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티 타임! 7
“진정해. 정신병자들아. 이대로 가다간 다 죽어.”
때 마침 고프의 오토마톤이 다리를 덜덜 떨다가 무릎을 꿇어버렸다.
-마력이 떨어졌습니다. 마력석을 교환해 주십시오. 마력이 떨어졌습니다. 마력석을 교환···!
“마력고갈···!”
그때 지친 오크들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크랭크도 뒤로 더 물러섰다.
잠시 후, 두 진영은 완전히 떨어졌다. 하지만 오크들은 아직 동굴 앞에서 자기들끼리 뭐라 떠들어대고 있었고, 모험가들은 서둘러 레어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크랭크는 마력고갈로 활동을 멈춘 오토마톤과 부상자를 짊어지고 서둘러 산을 타고 있었다. 머리에 수건을 감은 레나는 캐롯과 함께 맨 뒤에서 오크의 습격을 견제했다.
1시간 정도 이동 후 잠시 멈춰서 휴식 겸 부상자 치료를 시작했다. 부러진 뼈를 맞추고 붕대를 감는 엘프 여자의 옆에서 마법사 몰리가 통탄했다.
“오늘만큼 성직자의 힐이 절실한 날이 없군요.”
“자책하지 마세요. 덕분에 우리는 살았습니다. 크게 다친 사람들은 꽤 있지만 죽은 사람은 없어요.”
주변의 지옥도를 살펴본 몰리는 억지로 웃어보려고 했다.
크랭크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오토마톤과 부상자를 내렸다. 그리고는 어깨를 한 바퀴 돌렸다.
“뻐근하네.”
사람 둘의 무게를 짊어지고 1시간 동안 산을 탄 감상을 간단하게 정의한 크랭크는 고프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 오토마톤의 주인이오?”
“아닌데.”
크랭크는 고프의 동료들을 보았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제토손이라는 친구야.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군. 오우거 만났을 때 도망쳤는데.”
“혹시 마력석 가진 것 있소?”
셋은 서로를 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크랭크는 말없이 자리에 앉더니 오토마톤의 상체를 일으켜 세워 무릎에 올리고 등을 후려쳤다.
그러자 오토마톤의 입에서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이 떨어졌다.
그걸 주워든 크랭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엘프 남자가 아무렇게나 누워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까 오크 촌락에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엘프였다.
“힘들어 보이는데 미안합니다만 부탁이 있습니다.”
“···뭐지요?”
크랭크는 말없이 동그란 마력석을 그에게 내밀었다. 엘프 남자는 쓰러져 있는 오토마톤을 보더니 그것을 받아들어 입가에 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곧 서서히 마력석에 초록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걸 처음 본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제가 지금 기력이 너무 없어서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 뿐이군요.”
“아닙니다. 도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거 초록색이군요. 저 오토마톤도 참 잘 싸우기에 당연히 빨간색일 줄 알았는데.”
“이해 못 할 상황은 아니지요. 마력석은 비싸니까요.”
크랭크는 다시 마력석을 오토마톤의 입에 집어넣고 이번엔 상체를 반대로 꺾어 무릎위에 올리고 가슴을 두들기자 오토마톤이 몸을 들썩거리더니 눈을 떴다.
-마력석 출력 12% 확인, 예상 연속구동시간 48시간, 오토마톤 기동합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오토마톤의 시야에 크랭크가 보이고, 그 뒤로 바닥에 누운 엘프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반갑습니다. 혹시 저희 주인님을 보셨습니까? 성함은 제토손입니다.”
“못 봤다. 저기 저 사람들에게 물어봐.”
자리에서 일어선 크랭크가 다른 부상자를 도우러 가자 오토마톤도 일어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오토마톤은 주인의 동료들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향했다.
“반갑습니다. 고프님, 저희 주인님의 행방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고프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디온이 말했다.
“오우거 습격 때 헤어져버렸어. 도시로 돌아가 길드에서 찾아봐주도록 하마. 혹시 모르지, 요령이 좋은 친구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무엇을 할까요?”
“···따라와라.”
고프는 오토마톤을 이끌고 큼직한 바위로 다가갔다.
“이걸 치우고 땅을 파라. 친구들의 머리가 있다.”
“으헛!”
“서, 설마 여기가!”
밤인데다 당시 경황이 없었지만 최초 그들이 오우거를 만나 습격당했던 장소였다. 디온과 에프투가 오열하는 사이 바위를 밀어내고 땅을 조금 파내자 커다란 가죽 자루가 나왔다. 소매로 눈가를 좀 비빈 고프에게 제토손의 오토마톤이 고개를 돌렸다.
