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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의 왕위를 계승했다-151화 (151/187)

43장. 바다 무덤(6)

우르릉!

콰아아앙!

우레와 함께 마루트들이 철퍽거리며 달려들었다.

화르르륵!

파아아아앙!

붉은 화염과 발설지옥의 신성이 동시에 번쩍이면서 마루트를 쳐냈다.

“그래도 아직 작정하고 덤비는 느낌은 아닌데.”

인상 쓴 호구별성이 마루트가 사라진 자리를 노려봤다.

그녀의 말대로 흙으로 만들어진 인드라는 마루트를 소환하는 정도의 움직임만 보였다.

쏟아지는 폭우와 간간이 꽂히는 벼락이 그것이 뇌신의 형상을 구현한 주술임을 방증할 뿐.

“본체를 치지 않는 이상 마루트는 얼마든지 소환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다지 강하지는 않아도 마루트로 인해 마력은 계속 소모되고 있으니까요.”

나는 인드라를 올려다보았다.

업경의 권능은 흙으로 감싼 인드라의 몸에서 분명 다른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근원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단군의 말처럼,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는 본체의 전부가 아니었다.

정확히 무엇이 숨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 인드라 조각상을 없애면 인드라의 신성을 품은 무언가가 다시 깨어나리라고 직감했다.

“역할을 나누어야겠어요.”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마루트를 없애는 역할과 인드라를 직접 치는 역할로요.”

마력이 거의 남지 않은 호구별성과 공격기가 없는 사라는 제외해야 한다.

“마루트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인드라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쪽이 담당하는 게 좋겠죠.”

내가 직접 인드라를 상대하겠다.

그 말뜻을 알아들은 형이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저는 한 번도 스킬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마력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형에게 옅게 웃어 보였다.

“인드라의 내구력을 짐작할 수 없는 만큼 마력에 여유가 있는 제가 한 번에 화력을 집중시키는 게 좋을 거예요.”

단언하듯 말하면서도 단군을 살폈다.

그가 화염 주술을 몇 번 사용했다고는 하나, 한반도 최강의 각성자로서 쌓아 왔을 풍문을 생각하면 그 역시 화력 높은 공격을 펼치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기실 단군이 나선다 해도 상관없었지만 그는 눈이 마주친 순간 빙긋 웃기만 했다.

“엄호하겠습니다, 염라.”

나설 생각이 없다는 대답에 이번에는 바리를 돌아보았다.

“바리, 인드라가 흙으로 부서진 몸을 복구하려 들면 막을 수 있겠어?”

바리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진토(辰土)의 던전인 만큼 공간을 이루는 인과에 땅의 권능이 섞여 있습니다.”

바리가 대답하자마자 단군이 부드럽게 눈을 휘며 소녀에게 말했다.

차분히 가라앉아 있던 바리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둘 다 주술에 능통하니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곧장 알아들은 듯했다.

“얻으신 권능만으로도 순간의 움직임을 막으실 수 있겠지만, 상기하시면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바리가 다시금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인드라의 재생은 제가 막을게요.”

언제나처럼 초연하면서도 믿음을 주는 얼굴에 더해, 보다 확신이 어린 목소리였다.

나는 믿는다는 말 대신 한 번 웃어준 다음 천천히 인드라에게로 몸을 돌렸다.

역할은 전부 정해졌다.

인드라를 주시하며 검을 고쳐 쥐자마자.

우르르릉!

콰아아아앙!

때맞춰 폭우가 쏟아지면서 마루트들이 몸을 일으켰다.

파아아앙!

화르르륵!

마루트를 향해 몰아치는 불꽃과 신성을 뒤로하며 인드라를 노리고 내달렸다.

푸르르릉!

푸르르르릉!

푸르르릉!

웃차이쉬라바스의 세 머리가 제각각 울부짖었다.

빗물로 미끌미끌한 땅을 내딛고 도약하자, 흙으로 빚어진 인드라가 눈을 붉게 빛내며 나를 쏘아보았다.

곧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 검수지옥(L) ]

껍데기뿐인 인드라를 한 번에 부술 수 있는 스킬.

은빛이 번쩍이면서 서슬 퍼런 칼날의 나무들이 솟아올랐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무수한 칼날의 숲에 갇힌 인드라가 그대로 산산이 조각났다.

우르르릉!

콰아아아앙!

벼락과 폭풍우가 발악처럼 몰아치면서 부서진 파편이 휘몰아쳤다.

“……!”

