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9화 (9/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이웃들! 9

그린의 몸을 열어 내부 기관의 마모도와 열화 상태를 점검한 크랭크는 주문할 부품 내역을 불렀고 캐롯은 옆에서 열심히 받아 적었다.

“예상대로 관절이 다 갈렸어, 의외로 인공근육은 괜찮네, 하지만 몇 군데 더 집어넣어서 보강하자 10팩 정도.”

“···인공근육 10팩. 관절은?”

“관절은 14개, 마력석 레드 1개, 동력 전달용 고압선, 저압선, 신경선, 각 1다발씩, 척추사이 연골도 몇 군데 다 망가졌어. 인공 연골 한 묶음.”

“많이도 들어가네.”

“쓰고 남는 건 우리 몫이다.”

“아이 좋아라. 나 정비 할 때 쓰면 되겠네. 좀 더 주문하자.”

부품 내역서는 그렇게 새벽까지 작성되었다. 크랭크는 그 후 골아 떨어졌고, 캐롯은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가 빵집을 먼저 방문했다.

탕탕탕!

“문 좀 열어주세요!”

“이른 아침부터 누구야?”

“나 다!”

“헉! 캐롯!?”

“아저씨 빵 좀 줘! 어른들 아침밥 대용 쨈이랑 치즈 듬뿍 쑤셔 넣은 걸로 3인분! 그리고 애들이 좋아할 만한 빵은 선물용으로 3만 리즈 어치!”

마침 부엌에서 빵을 굽고 있던 젊은 여자가 얼른 종이봉투에 빵을 가득 담았다. 동전을 쥐어주고 나서려다가 캐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너 혹시 에밀리아?”

빵집 딸 에밀리아가 방긋 웃는다. 캐롯이 반색했다.

“와! 엄청 예뻐졌어! 시집가도 되겠다! 맞다 너 혹시 아직도 크랭크를 노리고 있는 거야?”

“아, 아니에요!”

에밀리아가 얼굴이 벌게져서 손 사례를 쳤다. 히히 웃어준 캐롯이 손을 흔들며 빵집을 나섰다.

“이번에 이 근처로 이사 왔어. 자주 들릴게.”

가게 앞에서 고개를 꾸벅이는 에밀리아를 뒤로 하고 시내를 가로 질러 오토마톤 관리사무소 부품과를 찾아가 그린의 예비 부품을 주문했다. 다행이 여분이 있어서 바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품과 아저씨들 이거 드세요!”

“우와! 이거 뭐야? 빵이야?”

“응! 아저씨들 배고플까봐 올 때 좀 사왔어요. 8번가의 롤 아저씨네 빵집이 근처에 있거든?”

“와! 잘 먹을게! 고맙다!”

이른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사람들이 캐롯이 내미는 빵을 가지고 요기를 하며 말했다.

“하여튼 네 주인도 대단하지. 업체도 아니고 개인이 직접 수리하는 사람은 드문데 말이야.”

“와, 우리 주인님 말고도 있긴 있나 봐요?”“냠냠, 수리비 좀 줄여보려고 직접 손대는 사람들이 꽤 있지. 그런데 대부분 더 망쳐놓고 돈을 배로 들이거나 폐품 처리를 하게 되더라고.”

“오! 그런 오토마톤 폐품은 어떻게 되요?”

“우리 쪽에서 폐품 비용으로 구입해서 재활용 처리해. 프레임이나 내부 부품 몇 가지는 소재가 귀해서 녹여서 다시 만들거든. 너희들 척추 부품의 일부가 미스릴이라는 거 알고 있냐?”

캐롯이 슬쩍 물었다.

“혹시 그런 고가의 정크 부품도 따로 팔아요?”

그러자 남자 하나가 빵을 먹으며 낮게 말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이른 아침에 와서 나한테 슬쩍 말해보도록 해. 가격은 협의.”

“예, 저는 이만 가 볼게요.”

“그래. 빵 잘 먹었다.”

새 부품이 가득한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캐롯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꾸벅이더니 바쁘게 뛰기 시작했다.

“저게 전투용 오토마톤 캐롯이군요. 참 귀엽네.”

캐롯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젊은 남자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래도 되요?”

“안되지. 그런데 이미 위에서도 다 빼돌리는데 우리라고 못할 건 뭐야? 그리고 저 녀석 하는 짓이 참 기특하잖아.”

“8번가의 롤 아저씨네 빵집이랬지? 퇴근하고 한번 가봐야겠다. 빵이 맛있어.”

“어, 나도 같이 가자.”

슬슬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캐롯이 달려간 곳은 거주구역의 연립주택이었다.

쾅쾅쾅!