“고프님, 저희 주인님도 여기에 있습니까?”
“···없어. 못 믿겠으면 확인해봐.”
주섬주섬 가죽주머니를 풀어 안을 들여다본 제토손의 오토마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계십니다. 저는 이분들을 모시고 이동하겠습니다.”
대답이 없는 주인의 동료들을 뒤로하고 가죽 자루를 끈으로 묶어 가방처럼 등에 맨 오토마톤은 가까운 곳의 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방망이로 만들어 무장을 이뤘다.
그런 오토마톤의 곁으로 캐롯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이봐. 오토마톤.”
“예.”
“넌 이름이 뭐야?”
“주인님은 제게 이름을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이 오토마톤, 거기 오토마톤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주변 분들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래. 안타깝네, 이름이 있으면 편리한데 말이야. 첫 주인도 너를 그렇게 불렀어?”
잠시 가만히 있던 오토마톤은 캐롯을 돌아보았다.
“첫 주인님이 부르던 이름은 134번입니다. 저는 군의 전투용 오토마톤이었습니다.”
“그럴 것 같았어. 보통 너 같은 일반형은 군 불하품이 많으니까. 나는 캐롯이야. 내 주인은 저기 덩치 큰 아저씨야. 크랭크, 모험가지.”
가만히 그를 쳐다보던 오토마톤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당신의 몇 번 째 주인입니까?”
“두 번 째 주인이야. 첫 주인의 친구였지. 주인이 죽고 관리소에 매각되기 전에 내가 선택했고, 받아줬어.”
오토마톤은 대답이 없었다. 캐롯은 재미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같은 오토마톤이랑 이야기가 해보고 싶었어. 별로 재미없네, 넌 연산 장치가 모자라서 말도 매끄럽지 못하고 처리용량도 적어.”
“실망시켜드려 미안합니다. 출하이후 성능개선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거 알아? 저기 엘프 언니가 가르쳐 줬는데, 꼭 피가 흘러야 살아 있는 건 아니래. 수고해.”
“예, 수고하십시오. 캐롯.”
몸을 돌리던 캐롯이 허리에 손을 얹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이름이 없으니 불편하네.”
“···이 몸이라도 좋다면 지어줄까 싶군.”
두 오토마톤이 고개를 내린 곳에는 마력석을 충전시켰던 남자 엘프가 누워있었다. 캐롯이 깜짝 놀라하며 뒤로 물러섰다.
“왁! 놀랬네! 아저씨 언제부터 거기 누워있었어? 오토마톤 치마 속이 보고 싶었던 거야?”
“···그건 약간 불쾌한 지적이군, 나는 그대들이 오기 전 부터 여기 있었어. 오크 친구들이 거꾸로 매달아 버리는 바람에 지금 몸이 말이 아니거든? 그리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꽤 흥미로운 대화였어. 그래서 자네 이름말인데.”
캐롯은 오토마톤을 쳐다보았다.
“그린?”
“그래. 마력석을 충전시켰더니 초록색이기에 붙여보았다.”
“아, 그거! 나도 놀랐어. 마력석이 충전도 돼?”
“증폭장치를 거치지 않아서 효율은 낮지만 된다. 임시방편이지.”
“좋네. 그린그린, 초록이네 초록이.”
엘프남자는 누운 채로 웃었다.
“캐롯, 그대는 내가 본 오토마톤 중에서도 대단히 매끄러운 언어력을 구사하는 군. 정말 사람 같아.”
캐롯이 팔짱을 끼며 웃었다.
“나도 저랬어. 주인님들께서 돈을 많이 발라줘서 이렇게 된 거지.”
“흥미롭군. 오토마톤은 어디까지 진화하는 것인가 토론을 해보고 싶을 정도야.”
“몸이 나으면 놀러오도록 해. 선뜻 크랭크를 도와준 당신에게 차 정도는 대접할 수 있어.”
캐롯이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그린. 어때?”
“제겐 이름을 설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우린 이제 너를 그린이라고 부를 거야. 모두가 같은 이름을 부여하면 그 이름은 그대로 고유명사화 된단다. 한 번 볼래?”
쫄래쫄래 걸어간 캐롯이 굳은 표정으로 크랭크와 이야기 중이던 게토에게 다가갔다. 캐롯을 잠시 쳐다보던 게토가 고개를 돌린다.
