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4화 (4/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티 타임! 4

일행은 캐롯과 크랭크를 선두로, 레나와 애덤을 후미로 하고 산속을 걷기 시작했다. 숲속으로 들어온 지 1시간 쯤 지났을까, 거대한 나무 몽둥이를 든 오우거가 나타났다.

“크르르르르···!”

“오우거다! 그것도 대형종!”

“전투준비!”

모두가 긴장하는 사이 크랭크가 나직하게 말했다.

“캐롯.”

눈을 살짝 감고 오르골 인형처럼 우아한 발레 자세를 잡은 그녀는 이윽고 맹렬하게 회전을 시작하더니 팽이가 되어 날아가 방심하고 있던 오우거의 목을 정확하게 그어버렸다.

휘이이이잉!!!

“커···! 크어어억?!”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피에 놀란 오우거가 커다란 손으로 목음 감싸자 게토가 외쳤다.

“후방직접지원! 다리! 무릎에 집중 사격! 쏴라!”

투투투투투투투투바바바바바!!!

비싼 돈을 들여 미친 척하고 구매한 자동석궁 3정은 무시무시한 화력을 선보였다. 순식간에 무릎이 고슴도치가 되어버렸고, 오우거는 몽둥이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쿵-!

“이동! 크랭크! 몰리를 업어주게! 캐롯! 달려라! 네가 포인트맨이다! 이 산의 중턱 부분이다!”

“아하하! 나를 따르라! 포인트맨 나가신다!”

캐롯이 튀어나가자 모두가 뛰어서 오우거에게서 멀어졌다. 게토가 말했다.

“레나는 후방 엄호! 주위를 살펴! 쫓아오는 것들이 있으면 알리고 요격해라!”

“예!”

한참 달려 올라가는데 멍청히 선 캐롯이 나타났다. 그 주위로 모험가로 보이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이 무슨?!”

“사람인가?”

“캐롯!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아니야!”

생뚱맞은 대답에 모두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했지만 크랭크가 등에 업은 몰리를 내려준 다음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살폈다. 대형무기에 당한 듯 대부분 끔찍하게 으깨져 있었고,  상체나 하반신이 없는 시체도 많았다.

“아까 그 오우거에게 당한 것 같은데. 없는 부분은 먹힌 건가?”

“저기 산 사람도 있어.”

캐롯이 가리킨 바위 뒤에서 사람의 머리 같은 것이 올라왔다가 쑥 내려갔다. 크랭크가 다가가려는데 레나가 앞섰다.

바위 뒤로 돌아간 그녀는, 곧 남자 하나를 부축해서 데리고 나왔다.

“으, 으윽···!”

“당신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우, 우리는 트로겐에서 파견된 모험가다···. 일 때문에 왔다가···. 오우거에게···!”

“너희도 드래곤레어 찾으러 왔어?”

캐롯이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남자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다, 당신들도?”

“하아···! 아르곤에서 왔다. 여긴 아르곤 마을 영지로 알고 있는데?”

“아, 아니지. 엄밀히 따지면 트로겐과의 경계선에 있다. 지도를 잘 봐.”

게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의 시체를 살폈다.

“정보원이 우리 길드에만 정보를 판 게 아니야. 쯧, 놀아나는 기분인데.”

“어쩌죠?”

“일단 저 시체들부터 수습하자. 이봐, 자네 이름이 뭐야?”

“고프.”

“고프, 너만 산거야? 몇 명이서 왔나. 레어는 찾았어?”

“12명 왔다. 레어는 못 찾았어. 올라가는 도중이었지.”

게토가 뒤를 돌아보았다.

“몇 명이냐!”

“7명입니다! 아, 아니! 인간 6명하고 오토마톤 1대요!”

“다행이군. 당신 포함 5명은 살았어.”

이야기를 들은 고프는 곧 흐느끼기 시작했다. 시체를 수습하고 다리가 부러진 고프를 치료하는 동안 시간은 착실히 줄기 시작했다. 게토가 안절부절 못했다.

“좀 있으면 해가 질 것 같다. 산을 내려갈까?”

“예!?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구요?!”

몰리가 기겁했다.

“오우거가 돌아다니는 산이니까. 다른 대형종도 있을 거야. 대머리 게토의 판단은 옳아. 하지만 가는 중에 해가 질 거야. 밤은 위험해.”