찰나 산산이 부서진 인드라의 파편 속에서 물이 출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물로 이루어진 마루트와 같이, 그것 또한 한데로 모인 물이 꿀렁이며 무언가의 형상을 빚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미처 그것을 알아보기도 전에.

파아아아악!

사방에 어지러이 흩어졌던 인드라의 파편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부숴도 되살아났던 용신상처럼 인드라 역시 재생하려는 것이다.

“오빠, 계속 치세요!”

뒤에 있던 바리가 외쳤다.

“인드라는 되살아나지 못할 거예요!”

그녀가 그렇게 덧붙임과 동시에.

콰르르르르!

조각난 인드라의 몸이 뭉쳐지긴커녕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화아아아아악!

잘게 부수어진 파편들은 나를 중심으로 휘돌며 황금빛 회오리바람으로 변했다.

영롱한 신성을 머금은 모래들은 마치 하나하나 사금이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와, 저걸 아예 가루를 내버렸네?!”

회오리바람 너머에서 호구별성의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렸다.

“바리야, 저게 새 권능이냐?!”

“온전히 제힘만은 아니에요! 이 던전 자체가 진토의 힘으로 이루어져서 더 크게 움직일 수 있어요!”

단군의 조언에 따라 힘을 증폭시킨 것일까.

바리가 인드라의 조각으로 일으킨 황금빛 모래 폭풍은 인드라를 재생하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콜로세움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천장에 닿을 듯 거대한 모래바람.

그 속에서 나는 인드라가 품고 있던 것과 마주했다.

“……코끼리?”

크고 넓은 귀와 기다란 코, 두꺼운 몸집.

다만 그 머리는 다섯이었으며, 각 머리마다 네 개의 어금니가 솟아 있는…… 마루트처럼 온몸이 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코끼리.

비구름을 형상화한 인드라의 신수, 아이라바타였다.

“중앙의 머리를 잘라야 합니다, 염라!”

황금빛 바람의 벽 너머에서 단군이 외쳤다.

“뇌신의 조화가 중앙의 머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는 그사이 아이라바타를 이루는 인과를 읽었다.

“머리를 잘라야 한다고…….”

검을 치켜들고서 즉시 코끼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오오오!

다섯 개의 머리에 솟은 상아가 위협적으로 찔러 들어오고,

콰아아아아악!

일순 황금빛이 더 강렬해진 회오리바람이 코끼리를 덮쳤다.

흙을 움직이는 바리의 권능이 족쇄처럼 코끼리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중앙의 머리를 내려쳤다.

촤아아아아악!

손에 들린 ‘죽음’이 아이라바타의 머리를 베어내는 순간.

[ (!) 뇌신의 법뭘몃반랩뢍뮌걍 힘을 벨뎨꿋귀룡렷뤠꽥딩땟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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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파지지직!

“……큿!”

[ (!) ‘바즈라’가 귀속베뀐띄받등렷륑빎. ]

직후 검을 쥔 팔에 스파크가 일면서 또 하나의 팝업창이 떴다.

여전히 오류가 섞여 있어 정확한 내용은 해석할 수 없었으나 아이라바타의 목을 베면서 무언가 내게 귀속되었음은 이해했다.

“바즈라라면…… 인드라의 무기잖아.”

바로 인벤토리를 살폈다.

[ 바즈라(낮흐흐흐) ]

- 뇌신 인드라의 아스트라.

(!) 해당 벨넹냈긍룐루놀꽹뜰누흐흐 사용 조건벨덱꿨흐 벨뭣띈긴롸렸건꽹럇흐흐흐않았습니다.

이전에 얼음 산호 던전에서 얻었던 암리타처럼 등급을 알아볼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아스트라라면 힌두교 신화에서 신의 힘을 담아 부리는 무기를 의미하는데, 보아하니 지금은 무기로 사용할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귀속되어버려서 버릴 수도 없네.”

무심결에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바즈라가 귀속 아이템임을 재차 상기하자마자 업경의 통찰이 반응했다.

나보다 강한 힘을 가졌음에도 내가 인드라를 치도록 엄호하겠다고 말한 단군.

어쩌면 그가…… 귀속 아이템의 존재를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떠올랐다.

“괜찮으십니까, 대왕님?”

그러나 어느새 다가온 기척에, 나는 그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고 형을 돌아보았다.

“네. 바리가 코끼리를 잡아준 덕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어요.”

형의 시선은 내 팔에 고정되어 있었다.

