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장 (2) (34/187)

14장. 뭐라고! (2)

[ 염라의 권능이 망자의 파편을 읽습니다. ]

망자의 기억을 읽는 권능을 발동했다.

바리가 모아준 혼의 조각들이 불완전해서 그런지, 펼쳐지는 광경은 노이즈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다만 언뜻 들리는 말들이 심상치 않았다.

-흑암지옥은 이쪽이 가져가지.

-철상은 누가 가져갈 거지?

-거해는 저쪽이었나?

-독사랑 풍도도 끝났군.

저승 던전에 없었던 나머지 지옥의 이름들.

-이런, 다섯 개밖에 안 되는 건가?

-너무 욕심부려서는 안 돼. 우주가 허락하지 않아.

-곤란하군. 설마 클리어하지 못할 줄이야.

-오류인 것 같아. 일단 나는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우리는 발을 빼겠어. 이쯤이 제일 고점 같거든.

맥락을 알 수 없는 대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러 명.

-재밌는 게 생각났어.

그런데 문득 선명한 여자 목소리.

-흑탑은 남는다.

흐릿한 와중에도 파충류처럼 쭉 찢어진 그녀의 동공.

그리고 그녀의 팔목에 듬성듬성 돋아 있는…….

……저게 뭐지?

비늘?

비늘이 돋은 여자?

-발설지옥 차사들의 신성을 거뒀거든.

“……!”

이어지는 말에 숨을 죽였다.

발설지옥 차사들의 신성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도사들한테 차사의 신성을 입혀서 들여보낼 거야. 이걸 쓰면 던전과 좀 더 동화될 수 있어.

그러나 볼륨을 줄이듯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진광에게는 염라의 권능을 쥐여 주고 거래를…….

“…….”

그것으로 끝이었다.

읽을 수 있는 기억은 이것이 전부였다.

말 몇 마디 나누는 장면이 다였으며, 비늘이 돋은 흑탑의 도사를 제외하고는 누구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몇 가지 알아낸 게 있다.

“누군가 먼저 왕의 권능을 가져갔어.”

‘진광’은 이 던전의 지옥이 처음부터 다섯 개뿐이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시왕지옥의 신화 그대로 저승 던전의 지옥은 열 개였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누군가 다섯 개의 왕의 권능을 먼저 가로챘을 뿐.

그들은 저승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고도 왕의 권능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분명 시스템의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미 버그투성이 던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흑탑이 도사 집단이었던 걸 고려해 보면.

도사들이 일부러 던전의 법칙을 바꾸는 버그를 발생시켰을 수도 있고.

어쨌든, 그들이 왕의 권능을 가져가버린 터라 나는 던전을 클리어하고도 시왕지옥의 스킬이 다섯 개만 활성화된 상태였다.

나머지 다섯 스킬은 방금 본 자들을 찾아내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흑탑이 도사들에게 차사의 신성을 입혔다고?”

차사의 신성을 거뒀다는 비늘 돋은 여자의 말.

복룡 형과 마주했을 때 다른 사람이 그의 겉모습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느꼈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말 그대로 차사의 신성을 입고 들어왔기 때문에.

“형들은, 그때 분명 소멸했는데.”

10년 전에 있었던 헌터와의 전쟁에서 발설지옥 차사들은 혼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그런데 흑탑이 발설지옥 차사들의 신성을 가지고 있었다니.

그렇다면 혼과 신성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거기다 헌터에게 당한 차사들의 신성을 흑탑이 가지고 있었다는 말은 즉…….

“흑탑은 저승에 쳐들어왔던 자들과 관계가 있구나.”

10년 전에 벌어진 외국 헌터들의 저승 침공.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우주질서보존회가 일부러 그들에게 저승을 열어줬으리라고만 추측했다.

그 일에 흑탑은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 걸까.

“……하.”

생각을 곱씹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 알게 된 정보가 몇 가지 있었지만, 결국 명쾌한 답이 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 ‘흑탑’이란 말이지.”

다만 목표는 생겼다.

얼굴에 비늘이 돋은 여자.

그녀는 아마도 흑탑주 본인일 터.

그 여자의 기억을 읽으면.

그녀가 어떻게 저승차사의 신성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며, 나머지 왕의 권능을 가져간 자들은 누구인지 더 캘 수 있을 테니까.

“역시 그놈들이 왕의 권능을 훔쳤군요.”

그때 강림 형이 말했다.