모두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하지만 캐롯은 밝았다.

“하지만 걱정 마. 내가 너희들 다 지켜줄게. 나는 잘 정비된 비싼 병기야. 돈 값을 하지. 저기 박살난 고물과는 비교하지 말라고.”

고프가 눈을 크게 떴다.

“오, 오토마톤인가?”

캐롯은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를 했다. 크랭크가 거들었다.

“지금 내려가기엔 아깝군요. 우리 전력은 아직 무사합니다. 게토 씨.”

레나를 돌아보고 조금 생각해보던 게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버텨보자. 안타깝지만 매장할 시간이 없다. 이대로 전진. 유리, 고프는 어때?”

부러진 다리뼈를 맞춘 상태에서 비싼 힐링포션을 병째로 먹이자 곧 그는 절뚝이며 걸을 정도가 되었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유리를 보며 게토가 이동을 지시했지만 고프가 막았다.

“부탁이야! 저 친구들 데려가게 해줘! 돈이라면 얼마든지 낼게!”

“안돼. 시체를 짊어지고 싸울 수는 없어.”

“다 한 마을 친구들이야. 버리고 갈 수는 없어!”

“아 이 사람 참!”

실랑이가 일어나는 와중에 모두가 차마 하지 못할 말을 캐롯이 대신 했다.

“그럼 절충안으로 머리라도 잘라서 따로 묻어놓을까? 갈 때 가져가게.”

무시무시한 표정이 된 고프가 쏘아붙였다.

“말버릇이 없는 인형이구나! 어떻게 그런 말을···!”

캐롯은 게토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다시 다리를 부러뜨려버릴까? 아까는 질질 울면서 다 내놓을 것 같더니 눈높이가 비슷해지니 기가 세지네?”

“이···! 이···.”

고프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잘라.”

히죽 웃은 캐롯이 귀를 기울이는 흉내를 냈다.

“응? 뭐라고?”

“목을 자르라고!”

“솔직하지 못한 아저씨네. 알았어.”

손도끼를 주워든 캐롯이 시체의 목을 자르는 동안 애덤과 유리가 땅을 팠다. 그 동안 크랭크는 시체를 뒤져 유품들을 수거했다.

머리와 함께 유품 자루를 땅에 파묻고 레나가 커다란 바위를 들고 와 위에 올려놓자 고프는 기겁했다.

“뭐, 뭐야? 뭔 힘이···!”

“드래곤 레어를 털러가는 건데 준비는 가능한 해와야지 않겠나?”

“우리도 오토마톤을 3대 데려왔다. 하지만 전투 중 기능부전을 일으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망가졌지. 빌어먹을!”

“응? 아까 12명이라고 했지? 오토마톤 포함 아니었어?”

“사람만, 오토마톤은 장비로 쳐야지.”

게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외쳤다.

“출발! 어디 뭐가 나올지 계속 올라가보자고! 해가 저 산을 내려가면 바로 야영 준비를 시작한다!”

모두는 바짝 긴장한 채로 산을 올랐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바위와 나무가 많아서 걷기 힘들었다.

간간히 조우하는 몬스터는 화살로 쫓아버리거나 캐롯과 레나가 요격했다.

“확실히 경치도 좋고, 드래곤이 살만한데. 정말 있을까?”

“어차피 우리는 탐색이야. 위치 확인하고 증거 확보하면 된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일행은 정말로 거대한 동굴을 발견하고 앞에 멈춰 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몰리가 입을 열었다.

“내 총평을 말해볼까.”

“그래. 마법사의 평가는 어때?”

“최소한 살아있는 드래곤 레어는 아냐. 진짜라면 마나가 숨도 못 쉴 정도로 짙어야하고 몬스터도 엄청나게 들끓어야해. 가짜거나, 버려진 곳이거나.”

“좋군. 무사귀환이 가깝군.”

동굴을 안을 기웃대던 게토가 뒤를 돌아보며 손짓 했다. 캐롯이 깡총깡총 뛰어갔다. 뭔가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캐롯은 뒤의 크랭크에게 손을 흔들더니 튕겨나가는 스프링 처럼 동굴로 쏘아져 들어갔다.

“몰리! 연막! 이 부근을 덮을 정도로 큰 걸로! 나머지는 동굴 위로 올라가 벙커를 만든다!”

