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개척민 마을! 20
마부석에서 일어나 팔짱을 낀 캐롯이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이 괴성을 질렀다.
“캐롯이야! 와! 캐롯이 왔어!”
“으엑! 콧물이나 좀 닦고 다녀라! 애들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 이리 좀 와봐!”
“꺄하하하!”
“코 풀어! 흥해! 흥!”
“흐으으응!”
마을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린 캐롯이 아이들을 보고 기겁을 하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는 사이 어른들이 걸어 나왔다.
“크랭크!”
“촌장님.”
“생각보다 빨리 왔군?”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봄바는 어디에 있습니까?”
촌장이 마을 청년을 시켜 순찰 나간 봄바를 불러오도록 했다. 이 와중에 캐롯은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다.
“자! 골라! 골라! 싸요! 싸!”
캐롯이 펼쳐놓은 좌판에 깔린 것은 빗이나 면도기, 비누 같은 작은 생필품이나 상비약 등이 전부였지만 순식간에 완판 되었다.
“근데 돈이 아니라 현물로 받아서 이거 대금의 대부분이 감자 아니면 산열매인데.”
짐마차 수북이 쌓인 감자를 들어서 만져보던 크랭크가 투구를 돌렸다.
“그다지 작황이 좋지 못하군요.”
“슬슬 터를 옮겨야 할 때가 온 것 같으이.”
늙은이들의 말에 크랭크는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아이들과 여자들에 비해 남자들이 부족했다. 세금이 없는 대신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지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개척민 마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몬스터들과 생존경쟁이 많은 편인데 그때마다 장정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데려왔습니다!”
때 마침 오토마톤 봄바가 도착했다. 캐롯이 두 손을 들고 반가워했다.
“오오! 봄바! 너 고쳐주러 우리가 왔어!”
부서지기 쉬운 손과 발을 낡은 천과 가죽으로 칭칭 동여매고 다 떨어진 망토를 뒤집어 쓴 오토마톤이 꼿꼿한 자세로 그들의 앞에 섰다. 100년이나 된 구형 오토마톤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몸체 외곽과 마스크의 형상이 대단히 유려했다.
그래서 그것은 마치 금속의 피부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초기엔 소프트스킨 기술이 없었어. 그래서 몸체 조형을 가능한 인체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이 당시에, 특히 예술의 나라로 불리는 저 이젤리아에서 만든 오토마톤은 걸어 다니는 예술 조각상이라고 하지. 더구나 에이그스타 가문에서는 고성능을 추구했기 때문에 내부 구동부에도 각별한 신경을···!”
“···너 지금 혼자서 뭘 중얼거리고 있는 거야?”
가까이 다가온 봄바는 둘을 보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크랭크는 그 행동을 보고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을 비롯한 마을의 늙은이들이 오토마톤 봄바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 아이가 있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는구먼.”
“이곳은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니까요.”
말을 마친 크랭크는 손짓으로 미리 준비한 빈집으로 봄바를 불러들였다.
뒤따라 문을 닫고 들어선 캐롯은 방안에서 거추장스러운 의복을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몸체를 드러낸 여신의 조각상과 경배를 하듯 그 앞에 엎드려 있는 크랭크를 발견했다.
“지금 뭐해?”
“응?”
다행이도 크랭크는 그저 봄바의 외형을 스케치 중이었다. 캐롯은 주인님이 그 정도로 미친 것 같지는 않은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캐롯, 도구를 준비해줘. 바로 시작하자. 봄바는 침대에 누워 전원을 끄도록 해.”
탁자에 도구 준비를 끝낸 캐롯이 작업을 시작하는 크랭크의 곁으로 다가가 침대에 누워 있는 봄바를 내려다보았다. 1년 전 쯤 마을 아이들이 인근의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흙속에 반쯤 파묻혀 있다가 아이들을 보고 갑작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이름은 마을 아이들이 대충 붙여줬다고 한다. 그 뒤로는 마을에 머무르며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등, 나름대로 경비업무를 충실히 이행 중이다.
“야영하는데 갑자기 나타났을 때는 놀랬지. 한 밤에 지도에도 없는 마을의 사람들을 만나고 말이야.”
“맞아. 그랬지. 음? 이럴 수가, 어깨를 마력모터로 직접 구동시키도록 해놓았어. 100년 전의 기술이 나를 놀라게 하다니!”
“아이고, 우리 주인님 신나셨네, 그나저나 부품 대금은 어떻게 할 거야? 여기 사람들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는데.”
작업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던 크랭크는 몸을 돌리고 문 밖으로 나섰다. 그는 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크랭크와 짧은 이야기를 나눈 촌장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마을회의를 시작했다. 말이 회의지 크랭크의 말을 듣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통나무에 앉은 채였지만 그래도 크랭크의 몸은 커다랬다.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크랭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관절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수리비가 많이 나올 겁니다. 비용을 부담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 얼마인가?”
