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티 타임! 5
“저 녀석이 우릴 찾아주고 지켜줬어. 은인이야.”
“은인은 무슨! 지 할일을 하는 거지!”
고프가 쏘아붙였다.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듣고 있던 리모가 중얼거렸다.
“와, 오토마톤이다. 보통 저런 모습을 많이 봤지. 앙상한 뼈대랑 표정 없는 얼굴.”
“어 그래?”
퍽퍽!
캐롯이 방망이로 오크 머리를 깨다가 고개를 돌린다. 리모가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혹시 오토마톤끼리도 유대감 같은 거 있어?”
“너는 모르는 사람과 그런 게 생겨?”
“아니? 하지만 인간적으로다가 위험해 보이면 서로 몰라도 도움 정도는 줄 수 있어.”
“그 정도는 우리도 그래. 피조물은 창조자가 하는 짓을 따라 하기 마련이거든.”
리모의 눈이 커졌다.
“와! 방금 대답 꽤 철학적이었어! 지금 이야기 기억할게!”
캐롯은 방긋 웃다가 고개를 돌리고 버럭 외쳤다.
“야! 이 인간 놈들아! 한가하면 좀 거들어라! 오크들이 깨려고 하잖아!”
일행과 이야기 중이던 고프가 인상을 구기더니 마주 외쳤다.
“오토마톤이면 오토마톤답게 좀 예의바르게 말할 수 없느냐!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아!”
“으헤헹~! 넌 내 주인이 아니거든? 꼽니?”
캐롯이 팔짱을 끼고 턱을 들자 고프는 부들부들 떨었다. 듣고 있던 오토마톤이 롱소드를 꺼내더니 근처에 살아있는 오크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고프의 동료들은 놀라워했다.
“오토마톤?! 저 여자애가?!”
“소프트 스킨인가! 저런 고가의 장비를! 주인이 누군지 모르지만 제정신이 아니군. 전투용 오토마톤에겐 쓸모없는···.”
그때 거대한 근육덩어리가 나타났다. 머리엔 양동이 같은 투구를 썼는데 오크 피가 튀어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내가 그 제정신이 아닌 저 녀석 주인이오만.”
들고 있는 숏소드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세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크랭크는 그들의 오토마톤이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고프, 동료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시오.”
“어, 아, 알겠소.”
말을 마친 크랭크는 새로 나타난 오토마톤에게로 다가갔다.
“보통 사람은 아니군.”
“저 친구들은 마법사랑 강화인간도 데리고 왔어. 제길! 우리도 좀 더 철저히 준비 해왔더라면 이렇게 어이없이 당하진 않았을 텐데!”
“강화인간이라고?! 누구지? 꼭 한 번···!”
듣고 있던 애덤이 눈살을 찌푸렸고, 토스트가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보쇼! 아저씨들! 바쁜 거 안보여?! 당신네 인형한테만 맡겨두지 말고 빨리 거들어! 오크 새끼들이 깨서 날뛰면 뒤지든 말든 내버려 둘 거야?!”
눈치를 좀 보던 고프 일행은 마지못해 검을 뽑아들고 살아있는 오크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얼추 작업이 끝나고 다들 한 곳에 모이자 게토가 동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안에 뭐가 있더냐?”
“오크.”
“응?”
머리카락이 타버려 기분이 상했는지 손가락으로 빗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잘 정돈된 커다란 동굴이야. 정말 레어였을지도 모르겠어. 동굴 안에 입구가 몇 개 있기에 아무 곳이나 들어갔는데 하필 오크 굴이더라고,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더라 이상하지? 여긴 오크 흔적이 없는데 안쪽에는 오크가 돌아다녀.”
확실히 동굴 주변은 깨끗했다. 이곳에 정말 오크 부락이 있다면 닥치는 대로 나무를 베고 진흙탕을 만들고 곳곳에 목책을 만들어 쌓아두었을 것이다.
고프 일행의 오토마톤을 앉혀 놓고 그 전투화를 잠시 손봐주고 있던 크랭크가 바닥에 앉은 채 입을 열었다.
“이건 그냥 제 생각입니다만.”
게토가 그의 넓은 등을 보았다.
“해보게.”
“아시다시피, 드래곤은 그를 추종하는 몬스터 무리가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빈 레어를 탐색하는데 인원을 맞춰 온 이유이기도 했고요.”
