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동인형 오토마톤-3화 (3/329)

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티 타임! 3

아직 해가 남은 이른 저녁, 모닥불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제임스가 돌려주는 스튜와 빵으로 저녁을 먹거나 동료의 호의로 위력적인 자동석궁을 쏴보거나, 내일의 계획을 짜느라 지도를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거나, 혹은 전투 중 망가진 장비를 수선하거나 하고 있었다.

양동이를 뒤집어 쓴 커다란 근육덩이가 바닥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장비를 닦고 숫돌을 놀리는 작업을 가만히 구경하던 레나가 자신의 찢어진 옷을 보더니 가방에서 바느질 도구를 꺼냈다.

“이리 주십시오.”

“예, 예?”

크랭크가 큰 손을 내밀었다.

“망가진 옷은 제가 수선 해드리겠습니다. 이리 주십시오.”

“어, 아니요. 제가···.”

“레나, 친절한 거인의 호의를 저버리지 마시오.”

불가에 앉아서 게토와 내일 계획을 상의하던 제임스의 말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크랭크는 손재주가 좋다오. 내가 그를 파티에 부른 이유는 캐롯도 있지만 저 친구의 비상한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 그리고 부서진 장비는 미리미리 고쳐놔야 내일 일에 밀림이 없소. 이보시게 애덤!”

유리와 함께 멀찍이 떨어진 바위에 나뭇조각을 올려놓고 자동석궁을 쏴보던 애덤이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를 들은 애덤이 말했다.

“좋을 대로해.”

“그, 그럼···.”

그녀가 찢어진 자켓을 내밀자 크랭크는 그것을 받고 더 요구했다.

“바지와 부츠, 장갑도 전부 벗어주시오.”

레나가 당황하며 애덤을 돌아보았지만 애덤은 무슨 일인지 애써서 무시했다. 보고 있던 몰리가 말했다.

“여분의 옷은 없어?”

“이, 있어요.”

“그럼 마차 안에서 갈아입고 바지 가지고 오면 되겠네. 속고만 살아왔다는 너희 일족의 아픔은 모르겠지만 필요할 때 베풀어지는 호의는 순순히 받아들여, 대신 무리한 요구는 거절해, 무시하고, 그래도 상관없어.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아니면 네 파트너에게 물어보든가. 강화인간의 보호자는 그런 존재라며?”

몰리를 멍한 얼굴로 쳐다보던 레나는 그녀의 재촉에 서둘러 자동마차로 가서 바지를 갈아입고 왔다. 여분의 바지는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상복으로 다리에 좀 많이 달라붙었다.

“휘유우~! 레나 각선미 죽이는···! 으허헛!”

바닥에 박히는 화살을 보고 토스트가 기겁했다. 그가 벌떡 일어섰다.

“야! 너 애덤 이 자식아!”

애덤이 처음으로 씩 웃는다. 그러더니 자동석궁을 옆의 유리에게 돌려주고 막대기 하나를 주워들었다.

“같이 식후 운동이나 하자.”

“그래 좋다 이 생퀴야! 형님의 솜씨를 보여주마.”

게토가 끼어들었다.

“살살해! 내일 활동에 지장 생기면 안 돼!”

“걱정마쇼! 저 생퀴는 모르지만 나는 프로야!”

곧이어 두 남자의 박빙의 검무가 시작되었다. 캐롯의 옆에 앉아 크랭크의 솜씨를 구경하던 레나의 고개가 바쁘게 오고 갔으나 곧 그녀의 시선은 크랭크에게 돌려졌다.

몇 대 주고받더니 막대기를 집어던진 둘은 이제 땅바닥에서 레슬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너무 오래됐군요. 일을 마치면 제대로 된 전투복을 한 벌 사는 것이 좋겠습니다.”

넝마 같은 옷의 평가에 레나는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 표정을 잘 아는 크랭크는 무덤덤하게 망치와 실, 바늘을 이용해 찢어진 부분을 수선하고 여분의 가죽과 철판, 칼날, 그리고 고블린의 굴에서 가져온 전리품등을 이용해서 그녀의 자켓과 바지, 부츠, 장갑을 아주 그럴싸한 전투용으로 바꿔놓았다.

슥삭슥삭,

“다됐습니다. 갈아입고 오시지요.”

업그레이드 된 전투복은 레나의 눈을 엄청나게 키워놓았다. 크랭크가 덧 붙였다.

“목숨을 맡긴 처지에 부족한 장비로 싸우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친절한 거인의 호의를 받아주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그 새 정비가 끝난 전투복을 입은 캐롯이 몸을 한 바퀴 돌려보며 웃었다.

“음! 역시! 난 주인하난 잘 찍었지!”

“근데 치마의 그건 칼날이야? 어떻게 작동하는 거야?”

대답대신 치마를 들춰보이자 리모가 호들갑을 떨었다.

