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손님(1)
저승에 돌아왔다.
뼈만 남은 두 노인이 나와 삼차사를 마중했다.
천벌뿐 아니라 이후에 있을 일까지 몇 가지 당부하고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바리.
그녀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듯했다.
“그만큼 치성이 막대했단 거겠지.”
바리가 잠든 방을 돌아보며 사라가 말했다.
“내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탈진이었으니.”
쓰러진 바리에게 서천의 꽃을 피웠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육체의 손상과는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이를테면 영혼 자체의 문제라든가.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사라가 덧붙였다.
“우주의 시간을 헤매느라 뒤엉킨 이치를 풀어내고 돌아오겠지. 그 애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
“으음.”
듣고 있던 호구별성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근데 나 진짜 궁금한 게 많거든.”
그러더니 영 찝찝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일단은…… 단군, 그놈이 제일 궁금한데.”
입맛을 다신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바리도 후유증이 이 정도인데 그놈은 대체 뭐지?”
기도의 대가로 잠들어버린 바리와 달리, 같은 기도를 하고도 멀쩡히 천벌을 상대한 단군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글쎄요, 어쩌면.”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바리가 단군보다 더 많은 것을 봐서일지도 모르죠.”
그때 바리가 기도를 통해 본 것이 정말 천벌뿐이었을까, 하는.
“그럴지도. 그 애라면 아주 많은 것을 봤을 것이다.”
사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리’라면.”
덧붙인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사라의 말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림 형이 나를 돌아봤다.
“대왕님.”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 한번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저는 바리공주님께서 저승에서 모습을 감추신 때를 기억합니다.”
순간 다른 두 차사의 시선도 형에게 집중되었다.
사라진 바리공주는 대체 어디로 갔으며.
같은 이름을 가진 인간 소녀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의 말이 지금 이 자리의 모두가 똑같이 품은 의문을 건드렸기 때문에.
“세상이 뒤집히기 직전이었지요.”
형이 말을 이었다.
“대별왕께서 열 분의 대왕님을 모두 부르셨습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이라면 벌써 5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뭐, 특별히 유별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저승의 최고신 대별왕과 열 개의 지옥을 다스리는 저승 시왕.
대별왕은 저승의 최고신이었지만, 세상을 열었던 창세신들이 그러하듯 인격신보다는 저승 전체에 깃든 기(氣)에 가까웠다.
때문에 그는 그저 ‘존재함’으로써 저승 전체를 지탱할 뿐이었고, 저승의 우두머리로서 인간사를 돌보는 것은 그 밑의 저승 시왕들이었다.
그러니 대별왕이 실무자인 저승 시왕을 한 자리에 부른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는 삼백 차사의 머리인지라, 그런 자리가 있을 때면 말석이나마 불려가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허락되지 않았지요.”
분명 보통의 저승 일이라면 으뜸차사인 그도 빠지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그조차 불허된 자리였다니, 대체 무슨 자리였을까.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은 열 분의 대왕님과 생불왕 삼신할미.”
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조신 바리공주님뿐이셨지요.”
뭔가를 곱씹듯 깊은 눈으로.
“얼마 뒤 세상이 뒤집혀 저는 그 일과 그분을 연관 짓지 못했습니다만, 역시 그분이 모습을 감추신 것은 바로 그 직후인 듯합니다.”
그 말에 두 차사와 내가 잠시 침묵했다.
이승과 저승에서 가장 큰 신들이 모였던 자리.
대체 어떤 말이 오갔던 걸까.
게이트 이후 유일하게 천기를 읽을 수 있었던 생불왕 삼신할미는 그것을 바리공주에게 배웠다고 말씀하셨고.
바리신을 모시며 바리의 조부모를 키워줬다는 무당은 게이트가 열릴 것을 예언했다.
그렇다면 바리공주는,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알았으며.
그날 대별왕을 비롯한 생과 사의 지배자들에게 과연 무엇을 어디까지 말했을까.
