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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6) (74/187)

24장. 귀신의 나무(6)

“너 지금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게냐?!”

경악이 섞인 자청비의 외침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휘몰아치는 칼바람 속에서 모든 것이 되감기고 있었다.

전투로 부서졌던 땅바닥이 평탄하게 되돌아가고, 엉망이 되었던 마을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또한 마을 전체를 휘감은 금줄에는…… 끔찍하게도 반쯤 부패한 채 묶인 시신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그 처참한 광경에 깨달았다.

“……저들이구나.”

내가 혼으로 되돌렸던 우주퇴적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저들이, 희생된 거였어.”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윤회하고 백(魄)은 우주로 돌아간다.

혼은 영원불멸한 카르마이며 백은 한 번의 생이 담기는 그릇일지니.

마을에서 희생된 자들의 혼은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한 채 우주퇴적물이 되었고, 고통스럽게 훼손된 백은 썩어 문드러져 흙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그런데 그렇게 흙으로 흩어졌던 백이 어째서인지 일부나마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 (!) 당신의 영벨닯냘흐담(XX)이 정베몄냈긍똴흐흐흐 베뭘흐흐식을 되베뭘흐흐니다. ]

[ (!) 당신의 영벨닯냘흐담(XX)이 정베몄냈긍똴흐흐흐 베뭘흐흐식을 되베뭘흐흐니다. ]

다시 오류창이 떴다.

이전처럼 한두 개로 끝나지 않고 반복적으로 내 시야를 뒤덮었다.

[ (!) 당신의 영벨닯냘흐담(XX)이 정베몄냈긍똴흐흐흐 베뭘흐흐식을 되베뭘흐흐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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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영벨닯냘흐담(XX)이 정베몄냈긍똴흐흐흐 베뭘흐흐식을 되베뭘흐흐니다. ]

……

무한한 오류창이 감옥처럼 나를 둘러쌌다.

직접 닿는 것이 없음에도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압박에 내가 주춤할 때쯤.

[ (!) 인과율벨덮됩흐 치베렁뇬긱둑흐흐흐인 왜곡이 발벨겠민늅똴흐흐흐였습니다. ]

새로운 오류창만을 남기고 일제히 사라졌다.

[ (!) 인법몄몄긋러흐흐흐 왜법몃굶긍똴흐흐흐 복원이 벨깬몄긔떪렸검빔니다. ]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두 팔을 넘어 내 몸 전체에 커다란 스파크가 일었다.

“……큭.”

전신에 전기가 오르는 듯한 충격에 숨을 삼키는 찰나.

[ (!) 영벨닯냘흐담(XX) ‘시스템 벨눴냇번똴흐흐흐 #00-000’를 삭제합베깩됩흐다. ]

이어서 뜬 팝업창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조금이나마 인식했다.

“삭제……?”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인 풍문을, 시스템이 결국 지워버리고 있음을.

“풍문이…… 사라진다.”

나는 스파크의 충격도 잊은 채 멍하니 오류창을 바라보았다.

“대왕님……!”

강림 형이 달려와서 내 어깨를 감싸 쥐었다.

파지직!

내게 닿은 형의 팔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쳐냈다.

직후.

[ (!) 영웅담 ‘시스템 오류#00-000’이 정상적으로 삭제되었습니다. ]

비로소 제대로 된 팝업창이 뜨면서 스파크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뿐만 아니라 요동치던 주변까지 한순간에 고요해진 것을 보면서 나는 되돌아가던 시간이 아예 멈춰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차례 반파되었던 마을에서 반파의 흔적이 사라졌다.

피로 젖었던 금줄은 흰 종이를 매단 모습으로 돌아갔다.

우주퇴적물로 인해 공간이 뒤틀리던 것 역시 멈추었다.

끔찍한 모습으로 남은 시신이 사방에 널린 것을 제외하면 일대는 이제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정말로, 시간이 돌아갔구나.”

다만 지나치게 조용한 마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 불가살이 던전에서 안보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버려 두면 저것은 결국 이 우주에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을 불러오게 됩니다.

우주퇴적물이 불러온다는 그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우주의 정보에 오류를 일으킨다는 우주퇴적물은 결국…… 시간을 되돌린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까지 불러오게 되는 걸까?

“대왕님, 괜찮으십니까.”

재차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형의 팔에 번진 스파크만 보고 밀어냈던 그를 그제야 똑바로 마주했다.

