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청동문 조사단장! 32
주변 사람들이 크랭크를 보고 다시 풉 하고 고개를 돌렸다.
“또 좀 좋게 불러주는 사람들은 이렇게 불러, 친절한 거인.”
“아, 그건 그럴 수도···.”
듣고 있던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캐롯이 말을 이었다.
“마을이 트롤 고기 때문에 바빠졌어. 활기가 돌아. 지금 곳곳에서 화덕 만들고 장작 구하느라 난리도 아냐. 재미있네. 그래서 우린 언제 돌아가?”
트롤 고기를 구해오느라 시간이 어정쩡해졌기에 캐롯이 물었다.
“지금가면 빠듯할 테고 무엇보다 북부식 고기 훈제 방법을 보고 싶다.”
“알았어. 그럼 나는 동네 사람들 호위해서 장작 좀 구해올게. 다들 오자마자 순찰 나가서 한가한 오토마톤이 나밖에 없어.”
“그래 부탁해.”
캐롯을 배웅하고 팔을 걷어붙인 크랭크는 마을 젊은이들을 도와 북부식 고기 훈제를 시연했다. 그걸 보던 베벨은 흐뭇한 표정을 했다.
“저런 게 사위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이튿날 아침, 크랭크는 아르곤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거 받게.”
“이게 뭐예요?”
캐롯이 큼직한 자루를 받아들고 촌장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편지야. 캐롯이 문자를 가르쳐줘서 다들 글 정도는 쓸 수 있게 되었거든? 친인척에게 안부를 전하는 거지. 고맙구나. 캐롯.”
캐롯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엣헴!”
사람들이 캐롯을 보고 미소 지었다. 크랭크는 가이거와 게이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을의 방위를 잘 부탁한다. 편지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또 보자고!”
토벌한 트롤 소굴로 고기를 가지러 왔다가 동행한 마을 사람들로 부터 지름길의 존재를 알게 된 크랭크는, 하루 만에 아르곤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와! 세상에! 하루 만에 왔어! 거의 밤이지만!”
“그 트롤 소굴이었던 돌산에서 남동쪽으로 빠지는 곳에 옛 길이 있을 줄이야. 길드에 이야기해서 지도를 다시 그려야겠다.”
“그거 좋네.”
공방으로 가기 전에 마차를 반납하고 저녁을 먹을 겸 길드 식당에 들린 크랭크와 캐롯은 그곳에서 수도에서 파견된 사람들을 만났다.
“아아! 크랭크! 어디 갔다가 지금 오셨어요!”
“무슨 일이십니까?”
길드의 여성 접수원 오리온이 크랭크의 손을 잡아끌었고 뒤따라 나타난 남자 접수원은 캐롯을 덥석 들어서 옮겼다.
“어어? 어디가? 어디 가는 거야?”
“지금 수도에서 조사단이 와계세요! 두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 하신다고요!”
“어, 근데 나는 사람 아닌데.”
“캐롯은 여기서는 거의 사람이니까 상관없어요!”
어린 아이 마냥 겨드랑이를 붙들려 옮겨지고 있는 중이었지만 캐롯은 어쩐지 기분 좋았다.
응접실로 올라가자 마침 길드장도 함께 있었다.
“오! 크랭크! 지금 돌아온 겁니까?”
“예. 길드장님.”
“잘됐군요. 인사하세요. 이쪽은 수도에서 파견오신 조사단장님이십니다. ···말씀드렸던 저희 모험가입니다.”
응접실의 상석에는 치렁치렁한 금발을 산발하고 하얀 얼굴을 한 20대 여자가 화려한 자켓과 다리에 딱 달라붙은 바지를 입고 고압적인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그대가 모험가 크랭크 인가? 저 청동문을 발견한?”
“예. 그렇습니다.”
크랭크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발견 당시 모험가들의 이야기라면 게토의 파티도 있을 텐데, 굳이 우리까지?
고개를 돌린 금발 여자는 그때까지 접수원에게 번쩍 들려 대롱거리던 캐롯을 보았다가 엄숙한 얼굴을 슬쩍 돌리고 웃음을 참으려 했다.
인간적인 그녀의 얼굴을 보고 길드장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멘슨, 그만 내려주게.”
