로마니와 울파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파티 몰리마법사단과 함께 사로잡은 포로를 이송하고 있었다.
“우와! 울파! 뒤에 사람들은 뭐야? 어! 게토 아저씨!”
선두의 울파가 손을 들어서 아는 척을 하며 지나갔고, 뒤 따르던 로마니도 초보 모험가들을 향해 웃으며 지나갔다. 그 뒤로 손과 허리에 밧줄을 묶은 검은 로브의 흑마도사들이 걷고 있었는데 게토는 그 근처에서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포로이동과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건 뭐야? 사로잡은 거야?”
“로마니 씨가 사로잡은 포로들이다. 여자도 꽤 섞여있고, 차마 학살을 할 수는 없었어.”
“맞아. 우린 너희들이랑은 달라서 최소한의 포로 대우를 해주거든? 그런데 조심해, 내 손가락은 방아쇠에서 꽤 잘 미끄러지는 편이야.”
자동석궁을 들고 걷던 토스트가 비아냥거렸지만 후드를 눌러쓴 흑마도사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일행의 후미를 맡은 리모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하여튼 너희들도 조심해, 어? 아는 얼굴이 좀 보이네, 비타,지오,보리스.”
“나도 있어요!”
롱보우를 든 코비가 외치자 리모가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목숨 보다 귀중한 건 많지만 그래도 쉽게 죽지 마라!”
“예!”
가볍게 인사를 나눈 리모가 걸어가자 캐롯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자! 어서 다음 가자! 이게 토벌의 묘미지! 보통 몬스터 소굴은 털어도 별로 나오는 게 없지만 이런 마도사 길드는 달라! 우리가 왜 빈 마차를 그렇게 많이 가져온 줄 아니? 경비대가 여기 있는 거 다 쓸어 담아 갈 거거든. 그전에 가능한 챙겨야해! 빨리빨리! 시간이 없으셈!”
“그런데 캐롯은 주인님 곁에 붙어 있지 않아도 되요?”
작은 배낭을 멘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하하 웃었다.
“응! 괜찮아. 나는 지금 초보 모험가를 돌봐주라는 길드 요청을 수행중이니까. 그리고 크랭크는 자기 실력을 잘 알아. 상황보고 위험하면 빠질 거야.”
비타가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을 굉장히 믿고 있네요?”
“당연하지! 좋은 주인에게는 좋은 오토마톤이 따르는 법이야. 잊지 마, 오토마톤은 너희 인간들의 손에 쥐어진 무기의 연장선에 서있어. 나도 결국 도구야. 잘 손질해주고 아껴주면 그만큼의 성능을 발휘하지만 막 대하면 가차 없이 발등에 불똥을 떨구지.”
다들 입을 헤 벌리고 캐롯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가 어떤 의문점을 짚어 냈다.
“엣? 그럼 이것도 일종의 연수예요?!”
“연수치고는 죽을 확률이 굉장히 높거든? 정신 바짝 차려.”
“으압! 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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