“꺄아아악! 야 임마! 아무리 오토마톤이라지만 조신하게 굴어라!”

“아까 속옷차림 일 때는 좋아죽더니?”

“그거랑은 좀 달라 이것아! 함부로 들추지 마! 나 잡혀간다고! 아동보호법 몰라?!”

그때 자동마차에서 레나가 걸어 나왔다. 전투복 곳곳에 기운 자국과 더불어 철판과 가죽을 덧대어서 마치 베테랑 모험가 같은 모습이었고, 레슬링을 멈추고 먼지투성이가 된 애덤이 그 모습을 보고 슬금슬금 다가와 크랭크에게 인사 했다.

“감사합니다. 크랭크 씨.”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자 크랭크는 손을 흔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목숨을 맡긴 사이니까요. 그리고 애덤, 나중에 의뢰비를 받으면 전투복하나 장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애덤도 레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자 제임스가 끼어들었다.

“강화인간용 전투복은 굉장히 비싸거든? 크랭크, 자네는 직접 만들어서 관심 없겠지만 오토마톤용은 더 비싸지.”

“그랬지요. 그렇다면 제가···.”

애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번에 의뢰비를 받으면 옷 한 벌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걱정 마 레나! 고향에 부칠 돈을 빼고도 네 옷 한 벌 정도는 맞출 수 있어!”

“애덤···.”

“눈물겹구먼, 대체 여자 옷 한 벌에 얼마나 하길 레 그러냐? 내 하나 사주랴?”

토스트가 코피를 닦으며 걸어오자 제임스가 말했다.

“마누라 가게에서 가끔 그러 걸 취급해서 들었는데, 강화인간용 전투복이 한 세트로 적당한 걸로 하면 300만, 최하 구색을 갖춘 것도 100만 부터 시작한다네.”

“제일 싼 게 100만?! 귀족들 드레스 같은 것도 아닌데 그 정도나 해요?”

“그냥 옷이 아니고 전투용이니까. 더구나 장갑과 부츠 같이 직접적으로 닿고 쓸리는 부분의 마모율은 극단적이지 금방 닳아 없어져. 거의 소모품 취급이야.”

그때 얌전히 불가에 앉아 있던 캐롯이 강철 장갑을 벗어보였다. 손목 까지만 하얀 피부가 있고, 손가락과 손등은 검정색 금속으로 이루어진 뼈대가 드러나 있었다.

크랭크를 제외하고 모두가 흥미로운 시선을 했다.

“오토마톤의 몸은 튼튼하지만 그것도 자기 힘으로 때리면 이야기가 달라져. 그래서 안에 보호대를 댄 장갑과 신발을 끼고 신는 거지.”

“말의 편자 같은 느낌이군?”

리모의 말에 캐롯이 싱긋 웃는다.

“오, 맞아. 딱 그러네.”

캐롯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전투용 오토마톤에게 들어가는 유지비는 엄청나, 한 남자가 내 집 마련하려고 모아놓은 전 재산을 거덜 낼 정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 듯, 크랭크가 커다란 손으로 양동이 얼굴을 가리면서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시 캐롯은 관절과 내부 기관의 마모가 엄청났습니다. 전부 손을 봤더니 금액이 상당히 나왔습니다. 결국 전투복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제가 수선을 시작했지요. 레나, 지금 당신의 모습은 5년 전 캐롯의 모습과 닮았군요.”

애덤과 레나가 다시 고마워했다.

“그건 그렇고, 아까 고블린 동굴을 털어서 나온 전리품은 어떻게 할까요? 저로서는 공평히 나누고 싶은 생각입니다. 이런 걸로 감정이 생겨서는 곤란하니까요.”

“얼마나 되는데?”

“현찰이 600만 리즈 쯤 됩니다. 장신구등은 처분해야겠습니다만, 아, 단검 몇 자루는 레나의 옷에 달았습니다. 레나, 팔꿈치와 무릎을 접으면 단검의 칼날이 튀어나올 겁니다.”

“어머나!”

정말로 팔꿈치와 무릎에서 칼날이 올라오자 레나가 놀라워했다.

“장신구는 전부 녹여서 처분하지, 유족이 보고 찾아오면 골치 아파. 그리고 금액은 나중에 의뢰비와 함께 나누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게토는 하품을 좀 하다가 말했다.

“내일 아침에 출발이다! 이틀을 더 가야해! 염병! 다행히 멋쟁이 털보 제임스의 자동마차가 있으니 잠은 차안에서 잔다. 좀 불편하겠지만 참아, 안전이 최고다!”

“어? 대장, 그럼 불침번은 안서도?”

“아니, 서야지!”

“아니, 안서도 돼.”

캐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다들 오토마톤이랑은 처음 일하나봐? 오토마톤은 잠도 안자.”

“우오오오오!”

“캐롯! 캐롯님! 오오! 자비로우신 캐롯님을 찬양하라!”