형을 따라 시선을 내린 나는 그제야 팔에 스파크가 일어났던 것을 생각해 냈다.

오류의 여파인지 옅은 그을림이 남았는데, 지금껏 스파크 때문에 상처가 났던 것에 비하면 무척이나 가벼운 흔적이었다.

“아, 아프지 않아서 몰랐네요.”

정말 아프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건데도 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내 눈을 응시했다.

괜히 멋쩍은 기분에 시선을 살짝 피했다.

파아앙!

때마침 서천꽃밭의 신성이 하얗게 팔을 감싸고 색색의 꽃잎이 피어났다.

“던전의 오류가 네 몸에까지 번지는 일이 많구나.”

뒤이어 다가온 사라도 못마땅하다는 듯 내 팔을 훑어보았다.

작은 그을림조차 사라진 팔은 이제 깔끔하기만 하건만, 사라까지 그런 눈으로 보니 한층 더 부담스러워졌다.

나는 서둘러 뒤에 선 바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바리야, 새 권능은 정확히 어떻게 쓴 거야?”

바리는 꼭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바위를 흙으로 바꾸거나, 흙을 바위로 뭉쳐서 움직이는 권능이에요.”

그렇다면 편의에 따라 흙의 형태를 바꿔 공격할 수도 있겠구나.

보통 토속성 각성자들은 바위면 바위, 모래면 모래, 한 가지 형태만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그렇게 자유자재로 형태를 오갈 수 있는 것은 바리가 오행의 이치를 익힌 도사여서 그런 거겠지.

“본래 제 마력으로는 아직 그렇게까지 움직일 수는 없지만요.”

바리가 설명을 이으며 묘한 눈으로 단군을 보았다.

“던전의 인과를 활용하라는 조언 덕분에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어요.”

모르긴 해도 앞서 단군이 한 조언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그의 덕으로 공을 돌리는 바리의 말에 단군은 오만도 겸손도 없이 부드럽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뭐, 솜씨 좋은 도사 둘이 있으니 나쁘진 않구나.”

지켜보던 사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어떤 놈은 계속 속 좁게 굴고 있지만 용왕이랑 싸우려면 센 놈은 많을수록 좋지.”

나란히 선 호구별성도 여상한 어투로 말을 받았다.

강림 형이 서슬 퍼런 눈으로 호구별성을 노려봤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하게 허리를 폈다.

“던전은 정리되었지만 계속 머무는 것은 좋지 않겠지요.”

단군이 텅 빈 던전을 둘러보며 말했다.

“클리어 메시지가 뜨지 않는 점도 그렇고, 포털 또한 불완전하군요.”

그가 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말대로 왕릉 밖으로 나가는 출구에는 포털과 비슷한 것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이대로 들어가기에는 다소 불안했다.

“다행히 이 정도면 제가 손볼 수 있겠습니다.”

“오, 쟤는 그런 것도 하냐?”

포털을 살핀 단군이 가볍게 말하자 호구별성이 새삼 감탄했다.

하긴, 도사들이 던전의 시스템을 조작해서 이것저것 해 온 것을 생각하면 최상급 도사인 그가 망가진 포털을 고치는 것쯤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게요. 저 사람, 정말로 눈이 깊네요.”

문득 바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모든 것에 초연한 바리가 그런 말을 한 것은 꽤나 의외였기에 자연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 눈에 세상이 어떻게 비칠지, 저는 아직 상상도 되지 않아요.”

그냥 단군의 조언을 받아들인 줄만 알았는데, 그 이상으로 무언가 복잡한 심경이 된 것 같았다.

-저 사람, 정말 하늘이 내린 기재예요.

-아마 이 한반도의 전 역사를 통틀어도, 저만큼 천기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그래서 더, 저 사람과 겨뤄보고 싶어요.

불현듯 세 번째 천벌을 앞두고 바리가 했던 말들이 곱씹혔다.

으음.

나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고는 바리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머지않아 네가 더 잘하게 될 거야.”

말하면서도 조금 유치하게 들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눈을 크게 뜬 바리는 놀랍게도 밝게 미소 지었다.

“네, 그럴게요.”

동시에 업경을 통해 밀려드는 감정은 평소와 달리 제법 뜨거워서, 나는 다시 한번 바리의 새로운 면을 되새겼다.

동경과 향상심, 그리고 작은 질투마저도.

업경이 전해 오는 그 모든 것이 기꺼웠다.

속세에 초연한 소녀가 품은, 그런 인간적인 감정이.

43장. 바다 무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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