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34화 (34/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흑마도사 토벌대! 34

눈을 동그랗게 뜬 캐롯이 갑자기 빠하하 웃는다. 애덤의 얼굴이 빨갛게 되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엌! 미, 미안! 하지만 웃겨! 오토마톤에게 인간 친구라니! 하하하! 최고로 상쾌한 기분이야!”

고개를 돌린 애덤이 크랭크에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크랭크, 캐롯은 요즘 점점 더 미쳐가는 것 같군요.”

“저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도 가끔 겁날 지경이니까.”

그때 근엄한 표정의 길드장이 발판 위 올라서서 조금 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모험가들이 대화를 멈추고 집중한다.

“출석 명단 확인 하겠습니다. 순서대로 와 주십시오. 파티는 파티 리더만 와주세요.”

초보 모험가가 중얼 거렸다.

“명단 확인?”

“응, 이런 토벌전은 대규모 인원이 연합을 이루는 거기 때문에 출발, 도착, 복귀 할 때 2~3번 정도 명단을 확인해. 인원수 속여서 의뢰비 떼어먹은 경우가 곧잘 있거든. 파티 리더는 가서 파티 명단 확인하고, 개인적으로 온 친구들은 자기 이름 확인해. 빨리빨리!”

캐롯의 설명과 성화에 고개를 끄덕인 젊은이들이 움직였다.

그걸 곁눈질로 보고 베테랑 모험가들이 쑥떡 거렸다.

“저거 좋네, 병아리들은 저 땅콩에게 맡겨두면 되겠군.”

“아아, 그러게. 보모가 있어서 다행이야.”

연륜 넘치는 모험가들의 실물을 신나게 구경하던 신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입을 열었다.

“울파? 울파가 있어! 그렇다면 미중년으로 소문난 로마니 씨도?! 꺅! 저기 있어!”

“응?”

“어디?! 준용사급 모험가 로마니의 실물!!”

어릴 때부터 모험가들의 전설을 들으며 모험가가 된 젊은이들이 고개를 돌린다. 명단 확인 차 모험가들이 줄을 선 곳에 카우보이모자를 쓴 중년 남자와 오토마톤 한 대가 서있었다.

“오, 울파.”

“캐롯! 울파를 알아요?”

“아니 몰라.”

초보 모험가들이 아르곤 최고의 마당발 캐롯이 모르는 사람도 있냐고 놀라워했지만 캐롯은 그런 말 말라고 손을 흔들었다.

“내가 들쑤시고 다니는 바람에 이름이 좀 팔린 편이지만 크랭크와 나는 중하위 랭크야. 저럼 초대형 모험가랑 같이 다닐 일이 없어. 그런데 별일이네, 울파랑 로마니 콤비가 이런 토벌전에 참가하다니.”

“로마니 씨는 토벌전에 잘 안와요?”

“응, 쟤네는 길드에서 인정하는 상위 등급이잖아? 상위 등급은 하는 일부터가 달라. 국가 수준의 의뢰나 조사에 동원되거든?”

캐롯의 친절한 설명에 몰려있던 초보들이 처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캐롯이 히죽 웃었다.

“으흥~! 마침 잘됐다. 울파가 그렇게 전투력이 높다는데 어디 상위 랭크는 어떻게 싸우나 구경 한번 해보고 싶으네.”

“오오!”

출석 확인이 끝나자 길드장이 짧게 말했다.

“이번 토벌은 경비단에서도 함께 합니다. 길안내도 그쪽에서 해주기로 했으니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아직 산더미만큼 있습니다.”

길드장의 말이 끝나고 경비대장이 발판에 올라와 몇 가지 안내사항을 설명하고 출발을 지시했다.

“아르곤 흑마도사 길드 토벌대 출발합니다.”

늘 있는 토벌전이지만 이번엔 상대가 상대다보니 모험가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배속된 마차를 나눠 타고 다들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캐롯은 길드 요청으로 초보 모험가들의 인솔을 도맡게 되었다. 초보 모험가의 생존률이 엉망이다 보니 최근 길드 차원에서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인솔에는 캐롯의 마스터 크랭크도 덩달아 포함되었다.

“와아···!”

“헤에···!”

커다란 몸을 신기한 듯이 올려다보는 여 신관과 여자 모험가들의 사이에 앉아 바느질에 여념이 없던 크랭크가 집게가위로 실을 자르고 전투용 가죽 장갑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그것을 옆자리에 앉은 여성 격투가에게 내밀었다.

“다됐습니다.”

“와! 고마워요!”

“저, 제 것도 좀 봐주세요!”

투구를 돌린 크랭크는 청년이 내미는 자켓을 펴보더니 돌려주었다.

“이건 아직 괜찮아 보이는 군요. 좀 더 찢어지면 수선 합시다. 거기 당신, 갈색 짧은 머리의, 예. 당신, 그거 활 잠시 볼 수 있을까요.”

