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서해 용궁(1)
[일반] 천안 이무기 털림 (1183)
(녹아 버린 계곡 사진.jpg)
ㅅㅂ 이 새끼 머임 걍 다 녹았음
이딴 놈이 이무기는 왜 잡음 드랍템도 업는데
개ㅅㅂ트롤새.끼 걍 지 쎄다고 어글끄나
ㅈㄴ웃긴 새끼네 이거ㅋㅋㅋㅋㅋㅅㅂ
〔익명11〕 ㅁㅊ 화산 폭발한 줄
〔익명12〕 개또라이네 지 쎄다고 남의 사다리 걷어차
↳〔익명16〕 어짜피 님은 용 못 잡는데 멀ㅋㅋㅋ
↳↳〔익명142〕 ㅁㅈ 용굴 대박나면 좃가튼데 솔직히 꼬심ㅋㅅㅋ
↳↳↳〔익명458〕 걍 니네같은 찐따가 잡은 듯
↳↳↳〔익명667〕 걍 니네같은 찐따가 잡은듯2222
〔익명13〕 와 근데 진짜 누구임??
〔익명14〕 이정도면 ㄹㅇ 전설급임 미쳤는디
〔익명15〕 화속성이면 적탑주?
↳〔익명92〕 적탑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 맞지 그 또라이면 개납득
↳〔익명151〕 대놓고 암묵룰 깰 정도면 그정돈 돼야할듯ㅋㅋㅋㅋ
〔익명17〕 혹시 단군 아님?
↳〔익명11〕 긍까 단군 원래 그런 불문율 좆같아했잖아
↳〔익명131〕 헉스 진짜 단군인가?
↳↳〔익명16〕 ㄴㄴ 단군이면 산이 아예 박살나지
↳↳↳〔익명82〕 단군이라기엔 넘 허접임
↳↳↳↳〔익명142〕 ㅋㅋㅋㅋㅋ단군 발가락이 저 정도일 듯ㅋㅋㅋㅋ
〔익명18〕 단군은 아냐 단군 기도 중임
↳〔익명22〕 헐 아직 안끗남?
↳↳〔익명18〕 천벌이라 그런가 아직 안나옴..;;;;
↳↳↳〔익명31〕 ㅁㅊ 천벌 다음주라며 존나 무섭네
↳↳↳↳〔익명142〕 ㄱㅊㄱㅊ 단군이 다 막겠지
↳↳↳↳〔익명211〕 어단잦(어차피 단군 아니면 다 잦댄다는 뜻)
대충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댓글창을 껐다.
“……그런가. 단군도 아직 안 끝났단 말이지.”
용궁 왕자의 초대를 받은 지 이틀째.
바리의 기도는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벌써 사흘이 넘도록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계속되는 기도.
평범한 소녀라면 절대 버틸 수 없을 고행이었다.
“싸우고 있구나.”
나는 내게 천벌을 맡기겠다던 바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단군과 바리가 미래를 두고 서로 싸우고 있어.”
어느 쪽이 대단한 것일까.
한반도 최고의 각성자에게 맞서는 바리?
아니면 무조신 바리공주의 이름을 가진 소녀와 맞먹는 단군?
두 사람의 기도는 대체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
평소보다 이른 기상이었다.
눈을 떴는데 사방이 적막했다.
호구별성과 사라는 보통 이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원래라면 인시(寅時) 기도를 올린 바리네 조부모가 저택을 쓸고 닦을 테지만, 그들은 바리의 기도를 돕는다고 며칠째 부재중이었다.
적적해서 결국 마당으로 나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사라수대왕의 저택은 혼자서 깨어 있기에는 다소 어두웠다.
해가 뜨면 빛이야 들어오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방치된 집 특유의 삭막함이 있달까.
“……아.”
그런데 마당에 나왔더니 누군가 있다.
검푸른 신성을 발하며 신성을 가다듬는 강림 형이었다.
검은 두루마기 대신 차려입은 검은 정장이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하다.
“……진짜로 돌아왔네.”
눈에 익은 광경에 새삼 그의 귀환을 실감했다.
으뜸차사였던 그는 삼백 차사 중에 제일 먼저 눈을 떠 항상 같은 자세로 신성을 가다듬었다.
절도 있게 검푸른 신성을 휘감은 자태는 과연 차사들의 귀감인지라, 나도 처음에는 넋을 잃고 봤었다.
-자, 오늘 하루도 예를 갖추어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갓은 또 왜 그 모양인 게냐.
-허리 펴라, 이제연!
……방을 같이 쓰는 나까지 꼭두새벽부터 질질 끌고 나와서, 그렇게 귀에서 피가 나도록 꼰대질만 안 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지.
그 목소리를 곱씹다 문득 내가 아직 잠옷 차림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멋쩍게 발걸음을 멈추면서 부스스한 머리를 괜히 한번 쓸어 넘겼다.
예전에는 일어나자마자 몸가짐을 정돈하지 않으면 형이 무어라 훈계를 하곤 했는데…….
“일어나셨습니까?”
