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초보 모험가! 29
마을에는 사람들이 다 나와서 목책을 수리하고 고블린의 시체를 옮기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들 겁에 질려있었지만 분위기는 꽤 들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본거지에 남아 있던 사람들까지 귀환했으니 환호가 번지기 시작했다.
“돌아왔어!”
“무사했구나!”
“괜찮은 겁니까?!”
쏟아지는 관심에 상처투성이 보리스는 어색했다. 캐롯이 대답했다.
“소굴로 되돌아오던 녀석들은 반쯤 때려잡았어. 나머지 반은 도망쳤고, 보리스는 경상이지만 그래도 치료는 하자. 비타?”
“아, 예!”
비타가 달려와 보리스의 붕대를 풀고 상처를 치료했다. 리모가 빵을 씹으며 다가왔다.
“밥 먹고 좀 쉰 다음 잔당 소탕을 시작하자. 너희들 오늘 하루 빡세게 굴릴 거야. 각오해.”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지오, 코비, 보리스와 비타는 의욕이 충만했다.
“예!”
“그럼, 어디서 이런 귀중한 실전경험을 해보겠어.”
그때 얼굴의 붕대를 풀고 상처를 치료 받은 보리스를 보고 마을 여자들이 기겁했다.
“어머! 세상에! 장발에 미남!”
“엥?”
떠들썩한 마을 처녀들과 시큰둥한 보리스를 뒤로 하고 캐롯이 리모를 찾았다.
“정말이야?”
“응, 안에 그런 게 있더라니까?”
“신기하네. 촌장님 뭐 들은 거 없습니까?”
옆에 와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촌장도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마을이 생겼을 때부터 있었습니다만. 처음 듣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군요. 좀 있다가 전리품 털러 갈 때 가져오자.”
“그래.”
때마침 어린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화살을 주워서 바구니에 담아 가져왔다.
“모험가 아저씨! 화살 주워왔쪄요!”
“아이구~! 그래요. 잘했쪄요.”
리모가 해맑게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쓸어주며 주머니를 뒤적여 사탕을 나눠주었다.
화살을 재장전하는 등의 정비와 약간의 휴식 후 리모는 팀을 짰다. 마을 방어는 유리와 비타, 잔당 소탕은 레나와 애덤, 지오, 보리스, 코비.
“그리고 전리품 수거와 뒤처리에 나와 캐롯, 그리고 동네 사람들 자! 갑시다!”
마을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 적당한 무장과 함께 수레를 끌고 숲속을 가로질렀다. 선두에는 캐롯, 후미에는 리모가 경호를 섰다. 동굴에서 도달하자 죽은 고블린이 즐비했다.
“전리품 수거 합시다! 아시죠? 쇠붙이는 모두 모아요! 가져다가 농기구든 뭐든 만들어 쓰십쇼!”
마을 사람들은 굳은 표정이었지만 분주하게 고블린의 무장을 벗겨내 수레를 채웠다. 어차피 이놈들의 무장은 대부분 인간들의 것을 훔친 것이었으니까 거리낄 것이 없었다.
캐롯이 그걸 보고 한마디 했다.
“저 고블린 시체는 다 어떻게 해?”
“그냥 내버려두면 야생 동물이나 다른 몬스터가 해결하겠지. 왜?”
“아니, 전에 들린 마을에서는 크랭크가 저걸로···.”
캐롯이 크랭크의 기행을 들려주자 마을 사람들이 기겁했다.
“몬스터로요? 비료요?”
“그런 걸 먹어?!”
“예, 그렇게 만든 감자가 내 머리만 했어요. 맛있다던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색했지만 몇몇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건 누구 솜씨냐?”
리모가 가리킨 것은 캐롯이 만들어놓고 간 함정이었다.
“오! 제대로 작동했네?! 정의의 죽창!”
동굴 바로 안쪽에는 천장에서 쏟아진 대나무 창에 고블린 몇 마리가 관통당해 있는 험악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멋진데? 네가 만든 거야?”
