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8화 (8/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티 타임! 8

길드의 응접실에 모여 앉은 모두는 무시무시한 표정이 되어 서로를 살폈다. 길드에서 보장한 의뢰비 외에 다른 도시의 길드에서 소속 모험가를 구출해준데 대한 답례로 꽤 많은 보상금을 보내왔다.

이제 그걸 나누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소액이라면 상관없지만 거액은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서 길드 고용인들이 손수 돈을 계산해서 나누기도 한다.

말끔한 제복을 입은 여성 길드 원들이 금화를 세어 보여준 다음 자루에 담아 내밀었다.

“모험가 크랭크님.”

“모험가 애덤님.”

“파티 몰리 마법사단님.”

“아 이름은 왜 이렇게 지었어요!”

“임시라서 대충 지었는데 미안해, 바꿔야 할 것 같지?”

몰리와 게토가 툭탁이는 모습을 건너뛰고 책상에 앉아있던 길드장이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

“아, 아닙니다. 길드장님.”

중년의 길드장이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크랭크, 그 방패 팔 생각은 없습니까?”

“언젠가는 팔 겁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거 꽤 좋더군요.”

“그렇다면 언젠가 매각하실 때는 꼭 저희 길드를 이용 부탁합니다.”

크랭크의 투구가 끄덕였다. 마주 웃어준 길드장이 책상에 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자, 여러분, 좋은 소식입니다. 드래곤 레어 원정이 계획되었습니다. 4개 도시에서 팀이 모여서 출발할겁니다. 조사단도 함께 하는 대규모 원정입니다. 그리고 그 4개 도시 길드 장께서는 여러분의 참가를 꼭 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캐롯과 그린이라는 오토마톤 2대와 레나, 게토는 직접 이름이 언급되었습니다. 참석해주시겠지요들?”

“아, 저희는 손을 떼고···.”

“섭섭지 않은 금액을 보장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먼저 가본 사람들이 안내를 맡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맡아주시겠지요들?”

길드장이 책상에 올라갈 듯이 몸을 쑥 내밀고 소파에 앉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며칠 밤을 새워서 길드장의 눈에는 핏발이 돋아있었다.

“언제 갑니까?”

“오! 크랭크! 저는 믿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먼저 나서 주실 거라고! 2개 팀을 기다렸다가 출발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팀은 현지에서 만날 약속입니다. 준비에 시간이 걸리니 빠르면 일주일 정도 후에 있을 예정입니다.”

크랭크는 몇 가지 요구 조건을 더 달았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길드장은 즉시 허가했고, 나머지 팀들도 참석하기로 했다.

“일주일이면 좀 쉬었다가 갈 수 있겠네요.”

“그래 좀 쉬고 준비 시작한다. 그리고 말인데, 애덤, 너희들 우리 파티에 오지 않겠냐?”

“예?”

돈 자루를 열어보던 애덤이 놀라서 되물었다. 게토는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레나의 능력이 아까워서 그래. 강화인간과 한 팀이라지만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 돈을 좀 효율적으로 벌어들이고 싶지 않나? 물론 목숨은 걸어야겠지만.”

애덤이 망설이며 대답을 못하자 크랭크가 한마디 했다.

“저는 추천합니다. 사람은 극단적인 상황일수록 본성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 같이 싸워본 당신이 제일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꽤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오오! 기뻐하세요들, 크랭크가 남을 칭찬하다니 드문 일입니다!”

길드장은 짓궂게 웃었다. 게토가 말했다.

“지금이라면 자동석궁도 임대해주지. 전력의 보강은 중요하거든.”

“하겠습니다.”

“좋아. 나가서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나 좀 하지. 레나도 데려와. 그리고 크랭크! 자네도 오도록 해. 캐롯도 같이,”

“저는 시청에 좀 들렸다가 가겠습니다. 먼저 내려가 계시죠.”

다들 자리에서 일어서서 길드장을 바라보았다.

“진행상황을 공유할 테니 3일 뒤 다시 이곳으로 와주시오들, 급한 일이라면 이쪽에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알고는 계시오들.”

모두들 고개를 숙여 길드장에게 예의를 표시한 다음 집무실을 나섰다.

같은 시간, 오크굴에서 구출된 모험가들이 요양하고 있던 병원을 어슬렁거리던 캐롯이 누군가를 발견했다.

“아! 엘프 남자!”

“소개가 늦었군. 나는 유에스라고 한다네. 오토마톤 소녀 캐롯.”

“엘프들은 말하는 게 퍽 교양 있어.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게 우리들 사이에서는 예의라고 생각하거든.”