“아하하하! 귀엽고 쓸모 많은 이 오토마톤을 떠받들 거라 잠투정 심한 인간들아! 그리하면 내 오늘밤을 너희와 함께 해주마!”

엎드려 절을 하는 남자들의 틈새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캐롯을 보며 몰리가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오토마톤의 성격은 주인을 닮는다고 들었어.”

“첫 주인이 굉장한 미친놈이었지요.”

말이 통하는 상대에겐 예의바르게 대하는 크랭크가 미친놈이라고 거론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캐롯의 저 성격을 보면, 어렴풋이 상상이 될 것 같기도 했다.

“토스트 같은 녀석이었겠네.”

이른 아침, 모두가 곯아떨어진 조용한 차내의 중앙에 테이블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오토마톤 캐롯의 그림자가 시뻘건 눈을 뜨고 앉아 있다가 몇 번 깜박이더니 폴짝 뛰어 내렸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사람들 틈을 조심스럽게 지나 크랭크의 배낭을 뒤적이더니 마력화로를 꺼내 테이블로 가져와 올리고는 물을 가득 채운 주전자를 올렸다.

보글보글

새벽여운과 함께 물이 끓어오르자 가죽 주머니에서 커피콩을 꺼내 손아귀 힘으로 으깨서 주전자에 던져 넣었다. 거기에 쓴 맛을 살짝 가시게 할 각설탕도 몇 개, 고소한 커피향이 차안을 가득 채운다.

“으음···.”

애덤에게 기대어 자고 있던 레나가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조그만 인형이 시뻘건 눈을 돌렸다. 움찔했지만, 이내 목소리가 들린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오토마톤의 목소리였다.

“깼어? 차 마셔. 오늘은 커피야.”

“캐롯?”

캐롯은 대답 대신 그녀의 컵에 검은 찻물을 따라 내밀었다. 따스한 컵의 온기를 느끼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후릅 마셨다.

“와, 좋아요. 향이 정말로, 그리고 달아요.”

주전자를 화로에 올린 캐롯이 푸근하게 웃는다.

“출발 전에 좋은 원두를 볶아왔지. 좋네, 나도 마셔보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컵을 내밀었다가 레나가 당황했다.

“아, 미, 미안해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오토마톤이니까. 인간이 하는 짓을 따라 해보고 싶은 것도 그냥 호기심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말인데, 너희도 신을 따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레나가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 둘 깼다.

“우와···. 커, 커피향이···.”

“컵 가져와. 따라 줄게.”

“음, 이런 쓸모 있는 녀석···.”

좀비처럼 일어난 사람들은 커피를 받아 마시며 다들 고마워했다. 주전자를 든 캐롯이 방긋방긋 웃었다.

“이번 친구들은 다들 착해서 좋아.”

크랭크만이 그 말을 이해했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제임스가 잠에서 깨자마자 자동마차를 출발 시켰다. 이후로는 지루한 여행길의 연속이었다. 중간 중간 몬스터를 목격하긴 했지만 인원이 전부 나설 규모는 아니었다.

“지금으로선 몬스터 굴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너무 지루한데.”

“몸이 편하니 그런 헛소리가 나오지. 제임스 씨랑 자동마차를 감사하게 여겨.”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몰리의 말에 토스트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임스 씨.”

“하하하! 아닐세, 나야 친구들의 콩고물을 얻어먹는 입장인데.”

“에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제임스 씨의 자동마차 아니었으면 말 타고 와야 하는데 이렇게 편하지 못할 거예요.”

“높이 쳐주니 고맙구만 그래. 허허,”

그리고 3일째 되는 날의 정오 쯤, 모두는 차로 이동이 불가능한 곳에 도착했다. 드높은 산속 기암절벽을 올려다보며 캐롯이 물었다.

“여기 맞아?”

지도를 보며 주변 지형을 대조해보던 대머리 게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제대로 찾아왔군. 여기서 부터는 걸어서 들어간다. 도보로 3시간 걸리는 산속이라고 했어.”

“으힉! 도보 3시간!”

지팡이를 손에 쥔 몰리가 쉰 소리를 내자 캐롯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걱정 마! 내가 업어줄게!”

“고마운데, 네가 날 업으면 다리가 끌릴 것 같아. 나로서는 크랭크나···.”

“하앍! 핡! 내 등에 엉덩이에 이어 가슴을 새겨볼 생각은···! 끼야아아아악!!!”

파지지직!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몸에 전기를 흘려버린 몰리는 쓰러진 토스트의 등을 밟으며 말했다.

“한 번 더 이상한 소릴 지껄이면 번개통구이로 만들어 주겠어.”

결국 일행은 토스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제임스는 자동마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가봤자 도움이 안 될 테니 말일세. 언제든 출발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지.”

“음,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으라고.”

제임스는 씁쓸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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