머리가 깨져서 나자빠져 있는 오크들을 돌아본 크랭크가 오토마톤의 전투화 가죽 끈을 질끈 묶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는 사실 드래곤 레어가 맞고, 오크들은 이 레어를 신성하게 여겨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아 그럴 수 있겠다! 신전에 애들이 뛰어다니면 성직자가 화를 내는 거랑 같네!”
토스트가 끼어들었다.
“그럼 이놈들은 어떻게 동굴 안에서 나타난 거···! 아! 혹시 반대쪽에 이것들 부락이 또 있는 거 아냐? 산 반대편에 말이야. 동굴로 연결 된 거지.”
“와, 그럴 듯한데, 그게 사실이면 규모가 장난이 아닐 것 같아.”
밤하늘 아래 솟아난 산을 올려다보며 다들 식은땀을 흘렸다.
자동석궁의 탄통을 교환하던 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캐롯, 오크를 만났다던 동굴 안이 얼마나 긴지도 살펴봤어?”
“아니? 입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거기 보초 서고 있던 오크랑 마주쳤어.”
이제 모두가 게토를 보았다.
“저게 진짜 레어라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가야해. 그냥 갈 수는 없어. 돌입한다. 오크굴은 안건드릴거야. 레어라는 증거를 확보한 다음 즉시 철수 한다.”
캐롯이 입을 열었다.
“대머리 대장, 다 갈 필요 있겠어? 나랑 크랭크만 갔다 올게. 저게 진짜 레어라고 생각 될 만한 물건을 찾아오면 되잖아?”
“너 그게 뭔 줄 아냐?”
“모르지, 하지만 우리 주인님은 돈 될 만 한 건 귀신 같이 알아채거든?”
모두가 크랭크를 보았다. 좀 부끄러워졌지만 그가 일어섰다.
“가장 확실하게 드래곤의 부산물이라도 우연히 발에 차이면 좋겠군요. 비늘이든 뼈든.”
눈을 감고 한 숨을 내쉰 게토가 말했다.
“오크들이 더 안 나오는 게 이상해. 뭔가 꺼림칙하다. 가라. 최대한 빨리 뭐라도 하나 주워 와봐.”
가슴에서 라이트 볼을 떼어 주머니에 집어넣은 크랭크가 캐롯의 뒤를 따라 어둠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게토가 뒤를 돌아보았다.
“전원 철수 준비. 몰리, 최대한 화려한 거 터트릴 수 있냐. 혹시 있을지 모를 후속부대의 추적을 따돌리고 싶다.”
“전 지금 스펠을 다 써서 남은 게 없어요.”
“그럼 몸으로 때우자. 레나, 그리고 거기 오토마톤.”
일행의 짐이 다 들어간 게 아닌 가 싶을 정도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오토마톤이 고개를 든다.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당장 땔감을 모아와라. 가능한 많은 양이 필요하다.”
캐롯의 안내를 받아 조심스레 동굴로 들어간 크랭크는 가죽 주머니의 입구를 조금 열어 약간의 빛에 의지하여 동굴 벽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쓸린 자국, 그런데 너무 높다. 저 위치에 닿을 정도라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이쪽이야.”
넓은 공간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 크랭크는 캐롯이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정말 벽면에 사람정도가 드나들 수 있는 큼직한 굴이 파여져 있었다.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이 꽤나 깊어보였다.
“오크가 튀어 나온 곳인가?”
“그래.”
“다른 구멍은?”
“저쪽으로 나 있어.”
캐롯의 안내를 받아 벽을 짚고 이동하는데 꽤 떨어진 곳에 같은 크기의 굴이 보였다.
잠깐 고민하던 크랭크가 그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가 보게?”
“그래. 부산물을 찾아보고 싶은데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 이쪽이 더 빠를 것 같다.”
“앞장설게.”
붉은 눈을 뜨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던 캐롯이 멈춰 섰다.
“저게 뭐지?”
“무슨 일이야?”
“막다른 방인데, 이상한 것이 있어. 아무도 없으니 라이트 꺼내봐.”
주머니에서 라이트 볼을 꺼내 높이 들자 안은 막혀 있고 벽에 멋진 장식의 문이 하나 붙어 있었다. 청동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살짝 열려서 내부의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멈춰선 크랭크와는 달리 캐롯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더니 허리를 숙여 열린 문 틈새로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어? 이건 말이 안 되는데?”