그런데 ‘역시’라니.

그러고 보니 형이야말로 나보다 먼저 던전에 와 있었다.

나는 새삼 그에게 물었다.

“형은 어디까지 알고 있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내게 대답하며 형이 살짝 인상을 썼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발설지옥의 신성을 뒤집어쓴 자를 발견했기 때문에…… 놈을 고문하려고 했습니다만.”

형도 그것을 ‘신성’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미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했던 것 같다.

“그대로 새까맣게 구멍이 뚫려 사라져버렸습니다.”

“……!”

“몇 번 더 그런 일이 있었기에, 우주가 허락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런가.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일전에 우주질서보존회 지구청장도 ‘우주가 허락지 않았다’는 이유로 몸에 구멍이 뚫렸다.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거겠지.

“그래서, 우선은 대왕님을 기다렸습니다.”

형이 말을 마무리했다.

“……예, 저승의 새로운 왕을요.”

여기까지였다.

나는 굳이 더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다.

형의 추측이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정보와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한 가지는 확실해졌어요.”

다만 앞으로 할 일을 제시했다.

“시왕지옥의 권능을 되찾아야 합니다.”

저승의 신화를 재건하기 위해 해야 할 일.

“당장의 적은 ‘흑탑’입니다. 그들을 치면 나머지 배후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저승에 돌아가면 그것부터 생각해 보죠.”

내 말에 삼차사와 비라가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에요.”

나는 그들에게 다시금 웃어 보였다.

“돌아가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어요.”

그리고는 강림 형을 콕 집어서 다른 말을 꺼냈다.

“형, 아직 현신 안 하셨죠?”

내 말에 형이 무슨 뜻이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역시 아직 ‘우주 신화 대통합 시범 사업’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여긴 영체도 활동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형도 권능을 쓸 수 있었겠죠. 하지만 던전 밖에서 활동하시려면 몸이 필요합니다. 우주질서보존회가 만든 가짜 몸이요.”

나는 그에게 짧게 설명했다.

“지금 바로 드릴게요. 저한테 몇 개 남는 게 있거든요.”

“예, 알겠습니다.”

알아들었다는 듯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여기까지는 형도 순순히 말을 듣는다만.

“그런데 형.”

인벤토리에서 가짜 몸을 꺼내며 나는 말했다.

“현신하실 때 반드시 해야 하실 게 있어요.”

칼같이 매만져 쓴 갓.

휘날리는 검은 두루마기 자락.

그야말로 ‘저승차사’ 그 자체인 나의 형제에게.

“옷 갈아입으세요.”

저 벽창호가 고집하는 ‘저승 유니폼’을, 이제 금지해야 한다.

“당분간 우리는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헌터로 활동해야 하니까요.”

신이 인간 사회에 편입된 시대였다.

굳이 신인 것을 드러내 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그런 와중에 상투에 갓을 고집하는 강림차사란, 정말로…….

“형, 솔직히 너무 튀어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저승사자니까 그대로는 안 돼요.”

내 말에 형이 눈썹을 움찔했다.

그 강림차사에게서 갓과 두루마기를 빼앗다니.

필요한 일이었지만 내심 걱정스러웠다.

왕을 모시는 차사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거부하면 어떡하지?

“……예, 명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걱정과는 달리 어떠한 반발도 없이 가짜 몸을 건네받았다.

돌아온 것은 그저 딱딱한 수긍뿐.

그래도 조금은 토를 달 거라고 생각했건만, 저승 유니폼을 금지당한 꼰대는 거슬리는 명령 앞에서도 항명하려 하지 않았다.

예상이 빗나간 건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집 넘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으로 심술이 돋았다.

“저승차사란 걸 숨겨야 하는 만큼 옷만 갈아입으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덧붙였다.

“상투도 자르셔야 해요.”

내 단발령이 이 꼰대의 심기를 건드릴 걸 알면서도.

“…….”

그제야 천이백 년 만에 머리가 잘리게 된 꼰대가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 꼰대가 내 머리를 만질 때마다 읊었던 말이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였거늘.

이미 명대로 하겠다고 대답을 해 버렸으니, 차마 그것을 번복하지는 못하고 침묵 속에서 번뇌하는 게 분명했다.

“야, 막내 뭐 하냐! 전하께서 명하시는데 어서 받들지 않고!”

그때 뒤에서 호구별성이 깐족였다.