달리는 짐마차에 앉은 크랭크는 초보 모험가들의 장비를 손봐주고 있었다.

활을 받아서 시위를 당겨보던 크랭크는 허리의 가방에서 도구를 꺼내더니 몇 군데를 조이고 보강을 한 다음 돌려주었다.

“그 활은 전투용으로는 이제 수명이 다됐습니다. 전리품을 획득하거나 돈을 모아 새 걸로 바꾸세요.”

“고, 고맙습니다.”

대략 장비를 전부 손봐준 크랭크는 잠시 풍경을 구경하다가 가만히 쳐다보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공구를 꺼내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건 가죽 수선 송곳입니다. 이렇게 찌르고, 이 구멍을 통해서 끈을 밀어 넣어 간단한 바느질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시장에 팔고 있으니 사서 연습하세요. 장비의 간단한 수리는 직접 해야 경비를 아낄 수 있습니다.”

“저 캐롯을 당신이 만든 건가요?”

누군가가 갑자기 질문했다. 크랭크는 투구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나는 전반적인 유지보수개조를 했을 뿐, 만든 것은 아닙니다. 캐롯은 처음부터 기성품이었습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크랭크가 덧붙였다.

“소녀형 애완용 오토마톤, 오토마톤 중에서 가장 작고, 가장 싼 것입니다. 가끔 일반 가정에서도 사용 하지요.”

“헉! 나 한번 봤어요! 그 작은 오토마톤!”

그때 마부석에 앉은 캐롯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애완용이 아니야. 6천만 리즈가 넘는 가치를 자랑하는 전투용 오토마톤이라고.”

“전투용!”

“6천만?!”

초보 모험가들이 놀라워하자 크랭크는 캐롯을 좀 바라보았다가 투구를 돌렸다.

“캐롯은 처음부터 저렇게 잘나지 않았습니다. 짐꾼 대용으로 쓰려고 프레임을 보강하고, 역시 좀 더 빠르게 움직이면 좋을 것 같아 고출력 모터와 인공 근육을 늘리고, 그러다보니 전투에도 쓸모가 있지 않을까하여···.”

“앗! 또 시작했네. 크랭크! 정신 차려!”

“아.”

혼자서 떠들어대던 테크니컬 근육양동이가 갑자기 멈추더니 그 특유의 양동이 투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참 기괴하여 모험가들 몇몇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크랭크는 간단하게 정리했다.

“하나둘 고치다보니 이렇게 됐지요.”

“그, 그럼 저라도 오토마톤을 구해서 당신처럼 하면···.”

마부석에 앉은 캐롯이 뒤를 돌아보았다.

“너님 돈 많아?”

“예? 아, 아니요. 아직···.”

“크랭크는 내 몸에 1억 4천만 리즈가 넘는 돈을 발랐어.”

마차를 몰던 경비대원까지 고개를 돌렸다.

“1억 4천만?! 웬만한 단독주택 한 채 수준이잖아요!?”

“사실이에요? 크랭크!”

친절한 거인은 갑자기 커다란 두 손으로 투구의 얼굴 부분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징그럽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해서 어쩐지 귀여워 보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런 큰돈을 쓰진 않았습니다. 조금 씩, 조금 씩, 부품을 사고, 고급 장비를 달고, 시행착오로 멀쩡한 부품도 망가뜨려가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돈을 모아 집을 사려고 했었습니다.”

새내기 모험가들은 그의 멈추지 못한 광기에 하나 같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럼 모험으로 번 돈의 대부분을···.”

“약간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를 때려 부었습니다. 캐롯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평범하게 가정을 이뤘을 겁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여러 가지 의미로 흔들렸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크랭크가 여신관에게 투구를 돌렸다. 여신관이 말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좋은 질문이군요. 그렇다면 시행착오로 망가트린 부품들과 작업을 한결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당한 시간과 금액을 아낄 수 있겠군요.”

어이가 없어진 사람들이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크랭크가 덧붙였다.

“캐롯은 나의 최고 걸작이라고 자부합니다. 5년의 시간과 1억 4천만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엣헴!”

캐롯의 귀여운 헛기침에 모두가 즐거운 얼굴을 했다. 말이 나온 김에 오토마톤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 세계의 모험가 직종에서 동원 할 수 있는 장비의 거의 최고점에 도달한 물건이 전투용 오토마톤이기 때문에 이 기회에 그 방면의 프로에게 미리 들을 수 있는 건 들어두려고 했다.

관리는요? 가격은요? 운영비는? 크랭크는 아는 선에서 대답하고 곤란한 것은 적당히 둘러댔다.

“파티 모집은 안하세요?”

“안합니다.”

“신붓감 모집은요?”

“당신에겐 더 좋은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어깨를 펴세요.”

몇몇이 실망스런 표정을 했다. 크랭크는 캐롯을 가리켰다.

“파티 모집을 안 하는 대신 캐롯을 여러분께 대여하고 있지요.”

