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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의 왕위를 계승했다-142화 (142/187)

41장. 확전(3)

파아아악!

검은 파도가 사방에서 난폭하게 덮쳐 왔다.

버티지 못하고 몇 번을 구른 나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숨을 헐떡였다.

황금빛 용의 눈동자가 높은 자리에서 미물을 관망하듯 날 내려다보았다.

“무력하기 짝이 없구나.”

그가 심해의 동굴을 닮은 목소리로 건조하게 평했다.

파도가 멈춘 것은 그저 잠시의 변덕일까.

잔잔한 바다가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듯, 그의 손짓 한 번에 언제고 다시 재앙이 휘몰아치겠지.

“……서해 용왕님께는.”

간신히 숨을 가다듬고서 남해 용왕에게 물었다.

“어째서 독을 먹인 겁니까.”

용왕은 이를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조용한 웃음이 도리어 몹시도 흉포했다.

“이미 역신에게 답하지 않았더냐.”

분명 ‘웃음’을 그리고 있음에도 인간은 감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바다의 분노에 이유는 필요치 않다고.”

동서의 두 용왕과 정을 나누면서 나는 은연중에 남해의 용왕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가 형제에게 독을 먹인 것이 진정 악행이라면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것이고, 공감하지 못할지언정 어찌하여 그런 짓을 벌였는지 정도는 납득할 만한 내막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대답 앞에 나는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이제야 눈앞의 존재를 실감했다.

형제라고 불렸으나 남해의 용왕은 동서의 두 용왕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한없이 광포한 자연의 현신이자,

밑도 끝도 없이 거칠고 폭력적이어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재해 그 자체.

무언가를 이유 없이 해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그 무자비한 폭력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신화적 존재였다.

“그래, 새로운 염라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눈. 그 인간의 눈이란 때때로 아주 불경하기 짝이 없다.”

용왕이 그리 말한 순간, 나는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자연의 현신에게서 불현듯 이질감을 느꼈다.

“너희는 그저 살려만 달라고 바짝 엎드리면서도 속으로는 언제나 불경한 전복을 꿈꾸지.”

형제에게 독을 먹여 놓고 후회도 원한도 보이지 않던 그 이유 없는 재앙의 현신에게서, 선연한 자연의 분노가 읽혔다.

“너희의 불경한 본성이, 두 용왕의 이빨과 발톱을 뽑아 깊은 바다의 한낱 미물로 전락시키지 않았더냐.”

이유가 없다고 말하던 분노에 모순적이게도 사실은 이유가 있음을 읽었다.

“그럼 당신은 인간의 시대를 받아들이고 바다로 돌아간 두 용왕에게 분노했단 말입니까?”

그것을 짚어 내자마자 남해 용왕이 사납게 혀를 찼다.

“보아라. 또 이렇듯 그 하찮은 눈에 맞춰 나를 재단하려 들지 않느냐.”

그러한 반응에 내가 알아챈 이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누굽니까.”

확신했기에 물었다.

“대체 누가 당신의 분노를 부추겼습니까.”

남해 용왕은 재해에 이유가 없든 자신의 분노에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이 아니었다.

분명한 모순이 존재했다.

사해 용왕이 자연의 다면성을 의미한다면, 남해 용왕이 다른 두 용왕과 다른 존재라 한들 그들은 언제까지나 네 개 바다를 나눠 가진 형제로서 공존해야 했다.

신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와서 자연의 다른 일면을 더 이상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3만 년을 같은 모습으로 이어져 왔던 신화가 달라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한반도 남쪽 바다의 신화를 제 뜻대로 바꾸고 있었다.

“당신에게 막대한 신앙을 안겨주고 다른 두 용왕을 치도록 종용한 것이, 대체 누굽니까.”

파아아아아악!

재차 사방에서 검은 파도가 휘몰아쳤다.

나를 사정없이 내동댕이치는 폭력적인 신성에 몸을 웅크렸다.

남해 용왕이 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숨 막히는 고통에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 와중에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만이 의식을 꿰뚫었다.

바다의 신화가 크게 변하고 있다고.

그러니 필히 그것을 막아야 한다고.

파아아악!

연거푸 파도가 쳤다.

