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장 (3) (98/187)

30장. 초대(3)

단군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그날 오후였다.

아침 식사를 마친 형은 곧장 발설이를 보러 가버렸다.

보이지 않는 형을 굳이 찾아가는 것도 왠지 껄끄러워, 나는 바리와 두 차사에게만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 그대로 저승을 나왔다.

약속 장소는 천부인의 성역 내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주단군 : 빨리 오셨군요.

주단군 : 저도 도착했습니다.

주단군 : 스탠드 쪽으로 와주시면 됩니다~~^^

“……이모티콘도 쓰는구나.”

메신저 어플을 확인하며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메신저를 쓰는 것도, 이모티콘을 쓰는 것도, 닉네임이 본명 그대로인 것도 왜 이렇게 떨떠름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쪽도 장군 모습으로 나오는 건가?”

운동장 쪽으로 걸어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약속 장소에 맞춰 이 학교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스스로는 좀 어색했지만 딱히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는지 같은 체육복을 입은 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와달라고 했던 운동장 스탠드에 다다랐을 즈음.

오라던 단군은 없고 웬 개 한 마리가 보였다.

“이런.”

마치 새하얀 대걸레를 씌워 놓은 것처럼 복실복실한 털을 본 직후 나는 반사적으로 움찔 몸을 떨었다.

“삽살개잖아.”

귀신 쫓는 삽살개.

사실 나는 삽살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별로 좋지 않은 추억이 있었다.

사납고 용맹하며,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데다가, 영체를 볼 수 있는 영안을 가진 삽살개들은…… 주인을 데려가는 저승차사를 잊지 않고 마구 물어뜯기 때문이다.

나도 신입 때 어떤 할머니가 기르던 삽살개한테 그야말로 온몸이 너덜너덜해졌던 적이 있던 터라, 아직도 삽살개만 보면 전신에 소름이 돋고는 하는데.

왜 하필 삽살개가 이런 데 있는 거지.

“…….”

괜히 긴장해서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녀석을 살폈다.

그러자 녀석도 복슬복슬한 털 아래 감춰진 눈으로 나를 주시했다.

한데 마주한 눈이 무척이나 깊었다.

원래 삽살개의 눈이 비범한 편이라지만, 녀석은 특히나 그러한 편이었다.

그냥 봐도 평범한 개가 아니었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런 눈이었으니까.

게다가 녀석은 범상치 않은 기운마저 풍기고 있었다.

“……설마.”

나는 개가 풍기는 기운을 읽어 내고 긴장했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 단군의 기운이었다.

“정말 놀랍군요. 사람이 개도 될 수 있다니.”

설마 이런 모습으로 나타날 줄이야.

하긴 연령대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걸 보면, 개가 되는 것도 딱히 불가능하진 않으려나.

어쨌든 신단수의 기운을 알아본 나는 그제야 한 걸음 다가가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 컨셉은 뭐, 단군에 장군이니까…… 이건 멍군쯤 됩니까?”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을 걸었을 때였다.

“날이 좋네요.”

뒤에서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돌아보니 앳된 얼굴에 체육복을 입은 장군이 서 있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안경을 썼지만, 내게는 더 이상 그 수려함이 감춰지지 않는 얼굴로 그가 생긋 미소 지었다.

“아…….”

그제야 굉장한 착각을 해버렸다는 생각에 민망해졌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개가 되는 건 말이 안 되지.

나는 그냥 저놈 눈이 하도 범상치 않아서…… 거기다 풍기는 기운까지 단군과 같아서 그랬던 건데.

“아뇨, 딱히 오래 기다린 건 아니고…… 그냥 개가 귀여워서 말을 좀 걸고 있었습니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다가갔던 걸음을 물렸다.

내가 개를 저로 착각했다는 걸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단군은 그냥 평소처럼 웃기만 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러고는 아직도 범상치 않은 포스로 우리를 바라보는 삽살개에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리 와, 멍군!”

……진짜 이름이 멍군이었어?

-멍멍!

