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30화 (30/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염세주의자! 30

나무 사이에서 매서운 눈을 한 3대의 오토마톤들이 숨어 있다가 신호를 받고 뛰쳐나갔다.

팅-! 칭!

캐롯이 거대한 투핸드 소드를 가지고 선두에서 달리는데 검 끝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불꽃이 튄다.

“트롤은 재생 하니까 머리를 심장에서 완전 분리해야해!”

“알고 있다!”

“이하 동문!”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오토마톤들도 같은 모양의 투핸드 소드를 잡은 채 달리다가 거리를 벌리더니 곧 괴성을 지르는 트롤들과 맞붙었다.

“으이야아아아!!!”

달리던 반동으로 날아오른 캐롯이 커다란 투핸드 소드를 휘둘러 돌도끼를 들어 올리는 트롤의 두꺼운 목과 팔을 단숨에 베어냈다.

푸후와아아악!!!

사방으로 붉은 피가 뿌려지고 그걸 그대로 뒤집어 쓴 캐롯이 자기 몸집보다 더 큰 칼을 가볍게 다루어 작은 어깨에 걸쳐 올렸다.

“아하하하! 역시 장비가 좋아야지!”

쿵-! 머리를 잃은 트롤의 거체가 땅으로 꼬꾸라진다.

오토마톤 3대가 평화로운 트롤 소굴에서 난동을 피우는 동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크랭크가 거대한 롱보우로 장거리 지원사격을 했다.

퉁-! 퉁-!

이전 초보 모험가 코비가 사용하던 것과 같은 것으로, 기형적으로 큰 활은 엄청난 운동 에너지로 화살을 날려 어지간한 몬스터의 피부 정도는 관통 해버리지만 비싸고, 무겁고, 사용자에게 일정 이상의 완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다.

크랭크는 그 활을 가볍게 당기며 중얼거렸다.

“당길 때 마다 등과 어깨에 걸리는 부하가 기분 좋은데. 이거 좋은 운동이 되는 군.”

퉁! 퉁!

퍽! 퍽!

몸에 화살이 박혀 괴로워하는 트롤에겐 어김없이 오토마톤들의 투핸드 소드가 날아들었다.

“캬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오오!!”

트롤이 돌도끼를 휘둘렀지만 인간 크기이면서 더 재빠르고 더 힘이 센 오토마톤들에겐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 그러다 트롤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오토마톤을 무시하고 크랭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퀘에에에에에!!!!”

화살을 몇 대 쏘아 보았지만 트롤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크랭크는 준비해놓았던 스크롤을 찢으며 외쳤다.

“디그=개미지옥.”

푸화아악!!

달려오던 트롤이 흙먼지에 휩싸이더니 사라졌다.

흙먼지가 걷힌 곳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고 그 안에 트롤이 떨어져 괴성을 지르고 있었는데 좀처럼 빠져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와, 쟤 못 올라오는 거야?”

“그리 깊어 보이는 지는 않는데.”

뒤 쫓아왔다가 트롤을 놓치고 구덩이를 내려다보는 검은 머리카락의 오토마톤이 말하자 크랭크가 덧붙였다.

“땅파기 마법에 오르기 금지를 연결시켜 놓은 거다. 비싸지만 효과는 발군이지. 다 처리했나?”

“아니, 주인님 위험할 까봐 잠깐 와봤어. 동굴도 털어볼까?”

“그래. 어린 개체도 모두 처리하자. 살려둬 봤자 사람만 잡아먹을 뿐이니까. 가이거.”

“알았다.”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오토마톤 가이거가 투핸드 소드를 들고 뛰어갔다. 하지만 캐롯은 가만히 구덩이를 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트롤을 내려다보았다.

“저건 어떻게 처리하지? 그냥 둬?”

“아니, 쓸데없는 복수심을 남겨둬선 곤란해.”

크랭크는 파이어볼 스크롤을 찢었다.

쿠우우웅-!

사방으로 흙먼지가 휘날리고 크랭크가 손을 휘저으며 걸어 나왔다. 그때쯤 트롤 토벌은 끝난 상황이었다. 크랭크도 그랬지만 캐롯은 새삼 놀라워했다.

“와! 오토마톤이라는 게 대단하구나. 나 같은 게 2대 더 있으니까 상당하네? 중형 트롤 소굴을 단숨에 털어버렸어.”

“솔직히 나도 좀 그렇게 생각해.”

“게이지!”