“플루이드! 너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어서 문 열어!”

한참 조용하다 문이 스륵 열렸다. 금발을 기른 20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캐롯을 발견한 여자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가 곧 도끼눈이 되어 캐롯의 볼을 잡아 늘렸다.

“이것아! 빚쟁이 찾아온 줄 알았잖아!”

“우오-! 뺨은 놓고 말해 늘어나! 늘어나!”

기분이 상한 듯 팔짱을 한 그녀를 보고 캐롯이 빵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받아.”

“뭐니?”

“선물이지 뭐야. 동생들 먹여.”

“···고맙네. 들어와.”

“됐어. 네 막내 여동생이 좀 더 자라면 들어갈게, 날 걸어 다니는 인형으로 생각하더라고?”

“너 인형 맞잖아?”

“넌 그 인형 친구고?”

둘은 킥킥 웃었다. 캐롯이 말했다.

“너 머리카락 많이 자랐네?”

빵 주머니를 가슴에 안은 플루이드가 머리를 좀 매만졌다가 말했다.

“너 머리 바꾸게?”

“나 말고 다른 녀석, 주변에 머리카락 팔려는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줘. 가능한 긴 머리면 좋겠어. 색깔은 상관없어.”

“알았어.”

“이거 주소야 시세에 두 배 쳐 줄 테니 직접 데리고 와 기한은 내일 저녁까지. 그 안에 와야 해. 아니면 못 사.”

“누구 머리에 심을 건데? 의외로 그런 거 많이 따져.”

“저 유명한 오토마톤 머리카락이 사실 내거라는 자부심 같은 거야?”

“부정하진 못하겠네. 지금 네 머리카락 주인의 콧대가 얼마나 센 줄 아니?”

캐롯은 하하 웃었다.

“멜리사는 잘 지내?”

“그렇지. 멜리사는 향후 10년 치 머리카락이 예약된 상태야. 정말 사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에 결혼도 했어. 지금 임신 중이지. 네가 왔었다고 하면 좋아할 걸?”

“와오~! 그 말괄량이 멜리사가? 나중에 한 번 찾아가봐야겠네. 머리 심을 녀석은 그린이라는 오토마톤이야. 이번 드래곤 레어 원정대에 길드장 지명으로 참가가 결정된 녀석이지. 지금 크랭크가 절찬 수리 중이야.”

문 앞에 쪼그려 앉은 플루이드가 캐롯과 눈을 맞췄다.

“와! 정말? 소문 들었어. 드래곤 레어에서 오크들이랑 싸웠다는 그 오토마톤이잖아? 어때? 네가 볼 때 꽤 잘 나갈 것 같아?”

“에? 그건 모르겠는데?”

플루이드가 시무룩한 표정을 했다.

“너도 멜리사처럼 결혼하고 싶어?”

“여기서 몇 살 더 먹으면 진짜 위험해. 그때 내 머리카락 잘라 줬어야 했는데, 하···!”

캐롯이 킥킥 웃는다.

“나쁘지 않아. 길드에선 드래곤 레어 원정대에 참가한 오토마톤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겠지, 크랭크가 손봐 줄 테니 당분간 이름 날리는 데는 문제없을 거야. 하지만 이것도 긍정적인 거고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모험가, 전투용 오토마톤이니 미래는 모르지 뭐.”

플루이드는 손가락을 깨물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했다. 캐롯은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작은 몸에 비해 너무도 커다란 가방을 가볍게 짊어 진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운~! 나의 집~!”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도착한 곳의 마당에는 웬 근육 덩어리 마초가 속옷에 투구만 쓴 모양새로 팔굽혀 펴기를 하고 있었다.

“50···! 51···!”

“내 주인은 오늘도 강하고 힘찬 아침이구나. 닭 가슴살 삶아줄까?”

“훅! 그래. 야채 볶음도!”

창고 겸 집 안으로 들어간 캐롯은 임시 부엌에서 닭 가슴살을 삶고 야채를 볶았다.

“부품 다 사왔어! 머리카락도 주문했고!”

“수! 고! 했! 어!”

팔굽혀 펴기를 마친 크랭크는 그 몰골로 창고 지대를 한 시간 뛰어다닌 뒤에 물통의 찬물로 샤워를 했다.

“욕실이 필요해.”

“부엌도.”

“일단 원정이 끝나면 공방의 대대적인 개조를 시작하자.”

“근데 그 오크 친구들 그대로 있을까?”

여전히 속옷 바람으로 자리에 앉아 캐롯이 차려준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며 크랭크는 고개를 저었다.

“기본적인 전술을 구사했어. 약간 머리가 돌아가는 놈들 같은데, 아마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아.”