“부품만 50만 리즈 입니다.”
가난한 마을인지라 다들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저 아이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편해졌는가. 조금씩 모아보겠네.”
가만히 그들을 쳐다보던 크랭크가 덧붙였다.
“그건 고장 난 어깨 하나만의 견적입니다. 조만간 다른 쪽의 문제도 발생할 것입니다. 봄바는 지금 움직이는 게 신기한 상황입니다. 언제 가동중지를 할지 모릅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이 기회에 전신 오버홀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건 얼마나 드는가?”
“저는 600만 리즈어치의 부품을 가져왔습니다.”
모두는 대답 없이 크랭크를 보았다.
야간 순찰을 돌던 봄바가 한밤에 마을로 데려와 인연을 맺은 이 커다란 손님은 마을과 거래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공정했고 그 덕에 평판도 좋았다. 속고만 살아오느라 사람을 피해 험한 생활을 선택한 사람들마저도 마지막으로 이 거인만은 믿어보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600만 리즈, 대금을 내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마을에는 당장 지불 할 수 없을 정도의 거금이야. 다른 방법은 없는가?”
팔짱을 한 크랭크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의도적인 침묵,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애처롭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의 방위를 고장 난 오토마톤 한 대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대금을 현물로 해드리겠습니다. 감자 800만 리즈 어치.”
“뭐···?”
“가, 감자로 받아도 돼요?”
“아니 잠깐만! 아까는 600만 이라며!”
크랭크가 고개를 돌렸다.
“부품 가격 600에 조립 비용을 포함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외과 수술 수준의 조립난이도를 자랑하는 오토마톤을 직접 수리해보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촌장이 힘 있게 말했다.
“수리 대금을 현물로 받아 준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저 아이가 있으면 우린 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크랭크 부탁이네, 부디 그렇게 해주시게.”
크랭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자는 매 수확기마다 가장 좋은 걸로 한 자루씩, 편지를 주시면 얼굴도 볼 겸 찾으러 오겠습니다.”
대금을 현물에 장기 할부로 때려버리는 이 당황스러운 거래에 모두들 좀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미리 언질은 받은 촌장은 크랭크에게 몹시 고마워했다.
말을 많이 해서 피곤해진 크랭크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섰다.
“후우···! 이쪽이 더 피곤하군.”
“그래! 지금 주인님을 보니까 말이야. 모험가가 약도 안하고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여자에게 빠진 것도 아니면 그걸 모두 만회하고도 남을 개노답 일탈 취미가 분명 하나 쯤 있을 거라고 누가 떠들어대던 게 갑자기 기억났어.”
캐롯의 뼈 있는 지적에 크랭크가 피식 웃었다.
“그거 말 되네.”
이번엔 캐롯이 웃어버렸다.
크랭크는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봄바의 전신을 분해해 관절과 인대와 근육, 마력모터를 교환하고 그러고도 모자란 부품은 짐마차에 실린 오토마톤에서 뽑아 가공해서 사용했다.
“캐롯아. 봄바는 좀 어떠니?”
“크랭크가 작업 중이에요. 전 이제 순찰 나가야 하니까. 적당히 먹을 것 좀 만들어서 집안에 넣어주세요. 말은 걸지 마세요. 완전 집중하고 있으니까.”
캐롯과 이야기를 하던 아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랭크가 저렇게 진지하게 할 줄은 몰랐구나. 수리 대금을 감자로 받아준 것도 그렇고.”
갑자기 캐롯이 도끼눈을 하고 날카롭게 웃었다. 작고 귀여운 악마가 익살스럽게 웃는 것 같았다.
“케헤헤헤! 아줌마. 크랭크는 바보가 아니에요. 자기에게 득이 되니까 저러는 거라고요.”
“음, 그러니?”
“그럼요! 나는 순찰 가요! 무슨 일 있으면 신호탄 올리고요!”
캐롯이 뛰어가자 동네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아낙은 저물어가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800만 리즈를 맛없는 감자로 받아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면 뭐니?”
작업 중이던 크랭크는 문이 슬쩍 열리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문 앞에는 그윽한 버터향이 풍기는 감자 스튜가 냄비 째로 있었다.
쪽잠과 철야를 병행 한지 5일 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봄바를 완성한 크랭크는 그 독특한 내부 구조와 작업 내용을 기술한 대량의 종이들을 끌어안고 침대에 기절했다.
끼이이···.
문이 열리고 아르곤 부인회 제작 오토마톤/강화인간용 Mk-1 전투복과 전용 부츠, 장갑을 끼고 하얀 백색 방열가발을 쓴 오토마톤 봄바가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오!”
“보, 봄바야?”
“멋지다!”
“예뻐!”
“역시 크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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