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15화 (15/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원정! 15

말을 마친 지아렌이 몸을 돌리고 물러서자 트로겐 원정단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표정을 했다.

행여 뒤를 치진 않을까 싶어 하드 스킨 오토마톤들과 함께 남아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철수하자 지아렌이 그린에게 말했다.

“그린, 원정 끝나고 나와 함께 트로겐 길드 장을 만나러 가자. 그 동안 우리가 네 1순위 보호대상이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아렌은 그린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 단장님 설마 또 병 도지신 거예요?”

모험가 하나가 말하자 지아렌이 평소와 다르게 흥분해서 외쳤다.

“금발 오토마톤은 많지만 이렇게 잘 꾸며진 오토마톤은 또 오랜만이야. 마구잡이로 만든 것 같지만서도 금발과 어우러진 저 마스크에서 뭔가 기품이 피어오르지 않아? 아아! 크랭크 이 나쁜 사람! 이 사람의 작품은 날 흥분시켜!”

“아 정말 평소엔 멀쩡하시면서 오토마톤만 보면 왜 저러시나 몰라.”

“너희는 어릴 때 인형놀이 안 해봤니? 그거의 연장선이야.”

“따님께서는 엄마가 이러는 거 아시나요?”

“암! 당연하지! 우리 딸도 좋아하는 걸?”

지아렌이 휘하 모험가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그린은 귀에 붙여놓았던 것을 떼어보았다.

지아렌이 붙여준 도청 장치였다.

드래곤 레어를 향해 산길을 올라간 원정단은 생각도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저게 뭐야?”

산과 산 사이에 정박해 있는 공중 전함을 쳐다보던 게토가 눈을 비볐다.

“우와! 배가 하늘에 떠 있어!”

캐롯의 말에 현실로 끌어내려온 게토가 인상을 구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서두릅시다!”

원정단이 속도를 높여 목적지에 도착하자 드래곤 레어 주변 곳곳에 천막이 쳐져 있고 엘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놀라더니 지원을 불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저들은 누군가?”

메인쿤의 모리 원정단장이 주변을 살피며 걸어 나왔다. 게토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엘프가 왜 이곳에···, 아! 설마!”

“구출된 모험가들 중에 엘프들도 꽤 있었어. 그 중에 누군가가 연락했겠지.”

신음을 흘리는 게토의 옆으로 헤리슨이 나란히 섰다.

인상을 찌푸린 모리가 무장을 갖추고 몰려나오는 엘프 전사들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여기 책임자는 누구···.”

“왔어! 지원군이 왔어! 우릴 구하러!”

모리를 포함한 원정단원들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포박 당한 채 바닥에 앉아 있다가 반가운 표정을 했다.

게토, 모리, 헤리슨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먼저 올라갔다는 트로겐 원정단 인가봐?”

캐롯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경비를 서고 있던 엘프 여자가 창을 들이밀며 외쳤다.

“인간 소녀,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물러나라!”

번쩍이는 창날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든 캐롯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키가 큰 엘프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크랭크! 나보고 인간 소녀래! 이거 칭찬이야?”

모두의 시선이 일행들 보다 한참 큰 거인에게 옮겨졌다. 좀 부끄러워한 크랭크가 대답했다.

“들으니 기분 좋아?”

“응!”

“그럼 칭찬이네.”

캐롯이 좋아라 했다. 영문을 몰라하던 엘프 여자가 놀란 표정을 했다.

“소프트 스킨?”

“그래요. 엘프 언니, 나는 오토마톤이야.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잡아 뒀어?”

“우릴 공격했기 때문이오.”

책임자로 보이는 엘프 남자가 걸어 나왔다.

팔짱을 한 모리가 물었다.

“우리는 메인쿤, 트레일, 아르곤에서 온 드래곤 레어 원정단이오. 댁은 뉘시오?”

“검은 소나무 탑의 장로 필림이오. 우리는 카이자니아의 레어를 연구탐색하기 위해서 찾아왔소.”

검은 소나무 탑이라는 말을 듣고 몇 사람들이 동요 했다.

“검은 소나무 탑이 뭐야?”

“엘프들의 마법사 길드 같은 거지.”

헤리슨이 물었다.