형이 이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휘감았던 신성은 불을 끄듯 자연스럽게 거두어졌다.
차분히 가라앉은 눈이 나를 담았다.
그에 나는 자연스레 새벽마다 날 닦달하던 목소리를 곱씹었다.
-제연아! 눈 비비지 말고 똑바로 서라!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그는 더는 그렇게 하지 않고, 다만 고개를 조금 숙여 내게 물었다.
내가 샛노란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 부스스하게 나왔다 한들, 그런 건 이제 자신이 입을 댈 일이 아니라는 듯이.
그 물음에 불쑥 형이 돌아온 뒤로 둘만 남은 게 처음이란 걸 의식했다.
저승 던전에서 나온 뒤로는 사라와 호구별성이 늘 함께였고.
숙소로 머무는 사라수대왕 저택에는 워낙 방이 많아서, 이전처럼 한 방을 쓸 필요도 없었으니까.
“……아뇨, 그냥.”
그것에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형은 곧 익숙해질 것이라 말했지만, 내게 맞춰 몸을 낮추는 형을 대하는 건 여전히 불편했다.
그 기저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알게 되었어도.
아니, 사실은 새로이 눈치챈 그 마음이 내게 아직 많이 무거워서.
“그렇다면 제가 먼저 말씀을 올려도 되겠군요.”
그때 형이 먼저 다른 말을 꺼냈다.
“일전에 신성으로 몸의 손상을 복구하는 법을 궁금해하셨지요.”
이무기와 싸울 때 보여줬던 것을 이제 설명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승에 돌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형한테 말해달라고 했었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는 그렇다 치고 형도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게, 어쩌면 형은 이렇게 둘만 남는 때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 몸이 담을 수 있는 신성과 저라는 신격 자체에는 우주가 허락한 신성의 양에 간극이 있습니다.”
형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 보니 몸이 멀쩡할 때는 이 몸에 가로막혀 일정 이상의 신성을 쓸 수 없습니다만…… 대신 몸이 손상되면 모아 둔 신성을 통해 수복이 가능합니다.”
그가 한쪽 팔에 검푸른 신성을 휘감아 보였다.
팔에 휘감겼던 신성은 곧 물처럼 형의 팔에 스며들었다.
“이런 식으로 미리 신성을 모아 두었거든요. 우주가 제게 허락한 만큼을 말입니다.”
……뭐랄까, 대충 보조 배터리 비슷한 것으로 알아들었다.
신성을 저장해 뒀다가 몸이 손상되면 저장된 신성을 방출해서 고치는 거라고.
“저와 달리 다른 두 차사는 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형이 마저 설명했다.
“그 둘은 처음부터 신이었지요. 그들은 우주가 일정량의 신성을 허락한다는 감각을 알지 못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누려온 것이니까요.”
아. 그래서 그때 호구별성은 백날 해도 안 된다고 했던 거였나.
“하지만 저는 인간에서 신이 되었기 때문에 그 감각을 압니다. 인간에서 신이 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기에 몸과 신성의 간극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말을 잇던 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생불왕께서 ‘탯줄’을 자르시던 순간을 기억하니 말입니다.”
모든 태어날 것들을 점지했던 생불왕 삼신할미는 새로 태어나는 신들마저도 점지했다.
사라나 호구별성이 처음부터 신으로 점지되어 태어났다면, 강림 형처럼 인간에서 신이 된 자들은 삼신할미가 탯줄을 잘라줌으로써 다시 태어났다.
탯줄이란 곧 인간으로서 환생을 거듭하며 쌓아 온 카르마를 의미한다.
즉 인간에서 인간으로 이어져 왔던 카르마를 잘라, 업의 굴레를 끊고 신이 된다는 것.
“대왕님께서도 곧 생불왕을 뵙게 되실 겁니다.”
형이 설명을 마무리했다.
“생불왕께서 탯줄을 잘라주신다면, 신성을 좀 더 이해하게 되실 테지요.”
결국 탯줄을 끊어야만 신성을 제대로 익힌다는 말이었다.
염라의 이름과 권능을 가졌지만, 인간으로서의 카르마를 끊지 않은 이상 나의 영혼은 아직도 인간에 머물러 있으므로.
“…….”
탯줄이라.
나는 이무기를 잡을 때 보았던 대왕님을 떠올렸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내게 깃든 대왕님의…… 염라의 신성이 남긴 잔상이었을까.
탯줄을 끊으면, 이무기를 죽였던 그 엄청난 힘의 원리도 이해하게 될까.
“이렇듯.”
그때였다.
“저밖에 없잖습니까, 대왕님께 필요한 간언을 드리는 충신이.”
불현듯 형이 이상한 말을 꺼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호구별성 그 흉물을 끌어내고 제게 으뜸차사 자리를 돌려주시지요.”
……얼굴에는 여전히 진중함을 가득 담은 채로.
“제가 곁을 지켜드리지 못하던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그 흉물을 쓰셨겠지만, 이제는 제가 이렇게 저승에 돌아왔지 않습니까.”
