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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오토마톤-22화 (22/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개척민 마을! 22

자루를 마을 중앙 우물가에 내려놓은 크랭크는 옷에 묻은 흙을 좀 털어내더니 어느새 다가온 캐롯을 보았다.

“얻을 건 얻었고, 할 일은 다했다. 내일 아침에 돌아가자.”

“이번엔 꽤 오래 걸렸네?”

뻐근하다는 듯이 어깨를 움직여보던 크랭크가 말했다.

“내부 구조를 전부 역설계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아, 그렇지. 봄바에게 무기를 좀 챙겨 줘야겠다.”

크랭크는 짐마차에 실어놓은 녹슨 철검들 중에서 상태가 다소 좋은 것을 골라 숫돌로 날을 세우고 손잡이 가죽을 새로 감았다.

그리고 다음날 출발 전에 그것을 봄바에게 내밀었다.

“네 기본 무장으로 해라. 나무 몽둥이로 때려잡는 것보다는 좋을 거다.”

칼을 받아든 봄바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크랭크는 마을 사람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기본적인 정비는 여러분이 해주셔야 합니다. 전투복이 찢어지면 바느질을, 칼날이 죽으면 날을 세워야 합니다. 그 작은 관심과 노력은 오토마톤의 전투력이 됩니다.”

“어려운 건 없구만, 알겠소. 날이라면 내가 세워주지.”

“바느질은 우리가 할게요.”

“그럼 몸단장은 우리가!”

마을의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인 크랭크가 말을 이었다.

“봄바는 100년이 넘은 골동품입니다. 당시엔 상당한 고급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집가나 모험가들이 보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주인이 있다면 강압을 동원해서라도 사려 할 것이고 주인이 없다면 빼앗으려 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불안과 분노가 머물기 시작했다.

“그걸 내버려 둘 것 같아! 봄바가 없으면 우리가 죽어!”

“맞아!”

크랭크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가 다시 말했다.

“오토마톤을 노린 사기도 여럿 있었습니다. 다른 오토마톤과 돈을 줄 테니 바꾸자고.”

“그거 나 알아! 그 놈들은 강도로 돌변했고, 맞바꾼 오토마톤은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아서 싸우지도 않고 그냥 원주인에게로 돌아가 버렸잖아!”

마차에 올라가 팔짱을 하고 있던 캐롯이 고개를 돌렸다.

“오, 잘 아네?”

“말도 마라! 3년 전에 다른 마을에서 겪었던 일이야. 거기 늙은이들이 눈이 돌아가는 바람에 말리는데도 듣지 않고 바꿨다가 다 털려버렸지. 이제 다시는 안 속아!”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런 사기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봄바의 경우 오토마톤 3원칙 제정 전에 만들어진 거라 마을에 위협을 가하는 도적떼를 상대로 아주 유용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몇몇이 고개를 기울였다.

“오토마톤 3원칙이 뭐야?”

캐롯이 대답했다.

“첫 번째,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두 번째, 인간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세 번째, 위 조항에 반하지 않은 한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오오오! 그런 게 있었어?!”

“뭔가 대단하다!”

캐롯은 봄바를 가리켰다.

“우리는 그래서 너희 인간들에게 위해를 끼칠 수 없어, 경험이 많으면 3원칙을 약간 비틀어서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패는 것 까지는 되지만 결국 죽이지는 못해. 하지만 봄바는 그게 되지.”

“어, 그거 대단한 거야?”

캐롯은 무지한 시골 사람들을 놀리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단한 거야. 만약 지금 도적떼가 마을을 습격해도 나는 죽이지 못해. 때려서 기절시켜야해. 제압에 많은 시간이 걸릴 거고, 그 시간만큼 여기 모인 누군가는 죽겠지. 하지만 봄바는 그런 제약이 없어, 강도나 도적을 모두 죽여 원수를 갚고 동시에 너희모두를 구해 낼 거야. 이 차이는 엄청나지.”

모두가 입을 헤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크랭크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낮게 말했다.

“그리고 혹시 만약 봄바를 팔 일이 있으면 제게 먼저 연락을 주십시오. 가능한 높은 값에 매입하겠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생뚱맞은 제안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되었다. 촌장이 말했다.

“알겠네, 정말 만약 그럴 일이 생긴다면 자네를 먼저 부르지.”

“감사합니다.”

크랭크가 뒤로 물러나 마차에 올랐다. 작별 인사는 캐롯이 대신 했다.