“엣헴! 크랭크에게 배웠어! 이런 건 쉽지!”
코를 좀 세워보던 캐롯이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한참 후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곧 상당한 양의 전리품과 납치당했던 사람들의 시체를 되찾았다.
“이거야?”
“그래. 엄청 큰 수정이지?”
“안에 든 저 여자도 꽤 미인이네.”
“취향이야?”
캐롯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묻자 리모가 고개를 흔들었다.
“난 저런 그림의 떡은 사양이야. 이것도 파내서 옮기자. 길드에 갖다 주면 알아서 하겠지.”
“저리 비켜봐.”
퍽퍽퍽퍽! 깡깡깡!
곡괭이 하나를 빌려든 캐롯이 그것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굳어진 흙과 돌이 순식간에 깨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리모에게 마을 사람이 질문했다.
“저, 저 소녀는 대체···.”
“아, 쟤요? 오토마톤이에요.”
“오, 오토마톤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리모가 말했다.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마을 방위용으로 오토마톤 한 대 정도 사놓으세요. 주변에 개척민 마을에서는 다들 그렇게 합니다.”
“한 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라서···.”
“그건 그렇죠.”
리모는 두 말하지 않았다.
트드득!
쿵!
수정석이 떨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흙투성이가 되어 어깨에 곡괭이를 짊어진 캐롯이 코를 슥 비볐다.
“이것도 재미있네.”
“됐어. 이제 이걸 옮기자. 아저씨들 좀 도와주세요.”
마을 남자들이 몰려와 나무와 밧줄로 수정석을 묶어 옮겼다. 의외로 가벼워서 운반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동굴입구에 돌을 쌓아 막아버리고 수차례 마을을 왕복하면서 전리품과 수정석을 옮기고 나자 저녁이 되어버렸다.
일행은 잔당 토벌을 돌면서 잡아온 멧돼지를 구워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때?”
“며칠 더 머무르면서 순찰을 돌면 한동안 조용해 질 것 같아. 이 놈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리모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마을 처녀들이 물수건으로 캐롯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캐롯.”
“왜? 또 팬티 보여줄까?”
리모가 폭소를 터트렸다.
“얌마! 그런 건 필요 없어! 그것보다 너 그거 함정 만드는 것 좀 가르쳐줘라.”
“누구에게?”
“이 동네 사람들에게.”
“오, 알았어.”
리모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전리품도 반절 이상 놔두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 좋을 대로 하십쇼.”
“정말요? 그렇게 하셔도 되요?”
“예, 하지만 저 이상한 여자가 들어있는 수정석은 길드에 제출해야 하니까 우리가 가져가겠습니다.”
불한당 같은 모험가만 보아오던 마을 사람들이 고마워했다. 그걸 보고 캐롯이 물었다.
“왜? 다 가져가지 않고서?”
천역 덕스럽게 쳐다보는 캐롯을 보고 리모가 말했다.
“아, 넌 그런 것만 봤나보구나?”
“응. 크랭크와 같이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을 보았지. 모험가들은 다들 탐욕에 빠져 있었어. 그래서 좀 신선하다. 너희들,”
리모가 낄낄 웃더니 말했다.
“안 그런 모험가도 있는 거야. 그리고 잘 보여 놔야지. 나중에 모험가 그만두고 적당한 마을에 정착했는데 아는 사람 만나면 어떻게 할 거야? 나 그런 식으로 칼 맞는 거 많이 봤어. 그런 고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리모가 마을 사람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언젠가 저희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요! 언제든지 오세요! 여러분은 환영합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죽 살펴보던 캐롯이 말했다.
“와, 사람들의 신용을 얻었어. 대단하다. 리모.”
“별거 아냐. 게토 대위가 하는 걸 옆에서 보고 흉내 내본 것뿐이지.”
“게토 대위? 너도 군 경험자야?”
