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가신 구출(4)
“……후후후.”
안보팀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대포라도 맞은 양 몸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
필시 내가 금지된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내려진 우주의 심판일 터였다.
몸에 그만한 구멍이 뚫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는 모습에, 정말로 나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저는 당신들을 직접 삭제할 수 없습니다.”
웃음을 거두지 않은 얼굴 그대로 그녀가 불쑥 오른손을 들었다.
단단해 보이는 팔뚝에 기묘한 검은 스파크가 일었다.
그녀는 정체불명의 힘이 깃든 그 팔로 별안간 있는 힘껏 나를 후려치려고 들었다.
그런데.
뻐어어어어엉!
내가 미처 그녀의 손을 피하기도 전.
다시 한번 대포를 쏘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바로 이렇게 말이지요.”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나를 힘껏 치려던 그녀의 오른팔이…… 그새 또 사라져 있었다.
어깨부터 흉측하게 찢어져서는, 흡사 커다란 짐승의 이빨에 물어뜯기기라도 한 것처럼.
“삭제하기는커녕, 당신을 이렇게 한 번 후려치고 싶다고 생각한 것만으로 13억 년간 외팔이로 살아야 할 정도랍니다.”
맹수의 숨소리처럼 낮게 깔았던 목소리는 어느새 나긋나긋해져 있었다.
한껏 친절하게 안내 사항을 전달하는 공무원의 말투였다.
“충분한 답변이 되었습니까?”
순식간에 한쪽 팔을 잃은 그녀는 빙긋 웃어 보이며 내게 물었다.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말문이 막혔다.
답변해준답시고 팔뚝을 날려버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어투는 전에 없이 부드러워 더욱 소름이 끼쳤다.
“……하.”
그러다 어느 순간 결국 웃음이 나왔다.
그냥, 지금 벌어진 모든 일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터지는 헛웃음이.
“하하, 이건 뭐.”
헛웃음을 흘리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아, 직접 보여주셔서, 예, 감사합니다. 13억 년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하겠습니다.”
딱히 비꼬는 건 아니었다.
당장은 정말로 그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날 죽이기는커녕, 한 대 치지도 못한다는 걸 보여준답시고 13억 년이나 팔 한 짝을 포기한 또라이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래요, 덕담을 해주시니 저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후 웃은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이제 신고 포상금을 지급해드리기로 하지요.”
고맙게도 버그 신고자에게 지급되는 1,000만 우주화까지 잊지 않고 챙겨주면서.
“하지만.”
인벤토리에 포상금을 전송한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살겠다고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저지르신다면, 그때는 제 팔다리를 전부 박살 내서라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요컨대 이번엔 그냥 넘어가 주겠지만, 다음은 짤없다는 경고였다.
하기야, 나도 처음부터 이게 반칙이라는 걸 인지하고 벌인 짓이었으니까.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건 둘째치고, 그런 꼴까지 봤으니 다시는 우주질서보존회를 끌어들이는 꼼수는 고려하고 싶지 않다.
“네, 뭐.”
나는 이쯤에서 적당히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팀장님.”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일단은 흠 잡히지 않게 깍듯이.
“말씀하신 대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그럼 저도 이제 버그 확인 작업을 시작하지요.”
이런 나를 잠시 내려다보던 팀장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정리했다.
“더 필요하신 게 있다면 저희 팀원한테 따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뒤를 돌았다.
그러자 안보팀원들이 우르르 달려가 뜯겨 나간 그녀의 팔에 뭔가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다시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 팔과 반비례하게 이번에는 안보팀원들의 몸이 조금씩 부서져 갔다.
“……생각보다 더 다혈질인데, 저 양반.”
팀장의 태연한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말이야 계속 차분하게 했다지만, 저 여자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자기 팔을 박살 낸 것은 결국 단순한 분풀이였다.
그래, 내가 감히 자기를 끌어들인 것에 대한 분풀이.
그걸 굳이 자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선보여, 나로서는 그냥 기가 질릴 수밖에 없는.
“…….”
그녀를 보다가 문득 전에 만난 지구청장 조옥희 씨를 떠올렸다.
그녀는 나름대로 ‘나를 편애한다’고 해서 몰랐다만 안보팀장이 저런 또라이였을 줄이야.
별 같잖은 수로 저승을 빼앗으려고 해서 그렇지, 청장 정도면 아주 정상적인 공무원이었지 않은가.
“저기요, 선생님.”
그때였다.
“우리 팀장님, 너무 자극하지 마십쇼.”
누군가 불쑥 말을 걸었다.
“보셨겠지만 저분은 저희와 좀 다릅니다.”
팀장을 고치던 자들 중 한 명이었다.
하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
찍어낸 것처럼 똑같이 생긴 우주질서보존회 안보팀 공무원.
“예…… 저분은 감정, 특히 분노를 별로 숨기지 않으시죠.”
고개 숙인 그가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저분은 벌써 세 번째 행성이시거든요. 절대 시간으로 따지면 사실 청장님보다도 더 오래 일하셨답니다. 저희 직급이 꼭 근무 기간에 비례하진 않아서요.”
타앙!
그 순간 공무원의 뺨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누군가 일러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또한 내게 허락되지 않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아시다시피 저희 우주질서보존회는 행동이나 감정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질서란 원래 정적인 것이거든요.”
탕!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으나, 공무원은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저분은…… 많이, 다른 분들보다 격렬하시죠. 차분하게 말씀하셔도 다 티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부디 너무 자극하지 마십쇼.”
귓가에 좀 더 바짝 붙은 그가 낮게 깐 목소리로 덧붙였다.