“아르곤 원정단장 헤리슨 입니다. 잘생긴 엘프 아저씨 저 드래곤 레어의 탐색과 유물의 재산권은 우리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유물의 재산권? 주인 없는 빈 집 털이를 고상하게 말하는군.”

헤리슨이 코를 좀 벌렁거렸다. 게토가 끼어들었다.

“실례지만 이곳은 4개 도시 길드의 모험가들이 탐색해서 찾아낸 곳입니다. 그리고 이미 카이자니아는 사망했습니다. 빈 집 털이가 재산권을 언급해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당신들도 같은 입장입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하지만 공동 탐색과 연구는 거절하겠어. 여기는 우리가 선점 했소. 저 들을 데리고 물러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필림이 손을 들자 활과 검으로 무장한 엘프 전사들이 눈을 매섭게 떴다. 동시에 그들의 머리 위에 떠있는 공중 전함에서도 함포들이 움직여 조준을 했다.

“와, 여기 당신들 동족도 있는데 그렇게 말해도 되요?”

조그만 캐롯이 걸어오면서 말하자 필림이 시선을 내렸다.

“오토마톤인가? 잘 만들어졌군.”

“감사합니다. 장로 필림. 그런데 당신들은 기분 안 나빠? 여기 아저씨가 당신들도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고개를 돌린 캐롯은 원정단에 포함된 엘프들을 보았다. 서로를 좀 바라보던 그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같은 동족이긴 하지만 서로의 이상과 욕심 앞에서 길은 얼마든지 달라 질 수 있어!”

“그런 걸로 우리는 서로에게 실망하고 원망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까?”

입을 헤 벌리고 그들을 쳐다보던 캐롯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근엄한 표정의 필림이 있었다.

“기분 좋으세요?”

“인간들에게 편승하고 있지만 동족의 기개는 죽지 않았음에 나는 참 기쁘군. 나는 동족을 포함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당신들을 배제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물러가라.”

모리가 끼어들려고 하자 헤리슨이 그를 막았다. 그리고는 캐롯을 향해 손짓을 했다. 더 해보라는 몸짓과 표정이었다.

가는 허리에 두 주먹을 올린 캐롯이 장로와 공격 태세를 잡은 엘프 전투원들을 보고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다행이에요.”

“뭐가 말이냐?”

“우리가 지금 눈높이가 같아서.”

한참 아래의 캐롯을 내려다보던 필림이 눈썹을 세웠으나 캐롯이 낭랑하게 이름을 불렀다.

“에코, 크림, 핸드릭, 베이스, 론론, 사이트, 토르가, 멘드라, 젠, 키리, 스프리, 레이, 케이.”

쿵···! 쿵···!

호명된 하드 스킨 오토마톤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캐롯은 주머니를 뒤지며 계속 말했다.

“보스, 메이리, 마이, 스텐, 하이바, 피씨, 캔디, 젠더, 커터, 바델···.”

신호탄을 꺼내 하늘로 향하고 줄을 힘껏 당기자 폭음과 함께 붉은 색 빛 구슬이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팡-!!!!

하늘에서 붉은 빛 구슬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내린 캐롯이 말했다.

“하드 스킨 오토마톤 13기, 나를 포함한 잘 정비된 오토마톤 20기, 그리고 일당백의 모험가 120여명.”

철컥! 찰칵! 스르릉! 스릉!

캐롯의 의도를 알아챈 모리가 손짓하자 모험가들이 활과 자동 석궁을 들어 올리고 검을 뽑았다. 게토는 재빠르게 병력을 좌우로 펼치기 시작했다.

인간 모험가들의 대응이 심상치 않자 필림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를 올려다보며 캐롯이 말했다.

“요구는 간단해요. 다 내놓으라고는 하지 않을게, 우리도 끼워줘요. 우리는 우리대로 한몫 챙기고 싶을 뿐이에요.”

“결국 피를 원하는가?”

스르릉!! 철컥-!

하드스킨 오토마톤들이 대형 검과 도끼를 뽑았다. 대 몬스터 요격용 병기를 보면서 엘프 전사들이 침을 삼킨다.

“엘프들이 자랑하는 공중 전함의 그 유명한 마력포를 쏘더라도 상관없어, 주인을 잃고 살아남은 오토마톤은 당신들은 물론 저 공중전함까지 공격 할 거야. 우리는 작동정지가 되는 그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다.”