“다들 군에서 만난 사이야. 사고 쳐서 강제 전역 당하고 모험가가 된 거지. 몰리 빼고는,”
“와, 유리도?”
고기를 씹으며 자동석궁을 정비하던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와! 군대 갔다 오면 다 너희들처럼 돼?”
“일반화는 좋지 않아. 우리 같은 꼴통폐급이 얼마나 많은데, 나 이래보여도 장교였다? 안 그래? 유리 소위?”
“사람 헷갈리게 말을 꼬아놓지 마. 리모 소위, 우린 우리 할 일을 했어. 그걸로 된 거야.”
“그땐 참 좋았지. 번쩍번쩍하는 제복에 빵빵한 급여에 가끔 수도에서 여자···! 어허흠! 하여튼 뭐 그랬어.”
“그런데 무슨 사고를 쳐서 여기와 있는 거야?”
입을 열려던 리모는 주변의 귀들을 보고는 히히 웃더니 말을 돌렸다.
“밥 먹고 일찍 자자. 캐롯 불침번 좀 부탁해. 너 일당도 쳐줄게.”
“오! 좋아!”
마지막 3일 째 되는 날의 점심 무렵까지 마을 주변 몬스터 토벌에 참여한 캐롯과 신입 모험가들은 복귀를 서둘렀다.
“늦으면 구조대가 파견 될 거야! 빨리 가야해!”
“그래 크랭크에게 안부 전해줘!”
“응!”
마을 사람들도 나와서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다음에 또 오세요!”
“코비! 꼭 다시 들려요!”
“예!”
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마차의 짐칸에 앉은 보리스가 코비를 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코비 조만간 여친 생기겠는데?”
“그렇죠?”
“음.”
보리스의 옆에서 신관 비타가 마을 사람들이 싸준 도시락에서 구운 옥수수를 꺼내 먹으며 코비와 마을 처녀의 썸싱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왜! 뭐!”
“아니 잘 어울린다고, 다음에 이 동네에서 토벌 의뢰 있으면 우리가 와도 되겠는데?”
“어, 정말?”
“이봐! 너희들 우쭐 대지마. 하늘같은 선배님들의 그늘에 도움 받은 걸 잊지 말라고, 너희들은 아직 슬라임 잡으면서 좀 더 경험치를 쌓아야해 알았어?”
“예. 캐롯 선생님.”
“좋아! 어서 가자. 마차타고 가니 편해서 좋네.”
반나절이 지나 오후 무렵 아르곤 모험가 길드에 도착한 캐롯은 접수처에 신입 모험가들을 인계하는 것으로 임무를 끝냈다.
“꽤 늦었는데? 당일 저녁에 올 줄 알았거든?”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저 친구들에게 물어보세요.”
3일간 무슨 고생을 했는지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에 흙먼지와 땀으로 더럽혀진 신입 모험가들은 그래도 웃고 있었다.
네 사람은 허리를 숙여 오토마톤 캐롯에게 인사를 했다.
“지도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 그래. 인사성 밝은 친구들이로고, 좀 씻고 쉰 다음 간단한 일부터 차근차근 하도록 해.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그들을 뒤로 하고 3일간의 외박을 끝낸 캐롯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캐롯을 기다린 것은 난장판이 된 공방과 바닥에 쓰러져 있는 크랭크였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크랭크! 크랭크!”
캐롯의 외침에 크랭크가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반가운 표정을 했다.
“으···? 음? 캐롯? 어서와. 일찍 왔··· 난 좀 자야겠···. 크어···! 드르렁···!”
“야! 자지 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집구석은 왜 이래?! 엉?”
주변을 살피다가 작업대 위에 말끔하게 개조된 오토마톤 두 대가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 캐롯은 우거지상이 되더니 쓰러진 크랭크의 등짝을 철썩 때리며 외쳤다.
“어휴! 역시 저녁에 돌아왔어야 했었어!”