바닥에 다리를 닿게 된 캐롯은 응접실에 앉은 사람들 중 상석의 금발 여자를 보고 치마를 살짝 올리며 무릎을 굽혔다.
“반갑습니다. 저는 모험가 크랭크의 오토마톤 캐롯이라고 합니다.”
이채로운 눈빛으로 모두가 두 사람을 보았다.
“이 몸은 수도 왕립 제1근위대 대장을 맡고 있는 쥬세페 이리디움, 아르곤 청동문의 조사단장으로 이곳에 왔다. 그대들의 이야기는 간간히 들었다. 듣기로, 그 엘프 장로와 독대를 하고 위협하여 공동조사를 강요한 오토마톤이 저 캐롯이라고 하던데, 오토마톤 캐롯에게 직접 듣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대들을 기다렸다.”
크랭크와 캐롯을 서로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는 다시 앞을 보았다.
쥬세페가 다시 입을 열려다가 시계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보좌관이 대신 말했다.
“늦은 시간이므로, 전하께서는 그만 업무를 마무리 하시고자 합니다. 모험가 크랭크와 오토마톤 캐롯은 내일 다시 면담에 응할 수 있도록 하세요. 시간과 장소는 이쪽에서 다시 통보하겠습니다.”
어리둥절한 기분이었지만 길드장의 표정과 눈짓에 크랭크는 요령 좋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문을 나섰다. 뒤따르던 캐롯이 뒤를 돌아보았는데 전하라고 불리운 금발 여성이 소파의 쿠션에 팔꿈치를 대고 흥미로운 시선을 하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들어갈 때는 없었던 호위 무사들이 응접실 앞에 서있어서 크랭크와 캐롯은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벽에 손을 대고 한숨을 쉬는 크랭크에게 접수원 오리온이 걱정스레 다가왔다.
“크랭크 괜찮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저 분들은 누구십니까? 조사단장 치고는 뭔가···. 전하시라고요?”
“그, 공주님이시래요.”
듣고 있던 크랭크와 캐롯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우와! 공주? 왕족이라는 거야? 어머나, 세상에!”
크랭크가 이제 투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필사적으로 왕족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지 왜 캐롯을 지목했는지, 엘프 장로와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가 곧 그만 두었다.
“배가 고프군,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그래! 하하! 우리가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말이야! 쫄 필요는 없지!”
잠시 후 식당으로 찾아온 길드 직원들에게 내일의 면담 시간을 전해들은 크랭크는 이튿날 길드에 다시 출두했다.
크랭크의 곁을 타박타박 걸으며 캐롯이 중얼 거렸다.
“시간이 딱 오후의 티타임이네. 이건 내 생각인데, 저 공주님은 조사단을 핑계로 지방으로 휴가를 내려 온 것 같아.”
“그럴 듯해. 정말 시국을 다투는 일이었다면 업무시간 지났다고 마무리 하지 않았겠지.”
“틀림없이 응접실에 앉아서 티타임을 즐기며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캐롯의 예상대로 길드 응접실에서 재회한 쥬세페 공주는 우아한 찻잔을 들고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도록. 제 시간에 맞춰서 왔군.”
쥬세페 공주의 눈짓에 크랭크와 캐롯의 앞에도 찻잔이 놓아졌다.
캐롯이 이상한 표정으로 자기 찻잔을 내려다보는 와중에 크랭크가 물었다.
“그래서, 검은 소나무 탑의 장로와 나눈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는 겁니까?”
“그렇지. 오토마톤 캐롯, 그대에게 묻겠는데. 당시의 대화 내용을 들려 줄 수 있겠는가? 물론 당시 모험가들을 이야기도 들어보았지만 장본인의 말도 한번 들어보고 싶군.”
찻잔을 들어 그윽한 향기를 맡아보던 캐롯이 고개를 돌리자 쥬세페 공주의 표정이 흐뭇하게 바뀌었다.
“향이 참 좋지?”
“예, 그렇네요.”
잔을 든 채로 캐롯은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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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이 자랑하는 공중 전함의 그 유명한 마력포를 쏘더라도 상관없어, 주인을 잃고 살아남은 오토마톤은 당신들은 물론 저 공중전함까지 공격 할 거야. 우리는 작동정지가 되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다.”
잔을 내린 캐롯이 눈을 깜빡이며 쥬세페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우리 친하게 지내지 않을래요?”
