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장 (1) (38/187)

16장. 이무기 터(1)

저승이 천벌을 막는다라.

그럴 수 있다면야 정말 좋을 것이다.

천벌에서 사람을 구해 내면 한 사람당 무려 100의 카르마 포인트를 얻는다.

이론적으로 100만 포인트 이상의 카르마 포인트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도 적격이다.

우주 신화 대통합 시범 사업.

이 사업의 목적은 결국 모든 인간이 믿는 단 하나의 신화니까.

뒤늦게 한반도의 세력 다툼에 뛰어들게 된 우리로서는, 천벌만큼 효과적으로 존재를 알릴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바리도 우리가 이번 천벌을 막자고 했던 거겠지.

하지만, 그 뜻을 알아들었음에도 나는 바리에게 답했다.

“그건 불가능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리, 네 능력을 못 믿는 게 아니야.”

오히려 나는 때때로 나 자신보다도 더 그녀를 신뢰했다.

그래도 내가 천벌을 막게 하겠다는 말만큼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천벌은 일대를 ‘신화급 필드’로 바꾸는 몬스터니까.

“문제는 우리…… 아니, 나야. 천벌을 막기엔 내가 아직 너무 약해.”

23년 전, 첫 번째 천벌의 때였다.

불현듯 하늘에 문이 열리고 양의 탈을 쓴 거대한 몬스터가 내려왔다.

가슴에 핵을 단 몬스터는 곧이어 지금까지 없던 방식의 필드를 전개했다.

무슨 짓을 해도 부술 수 없는 거대한 벽.

반경 5km의 거대한 필드에서 천벌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무엇이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 없애겠다는 듯이.

신화급 필드의 규칙은 하나뿐이었다.

[ 18,828 ]

그 숫자는 천벌이 필드 안의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줄어들었다.

정확히는 희생자의 숫자만큼.

결국 필드에 갇힌 모두가 얼마 못 가 깨달았다.

저것은 기어이 18,828명을 전부 죽이고 말 것이라고.

“공격을 피해 숨는 것은 의미가 없어. 어쨌든 천벌은 수를 채울 때까지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천벌의 필드에서는 신앙을 소모한다고 더 강해지지도 않아.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상대해야 해.”

신앙으로 힘을 증폭시킬 수도 없이, 그저 쌓아온 스킬과 풍문만으로 공략해야 하는 최악의 몬스터.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천벌은 약해져.”

인간이 그것을 깨달은 것은 천벌이 발생하고 꼬박 17시간이 지난 후였다.

천벌은 여전히 맹렬하게 날뛰었지만, 생존자들은 천벌이 처음보다 약해진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약해졌다 한들 이미 17시간 동안 15,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천벌과 맞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끝없이 도망치기만 할 뿐이었다.

천벌이 약해지건 말건 사람들은 계속되는 죽음과 무력감에 지쳐가고 있었다.

몇몇 포기한 자들은 스스로 천벌에게 달려들어 죽기도 했다.

그렇게…… 결국 18,828명 중에 단 13명만이 남았을 때.

단군, 헌터 주도혁이 처음보다 훨씬 약해진 천벌을 비로소 끝냈다.

발생 이후 약 23시간 만이었다.

“그때조차 천벌은 영웅담급 이상의 몬스터였다고 추정되지. 보통의 각성자라면 절대 혼자서 공략할 수 없는.”

나는 첫 번째 천벌이 끝난 직후의 한반도를 기억한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벌어진 재난에 1만 8천 명이 죽어 나가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때를.

신들마저 입을 열지 못했던 그날을.

그런데 그로부터 십여 년 후.

한반도 전체에 트라우마를 남겼던 천벌이 다시 또 발생했을 때.

단군은 23시간이 걸렸던 첫 번째 천벌과 달리 단 4시간 만에 그것을 끝냈다.

18,816명의 사망자를 냈던 처음과 달리 두 번째 천벌의 사망자는 1,173명.