마부석에 앉아있던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윙크를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마차에 탄 사람들이 웃거나 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크랭크가 낮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죽거나 불구가 되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힘들다면 언제라도 포기하고 목숨을 건지기 바랍니다. 아무도 탓하지 않습니다.”

흑마도사들과의 전투를 앞에 둔 그들이 현실을 인지하고 다들 숙연해졌다. 캐롯이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버럭 외쳤다.

“아! 또 왜 그런 소릴 해서 애들 기를 죽이고 그래!”

“아니, 나는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걱정 마! 친구들! 쉬운 의뢰만 처리하면 못해먹을 것도 아냐. 나중에 크게 돈 벌어서 값비싼 장비를 구입하면 이 짓도 꽤 할 만 하다고?”

캐롯은 아예 뒤로 돌아앉아 말했다.

“크랭크가 그렇게 일했어. 자기 수준을 넘어서는 모험은 안했어. 도무지 벌이가 없으면 영주님네 농장에 나가서 일도 하고 그랬어. 처음부터 나나 울파 같은 오토마톤이 너희와 함께 하진 않아. 그러니 흑마도사를 때려잡아서 한몫 단단히 챙기자고! 그러려고 이 마차에 탄 거잖아!”

“오우오!”

청년들이 다시 활기를 띄었다. 크랭크는 투구를 긁적이며 자신의 실수를 통감했다.

“그런데 크랭크는 뭘 먹으면 그렇게 커져요? 근육요. 같은 남자로서 좀 부럽네요.”

양동이 속 눈빛에 붉은 광기가 깃든다. 크랭크가 청년에게 투구를 들이밀며 말했다.

“고기를 많이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면 나처럼 됩니다. 무거운 철검을 휘두르려면 어쨌든 근육이 많이 필요한 법이지요.”

“아, 저희 형편에 매끼 고기는 좀···.”

크랭크가 투구를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이거 압니까? 트롤 고기가 꽤 맛있습니다. 오크 고기도.”

“헛! 그걸 먹어요?”

“남부 지방에선 몬스터를 잡으면 그 고기를 먹곤 하지요. 그래서 남부 출신은 다들 몸이 큽니다.”

팔을 들어 올린 크랭크가 힘을 주자 가죽 자켓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마부석의 캐롯이 또 시작이라는 한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저 근육찬가까진 말리진 않았다.

크랭크의 근육찬가는 1차 숙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는 야영 준비를 할 때 정말 어디서 오크 한 마리를 때려 잡아오더니 급소를 설명하며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잘라 굽기 시작했다.

“마, 맛있쪙!”

“으윽! 그, 그래도 이걸 어떻게···!”

“이족 보행하는 돼지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합니다. 어쨌든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음냠냠!”

“소금! 소금 가진 거 있는 사람 좀 내놔봐!”

고기 굽는 것을 돕고 있던 캐롯이 근처에서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 모험가들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자들은 잘 먹으면 가슴이 커진데.”

“뭣?! 그게 사실이야?! 연구 보고서나 논문 같은 거 있어?”

뒤늦게 인사차 찾아 온 몰리가 우연히 그 말을 듣고 눈에 불을 켰다.

“그런 건 모르겠는데 개척민 마을에서 본 남부 출신 여자들은 다들 가슴이 엄청 컸어.”

“정말!? 오크 고기 따위 못 먹을 것도 아니잖아?! 크랭크!”

푸줏간 주인마냥 오크 고기를 썰고 있던 크랭크의 투구가 들어 올려졌다.

“저녁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물론, 언제든 환영합니다.”

어느새 자켓을 벗어던지고 우람한 근육을 드러낸 크랭크는 작업할 때 입는 가죽 앞치마 하나만 걸친 채 본격적으로 뜨겁게 달궈진 바위에다 오크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이!!

“캐롯, 향신료가 부족해. 저쪽 산비탈에 민트가 자라나 있는 걸 봤어. 좀 따줘.”

“알았어!”

우다다다 달려가서 민트 잎을 한 아름 따온 캐롯은 어느새 손님들이 많아진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우와! 잘 팔린다! 하하하! 가게 차려도 되겠는데?!”

“그래 괜찮은 걸.”

하지만 싫은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저런 야만인들!”

“하지만 고기 냄새는 끝내 주는 군.”

“이봐! 어디가!”

“돼지고기 좀 얻어먹으러, 아까 들었는데 남부 뱃놈들이 덩치가 큰 이유가 몬스터 고기를 뜯어먹어서래. 크랭크 저 친구 몸도 그렇고, 나도 좀 커져보고 싶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오크 고기를···!”

앞서 가던 사내가 흉흉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오크들도 우릴 잡아먹는데 우리가 그 놈들을 못 잡아먹을 건 뭐야?”

오크 한 마리가 금세 동나버리자 남은 모험가들은 장비를 챙겨 근처 숲을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근육의 길의 인도자이며 동시에 오크 도살자 크랭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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