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로맨티스트! 23
맥주를 앞에 놓고 생각 중이던 크랭크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 킨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길드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안건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해보시겠습니까?”
“아니요.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길드에서 가타부타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군요. 저는 생존성을 올리기 위한 기초지식 정도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제복에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크랭크 씨!”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이야기 하시지요. 가자, 캐롯,”
“응? 어디 가는데?”
크랭크는 이미 길드 식당 문을 나서고 있었다.
“메크로에 보낼 중고 오토마톤을 보러.”
캐롯이 총총 달려가며 물었다.
“공방에 애들은?”
“그건 너무 아까워. 그리고 미완성이야.”
크랭크는 그렇게 말하며 길드에서 좀 떨어진 오토마톤 매장을 향했다.
“와, 요즘 최신형 인가봐! 늘씬한데?”
매장의 쇼 윈도우 안쪽에 도열한 신형 오토마톤들을 슬쩍 살펴보던 크랭크는 고개를 저었다.
“동력계통이나 구동계의 진보는 아직 크게 이뤄지지 않았어. 겉만 다를 뿐이지. 들어가자.”
매장 안에 있던 직원들은 처음 크랭크를 보고는 시큰둥했지만 뒤따라 들어오는 캐롯을 보고는 놀라워했다.
“캐롯? 우와! 커스텀 오토마톤 캐롯이잖아! 그럼 당신이 모험가 크랭크?!”
“그렇습니다.”
“캐롯의 주인님이 우리 매장에 오시다니! 점장님 모셔와! 빨리!”
직원들의 연락을 받고 오토마톤 매매상회의 점장이 나타났다. 백발에 하얀 얼굴을 한 여자로 30대쯤으로 보였다.
“캐롯! 어머! 귀여워라, 거리에서 몇 번 마주쳤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본 매장의 점장 코코입니다.”
크랭크는 바로 용건을 말했다.
“중고 오토마톤요? 가격대는?”
“500이상 800이하로, 2대.”
듣고 있던 점장 코코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했다.
“그 가격대라면 상태가 험한 것뿐이에요. 개인적으로는 1200선으로 추천 드립니다만.”
“상관없습니다.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요. 이쪽입니다.”
코코는 크랭크와 캐롯을 매장 안쪽 창고로 안내했다.
“우와-! 오토마톤이 잔뜩 있어!”
“대부분 군불하품이에요. 몇 년 전 까지 만해도 마왕군과의 전투에서 잔뜩 만들어서 사용했으니까요. 요즘 군비 감축 추세라서 민간에 불하해서 개인 경비, 방어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다만 소도시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기엔 좀 비싸죠. 대 도시에는 좀 팔렸는데,”
“와, 오토마톤을 일반 가정에도 써요? 모험가나 단체가 아니라?”
코코는 캐롯을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럼, 아르곤에서도 드물지만 꽤 있지. 아무래도 한 대 쯤 있으면 돈값을 하거든? 써본 사람들은 찾지.”
“오오!”
안쪽을 둘러보던 크랭크가 끼어들었다.
“마을 경비용으로 사용할 겁니다. 군불하품 중에서 전투경험이 많은 것들은 있습니까?”
“있는데 그런 건 비싸요. 이 바닥에선 베테랑스라고 부르죠.”
“와! 처음 알았어!”
인자하게 웃으며 캐롯을 내려다보던 코코가 이제 크랭크를 보면서 말했다.
“4천만 리즈 어때요?”
잠깐 코코를 보던 크랭크가 투구가 흔들었다.
“거절하겠습니다. 800만 안쪽의 실물을 좀 보고 싶군요.”
“6천만!”
“점장님 저는 구매를 하러 왔습니다.”
코코는 히죽 웃더니 몸을 돌렸다.
“코코 점장이라고 불러주세요. 당신하고는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군요. 크랭크.”
“동감입니다.”
크랭크의 대답을 들은 코코는 아하하 웃으며 창고 안 오토마톤 사이를 걸어갔다.
뒤 따르던 캐롯이 슬쩍 물었다.
“방금 6천만은 무슨 말이야? 누굴 이야기 하는 거야?”
“너다. 방금 저 점장은 너를 6천만에 팔지 않겠냐고 제안했지.”
“와! 나를?! 6천만! 나 원래 1500만짜리인데! 하하하! 그래서 팔 거야?”
“그 동안 네게 들인 노력과 돈에 비하면 너무 헐값이야.”
그 말을 듣고 캐롯은 킥킥 웃었다.
창고 진열장 모퉁이를 몇 번 돌아 멈춰선 코코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라인은 전부 말씀하신 가격대 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이것과, 이것을 추천 드리고 싶군요. 가격은 두 대 합해서 1600만 리즈 입니다.”
오토마톤을 슬쩍 살펴보던 크랭크는 바로 구매했다.
“응? 흥정 안 해요?”
“예, 안합니다.”
코코가 이상한 표정을 했다가 히죽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구매 감사합니다.”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준 크랭크는 가격을 치르고 오토마톤들을 데리고 매장을 나서려 했다.
“잠시 만요! 이거 가져가십시오!”
직원하나가 묵직한 상자를 가지고 왔다.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비교적 상태가 좋은 중고 부품입니다. 저희는 해체 작업도 같이 하거든요.”
