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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4화 (24/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초보 모험가! 24

슬슬 저녁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볼일이 끝난 사람들은 서둘러 돌아갔다. 캐롯도 가발을 맡기기 위해 그들과 함께했다.

“같이 가자. 큰 길 까지 내가 바래다줄게.”

“나는 도중에 시장 보고 가야해. 건피, 슈슈랑 먼저가.”

“알았어.”

캐롯이 자연스럽게 일행에 섞여 있는 경비병 제이크를 보았다.

“아저씨는 퇴근 언제해요?”

“저는 플루이드 양 집에 들러서 동생 분들을 경호하고 있는 경비대 오토마톤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야 합니다. 간 김에 저녁도 얻어먹고요.”

넉살 좋은 제이크의 말에 플루이드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 음, 뭐, 좋아하는 거··· 있어요?”

시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캐롯이 눈을 매섭게 떴다.

“헤이, 건피.”

“응?”

“저 두 사람의 진행상황을 내게 알려주도록 해. 잘되면 축복할거지만 불쌍한 플루이드를 울려서 더 불쌍하게 만들면 저 제이크를 가만두지 않겠어.”

슈슈와 건피가 놀라워했다.

“와! 너 오토마톤이잖아?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응? 나에 대한 거 플루이드에게 못 들었어?”

“아니, 듣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괴리감이 장난 아니지? 하하! 인형 주제에 말이야.”

슈슈는 혼란스러워 했지만 건피는 단발이 된 머리카락을 만져보며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어디서 들었는데, 사람은 의지가 되는 대상에다 감정이입을 한다고 들었어. 하물며 이렇게 말도 잘하고 얼굴도 사람과 같은데 뭐, 아무렴 어때.”

“오! 넌 사고가 유연하네. 충격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빨라.”

“보통은 어떤데?”

“저런 표정을 하고 있지.”

앞서 걷던 캐롯이 멍청히 서서 곤란한 얼굴로 입을 뻐끔거리는 슈슈를 가리켰다.

고민도 잠시 슈슈는 눈을 질끈 감고 두 사람에게로 뛰어갔다.

“아아악! 몰라! 나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할래! 크랭크 아저씨처럼! 같이 가!”

허리를 좀 숙인 건피가 캐롯에게 물었다.

“그런데 캐롯, 너네 주인님 여자 친구 있어? 결혼은?”

캐롯이 또 오토마톤에 걸맞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오우, 어여쁜 처녀, 우리 크랭크에게 관심 있는가?”

“···응.”

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린 건피가 낮게 긍정하자 캐롯이 하하 웃었다.

“저번에 내가 결혼 안하냐고 물었을 때 기회가 되면 할 거지만 아직은 아니다 라고 말했어.”

작은 주먹을 불끈 쥔 건피를 보고 슈슈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건피, 그렇게 커다란 사람 어디가 좋아?”

“사람마다 취향은 별게야. 네가 샌드위치에서 베이컨만 빼 먹는 것처럼.”

“그, 그건 살 빼려고 그러는 거야!”

“오! 인간은 살도 빼고 하는 구나. 신기하다. 그런데 슈슈는 뺄 살도 없는데 뭘 더 줄이려고 그래?”

“살은 무슨, 그냥 편식이야. 그러니 가슴이 그 정도뿐이지. 이 정도는 되어야 남자들을 후릴 수 있단다?”

건피가 자기 가슴을 두 손으로 받쳐 올리자 슈슈가 양손으로 작은 가슴을 가리며 소리를 빽 질렀다.

“으앙! 건피이!”

“와하하하! 너희들 참 재미있다!”

두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가발 제작을 맡긴 뒤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며 공방으로 돌아온 캐롯은 크랭크의 저녁을 만들다가 이야기를 들었다.

“캐롯, 내일 너 혼자 길드로 가서 초보 모험가들을 데리고 던전 한 바퀴 돌고 오도록 해.”

“응? 뭐라고?”

작업하다가 몸을 돌린 크랭크가 다시 말했다.

“길드에서 신입 모험가들을 위한 기초 교육 같은 걸 하려는 모양이야.”

플라이팬을 잡고 야채를 볶고 있던 캐롯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엥? 그걸 나 혼자 하라고? 그래도 돼?”

“못할 것 같아?”

“아니! 그게 아니라! 까먹었어? 나는 오토마톤이라고?”

“맞아 넌 오토마톤이야. 마스터의 동행과 지시를 받아야 하지. 그런데 지금의 넌 그런 거 없어도 되잖아? 네가 쌓은 입지와 경험치를 생각해봐.”

치지지직···!

플라이 팬을 잡고 가만히 쳐다보는 캐롯과 시선을 맞추고 있던 크랭크가 손가락을 들었다.

“탄다.”

“어엇!”

플라이 팬을 흔들며 캐롯이 뒤를 돌아보았다.

“진짜지? 그럼 나 혼자 간다?!”

“그래. 이미 길드에도 그렇게 말해 놨다. 거기 신입 모험가들도 동의했어.”

“오호호호호! 진짜진짜?! 좋아! 호랑이 캐롯 선생님이 빡세게 교육시켜 주겠어!”

이른 아침, 모험가 길드 대기실에 소년티를 벗지 못한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보리스 일찍 왔네?”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미남 장발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여기서 잤어. 긴장 되서.”

동네 친구 사이인 지오와 코비는 보리스의 말에 떫은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잤다고?”

“피곤하지 않아? 오늘 갈 수 있겠어?”

