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죄인(7)
-대왕님.
그가 저승의 차사가 된 지 이백 년쯤 되었을 때였다.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신의 자리에 올라 수없이 많은 계절을 지나오면서 품게 된 의문이었다.
-차사가 된 이들의 죄목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제법 긴 시간 끝에 입에 올린 의문이었으나, 그가 모시는 왕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긴, 고놈들이 재판장에 설 때마다 내가 늘상 읊어줬잖아.
불퉁한 답이 돌아왔으니 평소라면 괜한 것을 물었다 여겨 거기서 그만두었을 터다.
그러나 그날은 유독 이백 년을 여상하게 넘긴 수많은 죽음을 반추하던 날이었다.
긴 세월을 죽음의 땅에 묶여버린 삼백의 망자들이 되씹혀 그는 거듭 물었다.
-딱히 파렴치한 악인들도 아니잖습니까.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차사.
파리한 낯의 여인이었다.
비쩍 마른 팔은 과연 모기나 죽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녀는 그 가느다란 팔로 늙은 주인을 때려죽였다고 했다.
그 주인이 먼저 그녀의 지아비를 때려죽였기 때문이다.
노쇠한 주인은 왜소한 여인이 칼처럼 품은 한을 보지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볼 줄 알았다면 애당초 술맛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지아비를 때려죽이지도 않았을 테니.
팔순의 주인은 한 고을의 수령이었고, 하필 시기가 뒤숭숭하여 그가 죽자마자 이런저런 혼란에 휩싸였다.
피는 피를 불러, 그녀 또한 얼마 못 가 주인의 아들에게 맞아 죽었다.
오랏줄에 묶여 이 땅에 끌려온 그녀는 다른 사람을 해치고 마을 하나를 어지럽힌 죄로 천 년을 저승의 신하로 일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사람을 죽였는데 왜 악인이 아니야.
왕이 무심히 대꾸했다.
왕의 눈은 무엇이든 꿰뚫어 볼 수 있으니 그가 누구를 떠올렸는지도 안다는 어투였다.
그는 곱게 늘어진 왕의 백발과 면류관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사람을 죽였으니 독사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독사 떼가 들끓는 독사 지옥은 폭력과 살인의 죄를 범한 죄인들이 가는 지옥이었다.
그곳의 죄인들은 독사들에게 물어뜯기며 저들끼리 끝없는 싸움을 벌인다.
타인을 해친 자들에게 어울리는 고약한 지옥이다.
-이야, 걔를 독사 지옥에 보내야 했다고?
그의 말에 왕이 비로소 그를 돌아보았다.
-이거 아주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로구만!
-…….
능청스러운 삿대질에도 그는 표정 변화 없이 왕의 시선을 받아내었다.
-결국 벌을 받아야 할 악인이 아니었단 말씀이십니까.
나지막한 반문에 왕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이백 년 만에 처음 꺼내는 말이로구나.
혹은 어딘가 흡족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강림, 너는 이제야 그게 불합리하더냐?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오는 물음에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 땅에 합리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곧 무심한 얼굴 그대로 대꾸했다.
-누군가는 지은 죄도 없이 이승의 사또와 저승의 왕이 사이좋게 육과 혼을 나눠 갖는 바람에 영원히 환생길이 막히기도 하지요.
신랄한 목소리에 왕은 껄껄 웃었지만, 이제 와서 제 처지를 꼬집자고 꺼낸 말이 아니었다.
그의 신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공정한 명령에서 시작되어 불공정한 명령으로 끝이 났다.
죽음이란 본디 의지와 상관없는 부름이었으니 당연할지도 몰랐다.
저승의 신하가 되어 이백 년의 세월을 보냈으나 그는 마땅히 받아들여지는 죽음을 단 한 번도 목도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원히 저승에 발이 묶인 처지에도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다.
죽음은 불합리한 것이 당연하기에 제 불합리한 죽음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새삼 신이 되었구나 실감이 들었다.
죽음을 그저 따라야 할 왕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더니 그의 천명은 어느새 왕의 충신이 되었다.
