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세상 저편의 왕에게(2)
도산지옥의 망자들을 지키기 위한 진광의 분신들.
그 수는 이곳에 머물던 수많은 망자와 같았다.
촤아아악!
나는 내가 가진 검수지옥의 권능을 발휘했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아악!
황금빛 분신을 뚫고 시퍼런 칼날나무들이 발아했다.
하나로 이어진 초식에서 죄인을 벌하는 칼날의 숲이 펼쳐졌다.
진광의 수많은 분신들은 모조리 그 숲에 가로막혔다.
파아아앙!
권능과 권능이 부딪치고, 한데 얽힌 진광의 분신과 칼날나무가 폭발했다.
부서지는 분신들과 황금빛 조각들 사이로 칼날의 잎사귀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나는 낙엽처럼 흩날리는 칼날 사이에서 진광에게 말했다.
“보이십니까, 이 칼날의 잎새들이.”
부딪치고 섞이는 두 신성 속에서 우리의 검이 다시 맞부딪쳤다.
내가 검을 쥔 두 팔에 은색의 검수지옥의 신성을 발하자, 동시에 진광도 자신의 검에 황금빛 도산지옥의 신성을 폭발시켰다.
황금빛 분신이 빛을 잃어갈수록 검수지옥의 신성이 공간을 장악한다.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 위협적인 소리와는 상이하게 반짝이는 은빛이 사방을 수놓는다.
그러나 황금빛이 전부 꺼져버리기 직전.
진광은 가까스로 검을 붙잡고 제가 가진 신성을 내뿜었다.
채애애앵!
반발과 뒤섞임을 반복하는 두 신성 사이에서 각자의 검이 다시금 맞부딪쳤다.
검자루가 붉게 젖은 검을 양손으로 쥔 그는 고통 따윈 모른다는 듯 악을 쓰고 휘둘렀다.
“검수지옥의 칼날나무 숲은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트린 죄를 심판합니다.”
채애애앵!
짓쳐들어온 검을 튕겨 냈다.
검수엽을 휘감은 백은의 광채가 황금빛 신성을 가르고 진광을 집어삼켰다.
“당신은 지금 저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강해지는 도산지옥의 권능이 죄인을 벌하는 검수지옥의 권능에 무너져 내렸다.
“당신이 아집을 부렸기 때문에 저들이 환생도 못 한 채 위험에 빠졌단 말입니다!”
채애애애앵!
일격에 중심을 잃은 진광이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힘에 밀린 그가 몇 번이고 땅바닥을 굴렀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진광의 가슴팍에 드러난 핵으로 손을 뻗었다.
“이제 끝내야 해, 진광!”
[ (!) 충돌한 지배법칙이 주도권을 겨룹니다. ]
[ (!) 사후세계(死後世界) ↔ 사후세계(死後世界) ]
도산지옥의 지배를 두고 나와 진광의 권능이 충돌하는 순간.
“안 돼애!!”
“왜 이러는 거야!”
“진광을 놔줘!”
주변의 망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 (!) 진광의 권능에 망자들이 깨어납니다. ]
[ (!) 진광의 권능이 도산의 칼날처럼 쌓입니다. ]
팝업창이 뜨더니.
한순간에 이곳의 망자들 전체가 황금빛 신성에 휩싸였다.
도산지옥의 신성에 휘감긴 망자들이 한데 엉켜서는 마치 거대한 산처럼, 하나의 몸으로 합쳐져버렸다.
이때껏 망자의 삶을 유지하는 데 그쳤던 진광이, 기어이 제 권능으로 망자를 변이시킨 것이다.
“지,진광……으으으.”
“우리……의, 왕.”
“아아, 아으으으. 와, 와, 왕.”
합쳐진 망자들이 각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댔다.
겹겹이 쌓여 하나가 된 거인.
그의 거대한 팔과 다리에는 수십 개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하나하나 다른 얼굴들이 하나같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여러분!”
그 사이 몸을 일으킨 진광이 외쳤다.
“이자가 우리를 해치고 있습니다!”
그의 가슴팍에서 검붉은 핵이 번쩍였다.
휘하의 망자를 뜻대로 움직이는 왕의 권능으로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망자들을 선동했다.
“간신히 되찾은 우리의 삶을 망치고 있습니다!”