그 후,
캐롯의 신입 모험가 교육은 의외로 평판과 효과가 좋아서 그 뒤로도 길드 요청으로 매달 1건 이상은 꾸준히 교육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 밤이든 낮이든 짬이 좀 생기면 공방의 작업대에 종이를 펼쳐 놓고 뭔가를 적더니 어느 날 크랭크에게 큼직한 서류더미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초보 모험가 지침서 같은 글이지. 이걸 책으로 내고 싶은데.”
캐롯이 쓴 종이에는 그림도 잔뜩 들어가 있었다. 흥미가 생겼는지 한참 그걸 살펴보던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초보 일 때 이런 책이 있었다면 정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좋아, 길드에 이야기해서 책으로 내보자.”
“오! 정말?!”
“물론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쌓아온 인지도가 높은 크랭크가 나서서 길드와 상담하자 일은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그렇게 한 달 후 캐롯은 두툼한 책을 한 권 받아들게 되었다.
“우와! 우와! 우왕! 멋져! 진짜로 나왔어!”
-아르곤 모험가 길드 발행, 초보 모험가를 위한 지침서.
공동 저자, 아르곤 모험가 길드 마스터, 마왕군 접경지 휴전선 임시 사령관 헤리슨, 모험가 크랭크와 그의 오토마톤 캐롯,
“거의 네가 적은 거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책으로 펴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 외에 내용 몇 가지가 수정되고 추가 되었어.”
커다란 책을 가슴에 껴안은 캐롯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
“상관없어! 하하하! 이대로도 좋아! 이걸로 병아리 모험가들이 조금이라도 적게 죽어나갈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좋아! 아하하!”
크랭크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캐롯이 이제 그의 다리를 껴안았다.
“고마워! 크랭크! 역시 나의 주인님! 네가 내 주인님이라서 너무 좋아!”
“나도 그래.”
크랭크는 캐롯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커다란 만족감과 행복감, 성취감에 취한 캐롯은 그러고도 한참동안 크랭크의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 좀 떨어주지 않을래? 슬슬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오늘은 하체를 단련해야해.”
결국 크랭크는 다리에 캐롯을 매단 채 엉기적엉기적 공방으로 들어갔다.
길드 장은 놀라운 표정으로 리모가 가져온 수정석을 보았다.
“이걸 어디서 찾았다고요?”
“개척민 마을 브론코 부근에 둥지를 튼 고블린 소굴에서 찾았습니다.”
“놀랍군요. 이게 대체···! 이건 오래된 신관 복장 같은 데요?”
수정석 속의 기도하는 성녀를 들여다보던 길드 장은 사람을 시켜 신전의 신관장을 모셔오도록 했다. 예배를 중단하고 급하게 모험가 길드로 불려온 신관장은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마차에 실려 있는 물건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이건···.”
“저희 모험가가 발견해서 옮겨왔습니다. 누구신지 아시겠습니까?”
“아뇨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신관복은 100년 전 쯤 착용하던 양식입니다. 오오! 자매여! 이런 기나긴 시간을 넘어 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군요!”
신관장이 기도문을 외우는 동안 참을 성 있게 기다린 길드장이 말했다.
“발견한 모험가들에겐 입단속을 시켜놓았고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어떻게 할지는 신관장님께 맡기겠습니다. 일단 신전으로 옮기시겠습니까?”
“예, 부디.”
“알겠습니다.”
수정석을 옮기기 위해 불려온 신관들도 수정석안의 여 신관을 목도하고 단체로 기도문을 올리는 사태가 좀 있었지만 수정석의 기도하는 성녀는 아무런 문제없이 신전으로 떠넘길 수 있었다.
뻐근한 어깨를 매만지며 길드 장은 퇴근을 서둘렀다.
“왜냐하면 오늘 저녁은 비프스튜거든.”
“길드장님!”
길드를 나서려던 길드 장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뭡니까?”
“공문이 왔습니다! 수도 왕성 관계자가 청동문을 보러 사람을 보낸다고 하는데요?!”
“이런 제길! 밥 정도는 먹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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