모두가 후다닥 움직였다. 레나가 바위 몇 개를 뽑아내자 금세 훌륭한 구덩이가 만들어졌고, 잘라온 나무로 위장하자 순식간에 벙커가 만들어졌다. 좁지만 사람들이 숨기엔 충분했다.

“스모크!”

몰리의 외침에 지면에서 부터 스멀스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한참동안 뿜어져 나온 연기는 이윽고 주변을 안개처럼 채워버렸다. 때마침 산속의 서늘한 기온은 연기가 흩어지지 못하게 붙잡아버렸고 연막은 꽤 오래 머물렀다.

“한 번 더 쓸 수 있게 준비해줘.”

“알았어요.”

30분 쯤 흘렀을까.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걱정이 되는 찰나 별안간 커다란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에엑!!!!!

제일 먼저 튀어나온 것은 피를 뒤집어쓴 작은 인형이었다. 미리 이야기 된 대로 캐롯은 동굴 앞 넓은 공터 저편으로 일직선으로 달려 동굴 주인을 끌어냈다.

“저, 저게 뭐야?”

“오크! 오크다!”

오크 무리가 떼거지로 쏟아져 나온다. 캐롯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 하하하하! 나 잡아봐라!”

실망과 고민도 잠시 게토가 말했다.

“몰리! 범위공격! 저것들을 모두 잡자! 자동석궁! 너무 멀리 나가지 못하게 붙잡는다! 쏴라!”

벙커에 숨은 상태로 자동석궁 3대가 화살을 쏘아대자 하늘에서 화살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퍼퍼퍼퍽!

“꽥?!”

옅은 안개 속에서 화살을 맞은 오크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몰리가 주문을 완성했다.

“스모크 이그니션!”

푸화아아악!

고여 있던 연기에 불이 붙어 갑자기 발화했다.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사방으로 화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 연기가 순식간에 발화하는 바람에 화상을 입은 오크는 많았지만 타죽은 오크는 없었다. 그들이 꽥꽥 거리는 와중에 몰리가 외쳤다.

“모두 이쪽으로 모여! 숨을 멈춰! 숨 쉬지 마! 최대한 오래!”

다들 입을 다물고 벙커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몇 분 후 모두의 얼굴이 파랗게 질릴 지경이 되자 품을 뒤진 몰리는 스크롤 하나를 꺼내 찢은 다음 중앙에 놓았다. 바람 같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숨 쉬어도 돼.”

“후하! 이게 뭔 일이래! 마법 실패한 거야?”

“아냐. 공기를 태워버린 거지. 저거 봐.”

고개를 내밀자 오크 대부분이 질식해서 쓰러져 꿈틀댔다. 캐롯은 어리둥절했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착실하게 주워온 몽둥이로 오크 머리를 깨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캐롯!”

부르는 소리를 들은 캐롯이 몽둥이를 내 던지고 후다닥 달려왔다.

“다들 여기에 있었네.”

“너는 괜찮냐?”

“어, 망가진 곳은 없어. 그런데 오크들 왜 다들 픽 쓰러진 거지?”

“공기를 태워서 그렇데.”

토스트의 말에 입을 헤 벌린 캐롯이 곧 손바닥을 쳤다.

“아! 맞아! 너희들은 숨을 쉬어야지! 신기하네. 공기를 태워버려서 그런 거구나. 오오!”

“질식이지. 하지만 살아 있는 녀석들이 있을지 모르니 잠깐 저렇게 뒀다가 확인 사살해야해.”

“응.”

30분 후, 완전히 어두워졌다. 라이트를 하나씩 몸에 붙인 일행들은 돌아다니며 아직 숨이 붙은 오크들의 머리를 깨놓았다.

그 와중에 숲속에서 고프의 동료들이 나타났다. 섬광과 폭음을 듣고 찾아온 듯 했다.

“고프!”

“디온! 에프투!”

서로 얼싸 안고 기뻐하는 그들을 보던 게토가 물었다.

“당신 동료들인가?”

“그래! 어! 이봐 나머지는 어떻게 됐나?”

“모르겠어. 살아남은 건 우리 둘 뿐이야. 그리고 저 녀석하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딱딱한 가면 같은 얼굴을 한 오토마톤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서있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