“감사합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코코 점장이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오세요. 판매와 매입은 언제나 하고 있습니다.”
상자를 받아든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생기면요.”
거리를 걸어 공방으로 돌아가며 캐롯이 물었다.
“그 기회는 언제쯤이야?”
“안 판다. 걱정마라. 나는 닳아 없어질 때까지 널 써먹을 거다.”
캐롯은 히히 웃었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오토마톤 두 대가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 상태는 꽤 좋은데? 이 애들도 풀 튜닝 할 거야?”
“그래, 개척민 마을 메크로에 가능성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 맛있는 감자를 위해서 나도 가능한 노력을 기울여야지.”
“로맨티스트네.”
멈춰선 크랭크가 뒤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투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공방에 도착한 크랭크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부품과 가발과 전투복이 새로이 발주되자 한가한 부인회에서 반가워했고, 부품점에서는 이제 배달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팔려는 사람도 늘어났다.
“어, 이번에 머리카락 팔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야.”
이튿날 크랭크와 캐롯은 공방으로 찾아온 사람들을 맞이했다. 먼저 중개인? 인 단발의 플루이드와 그녀의 손을 잡고 온 빨간 머리 소녀와 검은 머리카락 여자, 그리고,
“이 사람은 누구야? 남자친구야?”
“헉! 아, 아니야!”
플루이드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걸 싱글싱글 웃으며 쳐다보던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경비대 소속의 제이크 입니다. 저는 여기 플루이드 양의 경호로 와 있습니다.”
“왜요? 플루이드가 무슨 사고라도 쳤어요?”
이제 플루이드는 두 손으로 화끈 거리는 얼굴을 가렸다.
“그린이라는 이름의 오토마톤을 기억하십니까?”
“오! 우리 주인님이 손봐준 오토마톤인데, 초록이가 무슨 사고 쳤어요?”
제이크는 크랭크와 눈인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원정이 끝나고 트로겐 길드로 돌아간 그린은 그 활약을 인정받아 현재 방주도시 트로겐의 임시 경비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듣고 있던 크랭크마저도 팔짱을 하며 놀라워했다.
“경비대장이라니, 마침 플루이드가 원하던 대로 됐군.”
“아니! 나는! 이런 식으로 이름을 알려지게 되길 바라지 않았어···!”
“헤, 그래서요?”
제이크는 말을 이었다.
“치안 유지를 위해서 활약하는 와중에 악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플루이드 양에게 해코지 하지 않을까 하여 공식적으로 경호 요청이 왔습니다.”
캐롯이 플루이드를 보았다.
“우왕! 굉장해! 플루이드!”
이젠 말도하기 싫다는 듯 플루이드는 거창한 한숨을 내쉬더니 데려온 여자들을 소개고, 크랭크는 바로 가위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자리를 폈다.
“저, 그 전에요! 오토마톤 좀 볼 수 있어요?”
크랭크는 눈망울을 반짝이는 소녀와 여자를 보고 플루이드를 쳐다보았다. 플루이드는 슬쩍 고개를 돌림으로서 크랭크의 시선을 피했다.
“이쪽입니다. 작업 중이니 만지지는 말 것.”
“오와아아!”
촤르륵!
안쪽의 커튼을 걷어내자 오토마톤들이 작업대에 눕거나 앉아 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리카락은 이 쪽의 두 대에 이식될 예정입니다.”
“어디로 가요?! 드래곤을 잡으러 가요?”
크랭크는 다시 한 번 플루이드를 쳐다보았다. 플루이드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경비용입니다. 개척민 도시 메크로에서 주문 한 겁니다.”
“에···.”
빨간 머리 소녀는 실망한 얼굴이었지만 검은 머리 처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제 고향이에요. 바로 자르죠.”
“응? 건피 진짜야?”
“응, 부모님께 편지 받았어. 저는 돈 필요 없어요. 잘만 만들어서 보내주세요.”
크랭크는 바로 자리를 펴고 검은 머리카락 처녀 건피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붉은 머리 소녀는 좀 망설였지만 결국 잘랐다.
“어차피 곧 자랄 테니까요! 하지만 전 돈 주세요! 생활비에 보태야 해요!”
머리카락을 갈무리한 크랭크는 돈 주머니를 가져와서 두 사람에게 내일었다. 건피는 사양했지만 크랭크가 강권했다.
“당신의 그 마음에도 보상은 따라야 합니다.”
결국 가슴에 돈 주머니를 안은 건피는 입을 살짝 벌리고 크랭크를 올려다보았다.
플루이드 덕에 공방 안을 구경하게 된 제이크가 감상을 내놓았다.
“모험가라고 들었는데 여긴 거의 전문 영업소 수준이군요. 이쪽으로 전업해도 되겠는데요?”
“전업은 안 할 겁니다.”
“예? 그 편이 더 안전하고 급여도 좋잖습니까?”
크랭크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갈무리하며 말했다.
“정식 수리 기사로 전업을 하면, 자동으로 오토마톤 정비 길드 소속이 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길드에서 지정한 물건만 고쳐야 합니다. 나는 그건 싫습니다. 손해를 보고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것입니다.”
“봤어? 우리 주인님은 세상에 마지막 남은 로맨티스트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