“글자! 글자 복습해! 모르면 봄바에게 물어보고! 다음에 올 때 시험 칠거야! 알겠지들!”

그 소리에 마을 사람 몇몇이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을에서 한참 멀어지자 캐롯이 슬쩍 몸을 기울여 크랭크에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저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봄바를 팔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팔까? 그것도 아니면 마을의 누군가가 외지인과 결탁해서 빼돌릴까?”

크랭크가 슬쩍 시선을 내려 캐롯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실망한 봄바가 우리에게 도망쳐 온다. 10만 리즈.”

“프흐하하하하!”

캐롯이 폭소를 터트린다.

크랭크는 천천히 마차를 몰면서 바로 등 뒤의 마을 사람들이 들으면 경을 칠 음흉한 말을 밝은 목소리로 입에 담았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사람의 마음도 위에서 아래로만 흐른다고 하지. 사람은 궁지에 처하면 무슨 짓이든 해, 물론 자기 욕심을 위해서도 무슨 짓이든 하지. 그리고 봄바는 너무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제약이 안 걸려 있어. 마스터 설정도 안 되어 있고, 마을의 방위도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선의로 하는 거야. 언제든 그만 둘 수 있어. 하나의 자유로운 인격체지.”

“헤, 그건 몰랐네. 그래서 마스터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안 한 거구나.”

“향후의 식량 사정, 줄어들기만 하는 인구, 빈약한 마을의 방어력, 그걸 혼자서 담당하는 오토마톤, 모든 것이 우연히 균형이 맞추고 있는 상태야. 아슬아슬해. 조금만 틀어지면 바로 무너진다.”

“그래도 돼? 너 돈은? 800만 리즈.”

“이미 받았어. 이젤리아의 에이그스타 가문의 100년 된 오토마톤의 역설계도, 봄바가 마지막 한 대라면 이건 굉장한 가치를 가진 물건이 된다.”

“근데 지금은 돈이 아니잖아.”

“맞아. 현재로선 개인 소장품 정도지. 나중에 너희들 수리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정도지. 하지만 일주일 고생하면서 꽤 배웠어. 거의 기밀에 가까운 오토마톤 정비 기술을 독학으로 배우려면 800만은 싼 거지.”

“그래! 주인님이 좋으면 나도 좋아! 자! 어서 집에 가자! 동생들을 살리러!”

캐롯의 힘찬 외침에도 마차를 끄는 말들은 느릿느릿 걸었다. 하지만 그래도 캐롯은 좋았다.

“음흉한 주인님과 함께 하는 이 더러운 세상이 너무도 신난다! 아하하하하!”

같은 시간, 마을의 은인들이 뒤에서 헌 담을 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마을을 떠나가는 짐마차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아련한 눈빛으로 한마디씩 했다.

“고마운 사람들이네요.”

“그러게.”

“···몸이 정말 멋졌어, 키도 크고. 맨 얼굴 한번 보고 싶다.”

“우와, 미키 저런 사람이 타입이야?”

얼굴에 주근깨가 뿌려진 마을 처녀 하나가 얼굴을 좀 붉히며 몸을 비비 꼬기 시작한다. 그때 남자들이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 주문대로 썩은 몬스터 시체를 옮겨서 비료를 만들어야해. 봄바. 위치 알려줘.”

고개를 끄덕인 봄바와 남자들은 숲속에 버려둔 몬스터 시체를 찾으러 향했다.

감자밭에 뿌리는 비료는 숲에서 긁어온 썩은 나뭇잎을 사용했지만 크랭크의 파격적인 제안에 마을 사람들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는데 까지는 해볼 생각이었다.

몬스터 시체 구덩이 앞에서 중년의 남자가 삽질을 하면서 말했다.

“그 젊은이가 베풀어준 800만 리즈짜리 은혜를 더러운 사기꾼처럼 날로 떼어먹을 수는 없어. 어떻게든 그 친구가 원하는 커다란 감자를 만들어주고 싶다. 우리는 의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고 알리고 싶어.”

“하지만 이거 너무 많은데요?”

“많이도 때려잡았구나. 봄바.”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봄바가 수첩을 꺼내 뭐라 적어 내밀었지만 남자들은 글을 몰랐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 내밀었다.

수첩 안에는 봄바를 닮은 귀여운 오토마톤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는데, 입 부분이 웃는 모양이었다.

“와 그림도 잘 그리네.”

“나도 딸애에게 글자를 꼭 배워야지.”