그런데 멍군이라 불린 삽살개가 단군에게 달려들었을 때.

파앙!

어떻게 된 영문인지 녀석은 그대로 단군의 품에 스며들 듯 사라져버렸다.

“눈치채셨겠지만 멍군은 사실 신수입니다.”

단군이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삽살개처럼 생긴 해태죠.”

“아, 해태…….”

그 설명에 비로소 녀석의 눈이 범상치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해태는 법을 수호하는 신수로, 악인이라 판단한 자를 뿔로 들이받는다는 전설이 있으니까.

해태 멍군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느낀 것도 당연할 터였다.

[ (!) ‘주단군’이 ‘염라’에게 ‘풍문(E)’을 양도합니다. ]

그런데 홀로 해태의 정체를 납득하고 있는 와중.

뜻밖에도 풍문을 양도한다는 팝업창이 떴다.

[ ‘불을 삼키는 개’ ]

- 분류 : 풍문(E)

- 권능 : 오행 ː 화(火), 징악(懲惡)

- 내용 : 그 개는 거짓을 알아보고 불을 삼킬지니.

- 효과 : 해태 멍군(lv.1)을 소환합니다.

“풍문에서도 이름은 그대로 멍군이야?”

아니, 그것보다 풍문을 다른 사람한테 양도할 수도 있는 거였나?

당황한 내가 일단 눈앞에 떠오른 풍문의 안내창을 살피면서도, 처음 알게 된 사실에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저보다는 역시 징악의 신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풍문을 넘긴 단군이 태연하게 말했다.

“이 별의 모든 신화를 통합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싸움 없이 통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아무래도 잘 쓰이지는 않죠.”

내가 풍문을 양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당연하다는 듯, 그가 설명을 이어 갔다.

“보셨다시피 멍군은 아직 뿔이 없습니다. 그래도 징악의 신께서 길러주신다면 곧 그 뿔로 악인을 심판하게 되겠지요.”

설명을 들으며 왜 멍군에게서 단군의 기운이 느껴졌는지도 이해했다.

애초에 그의 풍문이었으니 마땅히 그의 기운이 서려 있었겠지.

다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마당에, 그가 대체 왜 이걸 나한테 넘겨줬는지는…….

“그냥 조공입니다.”

내 의문을 알아차린 것처럼 단군이 곧바로 말했다.

“당신께 잘 보여야 하니까요.”

신경 쓸 것 없다는 듯이, 악의 따위는 한 점도 없어 뵈는 웃음을 지으며.

“모쪼록 제 다음 생은 건물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좀 부끄럽습니다만, 건물은 역시 많을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은근히 집요하네, 이 양반.

나는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떨떠름하게 그를 쳐다봤다.

“말씀드렸다시피 천부인에 귀가 많아 부득이하게 이런 식으로 뵙습니다.”

스탠드에 몸을 앉힌 단군이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듯 화제를 바꾸었다.

앳된 외모에 체육복을 입은 모습은 정직한 길드에서 처음 마주치고 느꼈던 인상처럼 딱 그 나이대의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머뭇거린 내가 단군을 따라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조만간 북유럽에 갈 생각입니다. 그때 당신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북유럽이요?”

예상치 못한 말에 되묻자, 그가 친절한 미소로 긍정했다.

“네, 위그드라실을 얻으러 가야 하거든요.”

위그드라실이라면 북유럽 신화의 세계수인데.

“혹시 신단수 때문입니까?”

“그렇죠. 한반도에서 해야 할 것은 거의 다 했으니까요.”

내 물음에 단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으나, 그의 대답은 분명 그가 한반도에서 가장 신에 가까운 자라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굳이 내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얼굴을 굳혔더니,

그는 좀 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어차피 당신께서도 결국 북유럽에 가셔야 할 겁니다.”

내가 그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담긴 목소리였다.

“니플헤임과 무스펠헤임. 팔열지옥과 팔한지옥을 복원하시려면 그 두 신화가 필요하실 테니까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그의 말을 곱씹었다.