숨을 좀 고른 캐롯이 눈을 깜빡이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우리 친하게 지내지 않을래요?”

으름장을 놓고 있는 캐롯과 선택의 기로에 선 엘프 장로 필림을 모두가 신중히 바라보았다.

긴 한숨을 내쉰 필림이 몸을 돌렸다.

“자세한 이야기를 더 해보지. 책임자는 이쪽으로 와보도록.”

순식간에 긴장이 풀린 사람들의 한숨이 양측에서 쏟아졌다. 헤리슨이 캐롯의 곁을 지나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 땅콩.”

“그래, 칭찬해주마.”

모리도 한마디 남기고 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싸움을 피하게 된 엘프 전사들도 캐롯과 오토마톤들을 눈여겨보았다.

1시간 후,

구조 신호를 보고 산을 뛰어 올라온 지아렌은 도착과 동시에 허리를 숙이고 구토를 했다.

“오에엑···!”

소매로 입가를 대충 닦은 그녀는 서슬 퍼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서 상황을 파악해! 전투 준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린이 붙잡혀 있는 모험가들을 보고 검을 뽑자 아는 사람이 달려와 말렸다. 몰리 마법사단의 유리였다.

“야! 그만둬! 그린! 하지 마!”

“유리?”

“그래! 지금 겨우 협상 중이야! 초치면 안 돼! 다른 사람들도! 상황 끝났어요! 협상중입니다! 싸우지 마요!”

3시간 걸리는 산길을 1시간 만에 주파한 사람들은 유리의 말을 듣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간단하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지아렌은 그린의 부축을 받아 협상중인 천막으로 안내되었다.

“오! 지아렌 단장! 그린!”

“···다들 여기에 있네. 신호탄을 쏜 건 누구야?”

“저요!”

캐롯이 손을 번쩍 들자 지아렌은 눈썹을 꿈틀대긴 했지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지친 듯 자리에 앉은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상황은?”

“얼추 끝났다.”

팔짱을 한 모리의 말이었다. 차를 마시던 필림이 말을 이었다.

“아까 말했던 대로, 우리는 저 문 안쪽 공간을 연구탐색하고 싶소. 당신들의 목적은 드래곤의 부산물과 청동문이라고 했지? 포탈 게이트로서의 역할을 원한다고?”

“그렇소.”

“좋을 대로 하시오.”

“아까와는 다르게 퍽 선선히 허락 하십니다?”

모리의 지적에 찻잔을 내려놓은 필림이 말했다.

“밀고 당기기는 아까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리고 청동문 하나는 우리가 가져가야겠소.”

서로를 보던 원정단은 다시 물었다.

“몇 개 있는데요?”

필림은 처음으로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섯 개. 딱 좋군. 다섯 세력이 하나씩 나눠가지면 되지 않겠나?”

“다섯 세력? 아, 트레일.”

모리가 한 숨을 내쉬었다.

“트레일은 도시도 길드도 생긴 지 얼마 안됐으니 어쩔 수 없지. 저들의 행보는 내가 대신 사과드리는 바요.”

필림은 씩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고개를 돌려 차를 준비하고 있는 캐롯을 보았다.

“이건 누구의 오토마톤이지?”

“크랭크라고, 덩치 큰 남자 있어요. 머리에 투구를 쓴.”

“캐롯, 차 끓이는 법은 그 주인에게 배웠느냐?”

뒤 늦게 온 지아렌에게 찻잔을 권하던 캐롯이 주전자를 들고 그를 보았다.

“아니요. 주인님이랑 일 할 때 몇 번 같이 한 모험가가 있는데. 이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꼭 식후 차를 마셨어요.”

사람은 먹어야 움직인단다. 그래서 얻어먹는 걸 좋아하고 먹는 것에 감사하는 편이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밤새 곁을 지켜주던 오토마톤이 차까지 끓여서 내민다고 생각해봐라. 보통 사람은 그 호의에 고마워 할 거다.

이야기를 들은 필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났다.

“붙잡힌 모험가들은 당신들이 풀어주시오. 탐색은 좋을 대로 하되 우리들에게 간섭하지 말 것.”

자리에서 일어선 원정단장들 중에 헤리슨이 그의 손을 붙잡아 흔들었다.

“협력 감사합니다.”

“엄밀히 협력은 아니지.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것일 뿐.”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