“오호?”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 준비에는 항상 만전을 기해야해. 그린의 일행들을 기억해봐.”

빈 드래곤 레어라는 것만 생각하고 갔다가 털려버린 모험가들을 기억해낸 캐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네가 하는 일이라면 모두 찬성이야. 크게 손해 본 기억은 없거든.”

“그래, 그런데 이거 또 양배추 즙이야?”

캐롯은 컵에 탁한 연두색 액체를 따르며 말했다.

“내 마음대로 조리를 할 수 있으니 좋네. 앞으로 좋은 거 많이 먹여줄게. 오래오래 살아줘.”

식사를 마친 크랭크는 가방 안에서 부품을 꺼내 확인 했다. 그리고 곧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캐롯은 주변에서 보조로 작업을 거들었다. 심부름도 좀 하고,

“시간이 부족해, 전투복은 외주로 맡기자. 마리아 씨에게 저녁 부인회에서 소일거리 할 사람 좀 모아달라고 해줘. 대장간, 포목점에 주문한 물건도 모두 그쪽으로 돌려.”

“알았어.”

맞춤 전투복의 스케치와 치수를 적은 종이 몇 장을 가지고 여관으로 달려간 캐롯은 상당한 환대를 받았다.

“실례합니다! 마리아 있어요?”

“오! 캐롯! 캐롯이다!”

캐롯이 고개를 돌리자 아는 얼굴의 모험가 몇이 앉아서 밥을 먹다가 손을 흔들었다.

농담 따먹기 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닌지라 우아하게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인사를 했다.

점심 무렵이라 식사 중이던 모험가들이 쑥덕거렸다.

“오! 저게 캐롯이라는 오토마톤이야? 소프트스킨 쓴 오토마톤은 처음 봤어. 엄청 귀엽네?”

“야 겉만 그래. 속은 욕쟁이 할망구라고, 상단 호위 할 때 싸우는 걸 본 적 있는데, 광견병 걸린 햄스터가 따로 없었어.”

“광견병 걸린 햄스터라니! 요즘은 회전하는 오르골 인형이라고 불린다고!”

캐롯이 버럭 하자 모험가 하나가 하하 웃는다.

“아, 그 치마칼바람?”

“아 됐어. 이 아저씨들아, 밥이나 먹어. 확실히 별명도 엘프들이 좀 우아하게 불러주는 것 같아. 마리아는 어디 갔어?”

“오, 캐롯 왔구나. 무슨 일이야?”

주방으로 들어간 캐롯은 그녀에게 큼직한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오토마톤 전투복 외주 작업 좀 도와주세요.”

“크랭크가 바쁜가보네, 알았어. 저녁에 부인회 사람들 좀 불러 볼게. 기한은?”

“3일.”

봉투 안의 전투복 스케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네. 꼭 이렇게 만들지 않아도 되지?”

“예, 판매하는 규격품이 아니니까 비슷하게만 만들어도 된데요. 조립에 필요한 물건은 곧 가져다드릴게요.”

“알았어. 3일 뒤 아침에 가지러 와.”

여관을 나서려던 캐롯은 누군가와 마주쳤다. 아는 얼굴이었다.

“어? 캐롯?”

“아, 잠깐, 너 누구였지?”

애덤은 우울한 얼굴을 했지만 캐롯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장난이야. 애덤.”

“이젠 오토마톤에게까지 놀림 받고 있어.”

“신나는 경험이지? 레나는 어디 갔어?”

“아직 자고 있다.”

“잔다고? 해가 중천인데?”

“그 얘들은 잠이 많아. 몸의 부하를 회복하려면 이게 제일 빨라.”

그 얘들은, 이라는 말에 캐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이야?”

“잠깐 게토 대장 집에, 이 사람들은 자주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하더군. 맞아, 게토 대장 딸이 딱 너만 했어.”

“아, 그래서 나를 그렇게 대견하게 바라봤었나. 그나저나 너희들 여기서 묶고 있었구나. 우리도 어제까지 여기 있었는데.”

“그래? 우린 어제 저녁에 옮겨왔어. 크랭크는?”

“지금 공방에서 절찬 작업 중이지.”

“작업? 아, 그린을 수리한다고 했었지.”

“레나 전투복은 샀어?”

“그게 비싸더라. 게토 대장도 좀 버거워하는 눈치였어.”

“그럼 어쩔 수 없네. 마구잡이로 만든 물건이라도 입어보고 싶다면 크랭크에게 물어봐줄까?”

애덤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 정말 그래 줄래?”

캐롯은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저녁에 다시 올게.”

확 밝아진 애덤이 여관 건물 앞에서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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