떠밀리던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손에 다시 진광대왕님의 대도를 쥐었다.

“하하, 그래.”

파도를 멈춘 용왕이 조소했다.

“기껏 든다는 게 그것이더냐.”

나는 그의 조소에 반응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악!

촤아아악!

진광대왕님의 유지가 담긴 검의 끝에서 황금빛 신성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칼날의 산이 뻗어 나갔다.

“도산지옥의 검이라.”

파아악!

새카만 힘이 깃든 팔로 내 초식을 쳐내며 남해 용왕이 낮게 웃었다.

“아까와는 다르구나.”

촤아아악!

파아아아악!

그가 휘두르는 흑암지옥의 어둠과 황금빛 검이 뒤섞이면서 쉴 새 없이 두 신성이 맞부딪쳤다.

“지옥의 첫 번째 검은 지키고자 하는 검이지. 너는 이대로 나를 붙잡아 두기라도 할 것이냐?”

파아아아아악!

일순 보다 강력해진 힘으로 검을 쳐 낸 용왕이 물었다.

“큭……!”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가까스로 밀려나는 것을 버틴 두 다리가 가늘게 경련했다.

“이 공간에 너와 나를 가두어 바깥의 저것들을 지킬 셈이냐?”

압도적인 힘을 보인 남해 용왕은 여유가 묻어나는 얼굴로 몸을 물리며 다시 물었다.

“얼마나 그리할 테냐. 내가 나가면 저것들이 죽을 테니, 너는 영겁의 세월이라도 버티겠느냐?”

용왕이 공격을 거두고, 나는 반격할 틈을 찾지 못한 채 서 있었다.

“하아…….”

숨을 고르며 그를 직시했다.

영겁의 세월을 버틴다는 것은 곧 이대로 영원히 갇힌다는 것.

용왕의 물음에는 내가 결코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란 조롱이 담겨 있었다.

내 지옥의 권능만으로는 저를 쓰러트릴 수 없다고 확신하는 태도였다.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품위 있게 걸쳤던 남해 용왕의 곤룡포는 어느새 넝마가 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붉게 물든 얼룩은 분명 검수지옥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업경이 통하지 않는 이상,

그의 업으로 신성을 증폭시키지 못하는 이상,

마력을 전부 소진해도 그 이상의 타격을 입히는 일은 요원하다.

“확실히…….”

나는 깔끔하게 수긍했다.

“제 힘으로는 당신을 쓰러트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용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아아아악!

휘둘러진 검을 향해 용왕도 다시금 검은 신성이 휘감긴 팔을 휘둘렀다.

파아아악!

하나 그다음 순간, 그의 팔은 이전까지와 달리 내 일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황금빛 신성에 삼켜졌다.

콰아아앙!

황금빛 신성에 당한 용왕이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듭 용왕을 향해 덤벼 들었다.

그에게 도달하기 직전 뒤로 힘껏 당긴 검을 다시 앞으로 내뻗었다.

파아아아악!

검은 파도가 몰아쳤다.

전신을 후려치는 듯한 힘에 기어이 튕겨 나갔지만 이번에는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지 않고 두 다리로 버티고 섰다.

“허…….”

몸을 일으킨 용왕이 너덜너덜해진 팔을 들며 실소했다.

“내 힘이구나.”

그는 자신이 무엇에 당한 것인지 바로 알아챘다.

진광대왕님의 대도는 공격을 열두 번 흡수해서 열두 배로 받아친다.

업경으로 지옥의 신성을 증폭시키지는 못해도 검에 담긴 권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선악이 없는 재해의 화신이라 할지언정 받아 낸 공격을 증폭해서 되돌려주는 방식은 가능했다.

“그래, 내 힘을 이용해 나를 꺾어 보겠다는 것이냐?”

다친 팔에 도로 아무렇지 않게 어둠을 휘감으며 용왕은 비웃듯이 물었다.

촤아아아악!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계속해서 그를 향해 땅을 박차고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악!

용왕 또한 다시금 내 공격에 맞서 왔다.

금강석보다 단단한 용신의 팔이 검은 신성을 뿌렸다.

“하기야 이제 무슨 힘을 더 쓰겠느냐.”

촤아아악!

파아아아악!

두 힘이 연달아 부딪치기 시작했다.

