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톤과 함께 하는 티 타임! 1
오토마톤
오토마톤과 함께하는 티타임.
“크랭크!”
벌컥!
장기 투숙하고 있던 여관 문이 벌컥 열리더니 씩씩하게 웃고 있는 소녀가 그릇이 올라간 소반을 들고 왔다.
바닥에 앉아 배낭을 싸고 있던 근육질의 덩치가 고개를 돌렸는데 머리에 꼭 양동이 같은 투구를 쓰고 있었다.
“왜?”
“양배추 즙이야! 이거 위장병에 좋대! 마셔라!”
대뜸 손을 내밀어 소반의 그릇을 받아든 그는 양동이 투구를 슬쩍 들어 올리고 누리끼리한 그릇의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크···!”
“어때어때?!”
“맛없어, 쿰쿰해.”
그릇을 받아든 캐롯이 예쁘장한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몸에 좋은 약은 쓰데,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아?”
“응, 준비 다됐으니 일하러 가자.”
“그래!”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빈 그릇과 소반을 챙겨든 캐롯의 뒤로 그녀보다 두 배는 더 큼직한 장대한 덩치의 사내가 양동이를 뒤집어쓴 모양새로 배낭을 메고 일어섰다.
여관을 내려가자 풍만한 여주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일하러 가니?”
“예. 다녀오겠습니다.”
“다녀간다!”
캐롯이 소반을 내밀자 여주인은 그것을 한손으로 받아들고 문을 나서는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조심히 갔다 와.”
오토마톤 전용 전투복을 입은 캐롯이 뒤를 돌아보며 씩 웃으며 손을 흔든다. 가느다란 팔에 끼어진 검정색 강철 장갑은 무시무시했지만 아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차와 자동마차가 뒤섞여 돌아다니는 큰길의 가장자리를 함께 걸으며 캐롯이 손을 들어보면서 말했다.
“손이랑 발에 소프트스킨 다시 씌워 주면 안 될까?”
“저기 소프트크림 가게가 있다. 하나 사줄까.”
캐롯이 볼을 부풀리며 그의 커다란 엉덩이를 손으로 철썩철썩 때렸다.
“아! 나는 인간이 아니라서 줘도 못 먹는다고! 말 돌리지 말고! 소프트 스킨! 손발에 좀 씌워줘! 요즘 내 덕에 많이 벌었잖아!”
“주먹질 몇 번이면 피떡이 될 텐데 씌우면 뭘 해.”
맞는 말인지 끙 하고 바닥을 내려다보던 캐롯이 긍정했다.
“그건 그래. 하지만 예쁜 손이랑 발이 갖고 싶단 말이야.”
처음 전신 소프트 스킨을 씌웠을 때 하루 종일 거울 앞에 앉아 실실 웃어대던 그녀를 기억한 크랭크는 동시에 과격한 전투를 견디지 못하고 손발의 소프트 스킨이 피떡이 되어버렸을 때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산송장 흉내를 내던 그녀의 모습도 기억해냈다.
걸으며 잠깐 말이 없던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의 보수만 들어오면 집 살 돈이 다 모인다. 그 다음 장비를 구해서 실험해 볼게, 오토마톤에게 부분적으로 소프트스킨을 씌울 수 있는지. 아니면 그 비슷한 거라도.”
“와! 정말! 고마워! 역시 크랭크야! 나 열심히 할게!”
대로를 걸어서 모험가 길드에 도착하자 먼저 온 사람들이 그를 반겼다.
“여! 크랭크!”
“제임스 씨.”
털보 같은 수염을 기른 남자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일찍 왔군?”
“늦은 것 같은데요.”
“아니야. 우리도 방금 왔어. 다들! 이번에 같이할 친구야. 크랭크.”
매서운 인상의 대머리가 투덜댔다.
“오토마톤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저요! 제가 오토마톤이에요!”
두리번거리다가 아래쪽의 조그만 소녀를 발견한 대머리의 인상이 구겨졌다가 확 펴졌다.
“헛! 소프트 스킨?!”
“예! 맞아요! 우리 주인님이 씌워줬어요!”
대머리와 그의 동료들이 다들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매서운 시선으로 캐롯을 살폈다. 나들이 나온 동네 소녀와 같은 밝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두꺼운 가죽에 철판을 덧대어 만든 튼튼한 전투용 자켓과 치마는 나들이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한 술 더 떠서 장갑과 부츠는 상대의 살을 찢어버리기 위한 스파이크가 잔뜩 달린 강철제 물건이었다.
괜찮군. 저 치마는 다리를 편하게 쓰려고 하기 위함인가.
“어험!”
슬쩍 크랭크의 눈치를 살핀 대머리가 손을 내민다.