“그래, 유에스. 몸은 좀 어때?”

병원 마당의 벤치에 앉아 긴 머리를 매만지던 유에스가 말했다.

“오크 친구들이 나를 거꾸로 매달 때 만해도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는데 지금 한결 편하군. 딱딱한 병원 시트가 이리도 포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네. 그런데 날 보러 여기 온 건가?”

“아니, 실험 대상을 보러왔지. 그리고 실험도 좀 하고.”

“응?”

캐롯이 소리 쳤다.

“그린! 초록아! 이리 나와 봐!”

잠시 후 오토마톤 하나가 슬글슬금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를 부른 겁니까?”

엘프 유에스는 잊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보고 있던 캐롯이 흐뭇하게 웃는다.

“어때? 그날 밤 내가 했던 말 아직 기억해?”

“하, 하하! 내 죽을 때 까지 그대는 잊지 못할 것 같군. 두고두고 할 이야기 거리가 하나 더 늘었어.”

“그 이야기 거리 하나 더 늘려주지.”

말을 마친 캐롯은 가져온 물건들을 마당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냄비였다. 삼각대가 달린, 마력화로를 바닥에 놓고 물을 끓이더니 주머니에서 잘 볶아온 커피콩을 그라인더로 곱게 갈고 가루를 천 주머니에 담아 냄비 안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그윽한 커피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 둘 병원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캐롯? 캐롯이냐?”

“그거 커피야?”

“조건 반사라는 거야. 신기하지?”

“이런 세상에! 하하하!”

흥분한 에스비는 덥썩 캐롯을 껴안고 볼을 비벼버렸다. 같이 웃어준 캐롯은, 그만 그의 품에서 벗어나 잔뜩 준비해온 양철컵을 접이식 테이블에 올린 다음 국자로 커피를 떠서 내밀었다.

“어때? 용사님들, 오토마톤과 차 한 잔 하지 않겠어?”

평상복을 입은 그날의 용사들이 병문안을 온 캐롯을 보고 반가워하며 잔을 받아들었다.

이튿날 아침부터 두 사람은 부산했다. 오늘은 이사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2층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여관 주인은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간다고 하니 좀 섭섭하긴 하네.”

침대시트에 각종 잡동사니를 우겨넣은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내려온 캐롯이 말했다.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마리아. 가끔 놀러 올게요.”

“5년간 신세졌습니다.”

양 손에 가방을 들고 내려온 크랭크가 여주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모험가들이 왔다 가는 일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가게에 여러 도움을 주던 인성 좋고 실력 좋은 친구라면 섭섭해 질만도 하다.

“캐롯, 이제 가는 거야?”

여종업원들은 무릎을 꿇고 캐롯을 껴안은 채 징징 거렸다.

“아주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울고 그러니?”

“으잉! 하지만 이제 밤에 외로워서 어떻게?”

캐롯은 여유만만하고 색기 넘치는 눈으로 여종업원의 턱을 조그만 손으로 들더니 그 눈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젠 인형 말고 좋은 남자를 껴안고 잠들도록 해. 그래도 될 나이니까. 자신감을 가져.”

“꺄아악! 하하하!”

종업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손을 흔들어 주며 여관 문을 나선 크랭크는 길가에 세워둔 수레에 가방을 던져 넣고, 캐롯이 짊어진 보따리도 실어 올린 다음, 그 위에 캐롯을 앉히고 수레를 끌었다.

큼직한 보따리에 앉은 캐롯이 물었다.

“근데 새 집은 어디야?”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주변 치안 유지를 조건으로 구매했지.”

“치안 유지?”

“음, 그냥 여기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더군.”

거주 지역에서 벗어나 마침내 도착한 곳은 아르곤의 서쪽 벽 근처에 위치한 창고 지대였다.

“와, 동네 안에 이런 데도 있었음?”

“저기다.”

크랭크가 가리킨 곳은 창고들이 잔뜩 늘어선 곳이었는데, 그 중에 6번이라고 적힌 곳이었다.

“엥? 단독주택이 아니라 창고야?”

“엄연히 단독주택이다. 장비하고 도구를 채워놓고 공방으로서의 역할도 해야 하니까.”

그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이런 선택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수레에서 폴짝 뛰어내린 캐롯은 크랭크를 도와 짐을 내부로 옮겼다.

“와, 엄청 넓은데?”

“할 일이 많아서 꾸미기는 나중이다. 기본적인 가구랑 집기가 필요해. 사러가자.”

창고를 닫고 밖으로 나온 크랭크는 캐롯에게 가죽자루를 내밀었다.