가라앉은 시선이 보였다.

여느 때와 같이 무겁되, 여느 때와 다르게 어두웠다.

그래서 여느 때 같지 않게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형.”

그 무게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서, 나는 형이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부러 더 힘을 실어 말했다.

“봐요, 형. 제가 분명 할 수 있다고 했었…….”

그러나 나는 차마 하려던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나를 보는 시선은 계속해서 가라앉아 있었다.

변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무엇 하나 닿지 않을 것처럼.

“노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셈이냐.”

형은 내게 뿌리쳐진 자리에서 한 발 더 물러서며 낮게 말했다.

파앙!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몸 곳곳에 색색의 꽃이 피어났다.

“네놈이 재촉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팔뿐 아니라 옷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상처들까지 빠르게 아물었다.

형은 사라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 몸만 살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목적했던 바는 모두 이루셨으니 이제 저승으로 돌아가시는지요.”

형의 말마따나 귀목은 처리했다.

이제 우리가 필요로 했던 목재와 자청비가 원하는 흙을 가지고서 돌아가면 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이었으나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형을 올려다봤다.

“……별것 아닙니다.”

내가 머뭇거리는 걸 알아차린 듯 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이대로 걸어서 돌아갈까 싶어 여쭤보는 것입니다.”

“걸어서요?”

조금 당황해 되물었더니 형의 시선이 차사들과 자청비를 짧게 스쳤다.

“이 인원수로는 가는 길이 좁으실 겁니다. 저승길이 익숙한 제가 걷는 편이 낫습니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형은 분명 한반도에서 가장 발이 빠른 죽음의 신이었다.

저승이 문을 닫기 전에도 형과 나는 걸어서 이승과 저승을 오가곤 했다.

자청비와 함께 돌아가기엔 차 안이 다소 좁으니, 형은 따로 오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형이 혼자 돌아가겠다는 말에 선뜻 그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나눌 새도 없이, 왜 그렇게 갑자기…….

“그럼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미 결정을 끝낸 형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더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아예 선을 긋는 태도로.

“대왕님께서는 나무와 흙을 회수하시고, 천천히 저치들과 함께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말을 마친 그는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죽음의 권능이 깃든 걸음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뭐야, 저놈.”

지켜보던 호구별성이 팔짱을 꼈다.

그녀도 형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갑자기 왜 저래?”

“……뭐, 놈도 생각이 많아진 것이 아니겠느냐.”

옆으로 다가온 사라가 형이 사라진 자리를 한 번 돌아보고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새 왕이 이룬 것을 마냥 기꺼워하기엔, 앞으로는 또 무슨 일을 하려고 들지가 두려운 게지.”

스파크의 여파에서 손수 회복시킨 몸을 거듭 눈으로 확인하며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형의 속내를 말했다.

“그리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해내버렸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오늘처럼 또 고집을 피울 것이 아니냐.”

그 말에 귀목에 달려들기 직전 형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형이 내 판단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형한테 아무것도 솔직할 수 없어요.

그의 눈이 한순간에 땅으로 꺼지듯 힘을 잃던 순간이……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냥.”

그러다 문득 내 앞에 드리우던 새까만 두루마기 자락을 기억했다.

-뭘 하고 있는 게냐, 막내야.

-왕이면 왕답게 싸워라.

저승 던전에서 하나의 시험처럼 나를 가로막고 섰던 이를.

스스로 일어서지 못한다면 이대로 영원히 왕좌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며 서늘하게 나를 내려다보던 이를.

그리하여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상실감의 정체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형이 잘했다고 해주기를 바랐는데.”

……그때의 형은, 따라가기 벅찰지언정 야속하지는 않았는데.

“어이구!”

모르는 사이 조금씩 밑으로 떨어지던 고개가 덜컥 멈추었다.

불쑥 시야를 채운 건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싼 호구별성의 웃는 얼굴이었다.

“내가 해줄게, 칭찬!”

그러고는 별안간 내 양팔을 붙잡아 만세 하듯이 들어 올렸다.

“우리 전하 최고다! 아주 끝장난다!”

아니, 들어 올리는 것을 넘어 춤이라도 추는 모양새로 짤짤 흔들기 시작했다.

“자, 그 속 좁은 놈 대신 내가 백 번 천 번 잘했다고 해줄 테니까 얼굴 풀어라.”

한껏 내 팔을 흔든 그녀가 다시 팔을 쭉 뻗으며 만세를 했다.

