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원정! 14
몇 시간 후 새벽이 밝아오자 캐롯은 천막 근처에 커다란 솥을 하나 걸고 물을 끓이더니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으어어···! 이게 그 유명한···.”
“아르곤의 캐롯은···. 모닝커피를 만들어 준다더니 사실이구나···.”
“컵! 컵을 가지고 줄을 서시오! 오늘도 아침을 맞이한 용사들에게 뜨뜻한 커피 한잔 내어드리리다!”
큼직한 돌 위에 올라가 국자로 커피를 떠서 컵에 부어주는 조그만 오토마톤을 사람들은 퍽 인상 깊게 보았다.
천막에서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로 나온 헤리슨이 삼삼오오 모여 후릅후릅 거리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찾아왔다.
먼저 와서 커다란 양철컵에 커피를 받아 마시고 있던 모리가 인상을 썼다.
“그 머리 좀 어떻게 하는 게 어떻소?”
“···대 머리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군.”
“내 주변 여자들은 왜 이렇게 대가 쎈 건지 모르겠군!”
고개를 돌린 헤리슨은 캐롯을 보고 히죽 웃었다.
“기특한 녀석, 나도 줘.”
“컵 주세요.”
“없는데. 국자 줘봐.”
캐롯에게서 국자를 빼앗은 헤리슨은 그것을 솥에 담가 후르릅 마셨다. 모리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웃기만 할 뿐 별말하지 않았다.
“크흐어어! 속이 풀리는 구나! 하지만 커피 맛은 별로네. 향이 좀 죽었어.”
“많이 우리려면 별 수 없지요. 여기요. 들고 가셔서 드세요.”
“음, 고맙다.”
어디서 컵을 하나 찾아와서 커피를 담아주자 헤리슨은 그걸 받아가지고 천막으로 돌아갔다.
별거 아닌 뜨거운 차 한 잔은 모두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사람들은 이어서 식사를 하고 정리를 한 다음 출발을 서둘렀다.
“트로겐 원정대는 현지에서 만날 예정이기 때문에 되도록 지정 날짜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신나게 달립시다! 출발!”
“출발!”
자동마차들이 줄지어 출발했다.
넓은 초원과 숲이 펼쳐져 있건만 사람 잡아먹는 몬스터가 들끓어 황무지라고 부르는 곳을 이틀 동안 달린 자동 마차들은 드디어 목적지에 당도했다.
선두는 제임스의 차량이었는데, 같이 타고 있던 게토가 창밖을 보고 중얼 거렸다.
“저기 자동마차가 보인다. 트로겐이 먼저 도착했나?”
자동마차가 멈추기도 전에 문에서 훌쩍 뛰어내린 게토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와중에 후미 차량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봐! 당신들 트로겐 원정대인가?!”
“누구요?!”
자동마차로 벽을 쌓고 베이스캠프를 차려놓은 곳의 경비가 외쳤다.
“누구긴 누구야! 아르곤, 트레일, 메인쿤의 원정단이지!”
“오! 일찍 오셨구려! 우리도 도착한지 얼마 안됐소.”
몇 사람이 나와서 게토와 이야기를 하는데 게토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는 대놓고 물었다.
“일행이 이것뿐이요? 혹시 먼저 올라간 거요?”
“···그게, 기다리려고 했습니다만 젊은 친구들이 성화를 부려서.”
“먼저 올라갔군! 언제 갔나!”
“어, 어제 정오에 올라 갔···.”
“어제 정오?!”
게토가 몸을 돌렸다.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원정단장을 찾은 게토가 상황을 보고 하자 헤리슨은 히죽 웃었다.
“그 정도는 예상했어. 산길을 3시간 올라야 한다고 했지?”
“예.”
“어제 정오에 올라간 친구들이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군. 레오!”
“예! 보스!”
금발을 짧게 다른 젊은이가 고개를 돌리자 헤리슨이 빠르게 외쳤다.
“지원반은 여기다가 베이스캠프를 쳐! 나머지 전투반과 탐색반은 바로 산을 탄다! 식사는 건조 식량으로 이동 중에 해결!”
원정대는 미리 짜 놓은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발 준비 완료 됐습니다!”
육포를 씹고 있던 헤리슨이 메인쿤 원정단장 모리를 보았다.
“우리가 1차 선발대입니다. 갑시다.”
“알겠소.”
