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이무기 터(3)
이런……개…거지 같은.
무슨……이무기가, 원래보다……똑똑해져?
……산사태?……주술?
사람이 몬스터라니……장난하냐.
“……아.”
어느 순간 눈이 떠졌다.
“……으윽!”
정신이 들자마자, 사지가 으스러지는 통증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너덜거리는 팔을 들어 올리니 이 모양이 되어서도 움직이는 게 새삼 비현실적이었다.
“다…… 부러졌네.”
이런 거 저승사자일 때 많이 봤지.
이만큼 몸이 갈린 놈들은 이름을 세 번 부를 것도 없이 죄다 시체였다.
혼과 육이 분리되지 않은 게 되레 신기한 상태랄까.
아마도 서천꽃밭의 경이로운 권능이 그냥 숨만 붙여 놨을 터였다.
그나마도 스탯이 최대치로 성장한 몸이라 가능했겠지.
고통에 기절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지만.
“……하아.”
한숨을 쉬며 팔을 내렸다.
“그래도 어쨌든…… 살아남긴 했는데.”
역시 이 몸으로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더 늦기 전에 가짜 몸을 벗고 다른 차사들부터 찾아보는 게 좋겠지.
영체라면 차라리 더 자유로울 테니까.
사라가 무사하다면 이곳에 다시 데려와서 망가진 몸을 고칠 수도 있을 터였다.
“……!”
이제야말로 서둘러 가짜 몸에서 빠져나가려는 찰나.
“전하!”
호구별성이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깨어나기 전부터 이미 그쪽에서도 날 찾고 있었나 보다.
“아니, 너 왜 거기 뻗어 있어!”
나를 발견한 그녀가 곧장 달려왔다.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역병의 권능 덕인지 그녀는 산사태를 만나고도 다치는 일 없이 잘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영감! 얘 좀 어떻게 해 봐!”
반갑게도 옆에는 사라까지 함께였다.
상처 없이 멀끔한 것을 보니, 그도 호구별성의 영향을 받아 무사했던 거겠지.
“허.”
다가온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쯧쯧 혀를 찼다.
“그새 임금인지 걸레짝인지 모르겠군.”
“…….”
거 영감님, 꼭 그렇게 말씀하셔야겠습니까.
“예, 지금 저기……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손짓하시는데,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래도 반가워서 농담을 건넸다.
멀쩡한 두 신을 보니 새삼 그들의 권능이 실감됐다.
역병의 권능으로 호구별성이 사라를 보호한 덕에 그가 나와 강림 형에게 아낌없이 신성을 쓸 수 있었고, 그 덕에 이렇게 걸레짝으로나마 살아남은 것일 테니까.
회복과 회피.
이 둘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최소한 살아남을 수는 있다.
생명과 역병의 신인데 의외로 상성이 좋다.
역시 생로병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너를 찾는 데 꽤 오래 걸렸는데.”
새하얀 신성을 발하며 사라가 말했다.
“그새 마력이 조금 회복되어 다행이구나.”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서천꽃밭의 신성이 전신에 깃들고, 이리저리 바스러졌던 몸은 금세 멀끔히 회복되었다.
단순한 치유를 넘어 부활의 신다운 힘이었다.
“다만 강림까지 회복시키려면 또 시간이 걸릴 텐데.”
그런데 그렇게 회복시켜 주면서도 그는 살짝 인상을 썼다.
보아하니 신성으로 바꿀 마력이 부족한 게 원인인 듯했다.
아무래도 내 회복에 또 마력을 다 소진한 모양이니까.
“이거야 원, 내가 내 힘을 쓰는데 제약이라니.”
그 모습을 보니 확실히 마력을 보조할 만한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순수마력이 최대치인 100에 도달했더라도 장비와 풍문, 신앙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더 높이는 게 가능했으니.
하지만 지금은 거기까지만.
나는 생각을 털어 내며 회복된 몸을 급히 일으켰다.
“우선은 강림 형부터 찾아야…….”
방금 나도 걸레짝이 되어 무방비하게 기절해 있지 않았나.
혹시 형도 엉망인 상태라면 절대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
“대왕님.”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풀숲에서 새까만 게 불쑥 튀어나왔다.
“저 여기 있습니다.”
“……!”
반사적으로 형을 돌아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아, 깜짝이야.
귀신인 줄 알았네.
새까만 정장에 피칠갑이 된 모습은 영락없는 저승사자였다.
그러나.
“……어, 형.”
찢어져서 피로 물든 옷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똑같이 당한 내가 걸레짝이 되었는데도 형은 그저 멀쩡한 모습이었다.
아까 연이에게 공격당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섰던 것처럼.
“형, 진짜 괜찮아요?”
믿기지 않아서 물었더니 형이 반듯한 얼굴 그대로 나를 돌아봤다.
“예, 저는 괜찮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어느 정도의 손상은 스스로 복구할 수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고하듯 고개까지 살짝 숙여 보이고는.
“아무래도 사라가 쓰는 진짜 부활의 권능은 아닌지라, 당분간은 불가능하겠습니다만.”
설명을 하면서 그는 온전히 회복된 팔에 검푸른 신성을 휘감아 보였다.
그의 팔에 감겼던 신성은 이내 그에게 흡수되듯이 스며들었다.
“이렇게 신성을 이용해 손상된 육체를 복구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이야, 신성으로 그게 된다고?”
듣고 있던 호구별성이 신기하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거?”
원리가 궁금한지 그녀가 형과 똑같이 암녹색의 신성을 팔에 휘감아 보였다.
그런데 그녀의 신성은 휘감기기만 할 뿐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너는 불가능하다.”
그 행동에 형이 귀찮다는 듯 그녀를 흘겨보았다.