“와! 늦어서 미안해요!”

갑자기 일행들 사이에 소녀 하나가 뛰어들었다. 이름은 비타, 신전에서 파견 나온 견습 신관이었다. 일행 중에서 가장 어린 17세였다.

“어, 우리도 방금 왔어.”

“오늘 함께 해주실 선배님은요?”

“아직 안 온 것 같아.”

“근데 괜찮아? 오토마톤이라고 하던데.”

잠을 설쳐 피곤한 보리스가 눈 밑에 그림자를 잔뜩 단 채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지오와 코비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넌 모르겠지만 우리 도시에서는 꽤 유명해. 캐롯이라고 하면 모험가 길드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네임드 오토마톤이야.”

“우와!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어?”

아무도 없는데 목소리가 들리자 모두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테이블 옆에 조그만 소녀가 웃고 있다.

“헉! 캐, 캐롯이다!”

“우와!”

“와! 귀여워!”

“호랑이 캐롯 선생님과 함께 할 병아리들은 너희들이야?”

“병아리?”

보리스가 인상을 썼다가 고개를 들었다. 폴짝 뛰어오른 캐롯이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 병아리. 오토마톤에게 그런 소리 들으니 꼽니? 하지만 인정해야지. 너희들 아직 던전에도 안 들어가 봤다며?”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캐롯이 웃었다.

“나는 캐롯이야. 너희들을 데리고 간단하게 기초 훈련을 해볼 참이지. 잘 부탁해.”

그때 지나가는 모험가들이 인사를 건넨다.

“응? 캐롯이잖아? 너 뭐하냐?”

“신입 모험가 기초 훈련을 할 겁니다!”

“아, 길드에서 말하던 그거구나. 나는 귀찮아서 사양했는데. 크랭크는 맡았나보네. 그런데 네 주인은 어디 갔어?”

“바빠서 나 혼자 왔어요. 길드랑 이야기 다됐어요.”

우락부락한 모험가들이 그 소리를 듣자 인상을 썼다가 캐롯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이랑 같이 가면 가벼운 던전 정도는 상관없겠지?”

“그래, 이놈 거의 사람이잖아.”

“줄 건 없고 이거라도 가지고 가라. 신입들아.”

모험가들이 쓰고 남은 포션 몇 병과 라이트 스크롤을 내놓았다.

“던전 안에서 써봐. 잘 보여. 그리고 캐롯 저거 조심해. 욕쟁이야.”

“어헛! 욕쟁이라니!”

“애들 잘 살려서 데려와!”

“걱정 마쇼!”

모험가들과 악담을 주고받은 캐롯이 네 사람을 살펴보았다.

“칼잡이 둘에 활 하나 너는 신관이야? 힐 써져?”

“예! 힐이랑 라이트랑 상태이상 회복 쓸 수 있어요.”

“공격 마법은?”

“어, 없어요.”

캐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갈 곳은 여기서 걸어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던전이야. 옛 폐광이지. 금이랑 포도석이 나왔었데.”

“포도석이요?”

“응 포도처럼 생긴 돌, 가공해서 보석으로 만들지. 여기 아르곤은 그걸 캐는 광산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생긴 마을이었데, 그래서 가까운 곳에 폐광이 몇 군대 있어. 그런 곳에 몬스터들이 모여들어서 던전이 된 거지.”

“거기 가서 뭐 하는 건데?”

보리스의 삐딱한 말에 캐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보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너 머리 그렇게 산발하고 다니는 거야?”

“왜? 뭐? 안 돼?”

“아니, 오히려 잘 어울려. 근데 너 칼잡이잖아. 어지간히 잘 휘두르는 거 아니면 산발한 긴 머리는 방해되거든, 머리카락이 막 눈 찌른다?”

보리스가 입을 다물고 도전적인 시선을 했지만 캐롯은 신경 쓰지 않고 테이블에서 폴짝 뛰어내려 일행들을 데리고 길드 접수처로 향했다.

“캐롯 신입 모험가 분들을 잘 부탁해.”

“예. 던전만 돌고 오는 건데요. 뭐, 걱정 마세요.”

접수가 끝나고 종이를 받은 캐롯은 그걸 지오에게 내밀었다.

“받아. 의뢰 접수장인데. 성문에서 나갈 때 필요해.”

“예.”

캐롯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말은 편하게 해도 돼. 나는 오토마톤이야.”

“에, 뭐, 그래도···.”

“어서 가자! 빨리 가자고!”

보리스의 재촉에 캐롯이 그들을 데리고 길드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시장으로 향했다. 보리스가 말했다.

“야! 어디가. 성문은 저기잖아?”

“어휴, 등신아. 나가서 뭘 먹을 건데, 간단하게 먹을 식량을 준비해야지. 너희 인간은 하루만 굻어도 제살 뜯어먹으려고 하잖아.”

“저녁에 돌아오는 거 아냐?”

“그걸 어떻게 장담하니? 네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모르거든? 그런데 너희들 여유자금은 얼마나 있어?”

“파티 저금이 좀 있어요.”

“그래? 잘 됐네. 포션은 아까 그 아저씨들이 준거 쓰자. 식량은 시장이나 여관에 모험가 도시락 세트를 팔아. 처음엔 그걸 사면 편해. 크랭크도 자주 사먹었지.”

“크랭크 씨도요?”

“응, 주인님도 초보 모험가 시절이 있었어. 나는 그걸 처음부터 곁에서 봐왔지. 저 가게에 가서 사오도록 해. 하루치면 돼. 물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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