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세상 저편의 왕에게(4)
“……전하!”
호구별성이 다급히 새 왕을 불렀다.
새 왕에게 맞서던 망자는 어느새 등 뒤로 거대한 거울 셋을 거느린 채였다.
그녀가 멀리서도 느껴지는 흉흉한 기운에 인상을 썼다.
“저건 업경이 아니야.”
모양은 그럴듯했지만 염라가 다루던 진짜 업경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핏덩이 새염라가 저것을 과연 어디까지 꿰뚫어 봤는지 모르겠지만, 호구별성은 가짜 업경이 품은 삿된 기운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주술이다. 업경을 본떠 만든 주술이야.”
대상의 영혼을 비추어 신성을 증폭시키는 것은 업경과 같았다.
그러나 그 힘의 원천은 죄인의 업이 아닌 대상의 울분이었으며.
상대가 아니라 시전자의 영혼을 비추는 이상, 결국 그 영혼을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저대로 가다간 폭주한다……!”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곧바로 신성을 끌어 올렸다.
저 어린 녀석은 자기 혼자만의 싸움이라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저 거울이 망자를 집어삼키고 삿된 주술로 폭주하기 전에 막아야 했다.
“그만.”
한데 그녀가 신성을 끌어 올린 손을 뻗으려는 그때.
“끼어들지 마라.”
어느새 다가온 크고 시커먼 것이 그녀의 팔목을 붙들었다.
“……강림.”
팔이 붙들린 그녀가 녹빛이 형형한 역안으로 그를 노려봤다.
“야, 너 돌았냐?”
낮게 읊조리는 그녀를 중심으로 축축한 독기가 번졌다.
“지금 저 녀석이 뒈지면 왕이고 뭐고 다 끝이다. 천 년 넘게 저승에 처박혀 있더니, 뒈지면 환생하는 게 당연해서 잊어버렸나 보지?”
“…….”
시퍼렇게 날 선 차사의 눈이 그녀의 역안을 피하지 않고 직시했다.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다시 들려온 놈의 목소리가, 답지 않게 가라앉아 있어서.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호구별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들이받는 즉시 받아치려던 그녀의 분노가 무색하게도, 팔을 쥔 놈의 손에서는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놈이 지금 정말로 자신의 개입을 막고 싶은 게 맞는지 헛웃음이 터질 정도로.
“웬만하면 그놈 말대로 해 주거라, 별성.”
그때 옆에 선 노친네가 말을 보탰다.
“이대로 우리가 나서면 영원히 반쪽짜리 옥좌가 되지 않겠느냐.”
그 말에 그녀는 결국 어처구니없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러면서도 조금씩 그녀는 상황이 달리 보였다.
끼어들지 말라는 죽음의 신이든, 그대로 하자며 말을 보태는 부활의 신이든.
둘 다 진실로 새 왕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랬던 건가.”
그녀는 강림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멀찍이 바닥을 구르는 어린 녀석을 직시했다.
“영감이…… 정말로, 저 핏덩이를 새로이 남기고 갔구나.”
새삼 빈자리가 곱씹혔다.
이전의 주인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그리하여 새 왕이 스스로 올라서야 할 자리가.
***
“아빠…… 제발, 그만해!”
나와 진광 사이에 끼어든 송제가 외쳤다.
파장창!
연푸른 신성이 거울을 등지고 선 진광의 몸을 얼렸다.
한빙지옥의 왕, 송제의 신성이었다.
그녀가 다시 진광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이제, 가야 해……!”
그런데 진광을 얼렸던 신성이 어째서인지 송제 본인의 몸마저 새하얗게 얼리기 시작했다.
부모를 해친 패륜아를 벌하는 한빙지옥의 권능.
그것이 진광을 얼린 송제에게도 함께 뻗친 것이다.
“……아.”
그녀가 스스로를 죄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빙지옥이 벌할 죄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그제야 송제와 진광의 비밀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
진광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처럼 죽은 딸을 살려 내기 위해 왕이 되었다.
그렇게 죽은 딸을 던전의 권능을 이용해 또 다른 왕으로 만들었다.
그 권능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수많은 사람을 망령으로 부려야 할지라도 괘념치 않고.
그렇게 아버지는, 결국 악인이 되었다.
“……너어어!”
송제의 신성에 당한 진광이 소리쳤다.