진광의 선동에 하나로 덩어리진 망자들이 괴롭게 울부짖었다.
“그으으, 왜애애애, 우,리이이이,으르를.”
“우리이이가아아아,왜애애애애.”
“주우우우욱기,시이이이러어어어어.”
“이자를 없애야 합니다!”
피눈물을 쏟으면서.
비명처럼 일제히.
“……아.”
현실감 없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침음했다.
숨 고를 새 없이 진광이 다시 외쳤다.
“이자가 우리의 삶을 짓밟고 있습니다!”
퍼어어억!
진광의 비통한 외침에 감응하듯 크게 휘둘러진 거인의 팔은,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빠른 속도로 나를 강타했다.
“크윽!”
온몸을 덮친 묵직한 힘에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전하!”
“대왕!”
겹치듯 들려온 목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충격에 흔들리는 시야로 그들이 내게 다가오려는 게 보였다.
두 신 모두 어느새 끌어올린 신성을 휘감은 채다.
“……아니.”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오시면 안 됩니다……!”
그들을 등지며 검을 고쳐 잡았다.
거인이 달려들면 언제든 받아칠 수 있게.
“진광이 권능으로 망자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도 무사하실 거라는 보장이 없어요.”
초강을 만났을 때도 초강의 불길이 옮겨붙으면 그녀의 망자가 되었다.
대상을 지배하는 왕의 권능에는 전염성이 있다.
왕의 권능을 지니지 않은 이상 도산지옥의 망자들과 얽히는 것은 위험했다.
무엇보다.
“…….”
나는 망자들 너머로 이쪽을 바라보는 강림 형을 마주했다.
그가 특별히 나만을 주시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의 시선을 의식한 순간, 나는 마치 그에게 대답하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온전히 저 혼자만의 싸움입니다.”
거인이 기다렸다는 듯 발을 구르며 달려들었다.
망자들은 한 번 녹은 뒤 아무렇게나 섞여 다시 굳어진 것처럼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수많은 눈과 동시에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낀 찰나.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들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그게 너무 가여워서.
그들에게 잠깐 시선을 빼앗겼을 때였다.
“그자를 치십시오!”
진광의 명령에 거인의 주먹이 다시 한번 나를 덮쳐 왔다.
퍼어어억!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다시는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퍼어억!
퍼어어억!
주먹이 뻗어 오는 경로는 단순했지만 주먹에 실린 무게와 속도는 단순하지 않았다.
검면으로 공격을 막아내며 최소한의 방어만을 이어가길 한참.
팔과 어깨에서 점차 힘이 빠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크읏!”
미세하게 경련하기 시작한 팔 대신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텼다.
그대로 몸을 비틀어 공격을 흘려 낸 뒤, 거인이 한 걸음 물러나길 기대하며 위협하듯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촤아아악!
“……!”
검수엽은 거인의 살갗을 깊이 갈라 냈다.
검자루를 쥔 손에서부터 전해지는 선명한 감각에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주우욱기이이시이이이러어어.
내가 휘두른 검이 거인…… 아니, 이들을 베어 내는 감각이 지나치게 또렷해서.
하나로 얽혀버린 망자들의 절규가 뇌리에 선연히 박혀 들어서.
이대로 내가 그들을 베어야 한다는 것이 그저 끔찍하게만 느껴져서.
퍼어어억!
바로 앞까지 온 주먹을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크윽!”
단 한 번의 일격에 속이 뒤집혔다.
채애앵!
놓친 검이 허공에서 회전했다.
고통보다도 비어버린 손에 낭패감을 느꼈다.
퍼어어억!
퍼어어어억!
그 틈에 거인의 공격이 연달아 치고 들어왔다.
“……윽!”
무지막지한 힘에 또다시 바닥을 구르고.
“……아.”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코앞까지 다가온 거인이 거대한 팔을 뒤로 당겼다.
황금빛 도산지옥의 신성을 두른 주먹이 그대로 끝을 내겠다는 듯 날 향해 쏟아져 내렸다.
“……!”
파아앙!
그 순간 눈앞에서 검푸른 신성이 번쩍였다.
“뭘 하고 있는 게냐, 막내야.”
거리를 두고 상황을 관조하던 강림 형이 발설지옥의 권능으로 간단히 거인을 날려버렸다.