“……대별왕도, 바리공주도, 대왕님들도 지금은 모두 찾을 길이 없으니.”
나는 다시 말했다.
“이제 그 자리에 계셨던 분은 생불왕밖에 남지 않으셨네요.”
하지만 그마저도 확실치 않다.
저승이 문을 닫은 이후, 생불왕 삼신할미는 이승에 남아 20년이 넘도록 저승을 찾지 않았다.
함께 인간의 역사를 열었던 형제, 죽음의 염라가 소멸할 때까지도.
“그분이라면 이미 너를 만날 때를 알고 계실 것이다.”
그때 사라가 끼어들었다.
“네가 신이 된 이상 그분께서 반드시 탯줄을 잘라주셔야 하니까.”
이전에 강림 형한테 들었던 이야기였다.
탯줄, 인간으로서 수천 년간 쌓아온 카르마를 잘라 내야만 비로소 진짜 신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운명을 점지하는 생불왕이시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실 그분께서 새로운 염라가 된 너를 찾지 않으시는 것은 분명 뜻이 있으실 터.”
신뢰와 경애가 담긴 말이었다.
서천꽃감관 사라도령은 생불왕 삼신할미가 직접 점지한 천신이었으니까.
서천꽃감관과 생불왕의 관계는 저승차사와 저승 시왕의 관계와 가까웠다.
때문에 생불왕을 입에 담는 그는 깊은 흠애(欽愛)를 숨기지 않았다.
“결국 다 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씁쓸하게 웃으며 정리했다.
생불왕 삼신할미.
사실 나는 그 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목도한 모든 불우한 죽음은, 결국 그 신의 손에서 비롯된 운명이었으니까.
염라가 모든 죽은 것들을 위로하는 자비로운 신이었다면, 삼신은 모든 살아야 하는 것들을 정해진 운명으로 내던지는 잔혹한 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신이 아직 다소 거북하다.
삼신이 직접 점지했던, 그 많은 불우한 삶의 숫자만큼.
“일단은.”
한숨을 쉬며 말을 돌렸다.
“바리가 말한 손님을 기다리도록 하죠.”
천벌을 예언하던 밤, 과연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곱씹던 바리는.
-곧 손님이 오실 거예요.
새빨간 핏덩이를 뱉어 내며 말했다.
우주가 아직 허락하지 않는 정보를 말했기 때문에 받은 대미지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몸이 상하는 것을 괘념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손님을 모실 수 있다면 당신께서는, 2주 뒤 다시 한번 한반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실 거예요.
***
다음 날 아침.
삼차사와 함께 광천못에 들렀다.
못에 머무는 용궁 왕자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흐음, 벌써 제법 운치가 있구나.”
광천못을 둘러보며 사라가 말했다.
혼탁했던 광천못은 용궁 왕자가 머물게 되면서 금세 정화되었다.
왕자 본인의 권능뿐 아니라 용궁에서 가져온 보물도 그대로 못에 뒀기 때문이다.
휘황찬란한 용궁의 보물에는 물의 권능이 담겨 있어 그 자체로도 정화 작용을 했다.
덕분에 광천못은 맑은 빛을 되찾았을뿐더러 용궁의 보물로 치장되어 꽤나 장관을 이루었다.
생의 권능을 품은 광천못이 돌아오면서 저승의 붕괴가 멈춘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복고등어를 모셔 왔달까.
“왕자야~~~ 밥 먹어라!”
못으로 달려간 호구별성이 팔을 크게 휘저었다.
손에는 잉어용 사료 봉투를 들고서.
가짜 몸에 현신한 우리가 인간처럼 밥을 먹듯이 가짜 고등어에 현신한 용궁 왕자도 뭘 좀 먹어야 할 텐데, 그럼 왕자는 대체 뭘 먹고 사느냐…… 하는 궁리 끝에 내놓은 메뉴였다.
“아구, 잘 먹네!”