“그린! 이리와 봐! 할 일이 있다!”
이제 그린이라고 이름 붙은 오토마톤이 그들에게 걸어가자 이 흥미로운 실험에 흥분한 엘프 남자는 눈을 반짝였다.
휴식 후 다들 이동을 개시했다. 암묵적인 협의가 있었다지만 오크들이 다시 공격해 올지도 모를 노릇이기 때문이다. 부상자와 식사도 제대로 못한 사람들인지라 이동속도는 매우 더뎠다. 몇 번씩 쉬어가며 겨우 산을 내려왔을 때는 거의 해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오자 자동마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임스가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제임스! 먹을 게 필요해! 솥을 걸어! 메뉴는 아무튼 부드러운 거!”
바닥에 드러누워서 죽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제임스였지만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자초지정은 건너뛰고 마차의 짐칸을 뒤져 솥을 걸고 불을 피우고 물을 부었다.
“누가 나 좀 도와줘! 물이 필요해! 저기 계곡 아래에서 물 좀 떠와줘!”
게토가 외쳤다.
“그린! 물 좀 떠와라! 뭔 일 있으면 이 조명탄을 쏴! 구하러 가마!”
물통을 들고 계곡으로 달려가는 그린을 바라보며 뒷짐을 치고 히죽 웃고 있던 캐롯의 곁으로 엘프 남자가 다가와 앉았다.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대는 참 영악하군! 정말 재미있어. 하하하!”
“말이 좀 통하는 엘프를 만나 반갑네.”
이윽고 재료를 다 때려 박은 스튜가 완성됐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이지?”
“못 먹을 걸 넣진 않았으니 그냥 참고 드시게 저기 엘프 아가씨도 잘만 드시는구먼.”
근처에서 스튜를 떠먹던 엘프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잊지 못할 맛이에요.”
“허허, 양을 맞추려다보니 그렇습니다. 기력을 찾아야 사냥도 할 수 있지요. 천천히 드시구려, 아직 많이 있습니다.”
엘프와 인간들이 뒤섞여 식사를 하는 사이 커다란 냄비를 화로에 올린 캐롯이 크랭크의 배낭에서 커피콩 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전부 손아귀 힘으로 가루로 만들어 냄비 안에 쏟아 넣고, 각설탕도 다 털어 넣었다.
물이 끓으며 그윽한 커피향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따로 컵이 없으니 그냥 그릇에 담아 마셔 모양도 맛도 엉망이지만, 나는 당신들이 살아남은 걸 축하해주고 싶어.”
이윽고 아침 해가 떠올랐고, 달콤하고 뜨거운 커피 향기와 함께 모두는 기운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살아남은 것에 감사했다.
게토는 묘하게 분위기가 따뜻해지는 것을 보고 크랭크를 쳐다보았다.
“저 녀석 정말 오토마톤인가?”
“가끔 저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거 참.”
승차인원의 2배는 넘는 것 같은 인원을 모두 태운 제임스는 자동마차를 몰아 복귀를 시작했다. 자리가 없어서 나머지는 차 지붕에 올라가 앉기도 했다.
이동에 힘을 들이지 않으니 편했다. 자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몇몇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드래곤 레어 탐색에 동원된 팀은 4개 도시의 모두 8개 파티였다. 아르곤에서는 크랭크가 포함된 1개 파티뿐이었지만 다른 도시에서는 선발대가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구조대까지 조직해서 보내왔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가보니 오크들이 반기더군, 이런 걸 들고 덤빌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마법도 반사되더라고?”
드래곤 스케일 방패와 드래곤 본 몽둥이를 챙겨온 사람들이 많았다. 동료도 죽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너무도 큰 손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드래곤 레어 관련된 정보는 왜 이렇게 많이 팔린 거지?”
“우연히 탈출한 누군가가 어떻게든 구조대를 보내려고 그랬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오크 놈들의 사주에 의해서였든가.”
마차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르익어갔다. 왔던 대로 3일간의 시간이 흘러 겨우 목적지인 아르곤에 도착하자마자 도시 길드에서는 난리가 났다.
드래곤 레어는 실존했고, 목격자들의 증언과 더불어 증거품으로 가져온 드래곤 스케일 방패는 길드장과 도시 수뇌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하지만 4개 도시가 다 모험가를 파견한 복잡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원정대 파견에는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이젠 알아서 하겠지. 우리가 할 일은 끝났어.”
“그래, 이제 정산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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