“그래, 이거 새 차사가 벌써 전하께 불충을 보이는구나.”

사라도 좋다고 끼어들었다.

역시 둘 다 형이 무엇 때문에 입을 다물었는지 아는 것이다.

잔뜩 신이 난 두 차사는 밉살맞은 말투로 번갈아 형을 재촉했다.

안 그래도 날카롭던 형의 눈매가 점점 더 매서워졌고, 잔뜩 핏줄 선 손마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빌미를 제공한 건 나이긴 한데…… 누가 그 강림차사를 저렇게 놀려 댈 수 있을까.

가짜 몸을 들고 있지만 않았다면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저러다 저승의 일등악과 이등악보다도 죄 없는 가짜 몸이 먼저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이 생소하고도 놀라운 광경을 잠시 구경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뭔가 웃기지만, 티격태격하는 어린 동생들을 중재하던 그때와 굉장히 비슷한 기분으로.

“강림.”

그 순간, 이름이 불린 형이 멈칫했다.

“내가 누구냐.”

나는 한껏 대왕의 위엄을 세웠다.

어쩌겠어. 편하게 대하래도 기어코 나를 대왕으로 모시겠다는데.

때문에 나는 죄책감 없이 ‘막내 차사’를 재촉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막내가 천천히 대답했다.

“대왕……님이십니다.”

뭔가 불충이 느껴지는 어투였지만, 나는 대왕의 미덕을 발휘해 타일렀다.

“대왕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지금 이 난장판의 중심에 있는 건 형이니까.

우선 형을 치우자.

***

형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상황은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도 두 차사는 형이 사라진 쪽을 보며 한참이나 배를 잡고 굴렀으니까.

“하하핫! 천상천하 유아독존 폭군 염라 만세로구나!”

“으하하핫! 누가 감히 어명을 거역하겠사옵니까, 전하!”

하필 두 차사야말로 강림 형이 선정한 일등악과 이등악이었으니, 처음에는 그냥 화가 난 형이 둘을 비난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런 그림이 된 거지.

천 년 묵은 꼰대를 웃음거리 취급하는 저 둘이 대단한 걸까?

생각해 보니 둘의 나이를 합치면 무려 팔천 년이었다.

그럼 고작 천 살밖에 안 된 형이 저런 취급을 당하는 것도 어쩔 수 없나 싶고…….

그들은 옷을 다 갈아입은 형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

본 적 없는 차림에 자연스레 그에게 시선이 갔다.

정작 돌아온 형은 살기등등한 기세로 두 차사를 쏘아볼 뿐이었지만.

“와아!”

옆에서 바리가 먼저 호응했다.

“차사님, 엄청 근사해요.”

손으로는 짝짝 박수도 치면서.

“머리도 하얗게 바꾸셨네요. 백호 같아.”

바리의 말대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새하얀 백발이었다.

시리도록 흰 머리카락 아래로 서슬 퍼런 저승사자의 눈은 과연 백호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바리의 감탄에 형은 뚱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더니.

“부덕한 왕을 섬기느라 시름이 많아 그렇다.”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

아마 저 머리색이 형 딴에는 나름 시위인 모양이었다.

새 왕 때문에 흰머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뜻 같은데.

항명은 하지 않겠지만 시위는 별개라는 건가?

뭐, 시위도 시위인데.

그렇게 질색했으면서 막상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조금 웃음이 났다.

천이백 년 묵은 꼰대답지 않게 상당히 현대적인 차림새.

언뜻 부드럽게 넘긴 듯한 머리칼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어서 빈틈없는 그의 심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저승 유니폼’과도 거리가 멀어졌겠다, 어쨌든 나는 그의 새로운 차림이 나름 마음에 들었는데.

“근데 뭔 양복이냐, 답답하게.”

이제야 웃음기가 잦아든 호구별성이 젖은 눈가를 문지르며 불쑥 태클을 걸었다.

검은 두루마기 대신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살며시 인상을 쓴 채로.

“우주질서보존회 짭이냐?”

……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나는 또 속으로만 긍정했다.

강림 형이야 뭐, 인간일 적부터 장사로 이름을 날렸을 만큼 워낙 훤칠하고 탄탄했으니까.

딱 맞게 차려입은 정장도 잘 어울리긴 했지만…… 우주질서보존회 같다는 말에는 딱 잘라 부정할 수가 없었다.

우주강도단도 하나같이 큰 덩치에 새까만 정장 차림이었지.