게토와 크랭크 파티를 선두로 산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맨 앞에는 캐롯이 뛰고 있었다.
“으하하! 드래곤 레어를 털러 가자! 용사들아!”
“그럼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지아렌이 손을 흔들며 모두를 배웅했다. 베이스캠프가 세워지는 것을 돌아보던 그녀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마미, 모미, 모모.”
귀여운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험악한 인상의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망토를 흩날리며 다가오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베이스캠프 주변 정찰을 부탁해. 몬스터가 있으면 정리해줘.”
“알겠습니다.”
“출격합니다.”
“작전개시.”
스르릉!
쿵쿵쿵!
오토마톤들이 검을 뽑아들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때 근처에서 트로겐 원정단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예.”
“이쪽에 저희들 도시에서 파견된 모험가의 오토마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잠시 트로겐 원정단 소속 모험가들을 쳐다보던 지아렌은 방긋 웃더니 몸을 돌렸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데려 올게요.”
느긋하게 산책이라도 하는 냥 뒷짐을 한 지아렌은 베이스캠프 설치를 돕고 있던 사람들에게로 다가가 그린을 찾았다.
때마침 자재를 옮기고 있던 그린과 마주쳤고, 지아렌은 그린에게 무어라 몇 마디 해준 다음 기다리고 있는 모험가를 가리켰다.
트로겐의 모험가들은 다가오는 금발의 오토마톤을 보고 흥미로운 표정을 했다.
“저게 그 제토손의 오토마톤인가? 들은 거와 많이 다른데? 전투복까지 차려 입었어.”
“꽤 손을 봤군. 방열가발을 씌운 걸 보니 마력석도 빨간 걸로 바꿨나본데?”
“얼굴에 저건 마스크인가? 손을 본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미적 취향이 꽤 마음에 드는 걸?”
이윽고 오토마톤 그린이 그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혹시 저희 주인님을 보셨습니까? 성함은 제토손 입니다.”
서로를 쳐다보던 사내들이 그린의 어깨를 감싸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안타깝군. 네 주인은···.”
“네 주인은 너를 길드에 팔았어.”
“그렇습니까?
“그래. 원정 끝나고 길드로 데려다 주마.”
멀리서 그들과 걸어가는 그린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함께 한 원정단원들이 입맛을 다셨다.
“갑자기 뭔지 모르지만 내거 뺏긴 느낌이라 기분 더럽네.”
“나도 그래. 에잇! 이래서 오토마톤에게 정 붙이면 안 된다니까!”
“크랭크 때문이야! 너무 예쁘장하게 만들어놓으니까 이런 거라고!”
“그래! 이게 전부 그 변태 근육 양동이 때문이다!”
“이놈들아!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천막 세워!”
사내들은 씩씩거리며 크랭크를 욕하다가 지원반장의 성화에 캠프 설치를 서둘렀다.
근처에서 뒷짐을 지고 그 모습을 쳐다보던 지아렌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저는 뭘 할까요?”
트로겐의 베이스캠프로 온 그린이 말했다. 옆의 사내가 그 금발을 만져보더니 말했다.
“이거 사람머리카락에 방열사를 섞은 고전적인 거야. 요즘은 보기 드문 건데. 굉장한 걸?”
물통에 앉아 가만히 그린을 위아래로 살펴보던 사내가 말했다.
“이 녀석 이제 주인도 없는 오토마톤 주제에 고급 부품을 많이 달고 있네, 그대로 길드장에게 갖다 주기엔 좀 아까우니까 몇 개 슬쩍 바꿀까?”
사내들의 얼굴로 탐욕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이 금발, 내 오토마톤 거랑 바꿔달면 지들이 어떻게 알거야?”
“저 가면, 정말 잘 만들었어. 내 취향이야.”
“마력석을 내 오토마톤 것과 바꾸고 싶군.”
누군가가 그린에게 말했다.
“저기 작업대 위에 올라가서 누워라. 그리고 전원을 꺼.”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린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싫습니다. 여러분은 제 부품을 떼어갈 생각이신가요?”
“뭐?”
“어라?”
생각도 못한 질문에 사람들이 당황했다.
“헛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
한 남자가 그린의 금발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그린의 팔이 기괴하게 움직이더니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남자의 손목을 꺾어 비틀었다.
“끄아아악!!”
오토마톤이 인간에게 적극적인 반격을 가하자 모험가들이 당황했다.