“이건 뭐야?”

“용돈. 그 오크 청동문 앞에서 했던 말 기억해?”

분명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에?! 이렇게 많이 줘? 애들 사탕 사줄 정도면 돼!”

“돈도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라고 하더군.”

크랭크는 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고, 큼직한 돈 자루를 내려다보며 캐롯은 정신적으로 볼을 부풀렸다.

크랭크는 시장을 돌면서 당장 먹을 식량과 가구, 생필품을 닥치는 대로 구입했다. 캐롯은 약간 불안해졌다.

“주인님 괜찮아? 너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아니? 왜?”

“평소 수전노에 가깝던 사람이 갑자기 돈을 막 쓰기 시작해서 말이야.”

캐롯을 내려다보던 크랭크는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돈을 모아놓기만 하면 보는 눈은 즐겁지 만 그 마음은 썩어 들어가지. 나는 수전노가 아니야. 오늘을 위해서 기다렸을 뿐이지.”

배달이 가능한 것은 배달로, 아닌 것은 수레에 가득 실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넓은 창고 안에 가구와 소파, 탁자가 들어서자 사람 사는 모양새가 갖춰졌다. 날이 어두워져 천장에 임시로 라이트 볼을 설치하는 동안 캐롯이 요리를 했다. 부엌이 없기 때문에 야영 할 때처럼 삼각대에 솥을 걸어서 사용했다.

“밥 됐어! 먹고 해!”

“응.”

탁자에 앉은 크랭크의 앞으로 큼직한 쇠고기 구이와 야채볶음, 빵이 올려졌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잔에 녹황색 액체도 가득 담아놓았다.

“이거 혹시 양배추 즙이야?”

“응, 위장병에 좋데. 크랭크, 오래오래 살아야해?”

크랭크는 별말하지 않고 식사를 시작했다. 투구를 쓴 채 입 부분의 커버를 열어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캐롯이 말했다.

“여긴 사람이 없으니 그거 벗고 먹는 게 어때?”

“아, 그렇군.”

투구를 벗어서 바닥에 내리자 평범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캐롯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크랭크가 후다닥 투구를 뒤집어쓰자 캐롯이 좀 웃긴다는 듯이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누구야?”

“실례합니다.”

캐롯이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이름 특이하네, 실례합니다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어?”

“그린이다.”

“맞아. 그런데 왜 왔지?”

접시의 고기를 입안에 다 쑤셔 넣고 우걱우걱 씹고 있던 크랭크는 불러오라는 손짓을 했다. 캐롯이 도도도 달려가 문을 열자 망토 같은 것을 입은 오토마톤이 서있었다. 그린이었다.

“캐롯.”

“초록이 왔구나. 무슨 일이니?”

“아르곤 길드 장께서 편지를 전해 달라하셨습니다.”

야채볶음을 입에 쑤셔 넣고 몇 번 씹을 다음 양배추 즙으로 넘겨버린 크랭크가 빵을 씹으며 다가왔다.

캐롯이 소리쳤다.

“천천히 좀 먹어! 그러니 위장병이 생기지!”

“일이 없으면 천천히 먹을게.”

그린이 내미는 편지를 읽어본 크랭크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그린을 바라보았다. 일반형 오토마톤은 성인 사이즈라서 그렇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

“그린, 곧 대규모 드래곤 레어 원정을 떠나는데 너도 함께 가야해. 모두가 네게 기대하고 있다. 그러니 가능한 준비를 하려고 한다. 나는 네 몸을 할 수 있는데 까지 수리할거야. 이 편지는 네 주인이 소속된 길드에서 온 임시수리 허가서다.”

“그렇습니까? 저는 뭘 하면 되나요?”

“저기 긴 작업대에 올라가서 누워. 그리고 전원을 꺼.”

“알겠습니다.”

터벅터벅 걸어간 오토마톤은 로브를 벗고 작업대 위에 올라가 누웠다. 그리고 곧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착실하네. 근데 전원을 끄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오토마톤 3원칙 까먹었나?”

“내가 충분히 설명했으니 그걸 믿는 거겠지. 너 라면 어떻게 할 거야?”

“내가?”

크랭크는 그린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도구를 가져와 팔과 다리의 커버를 열기 시작했다. 그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던 캐롯이 말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 할 것 같네. 내가 준비 만전이라면 거절할거야. 나는 내 몸을 지켜야 하니까. 수리가 절실하고 작업자를 믿을 수 있다면 나는 순순히 따를 거야. 나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하니까.”

크랭크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다워.”

“엣헴! 더 칭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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