크랭크가 다가와서 물었다.
“안에 뭐가 있나?”
“봐봐.”
크랭크가 몸을 기울여 문틈을 들여다보았다가 놀래서 몸을 뒤로 뺐다. 잠깐 투구를 손으로 짚고 있던 그는 손을 앞으로 뻗어 문을 잡아 당겼다. 청동문임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열렸다.
휘이잉-!
밝은 초록빛과 함께 산들 바람이 불어왔다. 열려진 청동문 너머에는, 대낮의 숲이 펼쳐져 있었다.
“짧은 모험가 생활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이군.”
그를 올려다보던 캐롯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문 안으로 폴짝 뛰어 들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가 다시 폴짝 뛰어 안으로 들어왔다.
오토마톤 캐롯의 행동을 보고 크랭크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복잡한 감정이 잠깐 스친 다음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돌아가면 용돈 챙겨줄게.”
“아? 진짜? 아이 고마워라.”
“그러니 네가 오토마톤이라고 해서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아줬으면 해.”
캐롯이 밝게 웃는다. 오로지 주인인 크랭크에게만 보여주는 오토마톤의 미소였다.
크랭크는 숏소드를 뽑아 문틀에 걸쳐 놓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힐까 염려하며 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 시원하다.”
먼저 들어가 있던 캐롯이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크랭크는 먼저 청동문을 살폈다. 그것은 사방으로 숲이 펼쳐진 언덕위에 놓여있었는데, 놀랍게도 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문만이 덩그러니 서 있다.
“크랭크 저기!”
캐롯이 손짓하자 고개를 돌린 크랭크는, 언덕아래 숲의 나무 사이사이로 오크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곳을 보고는 놀라고 말았다. 비슷한 언덕이 몇 개 더 있었으며, 언덕 위에는 그 청동문이 서 있었던 것이다.
“이게 입구로군. 반대편으로 연결된 동굴 같은 것이 아니었어.”
“돌아갈 거야?”
“아니, 아직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언덕을 내려와 숲을 가로지른 크랭크와 캐롯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 촌락을 발견했다. 곳곳에 동물 뼈와 진흙 목욕을 위한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고, 주변에 나무를 베어서 쌓아올린 가옥 같은 것이 많이 있었는데 그 안에 사람이 갇혀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눈을 가늘게 뜬 크랭크가 물었다.
“캐롯, 저거 사람 아니야?”
“그러네, 차림새를 보아하니 모험가 같은데? 와, 저기 엘프도 있어.”
캐롯이 가르킨 엘프는 근처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이 느껴진다.
“쿠와아아아!”
마을에 남아있던 덩치 큰 오크들이 그들을 발견했다. 크랭크가 팔을 뒤로 당겼다가 있는 힘껏 손도끼를 집어던졌다.
캉-!
날아간 도끼는 오크가 들어 올린 검은 방패에 막혔다. 불꽃을 튕기며 날아오르는 손도끼를 슬쩍 본 크랭크가 말했다.
“이번 보수를 받으면 집을 살 수 있다. 캐롯, 오크를 모두 죽여.”
팡-!
쏜살처럼 달려간 캐롯이 휙 뛰어오르더니 방패를 걷어찼다. 퍼억!!!!
“꽥?!”
다른 오크들이 뒤로 날아가는 동료를 보고 기겁했으나 바닥에 착지한 캐롯은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방패가 엄청 단단하네? 뭘로 만든 거야?”
캐롯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오크들에게 덤벼들었다. 방패가 나타나자 재빠르게 바닥으로 떨어져서는 라운드형 방패 아래 공간을 슬쩍 지나 안쪽의 오크들 사이에서 일어섰다.
“짠! 가장 작아서 가장 싼 오토마톤이 할 수 있는 묘기였습니다! 방패 건너기!”
“쿠엑!?”
갑자기 나타난 캐롯을 보고 오크들이 당황하여 도끼와 칼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캐롯은 눈을 감으며 오르골 인형의 발레 자세를 잡았다.
캐롯이 회전을 시작한다. 그녀의 치마가 떠올랐고, 원심력에 의해 숨겨진 칼날이 튀어나와 주변의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휘이이이잉! 촤하아아아악!
“끄으아아악?!”
“크훠어억!”
얼마나 빠르게 도는 것인지 피로된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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