-흐흐흥, 뭐, 그렇지.
신랄하되 아무렇지 않게 꺼낸 대답이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인간의 혼을 잡아 와 영원히 신하로 삼은 왕은 웃었다.
-자식이 넷 있었어.
한참을 킬킬거리며 웃던 왕이 불쑥 다른 말을 꺼냈다.
-그 애, 내 막내딸. 자식이 벌써 넷이나 있었다.
그 말에 새로 차사가 된 여인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다.
-죽는 순간 부모도 없이 남겨질 자식들을 생각했었지.
왕의 말이 이어졌다.
-그제야 복수가 대체 무엇이 중요했을까 후회했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유별날 것 없는 비극이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순간의 감정에 눈이 멀어 그들의 미래를 꺾어버리곤 했다.
이 땅의 지옥은 그런 인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나 많은 이들 중에서, 고작 또 한 명이 저승의 왕에게 벌을 받게 되었을 뿐이었다.
-결국 끝에 와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길 만큼 아픈 삶이었던 게야.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그는 눈썹을 살짝 떨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길 만큼 마음을 다친 자들만이 이 땅의 신하가 된다.
왕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땅은 마음을 다친 자들을 위한 땅이니까.
한편으로 그 말은 살아 있는 자들은 언젠가 모두 마음을 다치게 될 거라는 뜻으로 들렸다.
-마음이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이 땅을 바랄 이유가 없지 않으냐.
대답을 바라는 듯한 왕의 눈길에 그가 잠시 말을 골랐다.
-죽음이 아프지 않으면 바랄 이유가 없는 땅이긴 하지요.
비로소 오랜 의문의 답을 얻은 그는 저승의 차사가 되는 진정한 조건을 곱씹었다.
죽는 순간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길 것.
아니, 정확히는.
고된 삶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만큼,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길 만큼 마음을 다친 이들일 것.
결국 죄인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는 답이었다.
해서 저승의 왕은 언제나 거짓된 죄목을 내어놓았고,
왕의 신하인 그도 그 죄목에 맞춰 오랏줄을 쥐었다.
……
신의 시간은 느리고도 빨라서, 어느새 하루와 같은 천 년이 훌쩍 지나갔다.
-기분이 이상해요, 형.
그는 환생문 앞에 선 앳된 막내 차사를 바라보았다.
-지장보살님께서는 분명 좋은 곳에서 모두 함께 만날 거라고 하셨는데…….
제 손으로 데려온 여섯 살배기 어린 동생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어린 차사가, 죗값을 치르지 않은 자는 넘을 수 없는 문 앞에서 우두커니 말했다.
-그런데도 저 애들을 여기로 데려온 게 후회가 돼요.
녀석의 말에 그는 얼마 전 천 년의 형기를 모두 치르고 떠난 차사를 떠올렸다.
돌보지 못한 네 명의 자식들을 자신의 죄로 여겼다는 차사가 떠나고,
돌보지 못한 네 명의 동생들을 자신의 죄로 여기는 차사가 왔다.
모든 차사가 그러했듯이, 자신이 무엇을 후회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렸을 터인데도 어린 차사는 한참이나 환생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돌봐줄 어른은 나밖에 없었는데, 그대로 죽게 내버려 뒀다는 게 이제 와서 나는…….
이번에도 딱히 유난할 것 없는 죄인이었다.
그보다 앞서 이 땅을 거쳤던 죄인들처럼.
고된 삶 끝에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게 된 다친 영혼은 수많은 불우한 죽음을 목도하며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이들을 사랑하고서야 다시금 스스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서야 스스로를 용서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스스로를 용서하고서야 비로소 또 한 번의 생을 허락받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마음을 다친 이들을 위한 땅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늦기 전에 환생해라, 제연아.
그래서 그는 홀로 남을 마지막 차사에게 말했다.
-넌 다시 인간이 되어도 잘 살 거다.
겨우 수십 년의 세월 끝에 기어이 이 땅의 마지막을 받아들였을 때였다.
-살아라, 제연아.