어느새 잔을 내리고 그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공주는 주먹을 쥐고 감탄사를 내놓았다.
“오오! 그래서?”
“그러고 필림 장로님은 저희 쪽 책임자를 부르셨어요. 제가 그런 깡을 부린 건 병력 수준이 꽤 할만 해 보였기 때문이에요. 우리 쪽은 오토마톤 만해도 30기 넘게 있었어요.”
공주의 주변에 앉아있던 사내들이 팔짱을 하고 저기들 끼리 좀 수근 거렸다. 한 사람이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덧붙여 당시 그 공중전함의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 볼 수 있겠나?”
펜을 쥔 캐롯이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모양을 흐뭇하게 보던 쥬세페 공주가 내내 가만히 있는 크랭크를 보았다.
“길드장에게 들었는데 그대의 투구는 저주를 감추고 있다지? 무슨 저주인가?”
크랭크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 호기심에 순진무구한 눈빛을 발하고 있는 공주를 보았다. 왕족 앞에서 투구를 쓰고 있는 건 확실히 무례가 될 것이다. 그걸 설득해준 길드장에게 감사하면서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맨 얼굴을 본 사람들은 전부 착란을 일으키더군요.”
“그런가? 한번 보고···!”
“으흐허어흠!”
근육질의 노신사가 거창한 헛기침을 하자 쥬세페 공주가 찔끔한 표정을 했다. 옆에 앉아 있던 여 보좌관이 매서운 눈으로 크랭크를 보았다.
“솔직히 저는 당신의 입회를 반대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주라니 풀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까?”
크랭크는 팔짱을 꼈다.
“그것이 신관이나 마법사들도 제 얼굴을 보고는 착란을 일으켜서요.”
쥬세페 공주가 끼어들었다.
“그 저주를 건 사람은 누구인가? 요즘 그대들의 이야기가 수도에서 인기란 말이야. 새로운 이야기는 영애들에게 잘 팔리지.”
입을 다문 크랭크가 길드장을 쳐다보자 길드장이 고개를 휙 하고 돌려버렸다.
“길드장님 혹시 길드 모험가들의 의뢰 보고서를···?”
“···어렸을 적 유명한 모험가의 모험담 정도는 들었을 거 아닙니까? 여러분의 이야기는 길드 운영에 상당한 보탬이 된 답니다.”
길드장이 고개를 돌린 상태로 말하자 쥬세페 공주가 씩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누군가?”
“마녀 입니다. 마녀 고르곤.”
팔짱을 하고 있던 근육 노신사가 고개를 돌렸다.
“그 서쪽의 마녀 고르곤?”
“예.”
“다 그렸어요!”
이야기 중간에 캐롯이 끼어들었다.
종이를 받아든 여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확실하군요. 이건 검은 소나무 탑의 연구함 아네모네 입니다.”
“에? 연구함? 전함 아니에요?”
“방어용으로 함포가 달려 있지만 전함은 아닙니다. 이건 연구함으로, 뭔가···.”
말을 하다 말고 여 보좌관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했다. 그러다가 쥬세페 공주에게 귓속말을 했다.
고개를 끄덕인 쥬세페가 말했다.
“면담을 마치겠다. 협조에 감사한다. 물러가도 좋다. 길드장, 그대도 자리를 비워주게 회의를 하고 싶다.”
“알겠습니다.”
길드장과 크랭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문을 나섰다. 2층 복도를 걸으며 크랭크가 물었다.
“모험담은 잘 팔립니까?”
한방 먹은 표정을 한 길드장이 두 손을 들었다.
“말도 없이 미안하게 됐습니다. 모험가들의 의뢰 보고서를 각색해서 동화책 비슷하게 팔고 있지요. 잘 팔리더군요.”
크랭크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뒤 따라 붙은 캐롯이 물었다.
“길드장님! 우리 이야기는 어때요? 인기 있어요?”
“그럼! 드래곤을 때려잡는 말도 안 되는 것보다는 여러분들 같은 소박한 이야기가 요즘 수요가 꽤 있어. 의외로 말이야.”
“모르는 척 하고 있겠습니다만 금방 탄로 날 겁니다.”
“그때는 맥주라도 한 잔 씩 돌려야겠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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