먼발치에서 나를 응시하는 그의 목소리는 거리와는 상관없이 무척이나 생생했고.
새파랗게 날이 선 신의 눈은 멀리서도 형형히 살갗을 파고들었다.
“……형.”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그를 불렀을 때였다.
채애앵.
그의 발에 차인 검수엽이 코앞에서 멈추었다.
“……!”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아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왕이면 왕답게 싸워라.”
흔들리는 시야로 형의 말이 이어졌다.
“저 망령들은 네 차사들에게 맡기고 너는 왕을 치란 말이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를 힐난했다.
“네 차사들을 도산지옥에 빼앗기는 게 두려웠느냐? 뺏긴다 한들 도로 빼앗아 오면 그만이야. 그게 왕이다.”
왜 그 당연한 것도 생각 못 하느냐는 듯이.
“전쟁에서 졸이 죽어 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더냐. 왕을 치면 모든 게 끝이다. 왕의 목만 베면 모든 게 다 네 손안에 들어와.”
가볍게 팔짱까지 낀 그가 내게 말했다.
“알아듣겠느냐. 왕을 쳐. 왕을 치고 네가 저들의 왕으로 새로이 군림해라.”
그런데 그런 그의 목소리 위로.
-폭력은 선을 이룰 수 없어.
어째서인지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폭력은 악을 벌할 수는 있지만…… 악의 부존재가 선은 아니기 때문이란다.
나의 두 번째 아버지.
돌아가신 염라대왕님의 목소리였다.
“……아.”
선명히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형이 내 앞으로 보낸 검을 집어 들고.
그다음엔 나를 종용하는 형에게서 등을 돌렸다.
“…….”
핏물로 흐트러진 시야에 도산지옥의 거인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공격하던 망자들은 아직도 발설지옥의 검푸른 신성에 뒤엉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형의 신성에 당한 충격 때문이었다.
“그래, 그렇게.”
등 뒤에서 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왕을 쳐라.”
나는 형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 대신 눈앞의 진광을 직시했다.
내 손으로 끌어내려야 할 거짓된 왕이었다.
눈이 마주친 진광은 내게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다시금 획 돌아서며 도산지옥의 망자들에게 외쳤다.
“무엇들 하시는 겁니까!”
파지직!
무너진 거인의 몸에서 검푸른 신성과 황금빛 신성이 서로 얽히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발설지옥의 신성과 도산지옥의 신성이었다.
“일어나십시오!”
아직도 강림 형이 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에게, 진광이 억지로 권능을 불어넣는 것이 분명했다.
“일어나서 저자를 치십시오!”
“우우우아아아아--!”
진광의 명령에 망자들이 또 한 번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파지직.
파지지직.
끊이지 않는 스파크에 망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왕의 명령에 거역할 수 없기에.
“아아아-아아아-!”
하나의 몸으로 얽힌 수많은 입에서 절규가 끊이지 않는다.
나를 노려보는 그들의 눈에서는 검붉은 피눈물이 용암처럼 들끓었다.
괴로워하는 그들의 얼굴이 참혹하게 눈에 박혔다.
“…….”
숨을 삼켰다.
단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베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칼끝을 타고 전해지던 그들의 고통과 울분이 자꾸만 메아리쳤다.
온통 절규만이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계속 서 있기만 할 것이냐, 막내야.”
강림 형이 다시 말했다.
파지지직!
파지직!
동시에 망자들의 몸에서도 연이어 스파크가 터졌다.
“어서 왕을 쳐. 네 손에 들린 징악의 권능으로 저 거짓된 왕을 쳐라.”
이어지는 형의 말에도 점점 힘이 실렸다.
“거짓된 왕을 벌하고 저들을 너의 백성으로 삼아. 아버지께 물려받은 그 힘으로 진정한 왕이 되어라.”
파지지직!
스파크가 일면서.
“우우우아아아아아.”
“괴에에에에로오오워어어어.”
“아아아파아아아아아.”
망자들의 절규도 다시금 지옥의 비명처럼 끓어올랐다.
스파크.
진광의 명령.
강림 형의 목소리.
망자들의 절규.
그 모든 것이 한데로 뒤엉켜 이명처럼 나를 덮쳤다.
그리고.
“……아니.”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폭력은 선을 이룰 수 없어.