사료를 뿌리며 호구별성이 싱글벙글 웃었다.
“왕족인데 입맛은 서민이구나, 너!”
-아주 맛이 좋소! 고맙소!
……뭐, 일단 왕자는 만족한 것 같다.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서 다행이다!”
신나서 고등어의 먹이…… 아니, 왕자의 식사를 챙기며 호구별성이 말했다.
왕자의 곁에는 커다란 잉어 여섯 마리가 함께였다.
바리네 조부모가 수시로 챙겨주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물에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겠냐며 호구별성이 데려온 관상용 잉어들이었다.
먹이…… 식사도 그때 샀다나.
……괜찮겠지?
뭔가 왕족을 모신다기보다는 고등어 양식을 시작한 기분이지만.
-다들 착한 친구들이오. 외롭지 않게 해줘서 고맙소!
잉어들 사이에서 고등어가 명랑하게 지느러미를 펄럭였다.
-처음에는 낯을 좀 가렸는데, 이제는 제법 대화도 통하고 좋소!
이야, 왕자는 물고기랑 말도 하는구나.
새삼 용왕의 아들이 맞네 싶어서 다가갔다.
왕자의 곁에 모였던 잉어들도 내게 와서 입을 뻐끔거렸다.
인사를 하는 걸까?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한데 왕자한테 통역이라도 부탁을…….
-대……왕……님.
?
-한……다……우리……인……사.
?!
-존경……왕……저승……의무.
?!??!?!?!?
“아니, 진짜 말을 한다고?!”
왕자가 생선…… 아니, 용신이라 알아듣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신수가 되고 있군요.”
강림 형이 끼어들었다.
“이곳은 신의 나라니까요. 망자와 달리 산 채로 신의 나라에 왔으니 신의 세계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거야?
듣고 보니 어느 정도 납득되었다.
나는 물가에 앉아서 잉어들을 살폈다.
내 앞에 몰려든 잉어들이 커다란 입을 쉴 새 없이 뻐끔거렸다.
-영광……저승……앞날.
-죄인……지……옥……고기.
-고기……고기.
……제대로 신수가 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신수는 원래 옹알이를 저렇게 살벌하게 하는 거야?
-고기……고기고기.
-고.기고.기.고기.
……이거 혹시 신수가 아니라 그냥 아귀 아냐?
“드문 일은 아닙니다. 저승의 신수들은 결국 이승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대왕님께서 저승에 오시기 전에는 일부러 신수를 키우기도 했지요.”
내 얼굴이 떨떠름해서인지, 강림 형이 설명을 덧붙였다.
“뭐…… 완전한 신수가 되기 전까지는 좀 모자란 녀석들이긴 합니다만.”
흘끗 잉어들을 내려다본 그가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곧 삼도천의 고기들처럼 변하겠군요.”
“삼도천 고기들이요?”
삼도천이라면, 악인들이 건너는 하류에는 커다란 물고기들이 사는데.
“형…… 삼도천 걔들.”
내 말에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강을 건너는 죄인의 살점을 뜯어먹지요.”
“…….”
……쟤네 계속 왕자 곁에 둬도 되는 걸까?
나는 다시 왕자와 잉어들을 돌아봤다.
-하하! 이 친구들이 또 장난을 치는구려!
커다란 잉어들 속에서 작은 고등어가 천진하게 지느러미를 팔랑거렸다.
-깨무는 시늉이라니, 정말 재밌소!
……진짜 괜찮은 걸까?
“음, 그래도 왕자님께 큰 변고가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삼도천 고기에게 물린 상처는 본디 곧장 재생되니까요.”
헛기침을 한 형이 마저 말했다.
“죄인이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
역시 왕자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다.
룸메이트한테 물어뜯기며 복작복작하게 사는 거랑 그냥 외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 중 뭐가 낫겠냐고.
그래도 당사자잖아.
“뭐, 왕자님께서는 그래도 용신이시잖습니까. 고기들이 완전한 신수로 자라면 곧 신을 알아볼 것입니다.”