“아! 차라리 여기를 흙이랑 나뭇잎으로 덮어버리는 건 어때요? 알아서 썩어서 흙이 될 텐데.”

“오! 그거 좋구먼! 나중에 그 썩은 흙은 가져다가 그대로 쓰면 되겠구먼!”

누군가의 제안에 마을 남자들은 그대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일 후, 몬스터 시체가 썩으면서 만들어진 흙을 골라내 다시 나뭇잎과 섞어서 밭에 뿌리고 감자를 심었다.

그리고 그 감자 밭을 크랭크 감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몇 달 뒤, 마을 사람들은 크랭크 감자밭에서 일어난 엄청난 작황에 다들 깜짝 놀라게 되었고, 그걸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좀 더 실험하여 동물과 몬스터의 부산물을 섞어 만든 퇴비를 대량으로 생산, 이듬해부터 개척민 마을 메크로의 감자의 수확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우오! 감자가 사람 머리통 만해!”

“대박이다! 으하하하!”

“봄바! 이거 봐! 커다란 감자가 엄청 많아!”

아이들이 달려와 캐낸 감자를 보여주자 사람들이 수확하는 동안 주변을 경계하던 봄바가 수첩을 꺼내 언젠가 그려놓았던 그림을 다시 펼쳐보였다.

봄바를 닮은 귀여운 오토마톤의 얼굴은 입부분이 웃고 있었다.

마을이 감자 농사로 유명해지고, 경비로 강력한 오토마톤을 사용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인근 마을에서 이주해오는 사람들도 꽤 생기기 시작했다.

비법을 알려준 어떤 모험가에게 고마움을 담아 메크로 사람들은 감자에 다음과 같은 이름을 붙여 시장에 내다팔았다.

“크랭크 감자?”

“좀 떨어진 개척민 마을에서 수확한 건데, 알이 크고 맛있어서 잘 팔린데. 어제 마누라가 사왔더라. 스튜로 해놓으니 괜찮더라고?”

길드 식당에서 맥주와 함께 안주로 버터 감자를 퍼먹고 있던 모험가가 고개를 돌렸다. 마침 이야기의 주인공 모험가가 누군가와 이야기 중이었다.

“어이, 크랭크 진짜예요? 이 크랭크 감자 이야기.”

고개를 돌린 크랭크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프하하하!”

주변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웃고, 또 몇몇은 그래도 대단하다는 듯이 감자로 이름을 남긴 전설적인 모험가를 바라보았다.

그때 길드 접수원이 식당으로 들어와 크랭크를 찾았다.

“아! 크랭크 씨! 메크로에서 편지가 왔어요!”

“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긴 팔을 내밀어 편지를 받아든 크랭크가 내용물을 펴서 읽었다. 옆에 앉아 있던 캐롯이 슬쩍 끼어들었다.

“뭐라고 적혀 있어? 드디어 봄바를 팔겠데?”

한참 편지를 쳐다보던 크랭크가 투구를 긁으며 말했다.

“아니, 올해 감자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 경비용으로 쓸 중고 오토마톤을 2대 발주하고 싶다는데.”

“응?”

캐롯이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곳엔 좀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오! 이건 차기 촌장 클립이 쓴 것 같은데? 빡세게 글씨 연습 시킨 보람이 있었네!”

그러면서 캐롯이 손을 내민다.

“10만 리즈 내놔.”

멍청한 눈으로 캐롯을 보던 크랭크가 손바닥을 주먹으로 때렸다.

“아!”

“뭐야? 자기 오토마톤이랑 무슨 내기라도 한 거야?”

“전설적인 감자 모험가는 하는 짓도 범상치 않구만.”

“데리고 다니는 오토마톤이 캐롯이면 충분히 할 만하죠. 저 녀석은 거의 사람이라니깐요?”

크랭크는 두말하지 않고 돈주머니에서 은화를 꺼내 주었다. 손에 동전을 쥔 캐롯이 웃었다.

“아하하하! 주인님에게 뜯어낸 돈은 항상 각별하지! 자! 내가 맥주 쏜다! 마스터! 여기 안에 사람들에게 맥주 한잔 씩 돌려주세요!”

눈앞에 공짜 맥주가 놓이자 사람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원 세상에, 정말이네.”

“거 봐요! 야! 캐롯! 고마워! 잘 마실게! 뭘로 땄는지는 모르겠지만!”

캐롯은 씩씩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너희들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서! 건배!”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멋있다! 우오!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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