“질서가 급격하게 변한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질서가 무너질 때라는 뜻이니까요.”
***
그러니까, 결국 오래됐을수록 미쳐있다는 거군.
저승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우주질서보존회라는 존재를 대충 그렇게 이해했다.
안보팀장이 그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도 결국 오래 일해서 그렇다니까.
“…….”
생각해 보면 딱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인간에게 개미 떼를 100년간 지켜보라고 하면 어떨까.
100년이 아니고 10,000년이라면?
10,000년이 아니고 10,000,000,000년이라면?
그렇게 긴 시간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거지 같은데.
그 와중에 혹시 개미들한테 직접 손이라도 댔다간, 벌이랍시고 온몸에 구멍이 뻥뻥 뚫려버린다면?
……아마 당장이라도 개미굴에 불을 지르고 싶지 않을까?
“뭐, 이번에는 그럭저럭 잘 넘겨서 다행이다만…… 그치들 끌어들이는 건 자중하는 게 좋겠구나.”
조수석에 앉은 사라가 말했다.
“그러게, 뭔 미친 애가 하나 껴 있었네.”
뒷좌석의 호구별성도 말을 받았다.
“이번과 같은 방식을 또 사용하는 건 위험하겠습니다.”
그 옆에 앉은 강림 형도 동의했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밟은 터에 어느새 저승이 코앞이었다.
차에 탄 지 한참이었는데, 이제야 말을 꺼낸 것을 보면 그들도 충격이 꽤나 컸던 모양이다.
그럴 법하지.
그냥 성질 한 번 부리겠다고 13억 년이나 자기 팔을 날려버리는 또라이라니.
오랜 세월 신으로 살아온 그들로서는 우주질서보존회가 그들보다 더 상위의 존재라는 점에서 거북하기도 할 테고.
“……뭐, 어쨌든.”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돌렸다.
“탈해의 가신들을 구출했으니, 이제 업경을 만들 준비를 하도록 하죠.”
방법이야 어쨌든 첫 번째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우선은 2주 뒤에 흑탑주를 칠 준비를 마저 해야 했다.
***
저승에 돌아왔다.
숙소로 머무는 사라수대왕 저택의 앞마당.
뼈만 남은 두 노인과 왕도깨비 탈해가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인벤토리에 담아 온 물건들을 모두 꺼내 보였다.
고르고 고른 전자제품들.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커다란 것들도 있었고, 로봇청소기나 스마트폰 같은 최신식 제품에 이제는 보기 힘든 CD플레이어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이들 중에 가신도깨비들의 본체가 있을 것이다.
구출하기로 했던 가신의 수는 총 스물넷.
탈해는 웃음기 없는 진지한 눈으로 우리가 가져온 물건들을 살폈다.
검은 뿔테 너머 두 눈은 검붉은 귀기로 달궈져 있었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나 무언가에 집중했을 때 절로 발하는 도깨비의 기운이었다.
행여 누가 빠졌을까 봐 나도 숨을 죽이고 탈해를 지켜봤다.
물건들을 살피던 탈해는 이윽고 어떤 것들을 골라 제 앞에 모아 두었다.
“네, 이렇게 전부 제 가신들이 맞습니다.”
마침내 물건들을 모두 골라낸 탈해가 다시 나와 눈을 맞췄다.
둥글게 반원을 그리는 눈은 그새 귀기가 가시고 흑요석처럼 검게 빛났다.
“가신들을 되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왕님.”
그 말에 나도 짧게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긴가민가했지만 다행히도 빠뜨린 도깨비는 없었다.
나는 평범한 전자제품과 다름없어 보이는 본체들을 흘끗 내려다보고는 탈해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가신들이 아직 깨어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원래라면 도깨비 본체에서도 특유의 귀기가 느껴졌어야 했다.
귀기를 느낄 수 있었다면 가신들의 본체를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우리가 가져온 물건들에서는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귀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과 가신도깨비들이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 이유가 연관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탈해는 내 말에 잠시간 나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제게 힘을 빌려줬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탈해의 두 손에서 검붉은 귀기가 발했다.
귀기에서는 이내 가스불처럼 파란 도깨비불이 피어났는데, 우리를 공격했던 함달파의 불과 달리 뜨겁지 않고 푸른빛만 감돌았다.
탈해는 그것을 가신도깨비들의 본체에 불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가신들이 제게 힘을 보태주지 않았다면 탈출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런 거였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탈해가 기를 불어넣는 본체들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자연스레 던전에서 봤던 함달파와 선대 가신들의 인형이 떠올랐다.
“……아.”
역시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흑탑이 죽은 도깨비들의 몸을 이용해서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을.
……동족들이 그런 꼴을 당했다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일 테지만.
그는 평범한 도깨비가 아니라 도깨비를 대표하는 그들의 왕이니까.
“……탈해, 실은 던전에서 선대 왕도깨비와 가신들을 인형으로 부리는 자들을 봤어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기를 불어넣던 탈해가 나를 돌아봤다.
“…….”
그러다가 다시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기를 불어넣은 가신들의 본체는 희미하게나마 스스로 귀기를 발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가신들이 깨어나면 곧 당신의 업경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가 왜 업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더했는지는, 다시금 희미하게 귀기를 발하는 그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부디 당신의 업경으로, 제 가신을 해친 자들과 제 아버지를 살해한 자를 벌하여 주십시오.”
탈해는 그렇게 말한 뒤 한참을 침묵했다.
깨어난 그의 가신들에게 한이 맺힌 인사를 건넬 때까지.
20장. 가신 구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