단군 본인이 단시간 만에 천벌을 끝냈을 뿐만 아니라.

천벌의 패턴을 정확히 예측하여, 천벌이 약해질 때까지 최대한 많은 인간이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설계했기 때문이었다.

“……참나, 나 같아도 단군 저 컨셉충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듣고 있던 호구별성이 한마디 했다.

“그래, 그 정도면 지가 옥황상제라고 나대도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겠어.”

나는 그저 쓰게 웃었다.

실제로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이 단군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단군이 세 번째 천벌을 예고한 지금도 모두 그 한 사람만 믿고 있을 테고.

“……그러니까, 지금 나는 절대 천벌을 막을 수 없어.”

바리에게 마저 말했다.

“그건 애초에 일개 개인이 감당할 규모의 재난이 아니니까. 혼자서 한반도를 제패한 단군 정도가 아니면.”

저승 던전을 클리어한 우리는 분명 전보다는 훨씬 강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제 막 모든 스탯이 100에 도달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전설은 신도가 없어 아직 제대로 쓰지 못하고, 에픽급 무기만으로 신화급 몬스터인 천벌을 쓰러트릴 수는 없다.

이미 압도적으로 앞서나가는 단군이 세 번째 천벌까지 쓰러트리는 것은 속이 좀 쓰리지만, 그래도 별다른 수가 없는 것이다.

“……미안해, 바리.”

진심이었다.

나는 그녀가 정말 단군만큼 천기를 읽을 것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바리가 천벌에 대해 말해 준다고 해도, 내가 부족해서 소용이 없다는 거지.

“……아니요, 오빠.”

바리가 부정했다.

“오빠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아직 잘 모르세요.”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러면서도 어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과거, 현재, 미래…… 그건 단지 인간의 구분일 뿐, 우주의 시공간은 하나니까. 그래서 우주에게 과거와 현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너무도 확고한 어조에 나는 조금 놀라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니 우주가 오빠에게 천벌을 맡긴다면, 오빠에게 지금 당장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전혀 상관없어요.”

이어지는 설명은 내가 따라가기에는 뭔가 벅찬 내용이었다.

“능력이 없는 지금조차도, 결국 오빠가 천벌을 막아내는 미래와 하나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정말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지라,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었다.

“오빠, 저나 단군 같은 사람이 미래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설명이 이어졌다.

“하나는 우주가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미래를 보기만 하는 것. 보통 도사는 이렇게 미래를 봐요.”

이번에는 더 알아듣기 쉽게.

“제가 간혹 오빠에게 말하는 것들, 그게 그런 미래예요.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바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단군이 기도를 한다고 했죠?”

한 번 쉬고는 다시 운을 띄웠다.

“그건 사실 미래를 보는 게 아니에요. 본인이 설계한 미래를 우주에게 청하는 거지.”

알려지지 않은 예지의 비밀을.

“천기를 읽고, 지금까지 이어진 흐름에 어긋남이 없는 미래를 설계해서…… 우주에게 그 미래를 선택해달라고 비는 거죠.”

우주의 뜻을 따르는 도사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 주는 말을.

“즉, 단군은 우주에게…… 세 번째 천벌을 맡겨달라고 비는 거예요. 자기가 막을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니까.”

그러더니 그녀는 조금 헛웃음을 흘렸다.

“뭐, 사실이기도 하고. 솔직히 가장 가능성이 큰 사람은 그 사람이 맞죠. 단군이 아니면 만 명이 넘는 사람은 그냥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게 이미 우주의 뜻이니까.”

그 부분을 말하면서는, 그녀도 그제야 약간의 긴장을 느끼는지 두 손을 모았다.

“그러니까 저는, 오빠가 천벌을 막는 미래를 우주에게 청하겠어요.”

두 손을 모아 초조한 듯 깍지를 끼다가도, 어느새 다시 풀었다.

“오빠가 저와 제 가족에게 머물 곳을 주셨죠. 그러니…….”