“……어.”
……형, 목적이 그거였어?
굳이 둘만 있을 때 말을 꺼낸 이유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정적(政敵)의 탄핵을 제기하기 위해서라니.
나는 잠시간 멍하니 형을 올려다봤다.
과연 전 으뜸차사의 천이백 년 관록은 녹록지 않았다.
***
서해로 가는 도로.
고등어 왕자를 용궁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이었다.
차가 별로 없어 시원하게 뚫린 길을 미끄러지듯이 한참 달렸다.
창밖으로는 어느새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결국 우리 바리는 못 데려왔네.”
뒷좌석의 호구별성이 문득 아쉬운 소리를 했다.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 용궁에 놀러 갈 기회는 흔치 않잖아.”
신들이라고 해도 용궁에 가는 건 쉽지 않으니, 바리만 두고 나온 게 영 서운한 모양이었다.
“네, 기도가 정말 길어지네요.”
나는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래, 그 애가 그토록 공을 들이다니. 단군 그자의 역량이 정말 굉장한가 보구나.”
조수석의 사라도 한마디 보탰다.
기도가 길어지는 게 결국 바리와 단군이 부딪쳤기 때문이라 여기는지.
-나중에 또 와주시오.
듣고 있던 고등어 왕자도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그 친구와 한 마디도 못 나눈 게 마음에 걸리오. 언제든 또 놀러 와주시오.
그도 바리가 신경 쓰이는 듯했다.
-아, 그러고 보니 염라여, 용궁에 가시면 그대를 반길 이들이 또 있소.
그런데 그가 다른 말을 덧붙였다.
-왕도깨비 말이오. 아직 서해 용궁에 머물고 있다오.
“왕도깨비요?”
뜻밖의 말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도깨비.
그들은 오래된 물건에서 태어나는 하급 신으로, 사실 신(神)보다는 귀(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천계’나 ‘저승’ 같은 그들의 나라가 없고, 대부분은 그저 지박령처럼 한곳에 머무는 집도깨비들인데.
개중에서도 왕도깨비와 그의 가신들은 또 달랐다.
그들은 물건 중에서도 특히 귀한 물건, 즉 신의 물건에서 태어난 왕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도깨비와 가신들은 천계, 저승, 용궁 같은 신의 나라를 떠돌며 머물 곳을 빌리는 대가로 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준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왕도깨비와 가신들이 서해 용궁에 있었다니.
조금 놀랐다.
말이야 계속 들어 왔지만 그들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니까.
-그렇소. 용궁에 가거든 왕도깨비를 꼭 찾아 주시오, 염라!
고등어가 신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왕도깨비가 그대한테 선물하려던 게 있다오!
어? 선물?
만난 적도 없는데 나를 대체 어떻게 알고?
“……저한테 선물을요?”
-그렇소, 원래도 그대가 왕도깨비 장난을 좋아하지 않았소?
……응?
-그래서 왕도깨비가 그대에게 주려고 재밌는 탈을 만들었소! 누구든 그걸 쓰면 그대와 똑같아진다오!
이어지는 말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얼굴은 탈을 써서 가려지지만, 목소리랑 체형이 그대처럼 바뀌는데…… 아! 정작 진짜 그대는 모습이 바뀌었구려!
그러니까, 이 고등어가…… 아직도 나를 돌아가신 대왕님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니, 왕자야. 너 아직도 몰랐었냐.”
듣다 못한 호구별성이 끼어들었다.
“쟤 그 영감 아니야.”
너무 당연해서…… 우리 중 누구도, 굳이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그 영감 얼마 전에 죽었어. 쟨 그 막내아들이고.”
-……!
그 순간 조잘대던 고등어가 뚝 말을 멈추었다.
-원래 염라가…… 아니셨소?
그러고는 충격을 받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왜 말씀하지 않으셨소?
“…….”
아니…… 그게.
그…… 설마, 아직도 모를 줄 몰랐지.
아무리 바보라도…… 솔직히, 그 정도일 줄은 몰랐지.
“뭐, 살다 보면 이런저런 오해가 생기니까요.”
나는 본심을 숨기며 큼큼 헛기침했다.
-이거, 내가…… 큰 실수를 했구려.
그런데 고등어는 또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어떡하오. 그대도 무척 슬펐겠소.
“…….”
그 말에는 결국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 슬펐지.
아직도 슬프고 말이야.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종종 슬픈 날이 있겠지.
가족과의 이별은 그런 것이니까.
“탈을 쓰면 그분처럼 모습이 바뀐다고요?”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궁금하네요. 가서 한번 써보죠.”
장난을 좋아했던 내 아버지를 위한 선물, 그게 정말로 궁금했기 때문에.
-그렇소, 탈이오. 그것 말고도 선물이 여럿 더 있소.
고등어가 대답했다.
-거기다 내 보물고도 함께 열어드릴 테니 부디 필요한 것을 챙겨 주시오, 염라.
어쨌든 보은을 할 생각에 다시 기뻐졌는지, 그새 또 명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