오래전에 들었던 내 아버지의 목소리를 되새기면서.
형, 진광, 망자들, 괴롭게 나를 덮쳐 오는 그 모든 것 앞에서도 오직 그분의 목소리에만 집중하면서.
“그저 저들의 왕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의 말대로 왕을 쳐서 이기면 그만이었다.
진광은 이미 거짓으로 망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죄를 저질렀다.
내가 가진 징악의 권능으로 그를 벌하고 그의 자리에 올라서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선택한 왕의 길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가 가야 할 길이 뚜렷이 보이는 듯했다.
“왕이 됨으로써 제가 선택한 선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답을 내렸다.
그대로 다른 일행에게로 몸을 돌렸다.
가야 할 곳이 분명해진 이상, 이제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바리!”
검수지옥에서 망자들에게 내 목소리를 전해 줬던 그녀에게.
“천도해줘!”
나는 다시 한번 왕의 목소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네, 오빠!”
눈이 마주친 그녀가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무당의 ‘천도(薦度)’가 시작됩니다. ]
대답과 동시에 팝업창이 떴다.
“망자여, 왕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그녀가 새하얀 신성을 발했다.
그녀를 중심으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신성.
무당이 발하는 천도의 빛이 망자의 거대한 몸을 감싸 안았다.
파아아앙!
천도가 시작되었다.
“아아아우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짐승처럼 울부짖던 망자들의 절규가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아아.”
절규는 어느새 작은 숨소리가 되고.
산 자들을 닮은 숨결이 되고.
빛에 감싸인 그들은 흉측하게 얽혀 있던 모습에서 다시 평범한 몸을 되찾아 갔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누리던 그때로 되돌아갔다.
“여러분……!”
나는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눈에 새기며 말했다.
“여러분의 생은, 이미 종착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이 이미 오래전에 받아들였어야 할 진실을 전했다.
“가셔야 할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이야!”
그때 진광이 끼어들었다.
“다 거짓말이야. 놈이 속이고 있어!”
그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놈을 죽여. 그럼 이대로 계속 행복할 수 있다고!”
악에 받친 그의 선동에, 모습을 되찾아 가던 망자들이 또다시 황금빛 빛을 뿜었다.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금방이라도 도산지옥의 망령이 될 것처럼.
그들이 다시금 한데로 얽혀 들며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떨리는 눈에 피를 흘리며 현실을 부정했다.
“우,우리는.”
“우리,는, 살고 싶어……!”
“우,리느으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도망치려고 했다.
“…….”
순간 몹시 참담한 기분이 되어 그들을 마주했다.
이대로 그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도 있을 터였다.
강림 형이 종용했던 것처럼, 그냥 이대로 진광을 제압해 저승을 제패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하면 어렵지 않게 저들을 휘하에 둘 수도 있을 터였다.
폭력으로서 군림할 수도 있을 터였다.
“왕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 바람은 단지 왕이 되는 것만이 아니었으니까.
왕이 되어 선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짜 가야 할 길이었으니까.
나의 선은, 저들처럼 가엾은 이들에게 다음을 주는 것이니까.
“달콤한 말로 잠시 위안을 줄 수는 있을 겁니다. 당신들의 왕이 이제껏 그래 왔던 것처럼요!”
비통한 심정으로 망자들에게 외쳤다.
“하지만 왕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왕이 거짓되면 결국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나는 권선과 징악의 신 염라였고,
진광의 선은 결국 부패한 악이 되어 사람들을 속였다.
진광을 힘으로 저지하는 것.
폭력으로 악을 벌하는 것.
지금껏 사람들의 눈을 가려 왔던 거짓을 징악의 권능으로 몰아내는 것.
염라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염라이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악을 몰아낸다 한들 그것이 선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
악의 부존재는 선이 아니다.
폭력으로 악의 부존재를 이룬다 한들, 선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약속이다.
악의 부존재 아래, 더 나은 세상을 이루겠다는 약속이다.
“왕은, 거짓된 위안이 아니라 진실된 미래를 약속해야 합니다!”
나는 망자에게 외쳤다.
내가 당신들의 왕이 되게 해달라고.
왕이 되어 당신들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영원히 나의 선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저는 당신들의 왕이 되어, 당신들께 반드시 다음 생을 약속하겠습니다……!”