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거스를 수 없는(3)
병원에서 멀지 않은 어느 공터였다.
천부인의 주술이 담긴 마방진 위에 작은 천막이 세워졌다.
허락되지 않은 이가 접근하면 불이 붙는 주술이라고 했다.
토벌 대상도 흑탑의 도사이니만큼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테지만, 최소한의 방비로 설치한 안전장치였다.
타겟이 된 쌍둥이 형은 천막 중앙에 앉았고, 그 뒤로 나와 삼차사가 지키듯 섰다.
천부인의 길드원이 천막의 입구에 서서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주시했으며, 검은 옷을 입은 흑탑의 도사들은 몇 명씩 조를 이뤄 천막 내에 흩어졌다.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나는 남자의 등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애써 의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천막에 들어오고부터 그에게선 몹시 지독한 불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혹시 이전에도 형제와 연락을 주고받았나요?”
긴장을 풀어줄 겸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다만 순전히 그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의 삶이 궁금했다.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내려다보던 그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날 돌아보았다.
“아뇨,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로는 연락한 적이 없습니다.”
돌아온 대답에 나는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47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쌍둥이 형제를 낳다가 죽었고, 홀로 남은 아버지는 제발 아이들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신에게 빌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마저도 형제의 곁을 오래 지키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끝까지 그들의 곁을 지켜주었다면, 동생 쪽도 의사가 된 형처럼 멋진 어른으로 자라났을까.
“그런데도…… 녀석은 갑자기 나타나서 몸을 달라고 하는군요.”
그가 말꼬리를 흐렸다.
대답은 그것으로 끝이었으나 업경의 권능은 내게 그의 짙은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통한, 후회, 슬픔.
그런 어두운 감정들이 파도처럼 내게 밀려들고, 문득 안개처럼 시야를 흐리는 희미한 연기에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이 연기는 뭘까.
아직 업경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업경을 통해 보고 있음에도 그의 모습이 분명치 않았다.
다만 그가 무언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말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감정이나 한, 어쩌면 쌓아온 업에 가까운…….
퍼엉!
퍼어어엉!
퍼어엉!
그런데 그때, 불현듯 천부인의 주술이 연달아 폭발했다.
“온 건가?!”
놀란 마음에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침입자는 보이지 않았다.
한데 침입자를 불태우는 천부인의 주술은 사방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쥐입니다.”
옆에서 강림 형이 말했다.
“쥐 떼를 움직여서 일부러 주술을 작동시켰군요.”
그 말에 뒤늦게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쥐들이 새카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펑!
퍼어엉!
퍼엉!
주술이 계속해서 쥐들을 불태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쥐 떼가 바닥을 물결처럼 뒤덮었다.
퍼엉!
펑! 퍼엉!
퍼어엉!
잇따른 폭발에 천막 안은 빠르게 혼란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많은 쥐들이 하나의 불덩어리로 뭉쳐 우리를 덮쳐 왔다.
파아아아앙!
강림 형의 신성이 그 즉시 불덩어리를 날려버렸다.
그러나 흩어져 있던 흑탑의 도사들은 우리만큼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으아아악!”
쥐 떼에 습격당한 그들이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었다.
불붙은 쥐들로 인해 그들의 몸에도 곧장 불이 옮겨붙은 것이다.
“아아악, 불이!”
“쥐가, 쥐가……!”
“아아악!”
당황한 도사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천막 내부는 덩어리진 쥐들과 검은 연기로 금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보호 대상에 집중하세요!”
혼란한 와중 나는 어느새 떨어져버린 쌍둥이 형에게 돌아가며 소리쳤다.
“아니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몸을 노리는 것이니 저를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괴로운 듯 쥐어짜내는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부디 여러분들이, 다치지 않게……!”
그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
콰아아앙!
별안간 굉음과 함께 천막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천막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매캐한 연기와 비명이 한순간 폭발하듯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직후 찢어진 천막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공터에 누군가의 우뚝 선 실루엣이 나타났다.
“……아.”
이윽고 시야에 잡힌 그자의 얼굴이 선명해졌을 때.
쌍둥이 형 쪽과 마찬가지로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47년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은 중년의 그는, 분명 내가 명부를 찢어 살려 낸 그 아기라고.
그 갓난아이가 결국은 이렇게 자라서 내 앞에 나타났다고.
“……하아.”
멍해진 귓가로 스스로의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렸다.
현기증이 일었다.
흑탑의 간부가 된 그가 평생에 걸쳐 쌓아온 막대한 업이 늪처럼 질척하게 나를 짓눌렀다.
흑탑주의 업을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때는 단지 그녀의 소름 끼치는 업에 압도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에 나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남자만의 업이 아니었다.
그를 살려 낸 나의 업도 함께였다.
47년 만에 다시 만난 쌍둥이 형을 통해 느꼈던 기쁨의 크기만큼.
이번에는 그 동생에게서 쏟아져 나온 막대한 슬픔이 나를 덮쳤다.
“대왕님.”
시야마저 흐릿해지는 현기증 너머로 강림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업경의 감각을 차단하셔야 합니다.”
내 옆으로 다가온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께서 어쩌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쌍둥이를 알아보고도 형에게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건만, 그는 이미 눈앞의 형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흔들리실 것 없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대로 바라보시면 됩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의 말대로 동요하지 않겠다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울렁거리는 게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휘몰아치던 칼바람이 서서히 멎는 듯한 감각.
업경이 닫혀 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매캐한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얗게 세어버린 형의 것과 달리 그의 머리칼은 숯처럼 검었다.