“미안하군. 오토마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일에 끼어들었거든. 좀 위험한 일이다 보니까. ···그런데 자네 머리에 그건 투구인가?”
그의 손을 맞잡은 크랭크가 웃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양동이 같은 투구에 길게 뚫린 틈새로 눈매가 살짝 보였다. 선한 인상이었다.
“예, 실례인 줄은 압니다만 사정이 있어 쓰고 있습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어. 이 업계엔 더한 꼴로 다니는 친구들도 많으니까. 우리 몰리처럼.”
대머리의 일행 중에 로브와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 움찔했다. 여자 같았는데, 얼굴에 멧돼지 머리뼈로 만든 가면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이, 이건 스승님의 유품으로···.”
“알았으니 그만해. 울지 말라고.”
“몰리 또 우냐.”
팀원들이 놀려대자 몰리는 후드를 당겨 얼굴을 가렸다.
“몰리, 우리 마법사다. 우리는 저 녀석 덕을 좀 보고 있지.”
크랭크와 캐롯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몰리! 몰리는 마법 뭐 쓸 수 있어요?!”
캐롯의 질문에 등을 돌린 몰리가 팔을 들자 그녀의 가냘픈 손에서 불길이 일렁거린다.
“오-! 굉장해! 화염계통이야!”
대머리와 그의 팀원들이 뿌듯해 했고, 크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임스를 돌아보았다.
“나머지 일행은요?”
“사실 아직 약속시간 전이야. 자네들이 일찍 왔을 뿐이지.”
“우리보다 먼저 나온 너는 뭔데.”
“나는 이 근처 살다보니까. 아, 마침 저기 오는 군. 이번일의 마지막 일행이야.”
모두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약삭빠른 인상의 청년 하나와 유순한 얼굴의 여자 하나가 걸어왔다.
“어, 일찍 온다고 온 건데, 제임스 씨. 저희들이 제일 늦은 건가요?”
제임스는 그만 웃어버렸다.
“제 시간에 온 거야. 아직 아무도 안 늦었어. 다 모였군. 잠깐 기다리게. 내 들어가서 길드 수속을 밟고 올 테니.”
제임스가 길드 건물로 들어간 사이 건물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대머리가 말을 걸려는데 캐롯이 대뜸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고, 팔짱을 하고 있던 청년은 힐끔 캐롯을 내려다보다가 대머리와 크랭크를 보면서 물었다.
“오토마톤이랑 마법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누구누구요?”
대머리가 웃었고, 캐롯이 손을 번쩍 든다.
“나요! 내가 오토마톤이에요!”
청년이 기겁했다.
“소프트 스킨?!”
“예압!”
“맙소사 정말 사람 같아!”
호들갑을 떠는 청년을 보면서 캐롯이 씩 웃는다. 크랭크가 입을 열었다.
“마법사는 이쪽 일행들 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강화인간입니까?”
캐롯을 들여다보고 있던 청년이 허리를 펴고 헛기침을 하더니 곁의 여자를 가리켰다.
“이름은 레나.”
레나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모두의 시선이 내리 꽂히자 레나가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게 강화인간인가? 그냥 보통 여자 같은데?”
청년이 눈썹을 세우며 언성을 높였다.
“물건처럼 부르지 마쇼. 레나 주먹 한방이면 당신들 머리가 날아가!”
“되게 민감하게 반응하네. 네 여자라서 그러는 거냐?”
“아니···! 그···!”
시비가 걸린 팀원이 쏘아 붙이자 청년이 얼굴을 붉히더니 말을 못했다. 대머리가 눈치를 좀 주더니 말했다.
“팀원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그···. 아니 됐소. 나중에 물어보지.”
청년과 레나 둘 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대머리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고, 그의 팀원들은 몰리에 이어 놀림감을 찾아서 즐거워했다.
“와하하. 애들이냐.”
“몰리몰리, 저 사람들 사귀나 봐요. 봐요. 둘 다 얼굴 빨게 졌어.”
“트하하하하하!”
어느새 마법사 팀원들의 곁에 가서 서있던 캐롯이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만 좀···!”
“다들 그쯤 해둬라.”
대머리가 팀원들을 단속하자 크랭크가 청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크랭크, 오토마톤 캐롯을 데리고 왔습니다.”
좀 머뭇대다가 그의 손을 맞잡은 청년이 입을 열었다.
“애덤, 강화인간 레나의 보호자요.”
“나는 몰리 마법사단의 임시 대장직을 맡은 게토다. 저기 검은 후드가 몰리, 그 옆으로 리모, 토스트, 유리. 큰일을 앞두고 그래도 한가락 하는 사람들을 만나 든든하구만.”
“그런데 우리 뭐 하러 가는 거예요?”