“무뢰배답군, 흉물.”

한편, 우주질서보존회 짭이라는 말에 불쾌한 심기를 드러내던 형은 멸시 어린 눈으로 호구별성을 내려다보며 핀잔했다.

“본래 나랏일을 보는 신하는 언제나 정복을 입어 단정히…….”

그러다가 문득 추리닝을 대충 걸친 노괴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할 말 있으면 하거라.”

“…….”

관대한 사라가 꼰대질을 허했다.

“……아니. 그냥 쇠귀에 경을 치겠다.”

그러나 차마 오천 년 묵은 아빠 친구한테 설교를 퍼부을 순 없었는지.

아니면 그냥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는지.

형은 미간을 좁힌 채 그렇게만 대답했다.

“…….”

다만 모든 게 다 거슬려서 못 봐주겠다는 듯한 눈초리는 다시 나를 향했다.

모르긴 해도 내게 한소리 하려는 게 분명했다.

그래, 충언이라는 이름의 잔소리를.

그것을 감지한 나는 슬쩍 몸을 빼면서.

“엣헴.”

헛기침을 한 번 하곤 선언했다.

“새로운 저승은 21세기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자율복장을 지향합니다.”

그랬더니.

“자율복장이면 두루마기도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새 차사의 논리적인 항변이 들어왔으나.

그것은 대왕의 권한으로 묵살했다.

***

몇 시간 뒤, 저승에 가까워질 무렵.

“것 보거라. 두 차사가 사이좋게 나란히 앉으니 좋지 않으냐.”

조수석에 앉은 사라가 느긋하게 말했다.

“…….”

속도를 낮추며 나는 슬쩍 뒷좌석을 살폈다.

“야이씨! 너 다리 더 접어! 너 때문에 좁잖아, 임마!”

“타고난 다리가 훤칠한 것을 어쩌란 말이지.”

“미친놈, 재수 없어!”

“재수 없는 놈만 쫓아가서 죽이는 역신이 재수 타령이라니,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군.”

삼천 년 묵은 역신과 천 년 묵은 저승사자가 흉흉한 가운데.

“오빠……, 저승, 멀었어요?”

사이에 낀 바리만 애처롭게 물었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죽음을 몰고 다니는 역신은 논외.

운전할 수 있는 건 자연스레 나뿐이었으니 당연히 내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월직차사와 강림차사 사이에서 ‘그럼 조수석엔 누가 앉느냐’로 설전이 벌어졌다.

서로 자기가 으뜸차사로서 대왕 곁을 지켜야 한다나.

그때 가만히 계시던 일직차사께서.

-뭐, 둘 다 앉힐 수는 없으니…… 그럼 둘 다 앉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왕마마.

아뢰며 당당히 조수석을 차지하신 것이다.

“기왕 한 식구가 되었으니 또래끼리 의롭게 지내거라.”

오천 살 노인네가 태평히 말했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한 항렬 위라는 게 느껴진다니까.

어쨌든 사라가 나선 덕에 지정석(?) 문제는 정리되었으나, 몇 시간째 죽음과 역병에 시달리는 가엾은 바리를 위해 나는 쉴 새 없이 밟아 대는 중이었다.

저승까지 서쪽으로, 서쪽으로.

“어?”

그런데 저승에 다다랐을 때였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사방에 뿌연 안개가 가득한 길 위.

불현듯 보이는 광경에 나는 눈을 끔뻑였다.

“……왜 나와 계시지?”

저승 입구에 뼈만 남은 바리네 조부모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곳은 이미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지라 산 자는 보통 오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었던 노인 둘이 저렇게 나와 있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는 황급히 차를 멈췄다.

“할머니! 할아버지!”

바리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곧장 조부모에게 달려갔다.

“……!…!……!”

바리를 발견한 조부모가 기다렸다는 듯 무어라 손짓했다.

“…!…!!…!……!!”

뼈밖에 남지 않아서 말은 못 하지만, 바리는 다 알아듣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그러다가 문득 그녀가 경악했다.

“그게 진짜예요?!”

그러더니 깜짝 놀란 얼굴 그대로 나를 돌아봤다.

“오빠, 지금 빨리 광천못으로 가 보셔야겠어요!!”

광천못?

갑자기 거기는 왜?

“큰일이에요. 잘못하면 저승이 무너질지도 몰라요!”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가만있던 집이 왜 무너져?!

14장. 뭐라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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