“뭐? 왜 난 안 되는데?!”
호구별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성을 더했다.
역병의 기운을 품은 암녹색의 신성이 그녀를 중심으로 더욱 강하게 번졌다.
일렁이는 그녀의 신성이 마치 끈적한 액체처럼 형의 팔뚝에 닿았다.
그러자 여상하던 형의 얼굴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흉물 따윈 백날 해도 안 되니까 그 역겨운 역병 치워라.”
“어쩌라고! 왜 안 되는지나 설명해라, 시커먼 놈아!”
형의 매도에 호구별성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못마땅한 얼굴로 뭔가 더 말하려던 형은, 이내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냥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러고는 내게 도로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스스로 회복이 가능한 건 우주가 제게 허락한 신성과 제가 입은 육체 사이의 간극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내게 전해야 할 것이나 마저 설명하겠다는 태도였다.
“육체란 결국 우주가 허락하는 인과율이니까요. 딱히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대왕님께서도 아마…… 이런.”
설명하다 말고 형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순간적으로 푸른 기운이 스쳐 간 시선은 곧장 어딘가를 향했다.
“웬 놈이냐!”
형이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거친 기세로 뿜어져 나온 검푸른 신성이 아직 모습조차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상대를 날려버리기 직전.
-여기서 나가셔야 해요!
뜻밖에도, 어떠한 악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나가셔야 해요!
귀를 통하지 않고 직접 머릿속에 울리는 그 음성은 작고 여린 어느 여성의 목소리였다.
스으……스으으!
또한 형의 시선이 향해 있던 곳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뱀 인간이 나타났다.
온몸이 비늘로 뒤덮여 뱀인지 인간인지 모호한 모습은 분명 이무기와 맞닥뜨리기 전에 보았던 그 뱀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눈치챘다.
처음 뱀 인간과 마주했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위화감의 정체를.
“방금, 당신이…… 말한 겁니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던 뱀 인간.
저승사자였던 나는 가끔씩 볼 때가 있었다.
죽어야 할 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 억지로 육신에 붙어 있는, 그러한 존재를.
“……설마.”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자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았다.
“당신이…… 연이군요.”
그래, 왕자의 선량한 친구는 이무기가 아니라 이쪽이라는 것을.
“뭐야, 이게 연이라고?”
호구별성이 말을 받았다.
“잠깐, 그럼 그 끔찍하게 뒈지라는 사념.”
그녀가 연이를 돌아봤다.
“산 전체에 걸린 주술…… 그거 네 거야? 저주로 이무기를 죽이려고?”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반드시 맑은 물에 머물러야 하니까.
연이가 대답했다.
-저는 그 물을 독으로 바꿀 거예요.
뱀의 것으로 변해버린 혀를 움직이며.
-그 뱀이 욕심냈던 물의 권능으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 거야.
그녀의 비늘에서 검디검은 독이 흘러나왔다.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거품을 내며 곧장 모래를 부식시킬 만큼의 맹독이었다.
그녀가 어째서 그러한 것을 품었는지 눈치채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제물은 너였군.”
강림 형이 말했다.
“그래서 아직도 육신을 떠나지 못한 거였어.”
내가 알아챘듯, 천 년 넘게 혼을 거두었던 그 또한 알았을 터다.
명부에 적힌 수명이 끝났음에도 강한 미련이 남아 육신을 떠나지 못한 자들.
병마의 끝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아버지.
구조대원이 올 때까지 자식을 끌어안고 버티던 어머니.
한 번만 더 눈을 보고 싶었던 어린아이.
그렇게 아직 못다 한 것이 있어 떠나지 못한 자들을 우리는 때때로 보아 왔다.
그것은 운명을 바꾸는 것과는 달랐다.
바꾸기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끝을 완전히 마무리 짓기 위해 버티는 것이었으니까.
즉 그녀는 이미 죽었어야 할 육신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제물로 바쳐 그 뱀을 죽이기 위해.
-내가 바보였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 때문에 왕자님까지…… 모두, 여기 오면 안 됐었는데……!
뱀처럼 찢어진 동공 아래로 눈물이 고였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았어.
잔인한 자책.
때때로 세상은 속인 사람보다 속은 사람을 힐난한다.
그렇기에 속아서 모든 것을 잃은 당사자마저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질책한다.
그녀는 속아버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돈을 많이 준다고 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어떤 사람들이 무당을 찾는다고.
어떻게 그들과 얽혔는지 짐작되는 말을.
-잠깐만 도와주면 된다고. 동생들도 데려와도 된다고.
……스으으, 스으으.
그녀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더 듣지 않아도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모두 당했구나.”
사라가 인상을 썼다.
“바닥에 가득하던 뱀 껍질들……. 그래, 이제 전부 알겠어.”
사람을 몬스터에 빙의시키는 실험이 한 번에 성공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여의주를 통해 신기가 상승했다는 무당.
소문을 들은 그들은 연이에게 접근해 그녀의 모습으로 용궁의 여의주를 훔쳤을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소년 신을 이용해 인간 형태가 아닌 몸을 실험하고는 끝내 연이와 그 가족들까지 실험체로 다루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나가세요.
몸 전체에 독을 품은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 산이 통째로 뱀의 무덤이 될 테니까.
팝업창이 떴다.
[ (!) 대상의 카르마에 따라 미완의 ‘풍문(N)’이 발생합니다. ]
저주, 강한 원념이 만들어 낸 풍문.
[ ‘복수는 나의 것’ ]
- 분류 : 미완성 풍문(N)
- 내용 : 한 여인이 말하기를, 내 죽음은 너에게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효과 : (!) 해당 풍문은 미완성입니다.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구원보다도 상대방의 파멸을 바라는 자의 마지막 절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