모두 시선이 캐롯에게 쏠렸다. 이 조그만 오토마톤 소녀는 자기보다 큰 인간 어른들을 올려다보고 똘망똘망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대머리 게토가 말했다.
“이야기 못 들었니? 우리는 드래곤 레어를 털러간단다.”
“어머 세상에! 아이 신나!”
최근 버려진 드래곤레어가 발견되었다는 모종의 정보가 모험가 길드에 팔렸고, 길드에선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긴급 수색대 조직, 파견했다. 위험한 일이지만 보수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지원자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너무도 위험한 일인지라 지원자 중에서 중간선을 잘라서 나온 멤버들이 다음과 같았다.
크랭크, 애덤, 몰리 마법사단(임시).
각 팀의 주력은 오토마톤 1기, 강화인간 1명, 마법사 1명,
“캬아아악!”
빠아아악!!
주먹 한 방에 덤벼들던 고블린의 조그만 몸이 폭발했다. 가면 같은 얼굴을 한 레나가 주먹을 거두자마자 몸을 돌리더니 뒤에서 덮쳐들던 고블린을 걷어 차버렸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고블린 정도는 걷어차는 족족 그 자리에서 터져버렸다.
근처에서 캐롯도 날뛰고 있었는데 그 작은 몸은 찢어버린 고블린의 피로 적셔져 갈색 머리카락이 붉은 색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싸움방식이 독특했는데, 팔과 다리를 이용한 체술로 싸우다가 주변에 다가온 적수가 많아지면 춤추는 오르골 인형처럼 몸을 빙글빙글 돌려버렸다. 그러면 입고 있던 치마가 원심력으로 펼쳐 올라가는데, 그 안에서 칼날이 튀어나와 주변의 모든 걸 절단해버린다.
“엄청 잘 싸우네.”
“싸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인데요. 고블린이 터지는 것 처음 봐요.”
“오토마톤과 강화인간이 싸우는 것도 처음 보는데 정말 엄청나네.”
“등신들아! 손 놓고 있지 마! 근접전 벌이는 애들 주변정리! 견제! 견제를 멈추지 마라!”
대머리 게토 대장의 호령에 멈춰있던 이들이 마음을 다잡고 자동석궁을 들고 쏘기 시작했다. 투투투투! 레나와 둘이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던 캐롯이 쏟아지는 화살을 보고 뒤를 보며 외쳤다.
“우와! 너무 가까이 쏘지 마! 맞을 것 같아!”
“엇! 미안하다!”
“10미터 이상 벌려! 우리 애들 맞추지 마라!”
게토가 소리를 지른다.
“몰리!”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우고 있던 몰리의 머리 위로 불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게토가 외쳤다.
“레나! 캐롯! 철수! 뒤로 빠져!”
레나와 캐롯이 토끼처럼 뛰어 뒤로 빠지자 게토가 외쳤다.
“몰리! 한방 날려!”
“파이어 프레임.”
푸화르르르릇!!!!
몰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불길이 물줄기처럼 쏘아져 나간다. 얼마나 뜨거운지 불길에 닿은 고블린은 숯덩이가 되어 뒹굴었다.
“오홀! 멋진 마법이야! 전투용으로는 최고야!”
피칠갑을 한 캐롯의 말이었다. 레나 역시 경이로운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드래곤레어가 발견된 지역이 방주도시 아르곤에서 3일쯤 걸리는 지역의 산속에 있어서 일행들은 자동마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도중에 고블린 굴을 발견하고 전투 호흡을 맞춰볼 겸 토벌에 임했다.
몰리의 화염마법이 끝나자 고블린의 굴 앞에는 숯덩이들이 가득했다.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불이 날까 걱정했지만 심하게 번지지는 않았다.
“이 놈들 더 나오지 않는구만.”
“어떻게 하죠?”
멀쩡한 화살을 수거하던 동료들의 말에 게토는 턱을 매만졌다.
“순서상으로는 그냥 가야지.”
“그렇죠. 우리 목적은 고블린 토벌이 아니니깐요.”
“하지만 굴이 사람 다니는 길과 너무 가깝습니다. 이놈들은 여행자를 습격하지요. 가능한 다 죽여야 합니다.”
임시 대장직을 맡은 게토는 근처에서 피를 뒤집어 쓴 캐롯의 얼굴을 닦아 주고 장비를 살펴보는 크랭크를 돌아보았다.
“이봐 크랭크!”
“예.”
“자네 생각은 어때?”
양동이 머리가 대머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근처에서 불타오르는 나뭇가지를 보더니 다시 대머리 대장을 보았다. 게토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캠프파이어를 하자! 유리! 리모! 토스트! 나무를 모아와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