“뭐, 뭐야!? 오토마톤 불러!”
“베인!”
“론!”
천막 근처에 섰던 오토마톤이 달려왔다. 그린이 고개를 들자 가면 속 안구를 담당하는 유리 구슬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더 가까이 오면 이 사람의 팔을 뜯어내겠다. 움직이지 마라 오토마톤.”
끼긱!
털컥!
오토마톤들이 멈춰서 주인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오토마톤이 협박을 하고 있어!?
“아니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그만 두지 못해!”
“아르곤 놈들이 오토마톤을 고장 냈어!”
“파, 팔을 놔라! 인형! 이거 놓으라고! 너는 고장 났어!”
그린이 고개를 숙여 팔을 붙들려 허리를 숙이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오토마톤 3원칙의 그 3번째, 오토마톤은 자기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를 저는 현재 실행 중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망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네 행동은 3원칙의 첫 번째에 위배 되잖아!”
“끄으으아아아악!!!!”
팔을 더 꺾어 올리며 그린이 말했다.
“오토마톤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해선 안 된다. 오토마톤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사실 이 항목들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저는 군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 적국의 인간도 많이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적국의 인간은 3원칙에 해당하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 그린의 속삭임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핏기를 가시게 했다.
“그리고 저는 무장탈영병의 추적에도 동원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지위관은 아군이라고 해도 죽이지만 않으면 3원칙 첫 번째에 위배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끄으아아아!!!!”
“베인! 론! 명령이다! 공격해라! 저 미친 오토마톤을 쓰러뜨려!”
두 오토마톤이 슬금슬금 움직이자 그린이 낮게 말했다.
“오토마톤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해선 안 된다. 당신들의 행동이 결과를 만든다. 더 접근하면 팔을 뜯어내겠다. 이 결과는 온전히 당신들의 행동 때문이다.”
논리의 충돌에 베인과 론, 두 오토마톤이 다시 주인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현재 논리의 오점을 바로 잡아 주십시오.”
사내들은 이제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급기야 참다못한 한 모험가가 검을 뽑았다.
“하여튼 멍청한 것들이! 하라면 할 것이지 뭔 말이 많아!”
칼이 날아오자 잡고 있던 남자를 밀어버리고 팔을 들어올렸다.
깡-!
팔의 강철판에 가로 막힌 칼날 아래로 오토마톤 그린의 귀여운 마스크가 슬쩍 들어났다.
“이 전투복은 아르곤 부인회에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것도 빼앗아가려 하셨습니까?”
인질이 풀려나자 모두가 무기를 뽑아들었고, 그들의 오토마톤들도 앞으로 나섰다.
“어머나~! 저희들 대접해 주시려고 돼지를 잡으시나 봐요?”
오토마톤은 물론이고 천막을 세우던 남자들까지 다 몰려와 지아렌의 좌우로 도열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 그린?”
“제 부품을 뜯어 가려고 하기에 거절했습니다.”
인상을 찌푸린 남자 하나가 들고 있던 망치로 그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모험가는 불한당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는데 지금 당신들 하는 짓이 딱 그 꼴이구만!”
“뭐! 우리 그린을 분해하려고 했다고?!”
“분해해서 부품을 갈취하려고 했다고?!”
“뭐야! 도둑질이잖아!”
트레일 원정단의 비난에 듣다 못한 트로겐 원전단 모험가들이 소리쳤다.
“도둑질이라니! 말조심해라! 어차피 길드 소속 오토마톤이다! 너희들은 상관없잖아!”
“그래! 돌아가!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지 말고 꺼지라고!”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무력의 차이가 심했다.
쿵쿵쿵-!
어디서 몬스터라도 베어 넘기고 왔는지 피를 뒤집어쓴 하드 스킨 오토마톤이 다가와서 상황을 살피고 있다.
지아렌이 손은 흔들어 그린을 불렀다.
“이쪽으로 와.”
“예. 부르셨습니까.”
방금 전 인간에게 적대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던 그린이 총총 걸어 지아렌의 곁으로 향했다.
“여러분, 저는 트레일 원정단 단장 지아렌 루오라고 해요.”
대치하고 있던 남자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여러분은 우리가 호의로 수리해 드린 오토마톤의 부품을 빼돌리려고 했어요.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나는 이일을 당신네 길드 장에게 보고하고 담판을 짓겠어요. 그러니 한소리 들을 각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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