그의 몸 곳곳에는 하얀 얼음 조각이 비늘처럼 돋아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그의 눈에서 새로이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피눈물은 송제의 신성에 닿는 족족 보석처럼 새빨간 결정으로 얼어붙었다.
“네가 어떻게…… 어떻게 이래!”
악에 받친 진광이 검푸른 신성으로 감싼 팔을 휘둘렀다.
“안 돼, 아빠!”
송제도 지지 않고 연푸른 신성을 쏟아 냈다.
“우리는 이제 가야 해!”
신성을 쏟아 낼수록 그녀의 몸은 계속해서 새하얀 얼음 결정으로 뒤덮여 갔다.
“가야 해, 그래야……!”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래서 죽은 자식을 거짓된 어른의 모습으로 빚어냈던 아버지에게 딸은 울부짖었다.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어!”
파아아앙!
그 순간, 분개한 진광의 권능이 송제를 덮쳤다.
“나는, 네가……!”
동시에 세 개의 거울에서 진흙처럼 꾸덕꾸덕한 어둠이 흘러나와 진광을 감쌌다.
“네가 어른이 된 걸 보고 싶었어……!”
진광의 절규가 이어졌다.
그의 몸을 감싸는 그것은 더 이상 단순히 신성을 증폭시켜주는 힘이 아니었다.
거울을 다루던 진광 본인조차도 제어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다시 만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어둠은 마치 악마의 아가리처럼 불길하게 그를 집어삼켰다.
진광의 몸은 보이지 않는 이빨에 물어뜯기듯 곳곳이 꺼멓게 물들어 갔다.
“너는, 너는 이제 곁에 없는데!”
그의 절규가 커질수록 그를 먹어치우는 어둠도 더욱 짙어졌다.
그의 몸은 어느새 그림자처럼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그럼에도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만은 선명한 핏빛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너는 이제 없는데!”
파아아앙!
신성이 번쩍였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완전히 검게 변질된 신성이 번쩍였다.
“아아악!”
발설지옥의 신성을 삼킨 정체불명의 힘.
그것에 당한 송제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
파지지직!
송제의 몸 위로 칠흑빛 스파크가 튀었다.
직후 아무렇게나 쓰러진 그녀의 몸이 빠르게 작아지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 버린 어린아이의 거짓된 모습이 강제로 벗겨지고 있었다.
“너는…… 너만은……!”
작아진 송제에게 진광이 다시금 외쳤다.
“너만은 나를 이해해줬어야지……! 헤어지기 싫은 나를, 이해해줬어야지!”
고통이 묻어나는 외침에 송제가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작은 몸 곳곳에는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얀 결정이 맺혀 있었다.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에도 슬픔이 고인 얼음 파편이 맺혀 있었다.
“……아빠, 아파.”
몸이 얼어붙은 채로 우는 아이.
“마음이, 너무, 아파.”
나는 아이를 얼어붙게 만든 지독한 한기의 의미를 안다.
아이가 스스로를 한빙지옥의 죄인으로 여기는 탓이다.
자신을 아버지를 해친 죄인이라 여기는 탓이다.
“언젠가부터, 마음이, 너무, 너무 아파.”
아이가 아버지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아빠가, 더 이상, 안 그랬으면 좋겠어.”
그 순간 굳어 있던 내 몸이 움직였다.
“그만해!”
이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당신 딸이야!”
작아져버린 송제를 끌어안고 검게 물든 진광에게 달려들었다.
“딸을 위해 왕이 됐던 거잖아!”
내가 발한 검수지옥의 은빛 신성이 나와 송제를 감쌌다.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 자를 벌하는 검수지옥의 신성이었다.
칼날의 나무처럼 폭발한 신성이 덮쳐 오는 검은 신성을 뚫고 나를 진광의 앞으로 인도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팍에 손을 뻗었다.
[ (!) 충돌한 지배법칙이 주도권을 겨룹니다. ]
[ (!) 사후세계(死後世界) ↔ 사후세계(死後世界) ]
그런데 피눈물을 흘리는 진광의 눈과 다시 마주친 순간.
망자의 왕이 되려던 우리의 권능이 서로 부딪친 순간.
“……아!”
부딪치는 신성에 섞여 드는 그의 감정에 다시금 몸을 떨었다.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너를 잃을 수 없어.
-너와 헤어질 수 없어.
그의 통한이 나를 뒤흔들고.
아버지를 어둠 속으로 끌어 내린 한이 검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너를 또 잃지 않을 거야.