한반도의 지옥에는 시왕지옥 외에도 펄펄 끓는 팔열지옥과 꽁꽁 얼어붙는 팔한지옥이 있다.

또한 니플헤임과 무스펠헤임은 각각 북유럽신화에서 죽은 자들이 가는 추운 땅과 거인 외에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불꽃의 땅을 말한다.

단군이 신단수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다른 신화의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얻으러 가는 것처럼, 나도 저승 신화를 완성하기 위해 다른 신화의 이면세계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 별의 유일한 신화가 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의미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북유럽이 라그나로크를 맞이하기 전에 다녀와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나는 이어진 말에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음~ 유럽이 망했거든.

-종말 신화가 실현되어버렸어.

이전에 만났던 그림 리퍼는 분명 그렇게 말했는데.

“하지만 유럽은…… 이미 종말을 맞이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나 무심결에 의문을 내뱉은 순간.

그림 리퍼와 강림 형이 나누었던 대화가 함께 떠올랐다.

-그런데, 강림.

-혹시 전에도 그 차림을 한 적이 있던가?

-묘하게 그 차림이 낯설지 않아서 말이야.

-마치 과거에 이미 봤던 것처럼.

자신과 바리공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던 바리의 목소리도 생각났다.

-그분과 저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의 원인인 동시에 이미 벌어진 일의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이 우주의 시공간이 뒤틀려 있다는 증명이겠죠.

그들의 말을 차례로 되새기고 나서.

나는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그림 리퍼는 이미 강림 형을…… 북유럽에 갔던 나와 삼차사를 마주친 후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종말을 맞이한 그림 리퍼가 한반도에서 깨어나, 아직 북유럽에 간 적이 없던 우리와 다시 만났다는 것을.

그렇게 또다시 시공간이 꼬여버렸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을 깨달았을 때.

단군은 내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나를 곧게 응시하고 있었다.

“저는 반드시 북유럽에 다녀와야 합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천부인의 수장인 제가 장시간 한반도를 비우는 것은 위험합니다.”

단군의 입지를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은 말이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할 텐데, 제게는 달리 힘을 빌릴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한반도에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덤덤하게 말하면서도 다소 피로감을 내비치는 그의 얼굴과 마주하면서.

나는 단군을 만날 때마다 느껴왔던 불편함을 다시금 의식했다.

그는 본래 적이 많았다.

다른 전설급 각성자들뿐만 아니라, 그가 소속된 천부인에서도 매번 배신자가 나오는 판국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를 조금씩 동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벌써 세 번째였다.

내가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단군의 입지가, 그의 바른 성정이, 자꾸만 나를 그의 뜻대로 움직이게끔 하는 것이.

그는 이미 장군이라는 평범한 소년의 모습으로 내가 흑탑에 선전포고를 하게 만들었고,

천부인의 길드원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말로 내가 흑탑의 토벌에 참여하게 했다.

또한 지금은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말로 내가 그를 동정하도록, 그래서 그를 돕고 싶어지도록 만들고 있었다.

세 번 모두 그 단군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나를 그의 뜻대로 움직이고 싶었다면, 그러한 방식으로 유도할 수 있었을 터였다.

따라서 나는 단군을 마주할 때마다 자꾸만 불쾌한 의심에 휩싸였다.

이 순간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나의 의지인가.

아니면 나를 움직이려는 단군의 의지인가.

그런, 도무지 쉬이 떨쳐낼 수 없는 의심에.

“……그때, 바리공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당신이 고독한 것은 시간을 잃어서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존재의 전부로 여겨서라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남자에게.

해서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는 내 의지와 행동을 벌써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당신이 시간을 잃은 것이 언제입니까.”

그 물음에 단군의 눈이 조금의 동요도 없이 희미한 반원을 그렸다.

“꽤 오래전에, 죽을 줄 알았는데 살아난 적이 있었죠.”

상냥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얼굴로.

부드러우면서도 가벼운 어투로.

“그때부터 제 모든 시간은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는 더 말을 보태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는 확신했다.

단군은 내가 그의 명부를 찢은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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