목이 잘린 트롤이 즐비한 돌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붉은 머리카락의 오토마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이스터 크랭크.”

“트롤의 개체수는 얼마나 되나?”

“동굴은 안은 모르겠습니다만 현재 확인된 것만 32체 있습니다.”

“그래.”

잠시 후 동굴 안에서 가이거가 나왔다.

“내부의 토벌도 끝났다.”

“전리품은?”

“전리품?”

“아이참! 당연하지! 가자! 한 번 털어보고 올게!”

“이거 가져가라.”

크랭크가 배낭에서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유리구슬을 꺼냈다.

“특제 마력폭탄이야. 돌아보고 중심부에 놓고 와.”

“알았어.”

캐롯과 가이거가 돌산의 동굴 안으로 들어간 사이 크랭크는 쓰러진 트롤의 거체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로서는 이거 하나도 제대로 상대 할 수 없는데 대단하군.”

“당신의 노력 덕분입니다.”

곁에 서 있던 게이지의 말이었다.

“마이스터 크랭크 덕분에 우리가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몸은 당신이 수리해 주신 것입니다. 현재 모든 성능치가 규격품의 그것을 아득히 상회합니다.”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군.”

오토마톤의 칭찬에 좀 쑥스러워진 크랭크가 고개를 돌렸다.

“야호! 우리 왔어!”

캐롯과 가이거가 큼직한 가죽으로 싸맨 무언가를 끌고 동굴에서 나왔다.

“이놈들은 사람을 살려두지 않아. 뼈 밖에 없더라. 이건 안에 굴러다니던 잡동사니랑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거지? 네가 찾던 거.”

가죽 자루 속에 잡동사니와 함께 쌓여 있던 것은 하드스킨 오토마톤의 분리된 상하반신이었다.

“동굴 안에 있었어?”

“우연히 발견해서 장난감 삼아 가지고 들어갔던 게 아닐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당시 급한 부상자 때문에 나중에 다시 수거하기로 했었던 거니까.”

“그런데 이거 누구 거였어?”

크랭크는 수첩을 꺼내 보면서 말했다.

“몰라. 애초에 처음 토벌을 왔을 때 바위 틈새에 있던 것을 발견했거든, 조사해서 알게 된 건데. 이 돌산은 몬스터의 둥지로 꽤 유명하더군. 같은 장소로 다른 몬스터의 토벌이 여러 번 있었어.”

“아 그럼 여기 몬스터 맛 집이네? 이건 언제 왔었는지도 모르는 우리 선배들의 아득한 발자취 같은 거고?”

“그럼 셈이지. 폭탄 수정구는 갔다 놨어?”

“동굴 중앙에 갔다 왔어.”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는 마차를 가져와 전리품을 실은 다음 멀리 떨어져서 스크롤을 찢었다.

그리고 돌산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쿠쿵-!

말들이 깜짝 놀랐지만 가이거와 게이지가 고삐를 잡고 있어서 난동을 부리진 않았다. 모두는 고개를 돌려 돌산이 주저앉은 것을 보았다.

“오오! 멋지다! 핑거스냅!”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는 돌산을 보면서 크랭크가 말했다.

“됐어. 한 동안 조용하겠지.”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가 쓰러진 트롤의 시체를 가만히 보던 크랭크의 눈에 광기가 깃들었다. 크랭크가 손을 들어 트롤을 가리켰다.

“저 녀석 허벅지 살 좀 베어가자.”

“왜?”

“전에 들었는데, 남부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몬스터를 잡아먹는다고 하더군.”

“너도 먹잖아?”

“나는 먹는데 이 지방의 다른 사람들은 잘 안 먹지. 전에 원정 갈 때 전갈 다리에 기겁하던 사람들 기억해?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서 가뜩이나 먹을 게 부족한 세상에서 상식의 고착 때문에 일어나는 편식은 위험해.”

“아! 알겠다! 동네 사람들 식습관을 개선하려는 구나!”

캐롯의 말에 크랭크가 웃었다.

“나는 운이 좋군. 똑똑한 오토마톤이 곁에 있어서.”

결국, 트롤의 허벅지살도 베어서 마차에 싣고서야 그들은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참새처럼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캐롯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차를 몰아가는데 짐칸에 앉은 게이지가 물었다.

“이 오토마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분해해서 내부를 살펴보고 할 수 있다면 되살려보고 싶군. 게이지, 네 곁에 강한 아군이 많으면 좋겠지?”

“당연합니다.”

“그래. 힘이 없다는 건 참 비참하거든.”