용왕의 난폭한 신성은 제힘을 흡수하려는 나를 조롱하듯 압도적인 힘으로 덮쳐 왔다.

촤아아악!

파아아아악!

부딪칠 때마다 무지막지한 힘에 팔을 떨면서도 나는 이를 악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열두 배의 공격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이제 준비는 되었다.

촤아아아악!

그러나 간신히 열두 번의 공격을 재차 받아 낸 직후.

파아아아아악!

돌연 막대한 힘이 양팔을 짓눌렀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검을 놓친 나는 중심을 잃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윽…….”

덜덜 떨리는 팔을 뻗었으나 검에 닿기 전에 용왕이 먼저 내 목을 쥐었다.

“필드를 해체하거라.”

금방이라도 목을 부러뜨릴 듯 손에 힘을 주면서 그가 말했다.

“어서. 그렇지 않으면 필드를 풀 때까지 손가락부터 하나씩 온몸의 뼈를 부러트려 주마.”

나는 새어 나오는 신음을 억누르며 황금빛 용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카르마 등급 필드에서 나가고 싶다면 나를 죽이면 그만이다.

한데 필드를 해체할 때까지 고문하겠다는 건, 문어 용신들이 그러했듯 나를 산 채로 노리기 때문이리라.

“다행…… 이네요.”

목을 죄는 고통에도 어쩐지 작게 웃음이 났다.

“역시…… 카르마 등급 필드에 가두는 게 맞았어.”

“허…….”

혀를 찬 용왕의 눈이 더없이 냉랭해졌다.

“제 목숨을 볼모로 잡는 왕이라니, 참으로 무력하고 미련하구나.”

파아아악!

내 목을 쥔 손아귀에서 검은 힘이 흘러나왔다.

“이거, 실수로 죽여버리면 일이 귀찮아질 텐데.”

정말로 필드를 해체할 때까지 나를 고문할 셈인 그는 자신의 힘을 가늠하며 위협적인 시선으로 나를 훑었다.

그 포악한 눈빛은 앞서 말했듯 당장이라도 손끝 발끝부터 부러뜨릴 것만 같았지만, 내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슬슬 시간이 되었다.

“덕분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쥐었다.

파아아앙!

남아 있는 마력으로 짜낸 힘은 발설지옥의 검푸른 신성이었다.

“음?!”

방심한 용왕의 손에 아주 잠깐 힘이 풀렸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바닥을 구르는 검을 쥐는 동시에.

[ (!) 공간의 지배법칙을 해체하였습니다. ]

나와 용왕을 가두었던 카르마 등급 필드를 해체했다.

“전하!”

“대왕님!”

“대왕!”

차사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혼미한 의식을 애써 일깨우며 그들과 마주했다.

짙은 혼란으로 물든 얼굴들에 나를 향한 걱정이 번져 나갔다.

나는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사라를 부르려 했으나.

파아아아앙!

입을 떼기도 전에 곧바로 새하얀 신성이 나를 감싸며 상처투성이였던 몸이 한순간에 고쳐졌다.

“단군!”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활력이 채워진 것을 느끼며 외쳤다.

“꽃은 다시 피었습니까!”

-동해 용왕을 포함한 이곳 용신의 수는 총 백 하고도 열둘. 분명 충분할 겁니다.

-혹시 몰라 절반은 남겨 두려고 합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14분 20초쯤 걸릴 것 같습니다.

내게 그 말을 전했던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정확하게 맞춰 나오셨습니다.”

[ (!) 새로운 법칙이 완성되었습니다. ]

[ (!) ‘동해의 주인’ 필드에 새로운 법칙이 추가됩니다. ]

내가 카르마 등급 필드에서 용왕을 잡아 놓는 동안 단군이 완성한 법칙이 전개되었다.

[ (!) 신성한 나무가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

단 한 번의 스킬에 한해 마력을 무한히 공급하는 꽃잎이 다시 한번 나를 감쌌을 때.

[ 도산지옥의 권능이 당신의 신성을 복사합니다! ]

- 구현 가능한 분신 수 : 117

나는 남해 용왕의 공격을 열두 배로 받아칠 수 있는 검을 쥔 117개의 분신들과 함께 용왕에게 짓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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