“아휴, 우리 전하 만세! 롱 리브 더 킹! 저승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정말로 어린아이 달래듯 말하는 터에 나는 기어이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녀의 키가 나보다 작아 망정이지, 사라만큼만 컸어도 번쩍 들어 어린아이 비행기 태우듯 하지 않았을까.

이미 49년이나 형을 따라와 놓고.

나는 왜 이토록 한심하게 굴고 있을까.

“흐음, 그런데 말이다.”

한동안 조용히 지켜만 보던 자청비가 입을 열었다.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저들의 백을 일부 돌려놓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시신들을 가리켰다.

“망자의 기억을 읽는 왕의 권능이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

그 말에 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바로 떠올리지 못했을까.

처참히 훼손된 시신들 위로 우주퇴적물을 혼으로 되돌리며 보았던 그들의 기억이 겹쳐졌다.

그래, 그들은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한 채 한데 뒤엉켜버렸던 것일까.

지체할 것 없이 망자의 기억을 읽는 권능을 발동했다.

[ 염라의 권능이 망자의 한을 읽습니다. ]

팝업창이 뜨고,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야, 이거 이놈들은 왜 안 움직여?

-너무 나대서 좀 닥치게 했더니 그대로 뒤져버렸어.

-이게 미쳤나, 살아 있어야 한다고 했잖아.

-아, 여기 널렸는데 몇 놈 좀 죽으면 어때.

기묘한 문양을 새긴 검은 옷들.

검은 옷의 도사들.

-사, 살려, 살려주……아아악!

-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사악한 기를 머금은 금줄.

주술을 써 내린 붉은 문자열들.

금줄에 묶여 녹아내리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산 채로 검게 녹아내려서, 마침내 하나로 뒤엉키는 사람들…….

-됐다, 성공이다.

-아주 많아, 이 정도면…….

-이 정도면…… 정말로 가능……할 수도.

그렇게 읽은 기억 끝에서.

“……흑탑.”

나는 마을을 점거했던 검은 옷의 도사들이 무엇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흑탑이 우주퇴적물을 일부러 만들어 냈구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이 되돌아가버린 마을을 돌아봤다.

흑탑은 과연 무슨 짓을 벌이려는 것일까.

한 마을의 주민들을 일제히 희생시켜…… 대체 어떤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키려는 것일까.

“그래, 표정이 아주 무시무시하구나.”

자청비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권선과 징악의 신이여.”

마치 내가 어떻게 나올지 안다는 것처럼.

“너는 네가 본 죄인들에게 무어라 말할 것이냐.”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당신께서는, 2주 뒤 다시 한번 한반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실 거예요.

바리의 예언이 뜻하는 바를.

***

[일반] 지금 흑탑쪽 썰 들은 사람 (292)

(블러 처리된 시신 사진.jpg)

아까 흑탑 영역에서 시신 무더기로 발견된 듯

존나 끔찍하니까 괜히 사진 찾아보지마라

시체 훼손 개심하고 다들 뭔 이상한 줄로 묶여있음

암튼 새벽에 번개 존나게 쳐서 누가 가봤더니 저 꼴이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데

閻魔羅闍

〔익명1〕 그게 뭔데 씹덕아 한글로 써라

↳〔작성자〕 무식한 새끼야 염마라사

↳↳〔익명1〕 ㄱㄴㄲ그게 뭐냐고

↳↳↳〔익명2〕 줄여서 염라임...

↳↳↳↳〔익명4〕 헐

↳↳↳↳〔익명15〕 헐222

↳↳↳↳〔익명26〕 헐333333

〔익명3〕 미친 그럼 번개도 염라가 그런 거임?

〔익명7〕 염라가 흑탑에서 저랬다는거?

↳〔익명8〕 ㅅㅂ 염라씨 글케 안봣는대 조따 잔인하네;

↳〔익명9〕 염라가 했겠냐ㅋㅋㅋㅋㅋㅋ 흑탑이 했겠지

↳↳〔익명11〕 ㅇㄱㄹㅇ.. 흑탑 유명하지.. 걔네 원래 사이비잖아

〔익명10〕 번개도 염라 권능이냐?

↳〔익명13〕 헐 염라가 흑탑 성역에서 권능 씀?

↳↳〔익명14〕 ㅁㅊㅁㅊ 그럼 염라가 간밤에 흑탑한테 선전포고한거네

24장. 귀신의 나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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