거칠어 보이는 인상은 인자한 형과는 조금도 닮지 않은 모습이었다.
눈 밑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흉터.
도피 생활 탓에 거뭇한 수염이 아무렇게나 자란 턱.
그것만으로도 형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 왔음을 방증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그가 외쳤다.
“빨리 해!”
신경질적이면서도 다급한 목소리였다.
“빨리 하라고, 형!”
그런데 그 입에서 ‘형’이라는 말이 나온 직후.
닫혀 가던 업경의 감각이 재차 파도처럼 나를 덮쳐 왔다.
형 쪽에서 밀려드는 감정이었다.
동생을 마주한 형은 단지 형이라 불린 것만으로도 몹시도 동요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모습이 다시금 시야에 들어왔다.
그에 곧바로 직감했다.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했던 그의 말이 거짓임을.
또한 악인이 되어버린 동생을 그가 아직도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흐으윽.”
제 몸을 빼앗기 위해 찾아온 동생을 바라보며 형이 가늘게 신음했다.
“흐윽. 흐으윽.”
흐느낌에 가까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그가 덜덜 떨리는 몸으로 동생을 올려다볼 때였다.
“형……!”
동생이 다시 한번 그를 부르고,
주저하던 형은 계속해서 괴롭게 흐느끼며 그대로 자기 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가 품 안에 감춰 두었던 작은 날붙이를 꺼낸 찰나.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나는 다급히 손을 뻗었다.
“안 돼……!”
파아아앙!
상황을 파악한 강림 형이 곧장 발설지옥의 신성으로 그의 손에서 날붙이를 날려버렸으나.
“흐으윽…… 죄송.”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붙이를 놓친 손으로 바닥을 나뒹구는 쥐 한 마리를 잡았다.
“죄송, 죄송합니다……!”
그렇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참하게 쥐의 몸을 비틀자마자.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사방에 널려 있던 쥐들이 새까만 불꽃을 일으켰다.
“이런, 주술이다!”
호구별성이 낭패라는 듯 외쳤다.
“쥐를 제물로 주술을 부리는 거야!”
파아아아앙!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눈앞이 새카맣게 점멸했다.
그러고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일대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나는 숨을 들이켰다.
주술이 발동되는 순간, 활짝 열린 업경의 감각으로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부터 형은 동생에게 몸을 내어줄 생각이었다고.
-조금만 더 만들어주고 가면 안 될까요?
-가능한 한, 모두 주고 싶군요.
그래서 죽음이 아니라 아이들을 다시 못 본다는 사실에 가장 슬퍼했던 거라고.
“……윽.”
속이 뒤집히는 기분에 입을 틀어막았다.
형도, 동생도 이미 자리에 없었다.
눈 깜짝할 새에 발동된 주술이 쌍둥이를 이동시켰다.
그들이 사라진 빈자리를 보며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
그것은 일전에 탈해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왜 어떤 이는, 누군가를 해치며 살아온 끔찍한 악인마저도 쉽사리 미워할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염병할! 놓친 거야?!”
호구별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근방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강림 형도 굳은 얼굴로 덧붙였다.
“쥐는 전부 죽었구나. 쥐들의 생명력을 바친 주술이다.”
사라가 미간을 좁히며 바닥을 살폈다.
“그리고 저들도 이미 죽었어.”
그을려서 엉망이 된 바닥에는 쥐 떼에 당했던 흑탑의 도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응? 아니, 잠깐만.”
호구별성이 문득 그들의 시신에 주목했다.
“저놈들도 그냥 죽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를 발견한 듯 그녀가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거, 얘네도 뭔가 또 다른 주술이…….”
그런데 그녀가 미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이었다.
“바로 추적에 들어가야겠습니다.”
천부인의 길드원이 쌍둥이 형이 사라진 자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동 주술입니다. 제물을 바쳤으니 그것에 흔적이 남아 있겠죠.”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조금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는 고요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죽은 것들의 기억을 읽으면 주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내가 망자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녀는 혹 단군에게 내 정체에 대해 들은 걸까.
그런 의문을 떠올리면서도 나는 다른 말 없이 그녀가 그린 방진에 다가갔다.
[ 염라의 권능이 죽음의 기억을 읽습니다. ]
권능을 발동하자 죽은 쥐들의 기억이 흘러들어 왔다.
기실 기억이라기보다는 고통이나 공포 같은 강렬한 감각에 가까웠다.
대상이 고등한 사고를 할 수 없는 쥐인 탓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빛바랜 필름처럼 희미하게 어떤 장소가 보였다.
쥐들의 마지막 기억은 생명력을 소진하며 그곳으로 사념을 보낸 것이었다.
“……옥상.”
나는 희미하게 읽히는 그 장소에 집중하며 말했다.
“건물 옥상이에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옥상이라면 대체…… 어떤 건물의 옥상으로 가버렸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리고 펜스 너머로 산이 보여요.”
나는 차근히 옥상 주변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보이는 풍경에 가늘게 몸을 떨었다.
모르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도 공터 앞에는 비슷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병원. 다시 병원으로 간 거예요!”
그대로 병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랑과 희망 병원은 총 다섯 채의 병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보이는 광경이 병원의 근방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았음을 확신했으나, 다섯 개의 건물 중 어디로 갔는지는 짚어 낼 수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파앙!
그렇게 대답한 천부인 길드원의 손에서 다섯 마리의 작은 새가 날아올랐다.
서천꽃밭의 꽃처럼 선명한 오방색을 띤 새들이었다.
“새들이 찾아낼 겁니다.”
하나하나가 손바닥에 가려질 만큼 작은 새들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