여전히 떨떠름한 게 티가 나는지 강림 형이 마저 설명했다.
……뭐, 괜찮을 거라니 다행이긴 한데.
“할 일이 많구나.”
듣고 있던 사라도 한마디 보탰다.
“삼도천의 고기뿐 아니다. 저승에는 본디 많은 신수가 있지.”
하긴 내가 처음 저승에 왔을 때만 해도 우두나 마두 같은 신수들이 서슬 퍼런 눈으로 지옥을 지켰었다.
“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신수들도 다시 키워야겠군요.”
나는 사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 당신의 카르마에 따라 ‘풍문(E)’이 완성되었습니다. ]
그 순간 팝업창이 떴다.
[ ‘고기, 고기, 아귀고기.’ ]
- 분류 : 풍문(E)
- 권능 : 사후세계(死後世界), 징악(懲惡)
- 내용 : 저승의 강이 마르지 않는 한 악인은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 효과 : 저승 필드에 삼도천의 신수 아귀고기(lv.1)를 소환합니다.
다섯 개의 지옥 씨앗을 심은 이후 또 다른 저승의 풍문이 생성된 것이다.
“……그래, 이런 식으로 저승의 풍문을 늘려가는 거구나.”
새삼 다시 느꼈다.
저승이 돌아온다면, 나는 내 필드를 전개함으로써 언제 어디서든지 죄인을 벌하는 지옥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
왕자의 먹이…… 아니, 아침을 챙겨주고.
우리도 슬슬 아침을 차려 먹기 위해 사라의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마당에서 청소를 하던 두 뼈노인이 마침 우리를 발견하고 묵례했다.
“응?”
그런데 앞장선 호구별성이 눈을 끔뻑였다.
“뭐야, 쟤는 또 누구야?”
뼈만 남은 두 노인 뒤로 훤칠하게 큰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아, 쟤가 바리가 말한 손님이구나! 이야, 쟤는 뭔가 똘똘하게 예쁘네!”
마음에 든다는 듯 재빨리 눈을 빛낸 호구별성이 목을 쭉 뻗어 손님을 살폈다.
“엥?”
그런데 그녀가 별안간 떼잉 혀를 찼다.
“생긴 건 멀끔한 게, 옷은 왜 저리 그지 같다냐?”
그녀의 말에 나는 덩달아 고개를 갸웃했다.
뭐랄까, 손님의 모습은.
잘생긴 공돌이?
덥수룩한 곱슬머리에 까만 뿔테안경.
거기에 주황색 격자무늬 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
그는 목에 커다란 헤드셋을 걸고 등에는 노트북 가방을 짊어진, 뭔가 공대 도서관에서 볼 법한 인상이었다.
“흐음, 저승에 직접 찾아왔다면 필히 그냥 인간은 아닐진대.”
손님을 살피던 사라가 말했다.
“하지만 신이라기엔 전혀 모르는 얼굴이군요.”
팔짱을 낀 강림 형도 말을 보탰다.
바리가 말한 손님이 안면 없는 남자인 게 탐탁지 않은지.
“뭐, 일단 가서 한번 만나 보죠.”
어쨌든 딱히 위험해 보이지는 않아서, 나는 차사들을 뒤로하며 성큼 남자에게 다가갔다.
바리가 손님을 모시라고 한 이상 모르는 얼굴이라고 해서 꺼릴 필요는 없을 터였다.
눈이 마주친 남자가 내게 환히 웃어 보였다.
“스물네 번째 왕도깨비, 석탈해가 새로운 저승의 왕을 뵙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 이름을 밝히자마자.
“허?”
“아니, 뭐라구?”
“스물네 번째?”
뜻밖에도 삼차사가 일제히 정색했다.
“물러서십시오, 대왕님.”
검푸른 신성까지 끌어올린 강림 형은 어느새 다가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자의 신원을 다시 확인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