-다시는 너와 헤어지지 않을 거야.
어둠에 잠긴 눈으로 끊임없이 피눈물을 흘리는 진광을 마주하며, 나는 새삼 절망했다.
내가 징악과 권선의 옥좌에 오를 때.
나의 가장 큰 적은 나와 다른 곳을 바라보는 선일 것이다.
하지만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한때는 선이었던 악일 것이다.
“……왜.”
변해버린 진광과 서로의 권능을 겨루며 나는 괴로워했다.
“왜, 이렇게 된 거야.”
악인이 된 그를 보는 것이 괴로워서 권능을 더할 수가 없었다.
처음 그들과 마주했을 때를 기억한다.
따스한 신뢰가 담긴 눈으로 송제를 바라보던 진광을 기억한다.
그 눈빛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 모습이 본래의 그에게 더 가까울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고자 했던 도산지옥의 권능이 거짓으로 펼쳐질 리 없다.
가엾은 아버지였다.
가엾은 딸이었다.
내 손에 쥐어진 권선의 권능도, 징악의 권능도, 이들 부녀에게 위안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괴로웠다.
이대로 아버지를 지옥에 떨어뜨리는 게 징악인가.
이대로 딸만을 홀로 다음 생에 보내는 게 권선인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해야, 나의 신화가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 ‘저승’의 새로운 클리어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 ‘저승’의 새로운 신이 깨어납니다! ]
뜻밖에도 막대한 신성이 ‘저승’을 뒤덮었다.
“……!”
‘저승’ 전체를 뒤덮는 눈부신 신성이었다.
마치 두 팔을 벌려 이 자리의 모든 것을 안아 주는 듯한 그 신성은 따스하고도 강렬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토록 거대한 신성을 발하는 존재의 강림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분명 이곳에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것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과 마주친 누구라도, 그것은 한없이 자애롭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그런 빛이었다.
나는 한눈에 그 존재를 알아봤다.
“……지장, 보살.”
사라졌던 구원의 신이 빛처럼 환히 웃었다.
지옥에 떨어진 이마저 가엾게 여기던 신은, 눈에 잡히지 않는 모습으로도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선명히 웃어 보였다.
“먼 옛날, 그대의 아버지 염라와 약속했었지.”
이윽고 구원은 숨결처럼 내려앉아 내게 손을 겹쳤다.
“악인이 떨어질 지옥의 밑바닥에는 내가 내려갈 테니, 그대는 지옥의 꼭대기에서 악을 벌하기로.”
[ ‘지장보살’의 권능이 ‘염라’의 권능에 깃듭니다. ]
[ ‘염라’의 권능이 일시적으로 변화합니다 : 사후세계(死後世界) → 중생구제(衆生救濟) ]
“지옥미제 서불성불(地獄未濟 誓不成佛).”
내게 깃든 지장보살이, 내 목소리를 빌어 영원한 천명을 읊조렸다.
“이 지옥에 빠진 모든 중생이 제도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나이다.”
[ 공간의 주도권이 바뀝니다 : 사후세계(死後世界) → 중생구제(衆生救濟) ]
던전의 지배법칙이 바뀌었다.
환한 빛에 휩싸인 망자들은 깨끗한 모습을 되찾았다.
진광의 신성으로 엉망이 되었던 몸들이 상처 하나 없이 나았고, 그다음에는 보란 듯이 형형색색의 보석으로 화했다.
구원의 빛을 맞이하여 각자의 생이 담긴 아름다운 보석들로.
내가 거두어야 할 혼으로.
“……!”
망자들뿐만이 아니었다.
거울의 어둠에 삼켜졌던 진광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를 감싼 빛은 그의 몸을 가렸던 어둠을 닦아 내고.
그의 영혼을 삼켰던 절망과 분노를 걷어 내고.
이윽고 그가 잃었던 본래의 얼굴을 되찾아주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눈빛을.
애정을 담아 미소 짓던 입매를.
그가 가장 빛나던 시절을.
“……그래.”
나는 어둠이 걷힌 진광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돌아왔구나, 당신의 선함이.”
내 말을 알아들은 듯 그가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구원의 권능으로 성불한 다른 망자들처럼.
빛에 휩싸인 그는 순식간에 영혼이 담긴 보석으로 화했다.
모든 중생을 감싸는 구원의 빛이었다.
지장보살의 권능에 모두가 성불한 가운데,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한 명.