“마이스터 크랭크는 염세적이군요. 예전 지휘관 같습니다.”

게이지의 지적에 캐롯이 하하 웃으며 박수를 쳤다.

“와! 맞아! 하지만 우리 크랭크는 로맨티스트기도 해.”

“확인해보고 싶지만 이제 자주 볼 일이 적으니 안타깝군요.”

“편지 하면 되지.”

가만히 마차를 몰던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종이와 펜을 두고 갈 테니 가끔 편지로 마을 상황을 알려주도록 해라.”

“편지요? 알겠습니다.”

그때 가이거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문자를 모른다. 나도 편지를 쓰고 싶다.”

“뭐? 쉬워, 그럼 내가···! 아니지! 동네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되겠다! 공부는 배우고 가르쳐야 오점을 수정할 수 있거든?”

“오오! 크랭크! 왔는가!”

“캐롯!”

“으하하! 동네 사람들 잘 있었어?! 감자 농사 엄청 잘된다면서!”

“다 너희들 덕이다! 하하하!”

“어서오세요! 크랭크 아저씨!”

개척민 마을 메크로의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마을 중간 우물가로 몰려나와 크랭크와 캐롯을 반겼다. 그리고 마차에서 내려서는 오토마톤 2대를 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오토마톤은 머리에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했고, 다른 한 대는 화려한 붉은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머리에 노란 머리띠를 묶고 있었다.

떠나기 전 다시 찾아온 건피와 슈슈가 선물로 해 준 것이었다.

예쁘장하지만 전술적인 차림새를 한 오토마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감상을 내놓았다.

“와! 예뻐!”

“남성형은 없나요? 다 여자 같아서 기분이 좀 이상하네.”

“와! 이번에도 예뻐!”

“멋지다!”

“이번에 우리 마을에서 주문한 오토마톤이야?”

“저 머리 장신은 뭐야?”

촌장을 만난 크랭크가 허리를 숙여 낮게 말했다.

“오버홀을 끝낸 오토마톤 두 대 2천만 리즈 입니다. 이번엔 외상할부 안 됩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돈에 겁먹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캐롯이 말했다.

“어쩐지 동네에 사람이 좀 많아졌네?”

“최근 이주해 오는 사람들이 늘었어. 자네들 덕이야.”

“오.”

촌장의 아들이 가져온 묵직한 돈 주머니를 받아든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 농사가 대풍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다행이군요. 돈을 세야겠으니 빈집을 하나 빌리겠습니다.”

“이제 빈집은 없어.”

촌장이 두 팔을 벌리고 하하 웃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새 집을 지어야 할 참이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자네들 동상을 세우고 싶을 정도야!”

“그건 참아주십시오.”

머리를 긁적인 크랭크는 이야기도 나눌 겸 결국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그 동안 마을에 남은 캐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외쳤다.

“자! 시험 치자! 다들 어디 갔어!”

“여기! 여기!”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20여명이 넘을 것 같은 한 무더기의 젊은이들을 비롯해서 늙은이들도 몇 끼어있었다.

캐롯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와! 이렇게나 늘었어?!”

“서로서로 가르쳐줬어!”

“봄바가 또 잘 가르쳐 줬어!”

“굉장해! 잘했어! 하하하!”

캐롯이 물었다.

“그 봄바는?”

“순찰 나갔어.”

“그래, 참! 여기 건피 엄마 있어?”

아이 하나가 뛰어갔다.

“내가 불러올게!”

잠시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아낙을 보고 캐롯이 가이거를 소개했다.

“오토마톤 가이거, 이 방열 가발은 건피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거예요.”

“에그머니! 우리 딸의?!”

“예, 여기 마을에 가족들이 있다고 가발 만들 때 찾아왔었어요. 딸내미의 기특한 마음이 느껴져요?”

검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늠름한 오토마톤을 쳐다보던 아낙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걸 보고 가이거가 물었다.

“왜 울지? 나는 당신의 딸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놀랬다.

“마, 말을 해!”

“어, 둘 다 말 잘해. 그리고 가이거, 인간은 물건에 감정이입을 해, 그걸로 심정 동요를 일으켜서 분노를 하거나 위안을 얻더라고?”

가만히 듣고 있던 가이거가 아낙에게 말했다.

“울지 마라. 우리는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왔다.”

“···무뚝뚝한 것 까지 우리 딸을 닮았네.”

아낙의 말을 가이거는 이해하지 못했고, 캐롯은 낄낄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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