이윽고 그녀가 다시 내게 웃어 보였다.

“그러니, 저는 이렇게 그 은혜를 갚겠어요.”

반드시 이루어 보이겠다는 듯이.

“한반도의 모두가 당신의 권능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께서 당신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도록.”

***

바리는 결국 기도를 시작했다.

내게 세 번째 천벌을 맡겨달라고 우주에 청하는 기도를.

바리가 너무도 단호히 하겠다고 말했던지라, 우리는 결국 기도 준비를 하는 바리와 그녀를 돕는 두 노인을 뒤로한 채 이승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근데…… 정말로 가능할까?”

뒷좌석에서 호구별성이 말을 꺼냈다.

“아니, 뭐. 우리 공주님을 못 믿는 건 아니다만…….”

그러다가도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하긴.

일단 당장 나부터가…… 솔직히, 못 믿겠으니까.

내가 그 천벌을 막는다고?

……내가?

생불왕 삼신할미조차 건드릴 수 없던 그 천벌을?

……겨우 1주일 만에?

“대왕님.”

답답하고 어지러운 감각이 슬금슬금 부풀어 오르는 의식 속에서.

“지금은 이무기를 잡는 것에 집중하시면 될 듯합니다.”

돌연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기다리면 답이 나올 문제에 굳이 더 신경을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도망친 죄인을 찾아 벌하시지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잇던 그가 조금 더 힘을 실어 말했다.

“당신께선 이제 징악의 왕이시니까요.”

형이 머뭇거리는 내게 눈앞의 일에 집중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으레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것은 달랐다.

익숙하되 같지 않았다.

그는 이제 형이 아닌 신하의 자리에서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 변화가 거듭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굳이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네요. 바리도 가능하면 빨리 이무기를 찾는 게 좋다고 했으니까요.”

내 말에 나머지 두 차사도 더 말을 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거의 도착한 것 같고요.”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며 말했다.

주변은 어느새 도심의 흔적 없이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로 가득했고, 그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가 하늘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연이. 그 여자의 목적이 정말로 용이라면 이무기가 용이 되기 전에 잡아야 해요.”

이무기는 원래도 가끔씩 산속에서 일정 확률로 출현하는 몬스터다.

다만 일반적인 사냥 대상은 아니었다.

약한 헌터들이 잡기에는 이무기가 주는 것도 없이 너무 강하고.

반대로 강한 헌터들은 이무기가 용이 되고서 잡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무기가 승천하면 일대는 전설급 던전인 ‘용의 산’으로 변하게 되는데.

전설급 던전인 만큼 길드 단위로 수십에서 수백 명까지 레이드를 뛰어야 토벌이 가능하다.

그래서 보통 이무기가 뜨면, 그 지역을 관리하는 길드가 훗날 생길 던전을 차지하는 것이 헌터 사이의 불문율이다.

단, 어디까지나 불문율로, 15년 전 단군이 선포한 ‘홍익인간 선언’은 아니었기에 눈에 띄는 제재는 없다.

물론 한반도의 헌터로서 살아가려면 지킬 수밖에 없겠지만.

“……하지만 저승은 인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죠.”

목적지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올 즈음 삼차사에게 마저 설명했다.

“헌터들은 용을 원할 테니 근방을 비워 두었을 겁니다.”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선 인간에게 부정을 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이무기가 나타난 산은 텅 빈 상태일 것이고,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한들 함부로 추적자를 보내지도 못할 것이다.

인간이 용을 원하는 이상,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했다.

“이무기 던전은 유니크 등급이니까요. 스탯을 전부 올린 우리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침내 다다른 산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자정을 넘긴 시각.

불빛 하나 없는 산에는 새까맣게 어둠이 드리웠는데, 기이하게도 위로 올라가는 길만은 뚜렷하게 보였다.

달이 유독 환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무기가 깃든 산이 우리를 부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선 뱀부터 잡아 보죠.”

손짓하듯 선명하게 자리한 입구를 응시하며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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