죗값을 치른 차사는 환생문을 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금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야. 그게 이 땅의 신화다. 그러니 다시 삶에 맞서는 것, 그것이 이 저승에서 너의 마지막 일이다.
마음을 다친 이들을 위한 땅의 신화는, 마음을 다친 이가 되돌아가면서 끝이 날 것이라 여겼기에 그리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마지막 차사는,
새로운 왕이 되어 다시 그의 앞에 섰다.
-너는 그저 죄를 짓고 스스로를 죽인 영혼이지 않느냐.
그는 새로운 왕에게 물었다.
새로운 왕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스스로를 용서하며 환생문을 넘어야 했을 차사가 어떤 마음으로 왕이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당신께서 저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럼에도 왕이 된 어린 신이 여전히 그 죄를 부정하지 않았을 때.
-죄 없는 자들이 더 고통받기 전에, 이곳의 염라를 없애고 그들을 해방하는 게 우선입니다.
새로운 왕이 된 이유로써 그저 다른 이들의 고통을 입에 올렸을 때.
그는 깨달았다.
마음을 다친 이들만 신하가 될 수 있었던 땅이, 결국 마음을 다친 왕마저 불러왔음을.
-그럼 우리는.
-인간은.
-그 이유 없는 불행 앞에서,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받아들여야 한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 새 왕이 그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탯줄을 자르시면 됩니다.
당연한 일임에도 그는 간언했고.
-대왕님, 업은 인간들 사이에서나 쌓이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겼던 왕이 다시금 제가 업을 지었다고 말하는 것을 우려했으나.
-이제 당신께서는 영원히 마음 한구석이 아프실 겁니다.
그럼에도 끝끝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새 왕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왔음을.
***
왕이 필드를 깨고 빠져나왔다.
생사결에서 승리했음에도 그새 엉망이 되어버린 몸은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다친 몸을 벗어 낼 겨를조차 없었다.
끊어질 듯 미약한 숨결만이 생사를 건 사투가 끝나지 않았음을 방증할 뿐이었다.
“지독하구나…….”
왕의 몸에 하염없이 꽃을 피우던 꽃감관이 하얗게 질린 낯으로 주먹을 쥐었다.
“독이 완전히 퍼져버렸다.”
“독?”
왕에게서 떨어지지 않던 충신의 눈이 꽃감관을 향했다.
“앞서 당했던 그 독을 말하는 건가?”
오른쪽 팔에서만 간간이 터지던 새까만 어둠이 왕의 전신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꽃감관은 온몸에 퍼진 상처에 꽃을 피우며 짜내듯이 대답했다.
“그래, 영혼을 해치는 독이다.”
“영혼을 해친다고?”
“혼살이꽃이 없으면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 해.”
“그게 무슨 소리야?”
듣고 있던 역신마저 언성을 높였다.
“아무것도 못 하면 어떡하는데. 이대로 못 영영 일어난단 소리는 아닐 거잖아?”
최악의 상황을 말하면서도 일말의 부정을 기대하는 눈이었다.
그러나 꽃감관은 답하지 못했다.
“……그때 제대로 말을 했어야 했다.”
한참 후에나 겨우 흘러나온 말은 뜻을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건 네 탓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어.”
“제대로 말해, 영감!”
얼굴이 상기된 역신이 비명처럼 외쳤다.
“혼자만 중얼대지 말고 알아듣게 말하라고!”
그녀의 질책에 꽃감관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신음처럼 말을 내뱉었다.
“발설지옥의 차사들을 봤다고 했다.”
그의 말에 충신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발설지옥 차사들 앞에서 스스로를 잘못된 왕으로 여기는 마음이 독이 되고 있었다.”
“그게 뭐야. 그럼 자길 탓하는 마음 때문에 독이 퍼졌다는 거야?”
두 차사의 대화에 충신은 그제야 깨달았다.
마음을 다친 채로 세상의 저편에 떨어졌던 어린 신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여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인을 사랑하기 위해 왕이 되었건만,
아직도 자기 자신만은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38장. 죄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