“……대왕님.”
송제.
내 품에 안겨 있던 소녀였다.
“우리, 아빠, 지옥 갔어요……?”
어린아이로 돌아온 그녀가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지옥, 가서, 벌, 받아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음에도 아직도 혼자서만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어린아이.
지옥에 떨어져버린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괴로운 아이.
나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지장보살이 내려준 권능은 아직 내게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 이 아이의 구원은 분명 나의 몫이었다.
“……그래.”
천천히 대답했다.
“하지만 영원히 그곳에 있지는 않을 거야.”
지옥에 떨어진 죄인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아이에게.
염라가 함께 나눠 가진 지장보살의 천명을 약속했다.
“받아야 할 만큼의 벌만 받을 거야.”
이제야 깨달았다.
지옥의 밑바닥에까지 구원의 신화가 이어진 것은, 한때는 선이었던 악인과 그 악인을 끝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을 위한 것임을.
권선도, 징악도, 구원도…….
모든 저승의 신화는 결국,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여 시작된 것임을.
“벌을 받은 후에는, 아빠도 사랑하는 너를 다시 만나게 될 거야.”
[ (!) ‘저승’을 클리어했습니다! ]
[ (!) 당신의 신화에 허락된 인과율에 따라 육체가 재구성됩니다.]
[ (!) 당신의 카르마에 저승의 신화가 새겨집니다. ]
[ (!) 신화가 지배하는 공간에 당신의 카르마가 섞여 듭니다. ]
팝업창이 떴다.
[ 이제 당신은 명실상부한 저승의 왕입니다! ]
그러나 진실로 나를 구원의 옥좌에 앉힌 것은, 이런 팝업창 따위가 아닐 터였다.
[ 당신의 ‘영웅담(L)’이 ‘전설(L)’로 변화합니다! ]
***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저승 던전 입구.
상황을 지켜보던 우주질서보존회 안보팀이 비명을 질렀다.
“지장보살이라니, 저건 또 어디서 튀어나왔어?!”
예정에 없던 신의 등장에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버그야? 버그냐고?!”
“누구 데이터 사본 없어? 뒤져 봐! 저게 뭔지!”
“삭제 요청은 어떻게 됐어? 진짜 싹 지워 버려야 하는 거 아니야?!”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누군가 또 비명을 질렀다.
“헉, 변이도!!!”
22.145%
20.992%
19.007%
……
15.872%
……
11.354%
또다시 급격하게 내려가는 변이도에 안보팀이 펄쩍 뛰었다.
“삭제, 삭제 요청 빨리……!”
뭔지는 몰라도 역시 이런 가파른 변화는 좋지 않았다.
질서란 본디 삽시간에 붕괴하는 법이니까.
“팀장님, 행정팀에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던전 삭제 요청에는 아무런 답이 없어 더욱 불길했다.
“헉!”
그런데 그때.
“……크, 클리어!”
지켜보던 안보팀 한 명이 외쳤다.
“던전이 클리어됐습니다!”
액정 너머의 변이도를 가리키면서.
“벼, 변이도 6.298%!!!”
그가 상황을 정리했다.
“93.702…… 93%의 저승 신화가 복구됐습니다!”
‘오우, 저 눈치 없는 놈.’
지켜보던 행정공무원 3832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딱 봐도 팀장은 개빡쳤구만. 저걸 또 눈치 없이 신화가 복구됐다고 염병을 떨다니.’
슬쩍 돌아보니 삭제 요청을 했던 안보팀장 조금희는 팔짱을 낀 채로 아무 말이 없다가,
“……청장님께 연락드리죠.”
이내 심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결국 행정팀이 이긴 거군.’
행정공무원 3832호는 대충 결론을 내렸다.
‘청장과 팀장이 정확히 뭐 때문에 싸운 건지는 모르겠다만, 뭐, 말단이야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지.’
그러다가 문득 3832호는 엄청난 사실을 눈치챘다.
“어, 근데 그럼 저승 던전 이제 완전히 끝난 거네?”
그의 업무는 저승 던전의 도전자를 관리하고 변이도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꼬박 10년 만에 저승 던전이 끝났다.
그렇다는 것은.
“만세, 휴가다~~~~!!!”
패닉에 빠진 안보팀 사이에서 3832호가 외쳤다.
안보팀이야 전례 없는 일에 골이 빠개지겠지만, 행정팀인 그는 알 바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